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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퀴즈쇼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

정윤영

제234호

2023.05.25

시작은 대학로였다. 공연장을 오갈 때마다 혜화동 로터리 근처 천막 농성장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에서 보던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만든 천막이었다. 천막은 철거되면 다시 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몇 년째 그 자리에 있었다. 천막에 적힌 수수료 삭감 반대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문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은 나의 일이라는 극작가 이양구의 말에 동인 집단 ‘혜화동1번지’ 연극인들이 모였고 함께 재능교육 천막을 찾았다. 연극인들과 재능교육 사태를 공부하고,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하며 2013년 단막극 <아름다운 동행>이 만들어졌다.

연극인도 노동자라는 경험, 우리는 모두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 함께 연대했던 인연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바로 다음 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47억 손해배상 가압류 징계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한 한 시민의 제안으로 10만 명이 4만 7천 원씩 함께 책임지자는 ‘노란봉투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 ‘노란봉투 캠페인’에 이양구와 ‘혜화동 1번지’ 동인들이 다시 뭉쳤고 극단 돌파구가 합류해 2014년 연극 <노란봉투>가 탄생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노란봉투법, 그러니까 노조법 2조·3조 개정안이 몇 차례 발의되었지만 모두 폐기되었다. 그리고 2022년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51일 파업 투쟁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470억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8년 만에 다시 노란봉투법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2014 노란봉투 캠페인 때의 연대가 필요했다. 다만, 노동운동의 시선이 아니라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또 한 번 연극인들이 모였다.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이하 퀴즈쇼)에 참여한 참가자의 모습이다. 56이라는 숫자의 뱃지가 달린 노란 모자를 쓴 참가자가 화이트보드를 들고 있다. 정답을 적는 곳에는 ‘탱고’라고 쓰여있고, 화이트보드의 왼편과 위편을 따라 ‘노란봉투를 열어라!’, “저 위에 사람이 있다.”, ‘즐겁고 안전한 노동 문화 정착을 위하여…’라는 문구를 적었다.
참가자들이 칠판 위에 적은 문구들이 눈에 띈다. 우리가 일하는 곳이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 되기를.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는 조선하청지회 파업 투쟁을 하면서 던져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하청노동자의 질문에 회사는 470억 손배로, 정부는 공권력 압박으로 답하는 걸 보면서, 기득권은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노동하는 시민들이 만들 수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시민들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도전 골든벨’과 같은 퀴즈쇼 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퀴즈쇼를 기획하면서, 문제를 내는 것도 시민, 문제를 풀고 장학금을 받는 것도, 캠페인을 완성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하는 것도 노동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었으면 했다. 문제를 내고, 또 문제를 풀면서 우리 일상이 모두 노동으로 굴러간다는 것을 깨닫고,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그래서 ‘노동’에 덧붙여진 혐오와 색깔들을 털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퀴즈쇼의 현장 벽면 사진. 성동구민종합체육센터 벽면에 초록색 현수막이 길게 걸려 있다. 현수막에는 ‘수습기간 있으면 퇴직금도 있는 거야. 알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퀴즈쇼 캠페인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우리의 것인지 알지 못했던 권리에 대해 조금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퀴즈쇼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노동’이라는 말이 붙은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9개월 동안 어렵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힘이 빠지고 좌절할 때마다 다시 힘을 내게 해준 것은 시민들의 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기출문제’라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낸 연극인, 과거 자신의 알바 경험이 노동착취였음을 깨달았다는 대학원생,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동물해방’이 ‘노동해방’과 다르지 않다며 후원한 활동가의 말을 동력으로 삼았다.
참가자 중 한 명은 특별히 기획팀에 감사의 말을 전달해, 행사 막바지라 예민해져 있던 팀에 감동을 주기도 했다. 참가자의 말은 처음 퀴즈쇼를 기획할 때, 이런 참가자가 있으면 이 행사는 성공이라고, 그런 참가자를 만날 수 있으면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 될 거라고 기획팀이 기대했던 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장학금을 타보리라 야심 차게 마음먹고 ‘꼭 살아남아 1등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문제집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성냥팔이 소녀>, <오즈의 마법사> 같은 문제들을 풀면서 멈칫하게 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 지경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가 노동자인데 뉴스에서 보던 얘기들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상금만을 위한 문제 풀이로 넘길 수 없더라고요. 그동안 너무 무지하고 무심했던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고요. 퀴즈쇼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모이셨을 것 같은데 언뜻 상상하기에도 너무 품이 많이 들고 힘든 일도 너무 많았을 것 같은데 노동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지 알려주고 싶다는 기획팀의 마음이 문제를 통해서 절실하게 느껴져서, 저도 참가할 수 있도록 참여형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제작진께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퀴즈쇼의 문제 중 하나. 문제와 보기는 다음과 같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주인공 안나는 추운 겨울 거리에서 성냥을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냥을 사주지 않습니다. 결국 안나는 성냥을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얼어죽은 채 발견됩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배경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데요. 성냥은 그리 비싼 물건도 아닐 테고, 어린 소녀가 무척이나 가엾었을 텐데, 거리의 사람들은 왜 소녀의 성냥을 한 개도 사주지 않았을까요? ① 산업혁명 시대의 극심한 임금 하락으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극빈층이었기에 소녀의 성냥을 사줄 돈이 없었다. <br />② 소녀의 모습이 너무 더럽고 흉측해서 아무도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br />③ 소녀가 공장주에게 속아 불량 성냥을 받아왔고, 사람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 <br />④ 19세기에는 성냥공장에서 생산 과잉으로 인해 집집마다 성냥이 넘쳐났었다. 정답은 ② 해설은 다음과 같다.<br />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는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으로 부모들의 경제활동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기에, 아이들은 3세부터 성냥 공장, 굴뚝 청소 등의 노동을 하는 경우가 당연시되었습니다. 당시 성냥은 생필품으로 수요가 많았는데, 성냥은 매우 작고 촘촘하기에 아이들의 손이 필요했습니다. 공장주는 성냥 끝부분을 예쁘게 마감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성냥 끝 부분을 혀로 핥으면서 모양을 잡도록 하였는데, 성냥의 주재료인 ‘백린’은 청산가리의 5배가 넘는 독성을 지닌 물질로, 이 독성 물질에 장기간 노출된 아이들은 얼굴이 검게 변하고, 턱뼈가 괴사되며, 입 안에서는 늘 고름이 흐르곤 했습니다. 심지어 충치를 뽑다가 턱뼈 조각이 딸려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병든 아이들은 공장주로부터 퇴직금 대신 성냥을 받고 내쫓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주인공인 안나 역시 백린 중독 증상으로 인해 병이 들어 쫓겨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퇴직금 대신 받은 성냥을 팔다가 거리에서 동사한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안데르센이 청년 시절 어느 겨울날 한 어린 소녀가 덴마크 왕립 극장 앞에서 성냥 한 개비를 손에 꼭 쥔 채 얼어 죽어있는 것을 보고, 그 아이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동화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참가자가 읽으면서 ‘현타’가 왔다고 했던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에서 낸 문제

퀴즈쇼 기획 의도를 미리 듣기라도 한 듯, 참가자의 감사 인사에 기획팀은 기대했던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게 결국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퀴즈쇼 총괄을 맡은 이양구 작가와의 인연으로 기획팀이 모였다. 연출가 윤한솔과는 재능교육에 연대할 때부터 함께했던 혜화동1번지 동인이고, 기획을 맡은 정소은 PD는 2018년 파인텍 굴뚝 농성 연대 프로젝트 ‘마음은 굴뚝같지만’에서 인연을 맺었다. 연극인도 노동자라는 경험을 공유한 조재현, 권근영, 이두찬, 홍예원이 조직팀으로 합류했다.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 공연 당시 전태일 역할을 했던 배우가 사회자를 맡고, 조선소에서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어 부른 민중가수가 축하공연을 맡았다.
“이대로 살 순 없다”는 하청 노동자 외침에 목소리를 보태겠다는 시민들이 질문을 고민하며 출제위원이 되어주었고, 우리가 일하는 공간,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어보자고 행사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었다. 퀴즈쇼는 기획팀이 만든 게 아니라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낸 모두의 퀴즈쇼였다.
대학로에서 시작된 연대의 순간이 10년 가까이 이어져 여기까지 온 셈이다. 지난번에 연대했던 사람이 이번에도 연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였다. 퀴즈쇼를 준비하는 9개월 동안 기획팀은, 연대는 또 다른 연대를, 질문은 더 나은 삶을 가져온다는 작은 기대감을 선물로 받았다. ‘참가자’로서 연대한 시민들은 처음으로 ‘노동’이라는 단어를 말해보고 노동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무엇을 선물로 받았을지 궁금하다. 퀴즈쇼는 끝났지만,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연습이 각자의 삶에서 선물을 받는 순간이 되기를 바라 본다.

퀴즈쇼의 참가자와 진행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참가자는 검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노란 모자를 오른손에 쥔 채 진행자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행자는 오른손에 쥔 마이크를 참여자의 입 가까이에 대고 참가자를 응시 중이다. 진행자는 왼손에 큐카드를 쥐고 있으며, 흰 반소매 니트를 입고 굵은 웨이브가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슴께까지 늘어뜨렸다.
기획팀에게 감동을 준 박현철 참가자. 최근 ‘당근’을 하러 버스를 탔는데 그게 6411번 버스였다고. 이전에는 그냥 목적지에 가기 위한 버스였다면 이제 새벽 노동자를 태우는 버스라는 생각이 들면서, 노동이라는 게 몇십 년 전 전태일이나 파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며 참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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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영

정윤영
글 쓰는 사람. 『숨은 노동 찾기』, 『달빛 노동 찾기』, 『숨을 참다』 등을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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