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조선형
제71호
2015.07.02
성묘, 조선형
등장인물
어머니
딸
사위
- 딸
- 여기야? 어디야? 여기?
- 사위
- 어. 여기. 여기 맞아. 여기. 어머니! 여기요!
- 어머니
- 어디? 여기라고? 여기? 여기라고?
묘지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묘지를 뚫고 삐쭉 자란 나무가 흉흉하다.
- 어머니
- 아이고. 엄마. 아이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왜 이런다니! 아이고 큰일났네! 큰일났어!
얘 이거 왜 이런다니! 이거 왜 이래!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아이고. 엄마. 우리 엄마 어떡해! - 사위
- 어머니. 산소가 왜이래요?
- 딸
- 이게 뭐야! 엄마! 이거 왜 이래?
- 어머니
- 묘 망가지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망했네. 망했어! 아이고 엄마. 아이고 우리 엄마. 내가 죽일 년이야. 내가 죽일 년이야 엄마.
- 사위
-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무를 뽑으며) 이거! 제가!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이거 너무 큰 나무라 안 뽑히는데... - 딸
- 야! 그걸 지금 어떻게 뽑아!
- 어머니
- 아이고. 우리 엄마. 아이고. 아이고.
- 딸
- 삼촌이랑 오빠들 진짜 너무하네. 이게 뭐야! 이거 어떡해 엄마?
- 어머니
- 이 새끼들은 그 많은 재산 다 가져 갔으면 묘라도 살뜰하게 챙겨야지! 나쁜 새끼들! 오빠란 새끼들이 지 자식새끼들만 챙기고 지들 부모 묘는 나 몰라라 하고 있나보다! 이 새끼들!
- 딸
- 엄마...진정해...
- 사위
- 어머니...
- 딸
- 그러니까 오지 말자니까...괜히 할머니 산소 얘기는 해가지고...
- 어머니
- 내가 오자고 했니? 쟤가 오자니까 왔지!
- 딸
- 김 서방이 여길 어떻게 안다고 오자고해? 엄마가 “늬 할머니 묘가 이 근천데..” 하니까 엄마 기분 맞춰준다고 온 거지.
- 사위
- 에이! 자기는 왜 또 어머니한테...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까 밑에서 뵌 어르신한테 기계 같은 거 빌려달라고 해볼게요. - 어머니
- 누구한테 뭘 빌려! 그 집이 어떤 집인 줄 알고! 그 집 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 종 살던 집이야. 어? 나 중학교 다닐 때 내 앞에서 눈 치워주던 사람이라고. 하! 아까 날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이 꼴을 해가지고 차도 없이 똥밭을 뒤뚱뒤뚱 걸어오는 모양새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 딸
- 엄마 또 왜 그래. 엄마 꼴이 어때서? 우리 꼴이 뭐가 어때서? 엄마는 아직도 남의 눈이 그렇게 중요해? 어? 딸 잘 키워서! 사위 앞세우고! 건강하게 엄마 두 다리로 이렇게 걸어 온 게 뭐가 창피해! 뭐가 기가 막혀!!
- 어머니
- 사위? (딸의 등짝을 내려치며) 그래 아주 장하다 장해 이년아! 너 키운다고 이년아! 내가 너 때문에! 형제들이랑 인연 다 끊고 이년아! 뼈 빠지게 공부시켜 놨더니! 아이고 이년아. 너는 어디서 저런 찌드랗고 멀건 놈 하나 데려와서 살림을 차리겠다고. 혼인식도 안하고! 애미 말은 귓구녕으로 다 씹어 먹고 이 모양 이 꼴로 살면서! 장하다 이년아! 자랑스럽다 이년아!
- 딸
- 아 진짜! 엄마 좀 그만해! 우리 결혼한 지 벌써 삼 년이야 삼 년! 저 멀건 놈이 엄마 사위라고! 이제 엄마 자식이라고!
- 사위
- 자기야 그만해! 어머니 속상하신데 자꾸 그래.
(비닐봉지에서 진로 포도주를 꺼내 컵에 따르며) 어머니. 한 잔 하세요. 제가 묘는 어떻게든 정리해 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어머니
- 나이나 맞아야 사위라고 하지. 누가 보면 손준 줄 안다 이년아!
- 사위
- 어머니 아니에요. 저희 밖에 나가면 그렇게 안 봐요. 이 사람이 어머니 닮아서 동안이잖아요. 얘기 안하면 저희 띠 동갑인거 아무도 모른다니까요.
- 어머니
- 띠 동갑? 이년아 열 살 차이라며!
- 딸
- 열 살이나 열두 살이나....
- 어머니
- 아이고. 속 터져. 아이고. 속 터져.
- 딸
- 엄마. 나도 한 잔 줘봐. 얼른!
엄마가 혼자서 나 키운 게 얼마나 잘한 일인데... 내가 얼마나 고마운데... 그거 창피하다고 인연 끊자는 인간들! 삼촌들이고 이모들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거 하나도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부러워.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무서워!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장해! - 어머니
- 하! 됐어 이년아!
- 사위
- 자기야... 울지마...
- 어머니
- 아이고...참나. 자네나 울지 말어!
(사이)
-
- 누가 내 속을 알겄냐... 아무도 모르지...
우리 엄마는... 알겄지.
이년아 너도 자식 놔봐라...자식 놓고 이정도도 욕심 안 부리는 애미가 어딨나...
(사이)
-
- 인생 다 부질없다더니. 그 말이 맞네...엄마...
우리 엄마 말이 딱 맞네...
인생이 내 맘대로 흐르면 그게 인생이냐. 방바닥 탑쎄기도 내 맘대로 안 쓸어지는디...
(사이)
-
- 그래...어떻게 난 년이고 어떻게 난 놈이고 뭐 그리 중요하냐.
니들끼리 행복하다면 그만이지.
흠! 흠! 어디 오징어 좀 뜯어보게. 김 서방. - 사위
- 네! 어머니! 여기요 여기!
- 어머니
- 근데. 늬 할아버지 묘는 어디에 갔다니?
- 딸
- 뭐야? 할아버지 묘도 여기야?
- 어머니
- 그치. 니 할머니 돌아가시고 두 분 같이 모신다고. 저기 밤골에 있던 할아버지 묘도 옮겨 왔는데...
- 딸
- 어? 그럼 여기 아닌 거 아니야? 엄마! 잘 생각해봐. 여기 맞아?
어머니. 조용히 비닐에 진로 포도주를 담는다.
- 어머니
- 몰라. 이년아. (딸이 씹던 오징어를 뺏으며) 그만 먹어! 니 할머니거야!
어머니. 조용히 혼자 일어서서 나간다.
- 사위
- 어머니...
- 딸
- 엄마!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피아노 앞에 앉은지 36년. 한글보다 음표 읽는 법을 먼저 배웠다. 작곡과 재학중에 무언극 기차의 작곡가로 데뷔했고 15년동안 연극 및 뮤지컬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가 음치였던 것이 재밌어서 뮤지컬 음치클리닉 대본을 시작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Stephen Sondheim’처럼 글쓰기와 곡 쓰기를 함께 하고 싶다. (편집위원 오세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