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김지영
제136호
2018.03.22
등장인물
자원봉사자 (20대) -이하 자봉으로 표기-
행인 (30대)
도심의 번화가. 많은 사람이 오간다. 웅성웅성 시끌벅적한 소리가 무대를 채운다. 자원 봉사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 자봉
- (밝은 목소리) 안녕하세요~
사람들은 계속 지나쳐 간다.
- 자봉
- 안녕하세요~ 시간 있으세요?
- 자봉
- 잠깐만 시간 내서 서명 한 번만 해주세요.
- 자봉
- 소외계층을 위한 법안 마련 촉구 100만 서명 활동입니다.
- 자봉
- 잠깐 시간 내서 서명 부탁드려요.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어요. 북극곰을 도와주세요!
백팩을 매고 이어폰을 끼고 후드티를 뒤집어쓴 행인이 지나간다. 자원봉사자가 그를 붙잡는다.
- 자봉
- 잠깐만요
- 행인
- (한쪽 이어폰을 빼고 자원봉사자를 본다.) 네?
- 자봉
- 안녕하세요. 시간 있으세요?
- 행인
- 네?
- 자봉
- 학생이세요?
- 행인
-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아뇨.
- 자봉
- 그럼 직장인?
- 행인
- (약간 신경질적으로) 아니요. 직장인 아닌데요.
- 자봉
- (머쓱해서) 아~ 그렇구나.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약속 있으세요?
- 행인
- (조금 짜증 난 듯) 도서관 다녀오는 길이요.
- 자봉
- 도서관? 여기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요?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 행인
- 아니요. 그냥... 공부하는데요.
- 자봉
- 아! 취업준비 중 이시구나~ 요즘 취업 너무 힘들죠? 저도 내년에 졸업인데 진짜 걱정이에요 뭐해야 할지. 어떤 쪽 취업 준비 중이세요? 공무원?
- 행인
- 취업준비는 아니고 그냥 공부에요.
- 자봉
- 대학원 준비하세요?
- 행인
- 아니 그냥... (부끄러운 듯) 뭐 혼자 하는 게 있어요.
- 자봉
- 아~ 그렇구나. 혼자 뭐 하시는 거예요? 전공은 뭐예요? 20대?
- 행인
- 나이 많습니다.
행인 자리를 피하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자원 봉사자가 다급하게 그를 잡는다.
- 자봉
- 죄송해요! 제가 쓸데없이 시간을 뺏었죠 바쁘실 텐데... 혹시 봉사 활동이나 사회문제 그런데 관심 있으세요?
- 행인
- 뭐... 네... (귀찮은 듯) 그래서 뭘 하면 되죠?
- 자봉
- 아! 여기! 여기에 서명이랑 연락처 적어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 행인
- 그거면 되나요? 서명 한 번이면?
- 자봉
- 그럼요! 서명만 해주시면 돼요.
- 행인
- (자원 봉사자가 건넨 종이에 서명하려다가) 알바에요?
- 자봉
- 네?
- 행인
- 그거 지금하고 있는 거 알바 맞죠?
- 자봉
- 알바요?
- 자봉
- 하루에 얼마 받아요?
- 행인
- 알바 아닌데요.
- 자봉
- 요즘은 다 알바라던데... 스펙 쌓으려고 하는 거예요?
- 자봉
- 뭐 그렇기도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 행인
- 그럼 왜 해요?
- 자봉
- 요즘 사회문제 심각하잖아요. 소외계층도 힘들고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 열심히 서명을 해서 법안마련을 촉구하면 도와줄 수 있잖아요. 도움이 되는 거예요. 북극곰! 북극곰도 그렇죠 북극에 얼음이 녹고 있잖아요. 그래서 북극곰이 진짜 살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서명을 해서 마음을 모아 대책 마련을 촉구하면 북극곰을 도울 수 있어요.
행인 가방에서 우산을 하나 꺼내고 후드를 뒤집어쓴다. 자원 봉사자에게 우산을 건넨다.
- 행인
- 여기요.
자원봉사자 행인이 건넨 우산을 멀뚱히 바라본다. 행인이 우산을 펼쳐 자원 봉사자의 손에 쥐여준다.
- 행인
- 지금 여기 비 와요. 그것도 모르고...
행인 자원봉사자를 지나쳐 간다.
- 호들갑 작가소개
- 82년생은 아닌 김지영.
익명이 되어버린 이름을 좋아한다. 짝지, 모모 라는 별명이 있다.
치열하게 쓰고 싶지만 게으르게 산다. 계속 쓰고 계속 읽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