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슈즈
정무로
제91호
2016.05.12
양로원 로비. 문이 열리기 기다리며 영길(60대, 남)이 서 있다. 쇼핑백을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있다. 잠시 후 간호사(30대, 여)가 문을 열고 등장한다. 간호사가 영길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그를 안으로 들인다.
양로원 로비.
문이 열리기 기다리며 영길(60대, 남)이 서 있다. 쇼핑백을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있다. 잠시 후 간호사(30대, 여)가 문을 열고 등장한다. 간호사가 영길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고 그를 안으로 들인다.
- 간호사
- 어제도 선생님 한참 찾으셨어요.
- 영길
- 그랬어요? 막상 내가 오면 안 찾더라고요.
- 간호사
- 쑥스러워서 그러시는 거죠. 선생님 드리려고 몰래 사탕도 숨겨놓으셨던 걸요. 딸기 사탕 좋아하세요?
- 영길
- 예전에는 좋아했죠. 요즘은 그냥 딸기가 더 맛있고 좋아요. 늙으니까 사람이 변하나 봐요.
- 간호사
- 그런 말씀 마세요. 딸기도 제철이 이젠 겨울이 되어버렸잖아요. 딸기하고는 상관없이 세상이 변해버린 거니까요. 그래도 딸기도 기억하겠죠. 여름 날 뜨거운 햇빛을.
- 영길
- 그랬으면 좋겠네요.
- 간호사
- 들어가세요. 무슨 일 있으면 부르시고요. 그럼. (퇴장)
- 진숙
- 누구세요?
- 영길
- 나 영길이야. 잘 지냈어?
- 진숙
- 누구세요?
- 영길
- 자, 네가 좋아하는 카스테라 사왔는데 안 먹을 거야? 맛있을 텐데? (쇼핑백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고 카스테라를 연다.)
- 진숙
- 차가 필요해. 차. 홍차면 좋겠는데. (침대 주변을 뒤진다.)
- 영길
- 자, 여기 밀크티도 가져왔지.
- 진숙
- 사장님한테 매번 신세만 져서 미안해요.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외상 안하고 살게요.
- 영길
- 그래. 다음엔 그렇게 해. (카스테라를 먹기 좋게 자른다.)
- 진숙
- (한 입 먹으며) 엄마도 참 좋아하는데. 이거 집에 갈 때 엄마도 줘야겠다. (조각난 카스테라를 들고 침대 밑에 숨긴다.)
- 영길
- 오늘은 뭐 했어? 뭐 재밌는 일 없었어?
- 진숙
- 오늘은 뭐 했어? 뭐 재밌는 일 없었어?
- 영길
-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카스테라를 사러 나갔다 왔지. 멀리까지 가야 하니까......
- 진숙
- (말을 자르며) 과자 안 사왔어? (쇼핑백 하나를 열어본다.) 이건 과자야?
- 진숙
- 예쁘다.
- 영길
- 그러네. 참 예쁘다.
- 진숙
- 근데 나 이런 거 받으면 혼나. (벗어버리려 한다.)
- 영길
- (진숙을 붙잡고) 자, 자.
- 영길
- 여전히 잘 추네.
- 진숙
- 나는 바이올린을 잘 켜는데?
- 영길
- 그래, 바이올린도 잘 켜지만 너는 춤을 제일 잘 춰.
- 진숙
- 나가자! 여기 말고 집에 가자!
- 진숙
- 엄마 몰래 나가야 돼. 엄마가 영길이 보면 화 낼 거야. 영길이는 날라리라고. (키득키득 웃는다.)
- 영길
- 누가 날라리래. 얼마나 착실한데?
- 진숙
- 고마워요. 아저씨. 이제 여기서 혼자 기다릴래요. 영길이가 아저씨보고 오해하면 안 되니까. (주머니를 뒤져 사탕을 꺼내준다.) 이제 어서 가요. 빨리! (영길의 등을 떠민다.)
- 영길
- (목이 메여) 여전히 맛있네. 이 사탕.
영길은 문 앞에 서서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영길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선다. 방 안 창문으로 햇살이 비추고 있다. 옆으로는 침대가 놓여있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던 진숙(60대, 여)이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다.
진숙이 열어 본 쇼핑백에서 신발상자가 나온다. 그 안에 든 탱고슈즈를 꺼낸다. 영길은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진숙에게 다가간다. 진숙이 혼자 막 신어보려고 하나 잘 되지 않는다. 영길은 신발을 갈아 신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발을 신은 진숙이 신이 나서 방방 뛰다 테이블에 부딪힐 뻔 하자 한쪽으로 치우고 진숙을 잡는다.
영길은 진숙을 잡고 조심스레 탱고 스텝을 밟는다. 입으로 허밍하며 음악을 만들어낸다. 진숙은 얼떨떨해 하고 있었지만 몸이 기억하듯 조금씩 움직인다.
영길과 진숙은 방에서 나와 양로원 로비로 나온다. 간호사가 보이자 진숙은 영길의 뒤에 숨고 영길은 간호사에게 눈짓한다. 간호사가 모른 척 해준다.
영길이 멀리 떨어져 진숙을 바라본다. 진숙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곧 춤을 출 것만 같이 몸을 들썩인다. 간호사가 나와 진숙을 데려간다. 영길은 진숙이 서있던 곳으로 돌아가 진숙이 사라진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손에 쥔 사탕을 뜯어 입에 넣는다.
- 호들갑 작가소개
- 프란시스코 고야 曰 “나는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