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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방

근종천

제69호

2015.06.04

어머니의 방, 근종천

등장인물
아들
엄마

아들
충성! 신고합니다! 병장 최. 종. 찬은 2015년 5월 8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 고! 합니다!
엄마
축하하네. 이리 오게 우리 아들. 한 번 안아보세.
아들
감사합니다만 어머니. 전 이제 어린 애가 아닙니다.
엄마
헤치지 않네.
아들
대신 제가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싶습니다.

아들, 엄마의 잔에 술을 가득 채운다.
엄마, 아들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아들
어머니! 오래 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질문 드려도 되겠습니까?
엄마
드려 보게나.
아들
어머니 아버지 연애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엄마
아들
부모님에 대해 제가 아는 거라곤, 경주 최 씨 36대 손 5남매 중 셋째 최영석 씨는 충남 부여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부모 걱정시키기 않기 위해 공부를 하루빨리 포기하곤 육군 부사관이 되었다는 것.
야간고등학교에서 밤일하며 대학자금 마련하던 금산 태생 어머니는 모아둔 돈을 언니의 결혼자금으로 쓴 외할아버지에게 따지다 뺨 맞곤 가출하였단 것.
그 둘이 새파랗게 어린 스무 살이란 나이에 눈 맞고 배꼽 맞아 결혼 전에 누나를 낳으셨단 것밖에 없습니다!
엄마
아들
어머니께선 왕년에 면도칼 좀 씹으셨던 것 같습니다!
엄마
아들
누나 고등학교 다닐 땐 눈에 불 켜고 연애단속 하셨던 어머니께서!
엄마
아들
발랑 까지신 것 같습니다!
엄마
아들
아님, 순수했던 아버지가 늦바람에 남성미를!
엄마
아들
여튼, 둘 다 금실 좋게 발정난 한 쌍 같습니다!

엄마, 아들의 뺨을 때린다.

엄마
이렇게 맞았네.
아들
… 잘 못들었습니다?
엄마
감히 딸년이 하늘같은 아버지한테 따박따박 말대답한다고.

또 한 대 때린다.


노려본다고.

한 대 더 때린다.


이건 괘씸죄네.

정적


무튼 그렇게 집 나와서 바로 서울 이모한테로 갔다네.
‘대학가서 공부 제대로 해보겠다고, 동생 년이 발 한 번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새우잠 자면서 열심히 모은 돈이었는데!!!‘
시원하게 따지지도 못했네.
그저 잠이라도 재워줬음 해서. 언제 나갈지도 모르고 신혼집에 눌러 앉은 게 너무 미안해서 집안일들 다 하며 지냈지.
그러다 여름날이었나?
바닥 걸레질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모부가 엉덩이 만졌어.
계속 만졌어. 치마 한 번 살랑거릴 때마다 시커먼 손으로 오른 쪽 한 번.
왼 쪽 한 번. 그렇게 계속. 술 냄새도 안 났었는데.

엄마, 술이 든 잔을 비운다. 아들, 어머니께 술 한 잔 따라드린다.


이제 난 어디로 가야되나?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께 무릎 꿇고 싹싹 빌까?
그냥 무작정 잘못했다고, 잠만 재워주면 나가서 돈 벌어온다고?

엄마, 고개를 두어번 젓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향 집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일하던 학교가 생각나더라. 그래서 대전으로 내려갔지. 병원에서 앉아있는데 군바리 한명이 다리 절뚝거리면서 지나가대? 키도 째깐한 놈이 다리까지 절뚝거리니까 한창 구경하다가 눈이 마주쳤어. 그니까 그 군바리가 지도 당황했는지
아들
충성!
엄마
어머머, 충-성-
다음 날에 또 봤어. 째깐한 군바리.
아들
충!

엄마, 고개를 한 번 작게 젓는다.

아들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엄마
어머나? 누구신지.
아들
중사! 최 -
엄마
아, 어제 인사 나눴지요. 다리 다치셨나 봐요? 아이 참, 너무 아프겠다.
이것도 인연이라며 커피 한 잔 마시러 가재.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
자기 집에서 지내래. 그때 아빠가 했던 말이 자긴 군인이니까 집에 잘 안 들어온대.
그래서 연천으로 가서 같이 살았어. 스무 살에.
아들
중사 최영석! 점심은 드셨습니까?

엄마,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다.


중사 최.영.석! 북쪽에서 계속 방송 내보내서 후덜덜덜 겁내실까 들렀습니다.

엄마, 갑자기 떨기 시작한다.


중사 최.영.석! 따신 물이 잘 안 나오는데 불편한 곳은 없으실까 잠깐 들렀습니다.
중사 최영석! 국이 좀 싱거운 것 같습니다!

엄마, 소금을 한바가지 넣는다.


죄송합니다!
중사 최영석! 그냥 왔습니다.
정미씨-, 잼 좀 먹어보세요. 군대 잼은 더 달콤해요.

엄마, 입술에 침을 묻히며 달콤함을 표현한다. 마치 유혹하는 것 같다.


금방 올게! 나 올 때까지 자지마!
엄마
그때 이 남자 눈을 봤는데 깊었어. 그래서 누나 만들자 했지.
누나 낳고 엄마로서 당당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사람들 모아서 다 보는 앞에서
결혼식 올렸어.

긴 정적

엄마
알았으니 속이 시원한가, 최병장?
아들
… … 충! 성!

엄마와 아들, 술잔을 비운다.

막.

호들갑 작가소개
음력 89년, 양력 90년생이라 두 개의 나이로 살고 있는 전라남도 광양 출신. 모두가 ‘예’라고 하면 괜히 ‘아니오’가 하고 싶은 작가 근종천은 중학교 시절 아무도 가려하지 않았던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서부터 연극을 하게 됐다. 그 경험이 즐거워 연극과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군 시절 읽은 모 작가의 ‘본인의 상처를 핥아 작품을 쓴다’는 말에 감명 받아 글도 쓰기 시작했고, 좋은 글을 많이 쓰기 위해 계속해서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최근 심해지는 네티즌들의 지역혐오주의 댓글에 억울함이 쌓여가기에 곧 작품 한 편을 더 쓰게 될 것 같다. 존경하는 단군할아버지의 뜻으로. (편집위원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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