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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손식물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김서현

190호

2020.11.05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 12월까지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인물
티티 (검은색 화분)
덴 (하얀색 화분)
집주인 (30대 중반, 남)

무대
무대 중앙에 배치된 투명 플라스틱 상자 두 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크기이다. 상자 위에는 검은색 화분(왼쪽)과 하얀색 화분(오른쪽)이 놓여있고, 화분에는 헝겊으로 만든 식물 모양이 심겨있다. 이파리가 하나인 식물 모양 헝겊에는 사람의 손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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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중앙의 투명 플라스틱 상자 두 개. 상자 안에는 각각 두 명의 사람이 들어있고, 손에 식물 모양 헝겊을 끼우고 있다. 핀 조명 각각의 상자를 조명하고 있고, 두 사람 다 무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숨을 들이마시는 티티. 극한까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고, 그에 맞춰 조금씩 커지는 음향. 티티의 대사와 동시에 소리가 터진다. 경쾌한 씨엠송 반주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티티
손이 쑥쑥 자라나요!
예쁜 손을 가지고 싶나요? 잔 근육이 자근자근, 핏줄이 살아 숨 쉬는 고운 손을 가지고 싶나요? 그렇다면 저희를 찾아주세요!
티티.
티티
다섯 개~ 성형외과! 다섯 개~ 성형외과!
요즘 왜 그거만 부르고 다녀?
티티
재미있잖아. 우리가 노래 외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그게 우리의 물성인데?
티티
자신의 물성을 정해놓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야, 덴.
그때 강아지용 장난감 공 소리가 난다. 주먹만 한 장난감 공, 티티와 덴 앞으로 굴러간다. 둘은 굴러가는 공을 빤히 쳐다본다.
티티
덴, 있잖아. 나 손 성형하려고.
갑자기 웬 손.
티티
그거 있잖아. 손이 진짜 존나게 끝내준대. 철수 기억나?
아, 그 옆 옆집 찰스 아줌마?
티티
맞아, 그 집 게발선인장 있잖아. 놀라지 마라. 그 집 선인장이!
핸드폰을 들고 다닌대.
뭐?
티티
들고 다닌다고! 다른 것도 아닌 핸드폰. 최첨단 손에, 최첨단 문명. 더군다나 요즘 식물 사이 유행? 끝. 무슨 말 더 필요해?
아니,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게 아닌데. 손이잖아.
티티
손이 뭐. 좋기만 하다던데.
핸드폰 집을 수 있는 게? 우리 몸 좀 봐. 그냥 일자로 된 생 줄기에 어떻게 손을 달아. 우린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데.
손이라는 단어는, 음. 너무 사람적이야.
티티
그럴 땐 인간적이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난 그게 더 좋은데.
사람적인 게?
티티
인간적인 게. 사실 난 옛날부터 직감하고 있었어. 그렇게 옛날은 아니지만, 하여튼. 내가 곧 손을 가지게 될 거라는 사실 말이야. 손이 있으면 이 화분 도 탈출할 수 있을 거야. 식물성이 인간성으로 뒤바뀌는 순간 아닐까?
그 말 되게 사람 같아. 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가르쳤어?
티티
글쎄. 누가 그랬지?
(티티역 배우, 자신이 들어가 있는 유리 상자 안을 두리번거리며) 덴. 나는 항상 누군가 나를 가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실 항상은 아니고, 집주인이 핸드폰 처음 샀을 때부터 그랬는데. 저 새끼는 핸드폰 보면서 깔깔거릴 시간에 나는 이 좁아터진 화분에서. 아마 곧 몸이 팽창해서 터질지도 몰라. 식물은 팽창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죽은 게 아닐까? 우리 말이야. 덴은 살아 있다는 느낌 받긴 해?
살아있지.
티티
어떻게 알아?
지금 너랑 말하고 있잖아.
집주인
잇츠 뷰리 뷰리 뷰리풀~ 데이~!
그때 집주인,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대로 난입한다. 한 손에는 물뿌리개를 들고 있고, 한 손에는 두 귀가 핑크색으로 염색된 강아지(인형)를 들고 있다. 집주인은 한 바퀴 유연하게 턴 하며 무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관객들에게 손 인사를 하기도 한다.
집주인
다른 다운 날이에요~ 아니, 아름다운 날이에요~
오늘 아침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나요? 얼마나 아름다운 하루를 보냈나요? 당신이 어떤 하루를 보냈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적어도 오늘 내 하루는 정말 기쁘답니다~
바로 오늘, 뽀삐가 생겼거든요! 인사해 뽀삐! 뫙뫙!
집주인, 품에 안은 뽀삐 인형에 진하게 뽀뽀한다. 뽀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다. 집주인, 미동 없는 뽀삐를 바라보며 헤벌쭉 웃어 보인다. 집주인, 뽀삐를 고쳐 안는 과정에서 손에 들린 핸드폰이 거슬리는지, 핸드폰을 티티의 화분 쪽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뽀삐를 고쳐 안고 어화둥둥 한다.
집주인
우리 뽀삐가 수줍음이 많아요. 응? 아, 얘는 세 달 된 말티즈. 아는 펫샵 주인이 싸게 해준다고 해서 갔는데, 글쎄! 만나자마자 너무 깜찍하고 귀여운 거야. 첫눈에 반했지. 너는 내 운명? 나는 네 운명.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뽀… 어머, 얘 오줌 쌌어 어떡해!!!
집주인이 바지에 전해져오는 따뜻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며 뽀삐와 물뿌리개를 내팽개친다. 주인, 바닥에 내팽개쳐진 뽀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당황하며 무대 뒤로 뛰어간다. 뽀삐는 여전히 미동이 없고, 물뿌리개에서는 물이 흘러나온다.
아니, 개가 오줌 싸는 게 당연한 거지. 왜 저렇게 호들갑이야?
티티
그러게. 야, 근데 쟤 죽은 거 아니야? 왜 미동이 없어? (뽀삐를 향해) 야! 뽀삐! 야!!! 쟤 진짜 죽었는데?
설마. 그냥 움직이기 싫은 거겠지. 집주인 품에서 오줌도 싸는 앤데.
티티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가. 근데 집주인이 내 옆에 뭐 두고 가지 않았어?
(티티의 화분 위를 힐끔 보며) 핸드폰. 핸드폰이네.
티티
뭐!!! 잠깐만. 야, 철수한테 전화 한 통만 하자. 내가 딱 보여줄게. 지금의 철수? 그냥 인간이라니까.
철수한테 핸드폰이 있을 리 없잖아. 찰스 아줌마 핸드폰으로?
티티
아니. 핸드폰을 샀대.
뭐? 어이없어.
티티, 다섯 손 성형외과 씨엠송을 흥얼거리며 핸드폰에 잎사귀를 가져다 댄다. 하지만 잎사귀를 아무리 뻗어봤자 핸드폰에는 닿지 않는다. 티티가 몇 번 더 핸드폰에 잎사귀를 가져다 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닿지 못한다.
티티
아니, 이거 왜 이렇게 안 닿아! (잎사귀를 뻗으며) 좀, 닿으라고!
잎사귀가 어떻게 핸드폰에 닿아.
티티
야, 노력하면 닿을 수도 있지. 이렇게 되면 나중에 우리 빼고 다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면서 다닐걸?
유튜브?
티티
응. 게임 방송도 보고, 틱톡 영상도 보고. 아, 나중에 일상 브이로그 한번 찍어볼까?
너 왜 자꾸 따라 해?
티티
뭘?
사람.
티티
(티티, 무언가 말을 이으려다가 무대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탄식하며) 아, 저 새끼 다시 온다.
집주인이 찝찝한 듯 바지 주변을 탈탈 턴다. 새 바지로 갈아입은 모습이다. 집주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뽀삐를 발견하고 후다닥 달려간다.
집주인
뽀삐! 너 계속 이렇게 바닥에 있었던 거야?! 어떡해, 내가 미안해.
(뽀삐를 다시 안아 들며, 한 손에 가지고 있던 물티슈로 뽀삐의 하반신을 닦는다.) 너 그래도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안 돼! 아빠한테 오줌을 싸다니 이게 뭐야~ 옷이 다 망가져서 새로 빨아야 하잖아.
집주인,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물뿌리개를 집어 들고 티티와 덴에게 물을 주기 시작한다. 입에서는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티티와 덴의 헝겊 잎사귀가 물에 젖어 들어간다.

집주인, 핸드폰을 집어 든다. 핸드폰 화면을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티티의 화분 쪽에 내려놓는다. ‘오늘의 라디오!’ 핸드폰에서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첫 번째 소식인데요. 작년에 엄청 핫했던 ‘모종 식물원’이 올해 다시 개장했습니다. 작년에 ‘식물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사람 모형 유리관 안에 식물을 기른 형상을 내놓아 화제가 되었는데요. 식물을 다듬어 모형을 내는 경우는 많지만, 네이밍 때문에 뜨거운 논란이 일었습니다. 논란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지만, 이번에는 ‘식물인간 2’라는 테마를 빌어 다시 재개장한다고 합니다.’

집주인, ‘염병’이라고 짧게 말한다. 그때 라디오 소리가 끊기고,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린다. 아이폰 벨 소리다. 집주인, 통화 버튼을 누른다.
집주인
(전화를 받는 소리. 집주인은 계속 물을 준다.) 어, 여보세요. 아, 네. 찰스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저야 뭐 일없죠. 아, 집에 개 한 마리 들였어요, 이름은 뽀삐라고. 다음에 한 번 보러 오세요, 완전 귀여워요.
그나저나, 찰스 아주머니. 저번에 한다고 했던 거 있잖아요. 네, 사업 그거. 잘 되고 있어요? 월 매출 1000이요?! 아니, 축하해요~ (핸드폰을 멀리 떨어트리며) 아, 존나 재수 없어.
네? 아니에요, 잠깐 개가 짖어서. 아니, 어떻게 하면 개인 사업이 그렇게 잘 된대. 저한테도 아이템 좀 넘겨봐요. 요즘 미용실이 통 안 되잖아.
프리미엄 애견 미용? 아, 맞아. 그 에밀리 아저씨가 그걸로 달에 800은 번다며? 강남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렇게 돈을 많이 쓴다고. 어머 어머, 나도 해봐야겠다. 고마워요, 찰스 아주머니~ 조만간 한 번 만나야지!
티티
지랄.
집주인, 이상한 낌새에 순간 멈칫하며 주변을 살피고 티티, 헙 하며 입을 막는다. 집주인,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고는 다시 전화를 받는다.
집주인
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요즘 무슨 환청이 들리나, 귀가 좀 먹먹해서.
그 아주머니도 게발선인장 키우시잖아요.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가끔 보면 쟤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혼자 사니까 점점 미쳐가는 지 이런 생각까지 한다니까요. 네? 선인장이 없어져요? 어떡해, 아주머니 그 선인장 엄청 아꼈잖아요. 선인장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손이 달린 것도 아니고. 요상도 해라.
아, 이제 들어가 봐야 되세요? 네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통화해요~
그때 개 짖는 소리 들려온다. 집주인, 고개를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지만 별 반응 하지 않는다. 집주인, 핸드폰을 티티의 화분 옆에 올려놓고, 품에서 미동도 없는 뽀삐를 빤히 바라본다.
집주인
프리미엄 미용.
집주인이 뽀삐의 상체를 잡고 높이 든다. 뽀삐의 하체가 공중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집주인
저희 프리미엄 미용실, 아니 프리미엄 애견 미용샵을 찾아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저는 미용샵 원장이고요. 뽀삐님은 오늘의 첫 번째 고객님입니다.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끼며) 염색을 도와 드릴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집주인, 주머니에서 염색 빗과 살구색 물감을 꺼낸다. 허리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더니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는다. 집주인, 물감을 염색 빗에 묻히고 뽀삐를 요리조리 살펴본다. 곧 뽀삐의 귀에 물감을 묻히기 시작한다. 뽀송했던 털이 녹진해진다.
집주인
뽀삐야. 내가 지금은 이러고 살아도 언젠가는 큰 집으로 이사 갈 거야. 집 안에 현금다발 쌓아두고, 화분도 백 개는 놓을 거고, 강아지도 오십 마리는 기를 거야. 아니, 그렇다고 네가 소중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아무튼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니거든. 여기서 고작 화분 두 개하고 개 한 마리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내가. 내 맘 이해하지? 그렇게 되면 비싼 사료도 사주고, 매일 산책도 시켜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염색 받는 거 좋지? 응?
그때 멀리서 “아저씨, 차 빼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 화들짝 놀라며 관객석으로 목을 빼고 살핀다. 다시 한번 “그래, 아저씨. 차 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가 찬 표정을 짓는다.
집주인
쟤 지금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야, 너 지금 나한테 아저씨라고 했냐? 너 일루와, 개새끼야. 어디서 싸가지 없게 반말을 찍찍하고 앉았어. (소리 지르다 손을 확인하며) 아, 씨발. 너 때문에 놀라서 손에 염색약 다 묻었잖아!
집주인, 관객석을 향해 소리 지르며 삿대질한다. “너 거기서 잠깐만 기다려.” 하는 말과 함께 무대 뒤로 퇴장한다.
티티, 집주인이 나간 것을 확인한 다음 곧 핸드폰을 향해 잎사귀를 뻗는다.
티티
손이 쑥쑥 자라나요!
예쁜 손을 가지고 싶나요? 잔 근육이 자근자근, 핏줄이 살아 숨 쉬는 고운 손을 가지고 싶나요? 그렇다면 저희를 찾아주세요! 식물도 손을 달 수 있는 시대!
티티, 그냥 안 하면 안 돼?
마침내 티티의 잎사귀 끝이 핸드폰에 닿는다. 티티, 곧 잎사귀로 능숙하게 핸드폰을 쥔다.
티티
다섯 개~ 성형외과! 다섯 개~ 성형외과!
티티, 잎사귀로 핸드폰 키패드를 누른다. 통화 연결음이 가고 누군가 전화를 받는 소리.
티티
어, 철수야.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내? 아, 나랑 덴은 항상 똑같지 뭐. 항상, 똑같아서 문제야. 그래서 말인데, 철수야. 너 손 수술받았다고 했잖아. 그거 어때? 혹시 부작용 같은 거 없어? 아니, 별건 아니고. 나도 한 번 수술 받아볼까 싶어서.
티티.
티티
넷플릭스? 야, 너 진짜 대박이다. 요즘은 뭐가 재미있어? 블랙 미러… 한 번도 안 봤어. 아니, 못 봤어. 손 있는 삶이 되게 좋은 거구나. 넷플릭스, 유튜브, 왓챠… 아, 맞아. 그거 실밥 풀 때 좀 아프다더라. 줄기에 연결될 만큼 가벼운 팔도 찾아야 하고, 생 줄기에 마취도 못 하고 꿰매야 한다며? 아플 것 같아.
그런데 사실 딱히 상관없어. 아까 덴이 물성 얘기를 하는데, 웃겨. 요즘 시대에 누가 물성 따지면서 살아?
우리, 갇혀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야. 난 바람도 좋고, 화분도 좋아. 갇혀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거라면, 네가 해야 할 건 손 다는 게 아니라 더 넓은 땅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티티
철수야. 카스테라 한 손으로 뭉개본 적 있어? 아까 집주인 새끼가 뽀삐한테 염색약 묻히는데, 염색약이 살구색인 거야. 폭신하게 부풀어있던 털 숨이 죽는데, 하얀 털이 살구색으로 물들었다? 집주인이 뽀삐한테 손을 달아준 거야. 손을. 그 감각이 진짜, 존나 부러워. 그러니까, 덴.
우리 소비되는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없어. 인간한테.
통화가 끊기는 소리. 뚜— 뚜— 뚜— 하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려 퍼진다.
티티
자꾸 물성 이 지랄하지 말고, 견적이나 알아보는 게 어때?
티티가 말을 마치고 심호흡한다.
티티, 곧 플라스틱 상자 속에 있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플라스틱 단면과 살이 이리저리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티티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티티, 한 손에 끼고 있던 잎사귀 헝겊에서 완전히 손을 뺀다. 몸을 들썩이자 플라스틱 상자에 달린 뚜껑이 들썩인다. 티티의 잎사귀를 담고 있던 하얀색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티티,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난다. 자연스럽게 플라스틱 상자의 뚜껑이 들리고 티티 우뚝 선다. 양팔을 있는 힘껏 벌리며 크게 심호흡하는 티티.
덴의 화분을 빤히 바라본다. 플라스틱 상자 속 덴과 눈이 마주친다.
티티
별것도 아닌데.
티티, 플라스틱 상자에서 다리를 빼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퇴장한다.
덴, 티티가 나간 방향을 계속 쳐다보다가 티티가 두고 간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핸드폰을 올려다보는 덴.
손이, 쑥쑥 자라나요.
덴, 자신의 잎사귀를 올려다본다.

곧 시선을 옮기고 핸드폰을 빤히 바라본다. 잠시 망설이는 덴. 무언가 결심이 선 듯 핸드폰 방향으로 잎사귀를 뻗는다.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해서 잎사귀를 뻗는 덴. 잎사귀를 뻗는 행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무대, 서서히 암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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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현

김서현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소설과 희곡을 쓰고 있고, 2018년 한예종 봄짓 페스티벌에 당선되어 낭독극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westerlies__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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