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예술이(을) 만나는 방식

예술청 공동운영단 해체를 통해 바라본 시작과 끝, 그 사이와 사이,

이연주

제232호

2023.04.27

예술청 공동운영단 민간위촉직 8인이 서울시민과 예술가들에게 띄운 서시레터를 읽었습니다. 그동안의 공개되지 않은 갈등과 비정상적인 운영의 과정이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면 그 시간은 활동 계획으로 채워졌겠죠. 일자별로 정리된 경과보고는 중단된 활동일지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번 [현장]에서는 예술청 공동운영단 해체 통보로 인해 실행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본 글에서 예술청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모두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여러 기사 및 관련 글의 링크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하게 이어지는 타래들이지만, 그만큼 쌓여온 예술청의 안과 밖의 시간을 긴 호흡으로 함께 가늠해보시기를 바라며, 기록을 나열해봅니다.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1), 블로그2), 예술청정상화대책회의 페이스북 페이지3) 및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지금의 대학로극장 쿼드가 블랙박스 공공(가칭)으로 개관을 준비하던 시기에 공연 접근성 확장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다. 참석을 요청받았을 때부터 질문이 계속됐다. 워크숍 제안자는 이미 여러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각자의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니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창작자이자 관객이고, 시민이며, 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 장애 정체성을 갖고 작업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문제에서 비장애인은 덜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닐까?4) 물론 접근성이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공연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불편한 입장에 놓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접근성에 대해 넓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스스로 당사자성과 대표성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마치, 누구를 대표해서, 누구를 대리해서, 참석한다는 부담과 책임, 그리고 자기검열. 나는 매개자인가? 당사자인가? 전달자인가? 기관의 현장 자문, 좌담 등에 참석하게 될 때에는 공연장-창작자-관객/재단-예술가-시민의 삼각관계에서 행정-현장/관-민의 어떤 사이에 놓여 있는 것 같았고, 그 사이의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나는 나의 위치를 물었다. 그때 예술청 건물에 처음 방문했다. 예술청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접근성에 대한 워크숍이었기에 건물 입구에서부터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확인하고, 바닥의 표시와 건물 안내 등, 다른 목적의 방문이었다면 무심코 들어갔을 길과 건물의 안팎을 평소보다 오래,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시선으로, 나의 이야기이자, 공연장을 오고 간(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문화재단대학로 청사의 점자 안내판을 촬영한 사진이다. 안내도 좌측에는 건물의 1층 촉지도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1층부터 6층까지의 공간에 대한 층별 정보가 점자와 묵자로 안내되어 있다.

2020년 12월 29일, 제1기 공동예술청장 및 예술청 운영위원 공모가 시작됐다.
2023년 4월 4일, 서울문화재단은 예술청 공동운영단 임기 종료와 함께 공동운영단 해체를 통보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경과는 민간위촉직 위원들이 보낸 서시레터5)를 통해 알 수 있다.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공동운영단 공모, 선정, 활동 시작, 예술청 개관,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보면서는 알 수 없는 일들, 그사이의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이 사이의 시간을 추측하면서 예술청과 관련한 논의가 비단 지난 2년의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3인의 공동 예술청장 대담’의 일부를 캡쳐한 사진이다. 사진 속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예술청은 2016년 서울시에서 처음 계획했을 때부터 공공과 예술가가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간다는 원칙이 있었다. 재단에서 준비를 시작한 2019년 첫해에는 현장 예술가로 구성된 ‘예술청 기획단’을 조직해 예술청 운영 모델 공론화와 공간 활용 아트 프로젝트 등을 추진했고, 2020년에는 이를 확장해 ‘예술청 운영준비단’이라는 이름으로 100명 이상의 현장 예술가가 참여해 예술청 운영 모델 수립을 위한 논의와 거버넌스 방식의 사업 모델을 실험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21년 초에는 예술청의 실질적 운영을 담당할 1기 예술청 공동운영단을 공개 모집했다. 그 결과 예술청장 2인(김서령·여인혁)과 운영위원 9일(박무림·봄로야·서상혁·양정훈·오희정·유모라·윤서비·장석류·황유택)이 선정됐다. 이후 재단 조직 개편을 통해 합류한 당연직 공동예술청장 1인(장재환)과 예술청팀 8인이 4월 5일부터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출처: 서울문화재단 공식 블로그]

꽤 오랜 시간 동안 긴 호흡으로, 각자의 현장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함께 모여서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연대·확장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일.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시도하기 위해서 이들은 모였을까?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를 무엇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3인의 공동 예술청장 대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시작하고 실험하는 거버넌스: 3인의 공동 예술청장 대담” (기사 보기)

정리된 이야기는 한 호흡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분량이지만, 새로운 사례를 만드는 시간은 꽤나 지난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개관 전에 나눴던 대담이지만, 개관 이후에는 이들이 나눈 계획들이 얼마만큼 실현되었을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공동 운영단으로 모인 11인의 민간위촉직과 9인의 예술청팀이 2023년 임기종료 이후에 함께 나누었을 좌담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를 상상해본다. 준비하고 계획한 일이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마음속으로나마 그려볼 수 있는 일이 상상이기 때문이다.

2022년 8월 4일, 예술청정상화대책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예술청 공동운영단 민간위촉직의 입장문6)이 올라왔다. 민간위촉직은 ‘서울문화재단의 조직개편으로 예술청은 예술창작본부 산하 대학로센터실에 속하게 되었고, 재단 소속인 예술청팀 구성원이 교체되었다. 재단이 예술청 출범의 본래 목적인 지속가능한 예술환경 조성과 협치를 무시했다’고 밝혔고, 재단은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입장문7)을 발표했다. ‘통합적 운영을 위한 조직개편으로 인한 예술청의 위상 변화는 없으며, ‘新(새로운) 대학로 시대’를 위한 예술인과 일반관객에 대한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리고 종합적인 민관 거버넌스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외부전문가 평가 연구용역에 착수했음을 밝혔고, 더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대표성 획득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시작을 같이 했는데, 끝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을까요?”
- 제0회 서울예술인회의(2023.4.5.) 참석자 발언 中

2021년 10월 18일, 서울시는 이창기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부회장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대표이사의 취임 100일을 맞아 서울문화재단은 ‘3대 전략, 10대 혁신안’을 발표8)했다. 주요 방향은 예술가, 시민, 예술계 등 세 부분으로 1. 지원정책의 다변화 모색, 2. 서울시민 문화향유 프로그램의 획기적 증진, 3. 투명하고 공정한 예술 환경 시스템 구축이다. 이 계획에서 ‘대학로센터 내에 위치한 예술청은 시민과 예술가를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운영’되며, ‘분기마다 문화예술 분야(장르)별로 역량있는 문화예술 전문단체, 각 장르별 협회, 오피니언 리더, 예술가들과 함께 문화예술계 주요 이슈와 트렌드를 고민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예술인 新거버넌스 <서울문화예술포럼>(가칭)을 정식으로 발족’할 것을 밝혔다.
이창기 대표이사는 취임과 함께 서울문화재단의 새로운 전략과 혁신안을 발표했고, “재단이 준비한 이 전략은 새로운 대학로 시대를 선도하고, 미래예술을 이끌 문화예술의 토대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새로움’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늘 따라붙는 말이다. 그래야만 답답했던 과거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오류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과거와 현재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재단에서는 그간의 민관 거버넌스에 대한 통합적 평가와 분석을 위해 외부전문가 평가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다시 질문이 생긴다. 민관 거버넌스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외부전문가를 통해서 확인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 거버넌스를 확장한다는 것은 다수의 목소리를 통해 반영되는 것인가? 전문성과 대표성은 민관 거버넌스를 이야기할 때 늘 거론되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을 전문성으로 볼 것인지, 대표성으로 이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구체적인 시도와 여러 층위의 공론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현실화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실종됐다. 공동운영단 종료 시점은 형식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충돌로 인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활동이 남아있으며, 공동의 활동에 대해 자체적으로 또는 공론장을 통해 평가·분석할 수 있는 시간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성과 대표성에 대한 질문은 왜 유독 현장, 민간으로만 향하는가? 기관, 행정의 전문성과 대표성은 무엇으로 획득되는 것인가? 예술의 전문성은 누구에 의해 정의되고 획득되는 것일까? 다수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에서 과연 기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표할 수 있는가? 일방적 말하기와 일방적 듣기로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직 예술청 공동운영단 해체에 대한 재단의 입장은 발표되지 않은 듯하다. 재단의 계획은 무엇인지, 종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새소식’을 클릭하면 지원사업 선정결과를 제외하고는 모집, 개관, 신설, 개막, 라인업, 개최 등 시작에 대한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검색 기능에서 ‘예술청’을 검색해본다. 2022.9.8. ‘예술거래 오픈 포럼 <예술거래 A to Z> 참여자 모집’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종료’를 검색해본다. 각각의 이유로 많은 사업과 공간이 종료되었다. 종료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이 유지되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러한 선택과 결정의 사이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 다시 상상해본다. <학교예술교육 TA(예술로 플러스, 예술로 함께)> 사업 종료(2006~2022), 대학로연습실 운영 종료(2022.9.30.),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사업 및 공간 운영 종료(2021.12.31.), 서울예술치유허브 폐관(2021.7.28.), 장애아동 창작지원 프로그램 <프로젝트A> 사업 종료(2013~2020), 남산예술센터 운영 종료(2009~2020), 남산창작센터 운영 종료(2020.12.12.), 남산예술센터 창작희곡 상시투고 시스템 ‘초고를 부탁해’ 운영 종료(2020.12.31.)

예술청 홈페이지 캡쳐사진. 회색 배경에 검은 글자들이 쓰여있다. 화면 가운데 큰 글씨로 예술청 소개 예술청은 공동의 의사결정 및 수평적 구조를 기반으로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 연대, 확장 플랫폼입니다. 라는 안내글이 쓰여있다. 
      상단에는 메뉴가 위치해 있다. 좌측부터 차례로 +About S.A.P, 예술청 사업, 아카이브, 멤버십, 공간·대관, 예술인지원센터, 공지사항, 검색창 등의 메뉴가 있다.
예술청 2층 안내데스크 옆에 위치한 컴퓨터. 데스크탑 모니터와 키보드가 보인다. 모니터 화면에는 인터넷 창이 켜져 있고, 흰 배경의 한 가운데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 연대, 확장 플랫폼 예술청입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웃는 이모티콘)’이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고, 안내문의 아래에 파란색 ‘반가워요’ 버튼이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문의 사항을 민원으로 처리하면 답변은 얻을 수 있겠지만, 검색과 질의응답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다시 예술청을 방문했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면에 공연장과 현재 진행 중인 공연 소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전시 공간처럼 넓고 하얀 벽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면에는 작은 카페가 있고, 오른쪽에는 예술청에서 진행된 공연 영상이, 왼쪽에는 ‘서울예술인NFT’9) 갤러리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벽면에는 재단의 경영방침과 핵심가치, 경영목표, 전략방향 및 전략과제가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2층 정면으로 보이는 안내데스크 옆에는 예술청 홈페이지10)가 띄워져 있었다. 멤버십 가입 신청을 위한 페이지에는 다음의 문구가 여전히 예술청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술청은 공동의 의사결정 및 수평적 구조를 기반으로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 연대, 확장의 플랫폼입니다.”

사라지고, 생성되고, 기억하고, 기록되는 현장

예술청 건물을 처음 방문했을 때 참여했던 워크숍은 공공 공연장이 갖추어야 할 조건, 환경, 태도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공유,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여러 참여자들과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개관될 공간과 사람의 접근성을 높여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보통 기관의 현장 자문이 일방적으로 다양한 현장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듣거나 간단한 질의응답을 나누는 일회성의 자리라면, 블랙박스 공공(가칭)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은 일회성 참여지만 각자의 사례를 기반으로 발표/발제를 통해 질의/의견을 나누는 형태로 진행됐다. 기관 직원 1인에 현장 참여자 4~5인으로 구성되는 현장 자문과는 달리, 공연장 직원 다수와 현장 참여자 다수가 함께 각자의 위치에서 질문하고 의견을 나눴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실감했고, 동시에 공동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느꼈다.

지난 4월 5일 진행된 <제0회 서울예술인회의: 문화예술거버넌스의 이상반응 진단과 처방>은 현장의 시선과 목소리로 서울문화예술거버넌스의 오늘을 진단해보는 자리였다. 공동운영단 해체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기록·평가할 수 없었던 과정을 자발적으로 기록하고, 평가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인사동 코트 2층에는 예술청 안에 붙였던 대자보와 포스트잇, 현수막이 옮겨져 있었다. 민간위촉직 위원들 외에 예술청의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예술청 사태를 경유하여 거버넌스를 평가하고 예술청에 대한 초기 계획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점검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문화예술 현장의 기록된,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는 6시간 넘게 이어졌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참여자들이 거버넌스를 정답으로 놓고 인식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을 내외부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해석하며, 이후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위해, 이 자리는 발제문을 읽고 질의·토론하는 방식이 아닌, ‘참여한 모두의 경험을 이어말하기’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서울 예술인회의에 마련된 키링을 촬영한 두 개의 사진이 나란히 보인다. 왼쪽 사진에는 ‘어디로 어떻게’라는 글자가 쓰인 주황색 플라스틱 키링 여러 개를 나무 판 위에 얹어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나무판의 왼편으로 고개를 치켜 든 강아지가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해당 키링 하나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인데, 벽에 비친 키링의 그림자에서도 키링에 새겨진 ‘어디로 어떻게’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다.
‘제0회 서울예술인회의’에서는 문화예술기획자이자 ‘서울예술인플랜’ 기획단이었던 ‘유구리최실장’님이 제작한 키링이 배포되었다.

예술인, 예술 활동, 예술인권리보장법, 지역, 블랙리스트, 거버넌스, 갑을 계약 관계, 플랫폼, 비정규직 행정 담당자, 담당자 순환보직, 예술인 플랜, 독립성 등 연결되어 있지만 하나로 모일 수 없었던 이야기가 나열되면서 각자의 경험이 서로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각자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직면한 일이자, 모든 예술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이제는 사라진 활동, 공간에 대한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기억도 있지만, 실행하는 과정에서 민간과 민간의 네트워크, 경직된 구조에서는 나올 수 없는 사업/사례를 만들거나 경험했던 기억, 기존의 성과/미학과는 다른 시선으로 참여한 기억, 예술로 교감하고 그를 통해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이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빛나던 얼굴들이 있었다. 예술을 매개로 한 현장이 그렇게 각자에게, 공동의 기억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공동운영단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는 예술청을 경유하여 그간 서울문화재단을 비롯한 예술계에서 일어난 많은 일을 떠올리게 한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거나 반복될 뿐이다. 함께 기억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이어가기 위해 현장의 질문을 기록해둔다. <제0회 서울예술인회의> 기록집을 통해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집은 이후 예술인정상화대책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공유될 예정이다.

  1. 우리는 거버넌스를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
    • 거버넌스와 거버넌스가 아닌 것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 문화·예술 현장의 거버넌스에서 권한과 책임은 어떻게 작동할 수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가?
  2. 예술청의 실험과 실패
    • 예술청의 예술청 설계운영과정 평가 및 이후 현재의 상황까지
    • 앞으로의 예술청은 어떻게 존재하여야 하는가?
  3. 서울시(서울문화재단) 거버넌스의 표류
    • 과거와 현재의 거버넌스를 경험하며 감각하는 사회적, 개인적 변화는 무엇인가?
  4.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 향후 10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로 어떻게11)

현재 서울문화재단은 서울문화예술포럼12) 을 3회 개최한 바 있다. 단편적인 사례일 수도 있으나, 다양한 현장 관계자의 목소리가 어디로 집중되는지를 가늠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관이 주도하는 확장된 거버넌스가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예측이기도 할 것이다. 민간위촉직 8인은 예술인 조합을 결성하였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공동운영단으로 선정되었고, 계약서에는 평가에 의해 연임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대표에 의한 일방적인 통보로 부당해고를 당했고,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에도 예술인조합은 명백한 사유와 결정을 내린 과정에 답변을 요구하며, 협의 과정을 계속 진행하려고 한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의 전경을 찍은 사진이다. 어두운 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의 간판과 건물 곳곳에 조명이 켜진 모습이다.

현장과 행정을 떠올리면 흔히들 거리가 멀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거리가 있다는 것은 그 사이의 공간, 간격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간과 공간 사이, 간격과 간격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점이 있다. 수많은 점처럼 놓여 있는 현장과 현장 사이에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개·보완하여 공동의 논의를 실현하는 과정에 행정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정된 대표성이란 지속될 수 없다. 각자의 현장은 조용한 움직임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 무엇으로 대표되는 고정된 실체를 확인하기보다는, 여러 층위가 혼재된 각자의 위치성을 갖고 만날 때에야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공론장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시민이자 예술가이고, 예술가이며 기관의 직원이고, 기관의 한 사람이자 시민이기도 한, 이 모든 것이 뒤섞일 수도 있는, 온전히 구분되지 않으며,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각자의 위치는 민-관 사이의 어디에 놓여 있을까? 서로가 서로의 현장임을 인식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떻게 가능할까? 예술이, 예술을 만나는 방식은 어디로, 어떻게?

[사진: 필자 제공]

  1. https://www.sfac.or.kr/index.do
  2. https://blog.naver.com/i_sfac
  3. https://www.facebook.com/sap.action
  4. 참고로 워크숍에는 장애인 창작자, 비장애인 창작자, 워크숍 매개자, 재단 직원들이 함께했고, 각자의 사례 공유에 초점을 둔 자리였다.
  5. https://www.facebook.com/100084194531723/posts/176286835187800/?mibextid=ykz3hl
    예술청정상화대책회의, 「서시레터002. “두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2명의 운영위원 사퇴 전후의 이야기”」, 2023.3.14.
  6. https://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7243222086828&id=105884478889369&mibextid=ykz3hl
  7. https://www.sfac.or.kr/opensquare/news/press_list.do?cbIdx=966&bcIdx=133249
  8. https://www.sfac.or.kr/opensquare/news/press_list.do?cbIdx=966&bcIdx=129251&type=
  9. https://sfac.or.kr/nft/seoulArtistNFT.do
  10. https://sap.sfac.or.kr/
  11. ‘제0회 서울예술인회의’에서 배포된 키링의 문구에서 인용하였다.
  12. https://blog.naver.com/i_sfac/222874626585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이연주

이연주 본지 편집위원
연극 쓰고 연출합니다. thukushi97@daum.ne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