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왈츠를 추게 할 거야
구하나
제74호
2015.08.20
언제까지 왈츠를 추게 할 거야,구하나
등장인물
나연A(21)
나연B(21)
수찬(23)
무대
대학교 강의실
무대 밝아지면,
나연A,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나연B, A의 등을 쓸어내린다.
- 나연B
- 괜찮아? 수업 들을 수 있겠어? 너 대신 내가 들어 갈테니까
- 나연A
- (말 끊으며) 누구 맘대로.
- 나연B
- 너 힘들어 하니까 그렇지, 이건 걱정해 줘도 난리야.
싫음 말아, 지만 아프지 내가 아픈가? - 나연A
- 일어나.
- 나연B
- 왜?
- 나연A
- 왜긴, 연습해야지.
- 나연B
- 또? 그만 하자 이제.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습, 연습, 연습.
이거 봐 발에 물집 잡혔어. - 나연A
- 물집, 하나도 안 보이는데?
- 나연B
- 물집이 잡힐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 힘이 든다 이런 의미지. 이과 나왔냐?
(사이) 야, 좀 쉬자. 너 오늘 몸도 안 좋잖아. - 나연A
- 이게 누구 때문인데.
애초에 너한테 맡기는 게 아니었어. 조금 서툴러도 내가 했어야 하는 건데. “너처럼 우물쭈물 거리다가 언제 연애 하냐, 이러다간 백발 할머니 될 때까지 남자 손 한번 못 잡아 보겠다.”
난리를 치길래 맡겨놨더니, 한다는 게 술에 취해서 “오빠 왜 이렇게 귀여워요? 오빠아아 가지 마요, 여기 내 옆에 앉아요. 나연이 욮.자.리” 이러고 있다. - 나연B
- 미안해, 미안하다고. 언제까지 툴툴거릴건데?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수찬오빠도 괜찮다고, 자기도 필름 끊겨서 기억 하나도 안 난다고 하잖아.
- 나연A
-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일어나라고 손짓한다)
- 나연B
- 독한 년, 연민정보다도 더 독한 년.
나연A, 입으로 ‘원투쓰리’ 박자를 세며 왈츠 스텝을 밟는다.
왈츠 음악이 흐른다.
나연B, 마지못해 A를 따라 한다.
나연B, 몇 번 스텝을 밟다가 멈춰서는 팔로 'X'자를 만든다.
음악 꺼진다.
- 나연A
- 왜 또.
- 나연B
- 이 박자 너무 심심해. 나랑 안 맞아.
- 나연A
- 맞춰. 그러려고 연습하는 거니까.
- 나연B
- 화장실 며칠 못 간 것처럼 불편하단 말이야. 여기서 속도 쪼금만, 진짜 쪼금만 올리면 정말 신나게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 나연A
- 기다려봐. (밖으로 나간다)
- 나연B
- 그래도 연민정보단 착해.
나연A, 망치를 들고 들어온다.
- 나연A
- 너 그냥 조용히 기절해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이 꽉 물어, 금방 끝내 줄 테니까.
나연B, 도망간다.
나연A, 망치를 휘두르며 B를 쫓는다.
둘의 행동은 느린 템포의 안무 같다. 전혀 폭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아하다.
- 나연B
- (망치를 잡으며) 진정해, 너 답지 않게 왜이래.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 나연A
- (뿌리치고 휘두르며)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지금까지 참아 온 거야. 수찬 오빠 처음 만난 날, 네가 멧돼지처럼 달려가서 번호 찍어달라고 말했을 때도 난 참았어.
- 나연B
- (막으며) 그래, 그때 너 완전 똥 씹은 표정이었지.
- 나연A
- (휘두르며) 같은 날 7016번 버스에서 수찬 오빠 우연히 만났을 때, 헬렐레 거리면서 우리의 과거사 20년을 줄줄줄 이야기 할 때도, 나 가만히 있었어.
- 나연B
- 기억나. 수찬 오빠 내리고 나서 네가 내 머리채 잡았잖아.
- 나연A
- 네가 매일 점심 때마다 “오빠 뭐해요?”, 밤마다 “오빠 자요?” 카톡 보낼 때도, 오빠한테 “우리 밥 언제 같이 먹냐”고 재촉할 때도 다 참아왔는데! 어제 술 취해서 그 짓을 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뭐? 속도를 올려줘? 신이 안나?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다 내 죄다. 내 업보야.
- 나연B
- (망치를 뺏어서 던진다) 그래도 오빠 내 카톡에 꼬박꼬박 답장 해 줬단 말이야. 밥도 오빠가 먼저 사준다고 했어.
- 나연A
- 열 두 시간 만에 받은 답장이 무슨 의미가 있어! 기억 안나? 고등학교 때 진수도, 중학교 때 영민이도 지금 수찬오빠가 하는 거랑 똑같았어. 넌, 학습능력이 없니?
- 나연B
- 수찬오빠는 진수나 영민이가 아니잖아. 걔네들이랑은 좀 다를 수 있잖아. 우리가 오빠랑 주고받던 카톡들은 다 뭔데, 오빠도 우리한테 마음 있다니까.
- 나연A
- 그럴 확률은 0.00000000000000001퍼센트야. 그리고 오빠는 어제 술자리 이후로 그나마 추던 왈츠 스텝도 멈췄어. 발을 그냥 땅바닥에 붙여버렸다고.
내가 하란대로 해. 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있어? - 나연B
- 손해 본 적 없지, 근데 재미있었던 적도 한 번도 없거든.
- 나연A
- 입 다물고, 연습이나 해.
나연A 와B 왈츠 스텝을 밟는다.
수찬, 안으로 들어온다.
- 나연A
- 연습한대로만 해. 워언,투우,쓰리이.
- 나연B
- 알아, 알아. 원투쓰리, 원투쓰리.
- 나연A
- 그게 아니라, 천천히. (손뼉을 쳐서 박자를 맞추며) 워언, 투우, 쓰리이.
나연B와 수찬, 마주 선 후 손을 들어 가볍게 잡는다. 클로즈드 홀드.
- 나연B
- 안녕하세요.
- 수찬
- 어, 안녕.
왈츠 음악이 흐르고, 나연A와 B, 수찬과 왈츠를 춘다.
(나연 B가 수찬의 손을 잡고 있으며, 나연 A는 B의 뒤에서 B와 똑같이 추고 있다)
갑자기 나연B의 스텝이 현란해 진다.
이 때, 음악 템포가 빨라진다. 나연B, 환호성을 내지르며 자이브를 춘다. 음악에 심히 도취되어있다.
- 나연A
- 미쳤어? 안 멈춰? (손뼉치며) 워언투우쓰리이. 템포 낮추라고.
- 나연B
- 에라 모르겠다. 넌 왈츠나 춰라 난 자이브 출게. 이게 내 운명인가 봐.
- 나연A
- (나연B를 못 움직이게 뒤에서 안으며) 멈춰. 멈추라고.
- 나연B
- (나연A를 밀치며) 놔! 나 완전 달아올랐단 말이야.
- 나연A
- (다시 B를 막으며) 제발 정신 차려.
- 나연B
- (더욱 세게 A를 밀치며) 놓으라니까!
나연A, 바닥에 쓰러진다. 정신을 잃는다.
나연B, 다시 자이브 스텝을 밟는다.
- 나연B
- (춤을 잠시 멈추고) 오빠 벚꽃 많이 피었던데 우리 꽃놀이 안 갈래요?
- 수찬
- 꽃놀이?
나연B, 수찬의 손을 잡고 자이브를 춘다.
수찬, 자이브 스텝을 따라 하기 버거워 보인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거의 나연 B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는 모습. 수찬, 결국 넘어진다.
- 나연B
- 가요, 같이가요. 네? 네?
- 수찬
- 나연아. (사이) 너, 너무 부담스러워.
- 나연B
- 오빠...
- 수찬
- 미안해.
- 나연B
- 거짓말 하지 마요. 오빠 나 좋아하잖아요. 오빠가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 수찬
-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 나연B
- 했잖아요. 했다구요.
- 수찬
- 너 무섭게 왜 이래.
- 나연B
- 오빠 눈이, 오빠 손이, 오빠 표정이 말했잖아요. 나 좋아한다고, 나 사랑한다고!
나연B, 수찬과 자이브를 추려고 한다.
수찬, 나연B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 도망간다.
나연B, 바닥으로 나가떨어진다. 흐느껴 우는 소리.
B의 우는 소리에 깨어난 나연A, B를 일으켜 세운다.
- 나연A
- (왈츠 스텝을 밟으며) 워언, 투우, 쓰리이.
- 나연B
- ...
- 나연A
- (B의 팔을 툭툭 치고는) 워언, 투우, 쓰리이.
- 나연B
- (울먹이며) 워언, 투우, 쓰리이.
막.
- 호들갑 작가소개
- 2012년, 영어완전정복을 꿈꾸며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학원 수업 중엔 ‘롤플레이’ 시간이 있었는데, 영어 지문을 연극으로 만들어 학우들 앞에서 발표해 보는 시간이었다. 어쩌다보니 하라는 영어공부는 안하고 연극에 푹 빠지게 됐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느리더라도 오래오래 연극을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