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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장주은

제89호

2016.04.07

허름한 단칸 방. 부자(父子), 몸에 단열 뽁뽁이를 감싼 채 누워있다. 아직 암전 상태 다.

허름한 단칸 방. 부자(父子), 몸에 단열 뽁뽁이를 감싼 채 누워있다. 아직 암전 상태 다.


아들
혁신적이야.
아빠
그렇지? 창문에 붙이는 것도 일이라니까.
아들
근데 이건, 창에 붙여야 효과가 크다는데.
아빠
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아들
코걸이.
아빠
옛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초에 불 붙여봐라.

조명, 은근히 무대를 비춘다.

아들
맨날 자기 전에 초에 불은 왜 붙이래. 눈 감으면 어둠인데.
아빠
짜식이. 무드 몰라? 넌 그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아들
언제는 고딩이 공부만 해야 한다며.
아빠
연애도 공부지. 사랑이 제일 큰 공부야.
아들
아빠, 그런 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아빠도 돈이 없으니까 사랑을 잃었잖아.
아빠
시끄럽다.
아들
엄마의 행복은 사랑이 아니었어. 아빠.
아빠
이 싸가지 봐라 싸가지!

아빠, 아들 쪽으로 굴러가 다리로 아들을 찌른다. 터지는 뽁뽁이들. (경쾌하게 터지는 효과음)

아들
아 움직이지마! 뽁뽁이 터지잖아!
아빠
지금 이게 터지는 게 대수야!
아들
그럼 이게 대수지! 뭐가 대수야!

아빠, 행동을 멈추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아들
쉽게 건드리지 마. 터지니까. 꼭 아빠 닮아가지고.
아빠
내가 뭘 닮았다 그래.
아들
저놈의 다혈질. 나이를 먹어도 성질은 여전해.
아빠
그럼 내가 누군데.
아들
(등 돌리며) 잠이나 자.
아빠
...아들.
아들
왜.
아빠
춥냐? 초하나 더 킬까?
아들
됐어. 안 추워. 내일 출근 늦지 말고 빨리 자.
아빠
...내일 물량 없대.
아들
(다시 돌아누우며) 왜. 일 꾸준히 있다더니.
아빠
공장이라고 매일 성수기니. 기계도 좀 쉬어야지.
아들
...참, 편한 소리 한다.
아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일 맛있는 거 먹을까.
아들
없어.

아빠, 아들 쪽으로 굴러간다. 다시 터지는 뽁뽁이들.

아들
아 왜 자꾸 움직여! 터진다니까!
아빠
야, 이거 몇 개 터진다고 안 죽어.
아들
...몰라. 아빠가 춥지 내가 춥나.
아빠
매정하기는.
아들
... 이거 하나 터질 때마다 소원 하나씩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빠, 아들의 뽁뽁이 하나를 손으로 터트린다.

아들
뭐 하는 짓이야!
아빠
말해 봐, 소원.
아들
아 진짜... (사이) 그럼,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빠
아유, 남자새끼가 소원이 싱겁다 싱거워.

아들, 아빠의 뽁뽁이를 손으로 터트린다.

아들
그럼 아빠 소원은 뭔데.
아빠
... 내일 아들이랑 순대국밥 한 사발씩 했으면 좋겠다.
아들
아 뭐야. 아빠가 더 싱거워.
아빠
야, 소원이 뭐 별거냐. 그럼 뭐, 더 큰 거 말해보던가.

아빠와 아들, 서로의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며 소원을 대기 시작한다. 경쾌한 효과 음과 맞물려진다.

아들
이사 가기!
아빠
복권당첨!
아들
영원히 방학!
아빠
영원히 휴가!
아들
스테이크!
아빠
송로버섯!
아들
해외여행!
아빠
카지노 럭키세븐!
아들
메이커 옷! 메이커 신발!
아빠
건물부자!
아들
여자친구!
아빠
...준이엄마.

다시 잠잠해지는 부자.

아들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아빠
그러게 말이다.
아들
있잖아, 이렇게 쉽게 사라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누가 손대기만 하면 뽁 하고 사라지고 싶어.
아빠
사라지고 싶다는 인간이 뭐 이리 많냐. 누군 연기처럼, 누군 바람처럼. 야, 그중에 니 가제일 없어 보인다. 뽁뽁이가 뭐냐. (웃음)
아들
치, 그럼 뭐 다른 건 있어 보이냐. 거기서 거기구만.
아빠
아들, 아빠가 힘들 때 뭐 하는 지 알아?
아들
뭔데?
아빠
슬플 땐 다른 이야기를 내뱉는 거야. (목을 푼다) 흠흠, 아아아.
아들
뭐야 이 밤에 또.
아빠
(노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아들
나도 이 노래 아는데.
아빠
니가 어떻게 아냐. 배웠어?
아들
어. 중딩 때. 이건 기본이지.
아빠
그럼 같이 장단 맞춰봐. 흠흠.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같이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아빠
이제 곧 봄이 올 거야. 그럼 우리 소원 하나 이루고.
아들
그럼 내일 순대국밥 먹으러 가자. 그럼 우리 소원 두 개 이루고.
아빠
크크. 그럼 복권하나 사보고.
아들
한 번 더 부르자. 그럼 진짜 다른 소원도 이루어질지 몰라.
아빠
자, 준비하시고, 흠흠.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같이
종달새 우는 곳에- 내 마음도 울어…

부자의 노래 소리 계속 된다. 경쾌한 뽁뽁이 터지는 효과음이 커진다. 점점 조명 어두워지다 암전된다. 막.

호들갑 작가소개
호들갑을 떨고 싶어도 혼자 있을 때만 떠는 소심쟁이. 부끄럼과 낯가림을 먹고 사는 스물 넷.
넓고 넓은 희곡의 세계 속에서 걸음마 중이다. 부디 많이 쓰면서 성장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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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은

장주은

2016년 10분희곡페스티벌 <겨울나기>, 경상북도 문화콘텐츠 진흥원 웹드라마 <우리아배>, 2018년 10분희곡페스티벌 <농담>의 작가. wkdwndms55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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