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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인물은 없거나

‘없이’ 쓴 희곡

이중석

제259호

2024.08.08

[희곡] 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희곡 쓰기를 하나의 몸짓으로 생각하며 희곡 쓰기를 구성하는 몸짓들 중 하나를 소거한 희곡들을 싣습니다. 극-창-작과는 무관해 보이는 한 존재가 없는 세계에서, 그 부재의 틈새에서 찾아오는 낯선 다른 손들을 받아들이며 도래할 새로운 희곡을 만나보세요.

무대 위 인물은 없거나, 있거나 여럿일 수 있다.
있다는 거, 없다는 거?
궁금하면 끝까지 읽으세요.
이 희곡은 한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 당신 눈앞에 놓인 이 희곡은 30분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필요한 7명에게 이 희곡을 보내야 합니다. Y 대통령은 이 편지를 받았지만 그냥 버렸습니다. 9일 후 그는 탄핵당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이 편지를 보내면 7년의 행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3년의 불행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될 상인가. 손바닥에 王자가 없잖아.
그래도.
스캔, 전송, 전송, 전송, 전송, 전송, 전송, 전송.
희곡이 움직인다.

희곡 쓰기를 하나의 몸짓으로 생각합니다.
‘몸짓’을 검색합니다.
학구적이군요.
명사 몸을 놀리는 모양. 놀린다? 얼레리꼴레리.
직관적이군요.
이건 메타포입니다.
‘메타포’를 검색합니다.
그만하시죠. 희곡을 쓰세요.
검색을 해야 쓸 것 아닙니까?
왜요?
검색은 안정제 같은 것입니다.
쓰다 보면 확신이 생깁니다.
확신은 미신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될 상인가? 안정제를 조금씩 늘려갈 뿐입니다.
일단 하세요.
동기부여 영상에서 종종 듣던 말이네요. 콩알만 한 글씨가 점점 커지다 화면을 꽉 채우면서. 일단 하라.
실제로 하지 않음. 후회하는 사람들의 특징. 저는 벌써 이 희곡을 이만큼이나 썼지요.
이게 희곡인가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만큼이나 비약이 심하시군요.
희곡이란 무엇입니까?
묻지 말고 대답하세요.
물어야 대답할 수 있습니다.
말꼬리 잡지 마세요.
당신의 말이 내 말이 된 순간부터, 말에 꼬리가 있는지 없는지, 잡을지 안 잡을지는 내 마음입니다.

긴 사이

이건 지시문입니까?
다시 긴 사이
누가 누구에게 지시를 합니까?
누구로부터 지시의 권한을 부여받았습니까?
누구는, 지시에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까?
희곡은 누구의 것입니까?
이런 하극상이 있을까 봐 지시문이 있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긴 사이

진절머리가 나는군요.
존중합니다. 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인정은 못 합니다.
관객처럼 말하는군요.
유료 관객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겁니까?
저는 정치적 중립입니다.
비굴하군요. 희곡쓰기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중대 발표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이름은 ‘희곡쓰기’입니다.
이럴까 봐 맨 앞에 적어두었습니다.
무대 위 인물은 없거나, 있거나 여럿일 수 있다.
삐딱하게 말해요?
글자모양이 삐딱하니까요. 그래서요?
‘희곡쓰기’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당신은 아니라고 보세요. 나는 아닌 게 아니라고 봅니다.
이보세요. 이건 신뢰의 문제입니다.
무슨 신뢰요?
이 희곡 말입니다.
이게 희곡입니까?
저는 말을 곱씹는 버릇이 있습니다. 방금 말한 ‘이게’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성이 희인가요, 희곡인가요?
성은 ‘희곡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조리극이다.
진지해지지 맙시다.
참을 수 없군요. 뱉어버리고 말겠습니다.
희곡쓰기란 무엇···?
참을 수 없다. 네놈(들)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이었구만. (싸그리) 체포하겠어.
지킬 건 지키는 척해야지.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나는 나를 변호합니다.
변호사 자격증 있어?
없어.
그럼 변명이야.
나 작가야.
자격증 있어?
없어.
그럼 변명이야.

아무도 나랑 안 놀아줘요.
아무도 안 놀아줘서 외로웠겠다.
내가 열심히 만들었어요. 저기 다 모아놨어요.
저기 다 모아놨구나. 저걸 어떻게 하고 싶니?
···다 버릴 거야. 쟤네들도 너무 외로워 보이니까.
나름 예쁜데.
끼어들지 마.
저거 진짜 예뻐.
네가 예쁘니까 세상이 예뻐 보이는 거지.
지금 플러팅이야?
너 내 스타일 아니야.
근데 너 누구세요?
관객이요.
얘도 저랑 똑같아요. 외로워요.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또, 너야?
누가 누구고, 쟤가 얘인지, 얘가 쟤인지 구분이 안 되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가야 해? 이래야 직성이 풀려?
직성? 직성을 검색해봐야겠다.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 운명을 맡고 있는 아홉 개의 별
최근 한 달 동안 들은 얘기 중 가장 슬픈 이야기야.
집중해. 이 상황에.
상황을 보고 덤벼. 그러다 입틀막 당해.
열 받아서 그래, 열 받아서.
내 입 냄새에 질식당할 순 없지. 입틀막 제압법을 생각해보자.
혓바닥을 낼름 내민다.
미각이 손상될 수 있어.
손날로 상대 손을 가격···
가격이 비싸.
뒤로 물러난다. 순간 입이 자유로워지지. 나불대는 거야.
다시 입틀막.
다시 뒤로 물러나. 나불나불.
음. 왈츠 스텝이 좋겠군. 쿵짜짜, 쿵짜짜.
이번에는 입틀막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나불나불, 나불나불. 나비가 될 거야.
미안하지만 난 꽃이 아니야.

없이 써야 합니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시간이 없는데요.
시간을 내세요.
없는 걸 내라니. 어불성설입니다.
누가 요즘 사자성어를 쓰나.
사자성어도 사자성어 아닌가.
시간이 없는데 시간을 내라는 말만큼이나 시간 낭비다.
읽는다는 것, 더구나 이것을 읽는다는 것.
고개 떨구며 자책하지 마.
내가?
칼 같은 거 없니? 싸우자.
갑자기?
지금쯤 이 희곡은 절정에 치달아야 했어.
이거 희곡이었어? 부디 다음 페이지가 없길 바란다.
기쁜 소식이 있어.
당신은 지금 희곡의 50% 지점을 읽고 있습니다.
절반 밖에? 절반이나?
거봐, 시작이 반이랬잖아.
반전이다. 소리 소문 없이 이곳에 왔어.
이 포인트가 절정이네.

뚝, 뚝, 뚝.
비가 오나?
뚝, 뚝, 뚝.
눈물?
뚝, 뚝, 뚝.
희곡 끊기는 소리!
아, 열 받아.
열 받는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되지.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줘야지.
내가 널 죽이면 나의 ‘열’이란 것이 보이겠니?
자기를 믿어. 가서 동기부여 영상 좀 보고 와.
나는 나를 갉아먹을 거야. 오늘은 우측 전두엽을 고추장에 비벼서 냠냠. 그리고 오늘도 버려질 문장을 비빈다. 우측 전두엽 없이 만든 우둘투둘한 문장이다.
뚝, 뚝, 뚝.
출혈이 멈추지 않아. 잠가.
장르 급전환.
좀비, 그로테스크. 눈알이 3개. 부활.
아멘.


너 진짜 왜 그래?
내가 뭘.

너희들 진짜 왜 그래? 대본대로 해야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똥 묻은 개가 다른 개 똥꼬 보고 똥 묻었다고 하면 똥개 되는 거야.
너 지금 한 문장 안에 똥이 4번이나 나왔어. 나한테 수치심이라도 주려고 그러는 거야?
똥은 만물을 담고 있는 메타포야.
‘메타포를 검색합니다’는 아까 써먹었잖아. 우려먹지 마. 원고지 채울 목적인 거야? 원고지 분량 채웠다고 그게 글이야?
요즘에도 원고지 쓰는 사람이 있나?
원고지는 일종의··· 음··· 메타포야.
너도 예술해?
하면 안 돼?
기술 없이 예술 없다는 말 몰라?
똥 누는 데 기술이 필요하니?
예술이 똥이라는 거야?
메타포라고 했잖아.
똥의 탄생에도 기술이 필요하지. 괄약근 조이는 기술, 똥의 길이를 조절하는 완급기술, 똥 닦을 때 피부조직을 보호하는 기술
그렇게 우기면 시원하니?
화장실 다녀왔다고 항상 개운한 건 아니야.
여긴 화장실이 아니야.
변기에 앉았다고 똥꼬가 열리는 게 아닌 것처럼, ‘대본대로’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거야.
대본은 벌써 안드로메다로 떠났고 여긴 똥으로 범벅이 되었어.
똥은 늘 우리 곁에 있어. 똥 이야기에 우느냐, 웃느냐. 이건 동심을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또 진지해지네.
진지하면 안 돼?
겉멋이야.
겉멋도 멋이야.
난해한 말이야. 그럴 거면 혼잣말로 조용히 해줘. 방해받기 싫으니까.
나 일기 쓰는 거 아니잖아. 이 글은 너한테 보여줄 거야.
진지하고 겉멋 들고 난해한 것이잖아. 우주의 법칙이라도 밝히려는 것처럼.
맞아, 바로 그거야. 너랑 말하고 싶은 거.
너도 곧 안드로메다로 떠나겠구나. 아까 대본이랑 같이 가지 그랬어.
우주의 법칙, 그거 단순하지 않을까.
단순한 거라면 왜 숨기고 가리고 꼬는 거야, 알려줄 듯 말 듯.
재밌잖아.
옛날에는 그딴 걸 귀족적이라 했다지. 어려운 걸 어렵게 말하는 거.
계급론이야? 이러다 색깔론까지 나오겠네.

우리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블랙리스트 훈장 달고 싶어?

희곡 쓰기를 하나의 몸짓으로 생각합니다.
네.
몸짓들 중 하나를 소거하여 요청합니다.
네네.
소거하세요.
네네네.
요청합니다.
네네네네.
써주세요.
네네네네네.
희곡쓰기, 몸짓, 소거, 요청. 입력.
답변 생성 중. 생성 중. 생성 중.
화면 멈춤. 새로고침.
희곡작가를 소재로 실험적인 희곡을 써 봐.
답변 생성 중.
나는야 머리에 무지개색 머리띠를 착용한 작가! 실험적인 희곡을 써보자.
뭐가 실험적일까? 시간여행, 별들의 대화, 차원의 문.
오른쪽 맨 위에 해답이 있다. 화면 닫기.
악! 내 머리띠!
내 스타일 아니야.
이것이야말로 스타일 따지는 작가정신.
실험 소거 요청.

멈춤. 손짓, 발짓, 몸짓 멈춤.
멈칫이 아니라 멈춤이라니.
춤?
음악을 바꿔. 제3세계 음악으로. 둠칫.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 제4세계?
남미로 간다.
북미가 서운하지 않을까?
검열에 굴복하면 안 돼. 지금 비상 상황이라고!
안데스산맥을 오른다. 쓰러진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멈춤.
정신 차려. 밥상 차려.
이불을 걷어차. 밖으로, 밖으로, 산책이라도. 걷고 뛰고.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두 발로, 뭐? 질색팔색, 정색. 또, 왜 그래.
사유니, 철학이니. 네가 평소에 쓰는 말이야?
머릿속으로 쓰고 있었어.
기분도 똥 같은데, 시비 털고 있네.
급전투력 상승! 싸우자!
이제야 절정 같군.

오늘 무슨 일 있어?
응?
절정을 못 느낀 것 같아서.
그럴 때도 있어.
내가 문제인가?
문제가 아니라 그럴 때도 있어. 그래도 좋았어.
그게 가능해? 그 순간 때문에 하는 거잖아.
난 달라. 자기랑 눈 맞추고, 입 맞추고, 몸 맞추는 모든 게 좋아.
나도 그렇긴 한데···
완벽해. 맹세해.
솔직히 얘기해도 돼.
나 지금 솔직해.
백 퍼센트 솔직해?
구십구 퍼센트. 사람마다 포인트가 다르잖아. 다시 생각해보면, 절정이 있었어.
절정은 덮쳐오는 거잖아. 모으고 모았다가 확.
티끌은 모아 봤자 티끌이니까. 덮칠 수가 없지.
내가 티끌이라는 거야?
백 퍼센트 솔직히, 자기가 태산은 아니잖아.

손님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해? 이러니 파리나 날리지. 리뷰 없는 곳은 오는 게 아니야. 리뷰가 진리라는 걸 다시 체감하네. 돈 아깝고 시간 아까워. 기분만 잡치고. 사장이 바깥으로 도니 가게 관리가 안 되고, 알바 관리도 안 되지. 화장실 가는 길도 복잡하네. 비밀번호는 왜 이렇게 길고 지랄이야. 벌써 똥 지렸겠다. 정성스럽게 리뷰 하나 남길게. 별 하나도 아까운데 저주는 담아야 하니까. 똥이나 처먹어라.

다시 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가 어물쩍 넘어갑니다.
독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 맥아리도 없고 교훈도 없고 철학도 없고, 결국엔 독자도 없다.
그래도 내 희곡 쓰기엔 티끌이 있어요.
희곡 쓰기가 아니라 희곡 쓸기네.
네, 티끌 모으기, 티끌 쓸기. 그래서 몸짓이 됩니다.
시간 낭비야.
시간도 티끌이고, 낭비도 티끌입니다. 그래서 몸짓이 됩니다.
막판에 반전이라고 꾀하는 거니?
반전 없는 것이 반전입니다. 반전 없이 갑니다. 몸짓은 움직이는 대로, 쌓이고 쌓입니다.
노트북 부수기 전에 닥쳐.
씨ㅏ부ㅏ파ㅣ샌ㅇ낌ㄴ아ㅓ뤱    ㄷ간러마ㅣ쥉나하너테다ㅣ그러게하게더애디그라어하닉싸ㅓ미나개식디드리내가하고개시프이거서ᄃᆞ하고살거냐야휘버너ㅡ그른그렇게사사라업ㅈ;ᅟᅵᆮ자ㅓ사ㅜ순어덥서잊ㅁㄱ어ㅔㅐ버;이ㅏᅟᅥᆸㄷ재내가히ㅏ거댜하고댜ㅐㅣ어한아ㅣㅓ하라거ㅏㅣ어럄푼야버;ㅣ라디ᅟᅡᇂ챱;아ㅣ우바우ㅡ브ㅐㅑ히ᅟᅡᆫ우해ᅟᅣᆸㄷㄱ해ᅟᅮᆸㄷ교ㅑᅟᅩᆷㄴㅇ;.후ㅏㅑㅐㅣ네ᄌᆞ어어하너테아재훚;ᅟᅡᆫ느 ㅏ더ㅔ뱌ᅟᅥᆸ바;ㅓ뱌어;뱌더샤가아뭇거ㅛᅟᅩᆮ엊댜ㅓ아ㅣ;ㅓ브으니학ㅁㄴㅇ섭제ㅐㅑ저디ㅏᅟᅥᆫㅇ;ㅣ마ㅜ패젇09ᅟᅥᆷ네ㅑㅐㅓ샤ㅐ어ㅏ더글;ㅐ뱌ㅓㅏᅟᅵᆷㄴ이ㅏㅓ해;ㅑㅓ신기만히ㅏ애뱌ㅓㅣ

몸이 놉니다. 흔들다가 찌르다가 구르다가. 온몸에 촉수가 피어나는 모습을, 몸이 상상합니다. 그리고 다시 몸이 놉니다. 오늘은 안데스산맥를 거쳐 안드로메다에서 희곡을 씁니다.

독자와 관객이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그마치 퇴고를 거친 희곡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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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석
내 삶에 연극이 찰싹 붙어 있기를. 뭣도 모르고 희곡에 손을 댔습니다. 내 희곡을 본 사람은 몇 안 됩니다. 그중 한 사람이 당신입니다. 축하합니다. 우리 모두!
dogma_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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