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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Being

‘없이’ 쓴 희곡

신지원(신난다)

제260호

2024.08.29

[희곡] 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희곡 쓰기를 하나의 몸짓으로 생각하며 희곡 쓰기를 구성하는 몸짓들 중 하나를 소거한 희곡들을 싣습니다. 극-창-작과는 무관해 보이는 한 존재가 없는 세계에서, 그 부재의 틈새에서 찾아오는 낯선 다른 손들을 받아들이며 도래할 새로운 희곡을 만나보세요.

*being 미국·영국 [ˈbiːɪŋ]

  1. [명사] 존재, 실재 (→well-being)
  2. [명사] 생명체, 존재(하는 것)
  3. [명사][격식] 온 마음 (→be v.)1)

Place , Time
땅이 있는 어딘가에서 어느 날.
Beings
나무
나무1
사람

그리고 바람

2.

나무
왜 자꾸 와요?
사람
크리스마스가 곧 온다잖아요.
나무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사람
나무
설마
사람
설마 왜요?
나무
뭐 트리 재료 삥 뜯으려는 거 아니죠?
사람
네?
나무
양심도 없다 … 아무리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베스트셀러라지만 그건 말 그대로 동화에요 동화. 세상 모든 나무가 그 나무 같진 않단 말이야. 그 책 땜에 나무들이 죄다 퍼주는 줄 알아…
사람
설마 제가 그쪽 가지나 꺾으려고 여기 왔겠어요?
나무
그럼 왜 자꾸 와요 정말?
사람
저기 있으면 아무리 피해도 내가 같이 보낼 사람이 없다는 거 다 들켜요.
나무
그렇다고 여기 오면 진짜 이상한 사람 같아 보여요.
사람
이상한 사람은 무슨 사람이에요?

사이.
얕은 바람이 존재들을 스쳐 지나간다.

나무
난 그저 그만 이상해지라는 말이었어요.
사람
저도 그러고 싶어요.
나무
여기 온다고 아무것도 안 달라져요.
사람
달라지고 싶어서 오는 거 아니에요.
나무
전 혼자 있고 싶어요. 알다시피 난 다른 곳에 갈 수가 없잖아요.
사람
미안해요…
나무
미안하면 오질 말아야죠.
사람
여기 오면 맘이 편해져요.
나무
나무랑 사람이랑 말하는 거 딴사람들이 보면 뭐라 해요.
사람
괜찮아요.
나무
누가 당신 걱정이에요? 제가 싫다고요!
사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무
제발 저기로 가서 사람들이랑 얘기해요.

사람, 못 이기는 척 일어나서 가려다
문득 깨닫고 뒤를 돌아서서 다시 온다.

사람
생각해보니까 돌아갈 저기가 없어요.

나무, 화가 나서 가지를 털자 이파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사람
세상에, 서프라이즈 이벤트인가요?
나무
그럴 리가요!
사람
방금 저한테 …
나무
아니에요!
사람
와- 성공적이에요. 감동 받았어요.
나무
바람 못 느꼈어요? 바람이 부는 바람에 떨어진 거예요. 착각하지 말아요.
사람
아-

사람, 무안한 듯 멋쩍게 웃으며 신발코를 바닥에 비빈다.

바람도 불지 않는 적막, 긴 사이.
나무도 사람도 뭔가 말하려는 호흡이 들어오지만, 말이 되진 못하고 삼켜낸다.
사람은 떨어진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만져본다.

사람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작게 부른다)

사람은 음정과 박자를 거의 맞추지 못한다.
가사도 몰라 허밍이 되었다가 이내 알 수 없는 캐롤이 된다.

나무
(화를 참으며) 크리스마스 그쪽만 혼자 보내요? 여기 나무들도 다 각자 보내요.
크리스마스만 혼자 보내게요? 1월 1일도, 추석도, 생일도 혼자 보내요.
어차피 하루만 지나면 다시 1월 2일이고, 다시 똑같은 마음 아니겠어요?
바쁘거나 지치거나 귀찮거나 좋다 말겠죠.
모든 기념일에, 아니 모든 날에, 아니! 모든 것에 의미부여 하지 말아요.
사람
… 라임이 좋네요. 모든 기념일, 아니, 모든 날, 아니 모든 -
나무
(사람 말을 끊으며) 우린 어차피 살아가고 혼자일 수도 있는 거고 함께할 수도 있는 거죠. 매번 옆자리에 누가 앉아있진 않는다구요.
갑작스러울 뿐이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사람
그래도-
나무
솔직해 봐요.
사람
나무
여기 왜 자꾸 와요?

암전.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도 언뜻 불어온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바람소리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무대에 남는다.
날이 저문다.

1.

나무 1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무, 움찔거리며 담뱃불을 의식한다.

나무1
그 사람 왔다 갔다며?
나무
응 …
나무1
어쩌려고 그러니?
나무
뭘?
나무1
나무 안에서 계속 머물 거냐고. 그러다 내 꼴 나.
나무
나무1
지금이야 슬프지 나중 되면 슬프고 외롭고 비참하고 가지가지 하게 된다.

나무1, 잔가지들을 툭 하고 떨어뜨린다.

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오-
가지가지 한 것도 나쁘지 않은데?

나무1, 피우던 담배를 잔가지 위에 던지자 작은 불꽃이 생기려다가 이내 꺼진다.

나무1
봤지?
나무
(끄덕인다)
나무1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사이.

나무
알아, 그런데 나도 떠나고 싶은데 저 사람 계속 오니까. 자꾸.
나무1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나무
… 미련이 생겨.
나무1
정신 차려 이 나무야.
나무
미련이 생기는 걸 어떡해?
나무1
미련은 사랑이 아니야. 그냥 죄책감 같은 거지.
나무
무슨 말이야?
나무1
진짜 사랑한다면 미련이 없어. 너가 미련이 있다면 사랑은 없는 거야.
나무
사랑이 없대도 미련이 있는데 어떻게 끝내. 깔끔하지가 않잖아. 끝나지가 않잖아?
나무1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래. 한 대 피울래?
나무
뭐?
나무1
담배 피우는 것도 할 일이라 생각하면 참 재밌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일이 또 없어.
나무
맛없어.

잠시 사이. 바람이 지나간다.

나무1
(바람을 느끼며) 넌 시간이 있으니까 계속 끄는 거야. 나처럼.
나무
그럼 좀 끌고 있지 뭐. 정리될 때까지.
나무1
나무야, 수목장을 한다고 나무 안에 몇 년이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나무1, 한 개비를 더 꺼내 불을 붙인다.
함께 그 불을 바라본다.

나무
맛있어?
나무1
(씨익 웃으며 담배를 피운다) 순리를 따라야지.
나무
너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
나무1
서 있는 게 살아있는 건가?
난 그냥 서 있어. 살아있는 건 잘 모르겠고.
서 있다 보니 심심해서 꼴초가 되었고.
너 내 밑동 못 봤냐? 완전 새까매.
올해도 열매 맺긴 글렀다고…
(혼잣말로) 한심하다 이런 나무1 같으니라고.

사이.

나무
그래도 그 사람이 왔다 갔잖아.
나무1
처음엔 왔지. 1년 동안은 한결같이 왔을걸.
나무
거 봐!
나무1
나무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
나무
나무1
오는 게 전부가 아니야. 헤어지는 걸 못해서 함께하는 어리석은 꼴이란.

나무1, 담배 연기를 바라본다. 지나간 시간처럼.

나무2
일 년이 지나니까 어떻게 되는지 알아?
하루만 안 와도, 1분만 늦어도 너무 서운해졌어.
결국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그 사람도 오지 않았지. 나는 갈 때를 놓쳤고.
정말 나무가 되어 버린 거야. 박제되어 버린 거지.
이렇게 떠나가는 걸 서서 보고만 있겠다고? 자신 있냐?
나무
너한텐 내가 있고, 나도 너가 있어.
나무1
이 나무야,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여기서 우리 같은 나무가 생길 때까지 외롭게 있다가
그 나무를 보면서 후회하고 후회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무들이랑 평생을 썩는 거지.
나무
‘평생’이라…
나무1
존나 평생…
나무
너라도 평생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도리어 맘이 편해져.
언젠가 너가 날 위로해 줄 테니까!
나무1
아니. 괴로워해 줄 수 있지.
나무
이해는 되지 않아?
나무1
이젠 이해도 안 돼.

파도 소리가 섞인 바람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헤엄친다.

나무1
보내줘.
나무
어떻게?
나무1
받아들여.
나무
어떻게?
나무1
계절처럼.
너는 벌써 가을도 보내준 나무라고.
겨울도 봄도 여름도 다 보내주다 보면
또 다른 가을이 찾아오고,
또 보내주고.
나무
왜 그래야 해?
나무1
아무리 슬퍼도 나무는 나무야.
너는 뿌리가 있고, 저 사람은 다리가 있어.
너는 정착해야 하고 저 사람은 나아가야 해. 순리라니까 그러네.
나무
내가 잡고 있는 거라고?
나무1
그렇고말고.
나무
내가…?
나무1
내가 보기엔 너만 그래. 너만. 오지 말아줘. 그 말만 하면 돼. 쉽지?
나무
만약 그 사람이 계속 온다면?
나무1
그 답은 너가 느끼게 될 거야.
그리고…

아주 슬프거나
말거나.

나무1, 다 피운 담배를 씹어 먹어버린다.

암전.

2-2

한참을 사람과 나무가 마주보고 있다. 사람은 가만히 서 있는 나무를 잡아보고 자기 나름대로 손짓 발짓을 해가며 무언가를 강조하고 있다. 나무는 그대로 서 있다.

사이.

사람
그래서?
나무
다 말했으니까 이제 나한테 안 왔으면 좋겠어. 보다시피 나는 이제 나무야.
사람
어쩐지 내가 계속 여기에 오고 싶었어. 이유가 있었던 거야. 운명적인 거야.
나무
그래서?

사이.

사람
괜찮다고. 너가 뭐든. 너니까.
나무
안 괜찮아.
사람
이것 봐. 난 아직도 너랑 말할 수 있는데? 너가 사람 모습이 아니더라도 난 괜찮아.
나무
너는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괜찮지가 않다니까. 나는 나대로, 여기에 적응해야 해. 너랑 말하는 날이면 나무들이 죄다 나를 등진다고.
사람
무슨 말이야?
나무
외면한다고 나를! 그게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줄 알아?
사람
내가 널 데려가는 게 좋겠다. 그럼 나도, 너도 어느 곳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어.
나무
너가 날 데려간다고? 그럼 뽑혀야 하는데, 너희 집에 날 심을 자리나 있어?
사람
우리 집 마당에…
나무
그 원룸에 마당이 어디 있어-
사람
내가 매일 물을 주고,
나무
너-
사람
매일 가꾸고
나무
너, 사실 날 혼자 두고 싶은 게 아니라, 널 혼자 두고 싶지 않은 거니?

사이.
얕게 바람이 분다.

사람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나무
왜 솔직하지 못해?
사람
난 좋아.
나무
인정하지 못하고 있잖아.
사람
오늘도 그냥 갈게.
나무
나 죽었어.
사람
내일 얘기하자. 사랑해. 정말.
나무
죽었다고. 이제 벌레들이 우글우글해. 진짜 날 사랑한다고? 같이 있고 싶다고?
사람
영원히 같이 있자고 늘 말했잖아. 그러기로 했잖아.
나무
그럼 지금 바로 여기서 땅을 파. 그리고 벌레들이랑 내 뿌리랑 이거 죄다 뽑아버려.
이것들하고 니 침대에서 같이 잘 수 있어?
넌 대체 같이 있고 싶다는 게 뭘 얘기하는 건데!
사람
그만해. 너 지금 많이 화가 나 있어. 내일 다시 올게. 잠시만.
나무
이렇게 미룬다고 되는 게 아니야. 끝나버린 건 절대로 미룰 수 없어. 미룰 게 끝났다는 거니까. 끝은 그런 거야.
사람
아직 안 끝났다니까!

사람, 뛴다.
삶 속으로 도망간다.
나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다. 바람소리 또다시 들려온다. 아무도 없다.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흔들린다. 하지만 두 발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미 뿌리는 뻗었다.

0

존재들의 이전인가, 이후인가. 최후인가. 알 수 없다. 시간이 흐른 듯 흐르지 않은 듯.
동물들의 소리, 자연의 소리, 말소리 뒤이어 다양한 소리들이 바람소리를 스쳐간다.
세상에 오로지 소리만 있다.
그저 순환된다.

바람소리.

(무언가 들판을 달리는 소리)

만약 내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너무 심심하잖아, 이렇게 웨이팅만 하고 있으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거? 아님 헤어지는 거?

(마림바 소리)

떨어지는 것과 헤어지는 게 다른 건가? 같은 건가?
/
사랑해-

(무언가 짖는 소리)

사랑이 뭔지나 알고 사랑한다고 하는 거야?
야옹.

(세상에 없는 소리)

/
닥쳐!

(또 다른 소리)
(무언가 우는 소리)

<클로저>를 너무 많이 봤어! 너는 나탈리 포트만이 아니야!
(웃으며) 방금 나, 치명적이지 않았어?
/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아, 아-)

괜찮지가 않네.

/
가만히 있어도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왜냐면 그 대상이 사라졌으니 내가 사과를 할 수도 없고,
영원히 미제사건이 되고 있어. 누가 봐도 내가 잘못했는데.

(새가 울다 둥지에서부터 날아가는 소리)

/
옛날에 정말 옛날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죽음이야.
어땠어?
글쎄. 힘들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톱질하는 소리, 거대한 나무가 털썩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그럼 할아버지를 못 만나는 거네? 이게 전부였어.

(아이폰 메시지가 전송되는 소리)

그러니까 만나지 못한다는 마음이 어땠어?
어땠냐니. 다 처음이어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니까.
/

(큰 고래가 파도 위로 꼬리를 세차게 내리치는 소리)
(반복되는 시계초침 소리)

아직도 살고 싶어?
/
결국 넌 그냥 외로워지는 게 싫어서 오는 거고.

(첨벙첨벙, 물장구치는 소리)

/
(전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마음 써 줬는데 미안해요.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클랙슨 소리)

/
나는 사람을 나무에 묻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것 같아.
같은 나무라도 관이랑은 달라.

(왼손만 진행되는 피아노 소리)

나무라는 게 자연이니까 계절에 따라 모습도 형태도 계속 변하잖아.
살아 있잖아. 그래서 이상하게 떠난 것 같지 않았어.
무진장 슬펐는데 왠지 그 나무가 꼭 언니 같았어.
/

(기차가 달리는 소리)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감히 잊을 수가 있지?
너 그거 핑계야.

(필름 카메라에서 나는 셔터 소리)

/
…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왠지 너무 궁금한데 진짜로 물어보면 이상해 보일까 봐.
어떤 기분이야?
부모가 세상에 없다는 건.

(겨울철, 호빵을 부는 입김 소리)

/
가끔 죽음이 이유가 되기도 해.
특히 돌아가기가 무서울 때.

(식탁 위에 수저와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

/
그래도 망각하기도 하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데 문득, 떠오르는 거?
난 그렇게 슬프지 않아. 자연스러운 거니까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는 소리. 사각 사각)

언젠가 나도 죽을 텐데.

(홈런 치는 소리. 띵! 하고 배트에 공이 기분 좋게 날아가는 소리)

/
난 지금도 괜찮아.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 원할 때 말해.
같이 죽어줄게! 죽는다면 야, 언제든. 너무 좋지!

(빗소리)

/
형은 언제 외롭다고 느껴?
/
엄마, 자세히 봐봐.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만 하고 있잖아.

(잔잔한 파도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
나만 그래? 내가 이상한 거야?

(8비트의 드럼 소리)

/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손가락으로 뽁뽁이를 터뜨리는 소리)

/
솔직하게? 답답하지. 언제까지 저러려고-

(타자 치는 소리)
(포트에 물 끓는 소리. 그리고 딸칵)

살려주세요. 제발, 진짜 부탁드릴게요. 진심으로, 진짜 부탁드릴게요. 한 번만 더 해주세요. 지금 한 시간밖에 안 하셨다고요!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완전히 이상해, 말이 안 돼. 당신 같으면 어떻게- 아니잖아.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죄송해요. 제가 지금 경황이 없어요, 그런데 이럴 수 없잖아요, 정말 어제까지만 해도-

(폭죽이 터지는 소리. 팡 파라 팡)

/
왜?

(무한한 박수 소리)
(박수 소리가 잠잠해지면 책장을 넘기는 소리)

/
귀찮아. 너어무 귀찮다니까?

(사자의 울음소리)
(사박사박, 무언가 땅 위를 걸어가는 소리)

/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햇살도 잘 들고, 바람도 적당히 부는 곳에 관한 이야기. 나무들이 정말 많이 자라있는 곳이었어.
각자 키도, 두께도 달랐지만가족 같았대. 어느 날은, 지나가던 어떤 존재가 그 나무들을 보고 그만 외로움을 느껴버린 거야. 나무들일 뿐인데. 표정도 알 수 없이 흔들거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이 이야기가 내 안에서 들려, 가끔.

아니, 사실은 매일.

/
꿈에 그 친구가 나타난 거야. 그리고 날 안아줬다?

(아무도 모를 아주 커다란 존재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소리
나지막이 들려오는 기포 소리)

첫 페이지부터 늘 불어오던 바람이 갑자기 거세지다가, 잔잔해진다.
마치 우리 옆에 있었던 그 존재처럼, 이야기처럼.
다정하게 불어온다.

이야기가 끝나도 바람이 계속 어딘가에서 불어온다.

  1. 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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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원(신난다)
시시콜콜한 것에 여전히 관심이 많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글을 지향만 합니다. (저는 못써요) 제가 떠올린 적 없는 모든 이야기와 희곡들을 만나는 것을 취미로 살고 있습니다. 무릎이 아픈 것에 대하여 골똘하게 고민 중입니다만, 뾰족한 수가 없으며 와중에 연극은 어렵고 또 설렙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세상에 읽고 싶을, 읽지 못한, 읽혀져야 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그것들을 틈틈이 읽어낼 수 있는 기쁨이 깃든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이에요.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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