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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기침

김다정

제72호

2015.07.16

헛기침, 김다정

등장인물
아빠

직원
문상객

무대
빈소

상복을 입은 딸
대충 뒤로 묶은 머리카락
긴 앞머리는 아무렇게나 풀어헤쳐 져 계속 쏟아진다.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은 표정으로 독백.

아부지, 우짜노. 아부지 없이 우째 살라고 이래 가뿌노. 나 두고 가이 좋나? 으잉? 이래 갑자기 말도 없이 가뿌면 내는 우째.

아빠 등장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슬픈 눈으로 딸을 본다.
수의를 입고 있다

맨날 지켜준다 지켜준다 말로만 해쌌고 불러도 안 오디만 아예 안 지켜줄라카나? 낳았으면 지켜주는 기라고, 평생을 책임지는 기라고 누가 그랬노? 자기가 한 말도 못 지킬 거면서 맨날 멋있는 척, 온데만데 번쩍번쩍 나타날 것 같더니만……. 잘 됐다, 마. 혼자서 잘 살끼다!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내가 안 켔나! 아부지랑 싸우고 그랬었는데, 내가 이겼네! 이제 소원 들어도. 거 있으면 못하는 게 없지 않나? 내가 바라는 게 뭐냐믄!

아빠, 한 걸음 다가가 귀를 기울인다. 딸, 귓속말 해줄 듯 몸 기울였다가 어깨를 떨며 훌쩍인다. 아빠, 아무것도 모른 채 계속 귀를 기울인다.

뭐냐믄……. (울먹이며) 나를 좀 지켜도. 나가 혼자 어찌 살겠노. 거기 좋다고 계속 거만 있을라고 하지 말고 좀 따라 댕기면서 하는 것 좀 봐라. 옆에서, 뒤에서 따라댕기다 위험할라카면, (큰 목소리로 남자 흉내내며) “떼끼, 이놈. 물럿거라! 내 딸한테 뭐하는 짓꺼리고?” 아부지 말마따나 삿된 것들이 많은 세상 아닌가.

아빠, 완전히 다가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딸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진다.

(아빠에게 기대며) 나는 믿을 사람 아부지 말고 또 있나. (품에 머리를 비비며) 아부지, 알겠제?

아빠,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

딸, 아빠의 휴대전화를 꺼낸다.
아빠,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휴대폰을 켠다) 허얼. 배경화면이 이 여자였나? 김사랑?

아빠, 부끄러워 양 손바닥으로 얼굴 가렸다가 내린다.
위의 행동 두어 번 반복한 후 돌아선다.
뒷 짐 지고 헛기침.

사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뭐꼬, 이게. 내가, 어? 이런다고 맘 풀 줄 아나.

아빠, 고개 돌려 딸 표정 살핀다.

사랑하는우리딸? 촌스럽구로. (눈물을 닦으며) 하트는 누가 가르쳐줬노.

아빠, 어색하게 헛기침.
돌아서서 하늘을 본다.

(문자 치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하시는 분들께서는 대구시 장례식장 매화실로 와주세요. (한숨 쉰다)

아빠, 계속 하늘 본다.

사이

딸, 주머니에서 본인의 폰을 꺼낸다.
반복해서 문자를 전송하는 시늉.

(멈칫하며) 이 오빠…….

아빠, 가까이 다가와 기웃기웃한다.

아 몰라! (아빠 쪽으로 폰을 던진다)
아빠
(깜짝 놀라 피하며) 어이쿠!

아빠, 민망한 듯 헛기침한 뒤,
살금살금 폰으로 다가간다.
힐끔힐끔 딸의 눈치를 본다.
폰화면 보기위해 쪼그려 앉아서 살핀다.

아부지, 야가 누군지 궁금하나?

아빠, 찔린 표정으로 깜짝 놀란다.
고개 빠르게 끄덕인다.

첫눈이. 와 내가 기린 닮았다고 했던 놈 있다 안카나.

아빠, 한 번 더 고개 빠르게 끄덕인다.

맞다, 아부지. 얼굴 모르제? 내가 잘되면 보여준다 켔었는데. 기다려봐라. 보여줄게. (찾는 시늉) 자, 봐라!

딸, 팔을 쭉 뻗어 폰 화면이 하늘을 향하도록 치켜든다
아빠, 폰에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점점 당황하는 표정 짓는다.
손으로 얼굴 쓸어내린다.
왔다 갔다 움직인다.
반복해서 헛기침.

(웃으며) 내 아부지 이럴 줄 알았지. 어마어마하게 잘생겼제?

아빠, 움직이다가 멈춰서
황당한 표정으로 딸 본다.

(바닥에 드러누우며) 뭐라켔노. 아부지보다 잘생긴 사람 만난다 안했나.

아빠, 더 황당한 표정.
크게 헛기침한다.

내 차였다.

아빠, 벌떡 일어난다
놀란 표정으로 딸 바라본다.

놀랐나.

아빠, 천천히 고개 끄덕인다.

내도 놀랐다. 설마 차일 줄 누가 알았겠노. 뻥뻥 차보기만 했지, 차인 건 처음이라 수치스러워갖고 말을 몬했다.

아빠, 뭔가 억울한 표정 짓는다.

서운하나? 그래가 지금 말 안 하나. 이따 그노마 오거든 아부지 한마디만 해라. (허공에 손가락질하며) 니가 내 딸 찬 놈이가? 인물도 훠언하고 키도 시원하니 괜찮구만! 내 딸래미 어데가 부족하다고!

아빠, 허공에 손가락질 하며
딸이 한 말을 연습하는 시늉한다.

아이다, 됐다. 아부지가 이런 거 할 줄이나 아나. 뒷짐 지고 엣헴엣헴 거리기나 하겠지.

아빠, 민망한 듯 헛기침
뒷짐 진 손 발견하고 놀라서 앞으로 모은다.
다시 헛기침
뭔가 자세가 이상한 걸 눈치 채고 양손을 어쩔 줄 몰라 한다.

다아 됐다, 마. 어차피 안 된 거. 더 잘생기고 훤칠한! 다른 머스마 안 있겠나.

아빠, 딸 바라보며 힘차게 고개 끄덕인다.
작게 파이팅 모션 취한다.

(진동소리)

어? 답 왔네.

아빠, 궁금해서 얼굴 들이민다.

이야, 아부지. 야가 개념은 찼다. 그지? 내가 사람은 곧잘 본다 아이가. 이따 오거든 할 말이나 생각해 두그라.

아빠, 고민하는 자세 취한다.

사이

딸, 움찔움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다.
슬그머니 고개 들며 주변 눈치를 살핀다.

(속삭이듯이) 하이고, 남사시럽구로. 이 시점에 오줌이 마렵노.

딸, 슬그머니 일어난다.
옆으로 움직인다.
아빠, 망설이다 따라간다.

화장실.
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시늉.
아빠, 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하늘 한번 보고 손부채질.
문 안쪽 힐끔 들여다보며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다.

아빠
(헛기침하며) 허, 거참. 거참.

딸, 가볍게 기침한다.
아빠, 눈 질끈 감고 문을 넘는다.

(손목시계를 보며) 벌써 열두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섭지만 애써 무섭지 않은 척) 열두 시네! (억지스럽게 웃는다) 하하하하. 아부지, 거기 있제?

아빠, 뒷짐 지고 어깨를 펴며 으스대는 자세.
딸, 아빠가 서있는 반대방향을 보며 손을 흔든다.
아빠, 당황한 표정 지으며
딸의 맞은편으로 움직인다.
딸, 변기에 앉는다.

(노래하듯) 나 이제 싸겠네

아빠, 당황한 표정으로
헛기침하며 뒤돈다.
딸을 등지고 선다.

아부지, 있는 거 맞제? 여자 화장실이라꼬 안 온 거 아이제? 거 안 볼 건 안 보고 볼 건 보면 되지, 쓰잘떼기 없이 양반네 체면 차린답시고 멀쩍시리 있음 내가 가만히 안 있는다잉?

아빠, 억울한 표정으로 몸 돌렸다가
다시 황급히 앞 본다.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한다.

(몸을 웅크리며) 추운거보니 아부지 여 있나보네.

딸, 천장을 살피며 물을 내린다.
아빠, 다시 헛기침 한다.
딸, 쓱 아빠를 옆으로 민다.
무대를 향해 손을 씻는 시늉을 한다.
딸, 헝클어진 머리를 만진다.
아빠, 한 걸음 물러나 딸의 뒷모습을 본다.

사이.

직원 등장.
직원, 다짜고짜 코팅된 종이를 들이민다.
딸,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직원
보통 이정도 가격 선에서 많이 해요. 손님 별로 없으면 (아무도 없는 빈소를 살피며) 음식도 많이 남으니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직원
국은 맑은 소고기무우국이랑 육개장있는데 어떤 걸로 하실래요?
맑은 소고기무우국이요.

아빠, 불만 있는 표정으로 딸의 옆에 쪼그려 앉아 머리 긁적인다.

아……, 저 육개장으로 주세요. 그리고 절편이랑, 과일은……. 네, 이걸로요.

아빠, 마지못해 고개 끄덕인다.
고개가 직원이 들고나가는 코팅된 종이를 따라 움직인다.
딸, 다리 뻗고 앉는다
우악스럽게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아빠, 딸의 어깨 주물러주려고 한다.
딸, 벌떡 일어나 무대 뒤편으로 향한다.

딸,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온다.
바닥에 앉아 핀을 꺼낸다.
앞머리를 고정하려 하지만 계속 헛손질.
여러 번 반복한다.

아이씨.

아빠, 안쓰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맴돈다.
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표정과 몸짓으로 함께 움직인다.
딸, 마침내 머리 고정에 성공한다.
딸, 무대에 드러눕는다.

아부지…….

아빠, 천천히 두어 걸음 멀어진다.

사이

딸, 옆으로 눕는다. 새우자세.
아빠, 머뭇거리더니 다가와 딸 뒤에 팔 괴고 눕는다.
엉거주춤 비슷한 자세를 취한다.
남은 손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딸의 머리카락이 헝클어진다.

망할 앞머리 같으니.

아빠,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헛기침.
머리카락엔 손닿지 않도록 쓰다듬는 시늉한다.
딸, 눈을 감고 잠든다.

아빠
(용기내 딸의 머리위에 손 올리곤, 망설이듯 작은 목소리로) 미,

딸의 방귀소리.
아빠, 당황해 멈칫한다.
움직일까 말까 갈등하는 모양새.
마음 가다듬고 다시 자리 잡는다.
딸의 더 큰 방귀소리.

아빠
(단발마의 비명소리) 헛, (벌떡 일어난다)
옴마야. (깜짝 놀라 번쩍 눈을 뜨곤 몸을 일으켜 앉는다)

아빠, 당황한 표정.
헛기침하며 왔다갔다 움직인다.
손을 흔들며 냄새를 멀리 퍼트리는 시늉한다.

이 와중에 소화는 잘 되는갑네. (큰 목소리로) 아부지, 내가 이런 딸이다.

아빠, 앞서 하던 행동 계속하며 빙긋 웃는다.

문상객 등장.
딸, 벌떡 일어난다.
문상객, 아빠 사진 향해 절한다.
아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상객, 딸과 마주 절한다.
아빠, 향 뒤로 간다. 웃는다.

막.

호들갑 작가소개
2014년 10월, 지인의 초대권 한 장으로 알게 된 연극의 매력에, 취업을 미루고 한 해를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관객으로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희곡 공부를 시작했으나, 점점 커져가는 욕심에 당황하는 중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취미의 적정수준을 찾는 것이 목표이다. (편집위원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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