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몸
‘없이’ 쓴 희곡
윤소희
제261호
2024.09.12
[희곡] 코너에서는 2020년부터 ‘다른 손’ 희곡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희곡 쓰기를 하나의 몸짓으로 생각하며 희곡 쓰기를 구성하는 몸짓들 중 하나를 소거한 희곡들을 싣습니다. 극-창-작과는 무관해 보이는 한 존재가 없는 세계에서, 그 부재의 틈새에서 찾아오는 낯선 다른 손들을 받아들이며 도래할 새로운 희곡을 만나보세요.
희곡의 제목은 ‘없는몸’이다.
여기는 사막이고
이십-사 시간 내내 하늘에는 해가.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다.
모래 위에 ‘구영의 몸’,
한- 켠에 ‘구영의 다리’, 다른- 켠에 ‘돌’,
무언가가 더 등장할- 수도.
희곡은 시프트키 없-이 스일 것이다.
된소리는 힘이 필요해서.
소리를 내는 데에도 자판을 누르는 데에도.
1. 시프트 없-이
사막 위에 누워 잇-는 구영과 그냥 잇-는 다리.
- 구영;
- 힘. 힘주어 말할- 수가… 없-어. 네가 거기로 간 뒤로. 나에게서 분리되어서.
- 다리;
- 9어절- 수 없-지.0
- 구영;
- 아무래도 새로운 다리가 필요할-가/
- 다리;
- 9네가 그러고 싶-다면.0
- 구영;
- 그래도 되나/
- 다리;
- 9네 생각이 제일 중요하지.0
- 구영;
- 왜/
- 다리;
- 9아무래도 이건 부분이니-가/0
- 구영;
- 내가, 아니, 이게 전체인 건 아니지.
- 다리;
- 9이게 전체인 건 더욱 아니지.0
사이.
- 구영;
- 힘주어 말하려면 배에 힘이 필요한 거 알아/
- 다리;
- 9그렇구나.0
- 구영;
- 사실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그래서 걷는 것-도 다 배 힘으로 하는 거야.
- 다리;
- 9그럼 더더욱 이건 필요 없-네.0
- 구영;
- 음. 하지만 하나만으로는 균형이 안 맞으니가/
- 다리;
- 9음.0
- 구영;
- 우린 이제 어저지/
- 다리;
- 9그러면 만들어 보자.0
- 구영;
- 뭐를/
- 다리;
- 9새로운 다리.0
- 구영;
- 너를 두고/
- 다리;
- 9이걸 두고.0
- 구영;
- 그럴- 수는 없-지.
- 다리;
- 9그럴- 수도 잇-지. 되돌릴- 수는 없-으니가. 다리도. 시간도. 0
- 구영;
- 말이 안 돼.
- 다리;
- 9재료가 잇-으면.0
- 구영;
- 재료/
- 다리;
- 9목-발이나 의족이나 로봇 다리나. 그런 저런.0
- 구영;
- 여긴 사막이야.
- 다리;
- 9음.0
- 구영;
- 에휴.
사이.
- 다리;
- 9저거 어대/0
- 구영;
- 돌/
- 다리;
- 9응. 어대/0
긴 사이.
- 구영;
- 무겁-지 않을가/
- 다리;
- 9든든할- 거야.0
- 구영;
- 방법을 모르는데.
- 다리;
- 9음. 그러네.0
- 구영;
- 음... 어렵네.
- 다리;
- 9반대로 해 보자. 거구로. 역순으로. 0
- 구영;
- 반대/
- 다리;
- 9응. 이게 덜어지던 대로.0
- 구영;
- 네가 덜어지던 대.
- 다리;
- 9응.0
- 구영;
- 기억이, 잘 안 나.
- 다리;
- 9기억, 해 보자.0
2 잠깐 시프트 있이 그리고 약물 없이 엔터 없이 그래서 지문 없이 쓰기 잠깐 거꾸로 돌아가 보자 그러니까 다리가 다시 있고 그래서 배에도 힘이 있고 그렇기에 된소리를 낼 수 있지 힘주어 말할 수 있지 쉼 없이 말할 수 있지 사이 없이 말할 수 있지 있찌 있찌 아무튼 잘 기억이 안 나니까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하면 다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아주 흔하고 뻔한 상상을 해 보자 오토바이 타다가 맞긴 해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 타다가 다리를 잃지 다리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잃지 심지어 오토바이 때문에 사람 말고 다른 것들도 뭔가를 잃기도 해 하지만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나는 자전거도 못 타니까 삑 삐빅 탈락이야 또 뻔하고 흔한 상상을 해 보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거 가능성 있지 뼈가 뿌러지는 경우가 더 흔하지만 아주 없는 일은 아니야 뭐 뿌러지려다가 뼈도 튀어나오고 그러다가 찢어지면 떨어져버릴 수도 있지 뻔하진 않아 하지만 아니야 땡이야 땡 주위를 둘러 봐 여기엔 높은 거라곤 하나도 없어 그리고 여긴 사막이잖아 사막의 고원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다리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이제 어떡할래 이 사막에서 왜 다리가 떨어졌을지 어떻게 찾아볼래 정답 내가 잘랐어 맞아 내가 잘랐잖아 그래 내가 잘랐던 걸 잊었단 말야 왜 왜 그랬지 내가 왜 그랬지 아마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맞아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 네가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랬어 네가 너로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몸이라는 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생각해 아주 고루하고 심심한 대답을 해 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틀린 건 아니지 몸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이루는 전체니까 사전이 말하길 좀 더 쉽게 피부로 생각을 해볼까 피부는 찢어진 곳 없이 쭉 뻗어 있으니까 피부가 덮인 곳이 사람의 몸인 거지 그럴싸하지 근데 너는 왜 떠나고 싶어 했어 내가 필요 없었어 하긴 사람의 몸에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있잖아 생각해 보자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맹장 세상에 맹장 없는 사람이 많긴 하지 또 두 개인 콩팥 하나만 있어도 뭐 큰일은 안 난다더라 자궁 난소 가슴 머리카락 이빨 나쁘지 않지 없으면 조금 힘들거나 귀찮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그리고 위의 일부분 장의 일부분 간의 일부분 폐의 일부분 떼어서 나눠주곤 하니까 조금 더 가보자 그러면 다리는 다리가 없으면 사람이 아닌가 팔은 어때 손가락은 어때 발가락은 어때 귀는 어때 입은 어때 눈은 어때 코는 어때 근데 뇌는 어때 심장은 어때 음 그러면 죽겠지 죽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다시 앞으로 되돌아가자 하여튼 이 중 하나라도 사라질 때 필수불가결하게 피부는 찢어지게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더 이상 하나의 몸이 아닌 건가 원래 몸이 하나여야 하는 건가 이렇게 많은 부분 부분이 있는데 애초에 하나가 아닌 거 아닌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은 더 이상 몸이 아닌가 그러면 그것-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지
3. 다시 시프트 없-이
구영, 칼로 다리를 자른다. 기절한다.
다리는 다시 저리로 간다.
길고 긴 사이.
- 구영;
- 왜 모르는 척 햇-어/
- 다리;
- 9그러려던 건 아니야.0
- 구영;
-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 한 거 맞구나.
- 다리;
- 9아무래도.0
- 구영;
- 내가 자른 거라고 해야 하나 네가 간 거라고 해야 하나.
- 다리;
- 9음. 둘 다로 하자.0
- 구영;
- 가니가 어대.
- 다리;
- 9나브지 않아.0
- 구영;
- 더, 갈- 거야/ 멀리/
- 다리;
- 9실험을 해봐야지.0
- 구영;
- 실험/
- 다리;
- 9얼마나 갈- 수 잇-는지.0
- 구영;
- 가고 싶-은 데 잇-어/
- 다리;
- 9그런 건 아냐.0
- 구영;
- 그러면 왜/
- 다리;
- 9네가 아무 데도 가지 않아서.0
- 구영;
- 내가/
- 다리;
- 9네가 걷-지도 뒤지도 달리지도 않아서. 그래서.0
- 구영;
- 그러려던 건 아니엇-어.
- 다리;
- 9알아.0
- 구영;
- 그게 내 마음만으로는 안 되잖아. 알잖아.
- 다리;
- 9알지. 그냥 그래보고 싶-엇어.0
- 구영;
-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 다리;
- 9전혀.0
- 구영;
- 그래. 그럼 나 대신 멀리 가. 멀리 멀리 가 봐.
- 다리;
- 9먼저 만들고.0
- 구영;
- 새 다리/
- 다리;
- 9응.0
- 구영;
- 아니야. 그냥 가. 방법을 모르는데. 되돌릴- 수도 없-고. 자른 걸 다시 붙-이려면.
- 다리;
- 9궤매볼가. 바느질. 박음질.0
- 구영;
- 돌을/
- 다리;
- 9응. 시간도 많-잖아. 이십-사 시간 내내 해만 더 잇-으니가.0
- 구영;
- 그러면 너는 언제 더나.
- 다리;
- 9시간 많아. 기다릴-게.0
- 구영;
- 내가 다시 다리가 잇-다고 해서 내가 어디론가 갈- 수 잇-을가.
- 다리;
- 9어차피 어디 안 갈- 거잖아.0
- 구영;
- 맞아. 그리고 돌은 너무너무 무거울 것-같-아.
- 다리;
- 9대신 좀 더 힘주어 말할- 수도.0
- 구영;
- 그건 다리가 아니라 배로 하는 거라니가.
- 다리;
- 9도와줄- 수는 잇-겟-지.0
- 구영;
- 그래…
- 다리;
- 9할 일도 없-잖아.0
- 구영;
-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면 안 될가.
- 다리;
- 9그럼 이걸 위해, 나를 위해 해 줘.0
- 구영;
- 그래……
4. 잠시 대사도 없-이
구영은 새로운 다리를 만들기 위해 돌로 기어간다. 기어가기 위해 모든 힘을 사용한다. 다리가 잇-는 한- 켠과 돌이 잇-는 다른- 켠이 서로 멀리 덜어져 잇-엇-기 대문에, 필연적으로 구영은 다리를 챙겨 다시 왓-던 길을 되돌아 다른- 켠으로 기어갈- 수박에 없-엇-다. 그러는 데에 한-참의 시간이 걸렷-지만 여전히 해는 더 잇-엇-다. 그림자의 각-도도 변하지 않앗-다. 그래서 그 누구도 시간이 얼마나 흘럿-는지 알아차릴- 수는 없엇-다.
구영은 다리가 잘려나간 자신의 무릎-을 들여다본다. 아직 아물지 않은 피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잇-엇-고 아무렇-게나 짖어진 피부와 혈관, 벼의 부러진 모양으로 미루어 볼 대 구영의 칼솜시는 그리 좋-지 않앗-음이 틀림없-다. 계속 피가 바져 나오고 잇-어서, 흐르고 잇-어서, 다리가 놓인 한- 켠과 돌이 놓인 다른- 켠을 오가는 사이의 경로는 지도에 그은 선처럼 두-렷하게 피로 물들어 잇-엇-다. 무릎-으로 그린 선.
아직 아물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구영이 중얼거린다. 아문 피부에는 무엇을 붙-여도 접붙-일- 수 없-기 대문이다. 사실 궤매는 행위도 상처를 내는 행위이다.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는 구멍이 둟리고 피가 흐른다. 실을 통해 접붙-일- 수 잇-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매개일 분이다. 상처와 상처가 만나서 달라붙는 것이다.
구영은 주머니를 뒤적여 본다. 다리를 자를 대 사용햇-던 칼분이다. 구영은 돌을 본다. 돌은 단단하다. 실을 구하는 게 먼저일가 돌에 상처를 내는 게 먼저일가 구영은 고민한다. 돌에 먼저 상처를 내기로 한다. 칼로 돌을 자른다. 내리친다. 아직 팔 힘이 잇-어서 다행이엇-다. 하지만 팔에 온 힘을 집중해야 해서 이제 그 외에 다른 것은 할- 수 없-다. 말도 하지 않고 신음도 내지 않는다. 모든 힘은 돌을 상처 내는 데에만 사용한다. 그런데 돌의 상처는 무엇일가/ 부스러기가 되어 덜어지는 돌을 보며 구영은 생각햇-다. 생각만 햇-다.
그림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앗-지만 시간이 무척 많이 흐른 듯-하다. 이제 칼로 돌을 내리치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구영은 더 이상 칼로 돌을 내리칠 기운이 남아 잇-지 않다. 돌은 괘 많이 상처 낫-다. 하지만 돌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구영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렷-다.
갑자기 커다란 모래 폭-풍이 불어온다. 다리는 바람에 실려 실려 멀리 간다. 굴러간다. 더난다. 구영이 무릎-으로 그린 선도 사라진다. 돌 부스러기도 모래 사이로 석-인다. 원래 사막이란 그런 것이다. 전도 후도 없-고 경게도 구분도 없-다.
5.

6.그리고스페이스바도없-이
90;그림자의각-도는변하지않앗-지만그림자의모양은변햇-다.커다란다리를가져서/아니,돌과함게하게되어서.구영이돌이된것-도아니고돌이구영이된것-도아니다.그냥구영과돌이함게하게되엇-다.정확하게는구영이엇-던것과돌이엇-던것이함게하게되엇-다.돌이엇-던것은무척크고단단하기대문에무한한힘이잇-지만,굳이힘주어말하지않기로한다.단단한.밀도.그래도들리지/보이지/느겨지지/이몸을구석구석들여다봣-으면그정도는들엇-겟-지.보앗-겟-지-.느겻-겟-지.이몸은가가이에서도보고,덜어져서도보고,소리내어도봐야되니가.다라숨쉬고,다라호흡하고,다라멈추고,손가락도그에맞춰내리거나,다시되돌아올라가기를반복햇-을테니가.
90은고개를돌려주위를둘러본다.
90;다리엇-던것은잘갓-을가.어디로갓-을가.다리-엇던것도이사막과하나가되엇-을가.그러면더낫-지만더나지않은것이기도하지.구영이엇던것-도사막과하나가되엇-으니가.하지만넓고넓은사막의다른-켠에서는그림자의각도가다르게보일가.그건조금궁금하네.다리엇-던것에도눈이잇-다면함게볼수잇-엇-을텐데.그건조금아쉽네.
90은몸을본다.잇-기도하면서없는몸.
다시모래폭-풍이불어온다.90을뒤덮는다.
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