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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준영

제74호

2015.08.20

작가, 박준영, 10분희곡릴레이

등장인물
남자1
남자2

거칠게 노트북을 두들기는 한 남자가 보인다.

남자1
찾아야 돼, 반드시 찾아야 돼. 무조건 찾아야만 돼… 없어, 다 뒤져봐도 없어! 왜? 있을 법 하잖아? 왜 대체 아무데도 보이질 않는 거야? 나와, 제발 나와! 구경 좀 해보자. 보고 싶단 말야, 정말로 보고 싶단 말야! 보이기만 해, 나타나기만 해! 얼마라도 줄게, 전 재산을 다 줄게! 찾기만 한다면…

순간, 화면에 시선 고정되는 남자.

남자1
찾았다, 서촌.

남자1, 어느 카페로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는 그를 남자2가 발견한다.

남자2
혹시, 영혼속의...
남자1
맞습니다.
남자2
어울리는 외모는 아니네요.
남자1
(머쓱하게) 중학생 때 가입한 아이디라서요. 벌써 10년도 훨씬 더 됐네요. (웃음)
남자2
변명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쨌든 재밌네요.
남자1
네… 저기 물건부터 볼 수 있을까요?
남자2
급해요? 바로 가봐야 돼요?
남자1
그런건 아니지만… 거래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남자2
바쁘지 않으면 잠깐 얘기라도 해요. 뭐 마실래요?
남자1
시원한... 냉수 마시겠습니다.

남자2, 물을 따라준다. 남자1, 물을 마신다.

남자1
다행이에요. 아직 갖고 계신분이 있어서.
남자2
나도 놀라워요.
남자1
어떤게...
남자2
(책을 건네며) 이걸 찾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게.

남자1, 테이블위에 놓인 책을 바라만 본다.

남자2
안 펴 봐요?
남자1
제가 아는 그 책이 맞는대요 뭘.
남자2
그래도 상태체크라던가.
남자1
찢어지거나 훼손된 부분이 있나요?
남자2
그럴 리가!
남자1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파셨어도 전 샀을 거예요. 그만큼 이 책, 꼭 갖고 싶었어요.
남자2
고맙네요.
남자1
네?
남자2
고맙다구요. 이 책의 작가로서.
남자1
네? 작가님이세요?
남자2
그래요. 내가 이 책의 작가이자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판매자이기도 하구요.
남자1
너무너무 영광입니다.
남자2
그 정돈가? (헛웃음)
남자1
그럼요! 인터넷을 뒤져도 작가님 사진 같은 건 본 적이 없어서 알아 뵙지 못했어요. 이 책, 제게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남자2
어떤 사연이 있나 봐요?
남자1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려고 들어갔던 작은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찬찬히 읽어봤는데 너무 기가 막혀 숨이 멎는 것만 같았죠. 그 전까지 저는 글을 써본 적도 없고,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남자2
그럼 지금은 글을 쓰고 있나요?
남자1
혼자 끄적이는 정도입니다. 세상에 내놓기 부끄럽기도 전에, 제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워서요.
남자2
그렇군요. 그럼 그 때 책을 샀을 텐데...
남자1
그렇긴 한데, 그 때 당시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바람예요.
남자2
좋아하던가요?
남자1
글쎄요... 특별히 얘기 나누지는 않아서...
남자2
책 선물 함부로 하지 말아요. 어차피 읽지도 않을 거.
남자1
네, 그러겠습니다.

사이.

남자2
그 쪽은 내 책이 뭐가 그렇게 맘에 들었어요?
남자1
뭐랄까. 뜨겁습니다.
남자2
뜨겁다? 책이? 상당히 위험한데.
남자1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책이 뜨거운 게 아니라 책을 읽은 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남자2
그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네요.
남자1
그런가요?
남자2
해석은 독자의 몫이니까.
남자1
작가님께서 그렇게 쓰셨는걸요.
남자2
천만에요. 난 뜨겁게 글 쓰지 않았습니다. 또 누군가 읽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려고 글을 쓰지도 않았구요.
남자1
(웃으며) 말도 안 돼요.
남자2
작가가 그렇다는데?
남자1
분명히...
남자2
분명히 아니라는데 좀 들읍시다.
남자1
네. (사이) 전혀 몰랐어요, 작가님도 어떤 분이신지 상상하면 굉장히 뜨겁고...
남자2
뜨겁다, 뜨겁다 소리 좀 그만합시다.

사이.

남자1
왜 더 이상 글을 안 쓰시는 거죠?
남자2
뭐요?
남자1
왜 이 책 이후, 작가님의 책은 없는 거냐구요.
남자2
왜 글을 쓰려는 거요?
남자1
네?
남자2
대체 왜 글을 쓰려고 하냔 말이야!
남자1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남자2
내 충고하는데 쓰지 말아요.
남자1
네?
남자2
쓰지 말라구요. 창창한 사람이 왜?
남자1
작가님...
남자2
정신 차려요 얼른. 머리 아프고, 돈 안 되고, 힘들고 괴로운 걸 뭐하러 해?
남자1
지금 하시는 말씀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잠시 침묵.

남자2
(책을 집으며) 이 책 안 팔아.
남자1
(빼앗으며) 말도 안돼요!
남자2
이 책, 나한테 남은 마지막 한 권이야. 이거 없애고 다 잊어버리려고 했어. 네가 말하는 그 어처구니없는 배설물들 따위 변기통 아래 하수구로 쏟아버리려고 했다고! 그런데, 당신이 하는 말 듣고 있자니 사람 하나 보내는 것 같아 도저히 못 팔겠어.
남자1
왜죠?
남자2
이 책은 잊어버려, 그리고 글도 쓰지마. 도대체 어쩌자고 무의미한 짓을 하는 거야?
남자1
작가님 글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남자2
바보 같은 짓이라고!
남자1
작가님은 바보 짓을한 게 아니에요.
남자2
후회하게 될 거야. 분명히!
남자1
그건 제가 감당합니다.
남자2
나를 봐!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나?
남자1
아무리 부정해도 작가님은 틀리지 않았어요.
남자2
...
남자1
저 쓰겠습니다, 쓸 거예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남자1, 책을 들고 퇴장한다.

호들갑 작가소개
예술인. 그 말이 부끄럽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돈은 못 벌면서 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인간'을 그 이름으로 지칭한다면 기꺼이 스스로 예술인임을 자처하는 바이다. 가만히 있으면 짓밟고 죽여 버리는 세상이다. 죽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살겠다. 목적은 언제나 나의 행복이다. 깜냥이 된다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도 챙기고.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면 언제든 관둘 것이다. (사실 여행만 다니며 살고 싶으나, 어쩌겠나. 먹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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