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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모독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김옥미

제201호

2021.05.27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인물
배우 네 명
배우를 위한 규칙
확신하고 불신할 것
정의롭고 부패할 것
도발적이고 신중할 것
관객들을 존중하며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을 것
배우이되 자기 자신일 것
희곡이되 연극일 것
언어이되 행동일 것
위선적이되 정직할 것
어른이되 아이일 것
권위적이되 평등할 것

그리고 이 모든 규칙을 지키되
이 모든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것

‘손’이라는 주제에 따르되 주제에 연연하지 않을 것
머리말
말의 순서는 상관이 없다.
말에는 행동이 담겨 있다.
대도구는 젠가와 도미노로 충분하다.
또는 아무런 대도구가 사용되지 않아도 좋다.

1장 – 젠가

젠가를 쌓아 올리고 있다.
배우
저기요.
배우, 노래에 심취한 듯, 흥얼거리며 전단을 붙인다.
배우
위 아래가 다 맛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어?
배우
위 아래라뇨.
배우
연극을 하려면 위 아래가 다 맛있어야 한다고.
배우
지금 이 시국에 그런 말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배우
안 될 건 뭐 있어요?
배우
그 말 자체로 고통받을 사람이 있어요.
배우
내가 그런 사람인데요.
배우
뭐요?
배우
난 그런 악몽을 꾸면서 매일 아침 일어난다구요.
배우
그래서.
배우
무대에서 보고싶은데요.
배우
이런 걸 꼭 무대에 올려야 해?
배우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악몽이 사라져요?
배우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네 악몽이 사라져?
배우
상황이 문제 될 건 없잖아요?
배우
그건 또 뭔 말이에요. 끼어들지 말아봐요.
배우
상황이 문제 될 건 없다구요.
배우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
배우
문제 삼자면 문제가 되는 거라구요.
배우
어떻게 문제가 안 된다는 거야. 심각해 이거.
배우
무너져야 될 젠가도 있어요.
배우
젠가는 너만 쌓아올리는 거고.
배우
무너뜨리려고 쌓는 거죠.
배우
그럼 무너지지 않게하면 그만이지.
배우
정돈돼서 쌓아올린 젠가라고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
배우
어렵게 가지 말자고.
배우
도미노도 뭐 무너뜨리자고 있는거지.
배우
그래서. 위 아래. 사과 안 할 거야?
배우
왜 사과해야 해요?
배우
그걸 보고 악몽처럼 떠올릴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배우
그럼 내 악몽은요. 내 고통은요.
배우
모든 사람이 고통받자 이 말이야? 사람들이 그 적나라한 걸 다 알 필요는 없잖어.
배우
그럼 뭘 알고 싶은 거였는데요.
배우
여기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거예요?
배우
그런 사람이 있다는 정도.
배우
난 이제 입 다물어요?
배우
그렇게 받아들이면 서운하지.
배우
난 그런 악몽을 꾸면서 살지도 않고, 이제 찬란한 미래만 남았다고 해요?
배우
선정적으로 주목받고 싶은 거에요? 그게 아니라면 관둬요.
배우
주목받고 싶어요.
배우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로?
배우
자극적인 게 아니라 평범한 이야기니까요.
배우
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렇다?
배우
희열이 있지 않았어요?
배우
무슨.
배우
위 아래가 다 맛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어? 할 때!
배우
그러니까, 무슨 희열?
배우
이런 것도 바라겠죠.
배우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배우
그런 선정적인 악몽으로부터 극복한 여성 서사!
배우
끔찍한 악몽이네요.
배우
매번 했던 얘기들이지.
배우
그거 알아요? 누구나 성적 메타포로 시들 썼던 거?
배우
난 좋더라.
배우
질 속에 삽입되는 연극. 매력적이지 않아요?
배우
위험한 표현이에요.
배우
그럼 이렇게 말할까요?
배우
아니. 입 다물어요.
배우
왜요.
배우
여긴 무대니까.
배우
무대가 아니라면요?
배우
그럼 저 조명부터 꺼야죠.
배우
그래요. 다 끄죠.
배우
깜깜하네.
배우
이러면 연극이 아닌가?
배우
관객들이 없어야지.
배우
내쫓아요.
배우
누가 녹취하면? 다들 주머니 좀 봅시다
배우
뭐가 문제에요 도대체.
배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배우
입 다물라니까요.
배우
거세된 연극.
배우
왜요. 이미지가 떠올라서 이것도 안 되나?
배우
화학적 거세로 무엇도 욕망하지 않는 연극.
배우
그거 좋네.
배우
정관 수술이 답이지.
배우
이 모든 말들을 우린 삼켜야 해요.
배우
왜요.
배우
문제 삼으려면 문제가 되니까요.
배우
그러니까 입 다물자구요.
배우
그럼 관객은 어떻게 해요.
배우
조명부터 켜요. 무언극도 극은 되겠지.
배우
결국 연극이라는 거네요?
배우
우리가 할 줄 아는 게 연극밖에 더 있냐는 거야.
배우
그래서. 위 아래가 맛있으면 안 되는 거에요?
배우
글쎄, 구조적 폭력을 용인하게 된다니까.
배우
무슨 말이에요???
배우
위 아래가 무엇을 상징합니까.
배우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배우
그 의미를 이제 알았어요?
배우
내가 말하는 의미가 뭔 줄은 알아요?
배우
뭔데요.
배우
난 말 못 해요.
배우
더 이상 말 못할 것도 있어요?
배우
있죠. 난 남자니까.
배우
그런데요.
배우
거세된 건 납니다. 나.
배우
연극이지, 당신이 아니죠.
배우
연극이 그럼 남자였단 거에요?
배우
그게 왜 또 그렇게 됩니까?
배우
질 속에 삽입된 연극. 그렇게 합시다. 얼마나 따뜻해?
배우
따뜻하죠. 엄마의 자궁.
배우
성폭행 당했다고 오르가즘 못 느끼나?
배우
엄마 얘길 하고 있잖아요.
배우
엄마는 오르가즘을 못 느껴요?
배우
관객은 오르가즘을 못 느껴요?
배우
우린 다 욕구불만이에요.
배우
이런 섹스어필 그만합시다.
배우
난 악몽에 대한 얘길 하려는 거에요.
배우
그 얘기라면 난 입 다물어야 하구요.
배우
우린 그럼 무슨 얘길 하죠.
배우
고도를 기다려야죠.
배우
부조리극도 극이죠.
배우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네.
배우
쉿.
배우
왜요.
배우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건 나뿐인 거죠?
배우
그것도 좀 이제 얘기가 달라져서.
배우
그건 또 왜요?
배우
당신은 잔다르크잖어.
배우
더럽고 교활하고 섹시한 잔다르크는 안 되나?
배우
그러면 정치적 효용이 떨어지지.
배우
내가 등단을 그렇게 했지만 말이에요.
배우
정치적 등단?
배우
부산 사투리에, 논란있는 심사위원 교체면 답은 당연히 무난한 가족극 아니겠어요?
배우
자기 작품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배우
내 작품이 어때서요.
배우
그런 식으로 장사했어요?
배우
돈값은 했어요. 아주 매끄럽고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배우
그렇게 가볍게?
배우
내가 연극을 위 아래가 맛있어야 된다는 악몽까지 꿔가며 지금까지 지속해왔는데. 가볍다는 게 말이 되요? 가볍다고한들. 뭐 그게 문제 그렇게 있어요?
배우
위 아래 좀 그만해요.
배우
우린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데 위인들 아래인들.
배우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배우
젠가를 들고 온 순간부터요.
배우
무대에 젠가라니.
배우
우린 진즉 이렇게 그냥 놀았어야 해요.
배우
그렇게 말하니 놀기가 싫네.
배우
고도나 기다릴까.
배우
그러다 진짜 고도를 기다린다니까요.
배우
아무 말도 못하는데 그럼 뭘 해요.
배우
합시다. 강간.
배우
뭐요??
배우
합의에 의한 강간.
배우
그거 비문이에요.
배우
이율배반이지.
배우
연극은 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합의에 의한 강간, 합의에 의한 불륜, 합의에 의한 근친상간, 합의에 의한 폭력, 합의에 의한 권위.
배우
그걸 부수자는 게 당신 아니었어요?
배우
그런다고 부숴지냐는 거죠.
배우
강간 당하는 여자를 보고 난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아요?
배우
그 때가 생각나서 괴롭겠죠.
배우
바로 딱 그렇게 생각할 당신들 때문에 괴로워요.
배우
고통스럽지 않은데 어떡하죠?
배우
차라리 화려하게 재현시키고 싶네요. 난 그 때 오르가즘을 느꼈었다고. 그런데 강간은 맞았다고. 그럼 나는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거냐고.
배우
앞서가지 맙시다. 잔다르크가 그런다고 잔다르크가 아니지.
배우
뉴스 인터뷰 나가면 되는 건가?
배우
또?
배우
책을 내거나.
배우
또?
배우
작연출을 하죠 뭐. 자전적 연대기.
배우
또?
배우
진심으로 고도를 기다리자는 건 아니죠?
배우
시대를 표명하는 작가. 우리 그런 거 합시다.
배우
그런 거야 정의하기 나름이지.
배우
내 클리토리스나 전시합시다. 강간과 오랄과 PTSD로 점철된 내 클리토리스가 아직도 건재하고 살아있고 너무나 욕망하고 있음을 밝히자구요.
배우
성적인 언어로만 대화가 가능해요?
배우
내가 그렇게 정의되고 있어서 하는 말이죠.
배우
성적인 언어 빼고 남는 당신은 뭔데요.
배우
나요?
배우
너요.
배우
듣도보도 못한 신인. 그게 다죠.
배우
건방진 신인. 그게 다죠.
배우
내가 피해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말은 하지도 못했겠죠.
배우
그러니까
배우
말하는 거에요. 나밖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배우
대단한 신인 나셨네.
배우
맞아요. 그게 시대를 표명하는 거지.
배우
책임을 내려놓기로 했거든요.
배우
그래야 책임을 질 수 있는 거야.
배우
강간을 지운다고 강간이 사라지나?
배우
에세이를 쓰라고 하길래 나도 어리석었죠.
배우
일상적인 이야길 좀 해요.
배우
그래요. 그렇게 말하길래, 나의 일상을 내 입장에 맞춰 쓰면 어떻겠냐. 했었다구요.
배우
선생님의 심정은 알지만 언급되는 것 만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고.
배우
이것도 고발이 되나?
배우
그 사람도 그 사람 사정이지 악의는 없죠.
배우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배우
그런데 난 특별한 캐릭터잖아요?
배우
살다보니 그렇게 될 때가 있죠.
배우
이혼한 바이섹슈얼이라 큰 거부감은 없고. 결혼 당시엔 꽃뱀 염려가 없어서 피해자로 받아들이기 좋고. 미성년일 당시 겪은 성폭행이라 심플하고.
배우
명분이 좋네. 그래서 딱이구나!
배우
입 다물지 말아봐.
배우
그거 좀 섹슈얼한데.
배우
욕구불만 맞네.
배우
이제야 내가 말할 명분이 생겨요?
배우
그런 캐릭터가 필요하거든. 우리 연극에.
배우
연극이긴 했군요?
배우
그럼 연극이지. 이게 뭐야.
배우
이제 말하기 싫은데요.
배우
또 왜.
배우
피해자라고 찍히는 순간 모든 게 다르게 들리는 것 같더라고.
배우
내가 말할까. 난 배우니까.
배우
작가가 시킨대로 말하지 말아봐.
배우
우리 지금 작가가 시킨대로 말하는 중이에요?
배우
연극이 그렇지 뭐.
배우
희곡이 작가 소유에요?
배우
그럼 왜 불태우는 건데?
배우
난 너무 소중한데. 그 사람 작품.
배우
당신 강간한 인간 작품이 소중해?
배우
그러니까 더 소중하죠. 내가 어떻게 지켜낸 건데. 어떻게 버틴 건데.
배우
그걸 우러러 볼 다음 세대를 생각해.
배우
다 말해주면 되잖아요.
배우
혼란 그 자체지.
배우
연극은 정돈되어야 한다? 다시 돌아오네.
배우
진즉 놀자고 했잖아요. 놀기만 하자고.
배우
언제부터 깡통차기에 옳고 그름이 있었어?
배우
깡통이 얼마나 아픈지 상상이나 해봤어요?
배우
깡통 아프지. 아프겠다.
배우
자. 그럼 이제 놀아도 되죠?
배우
난 못해. 젠가도 아프겠다. 무너질텐데.
배우
인간적 존중 없이 예술은 없어요.
배우
존중하고 있어요.
배우
난 인간을 위해 인간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예술을 위해 예술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작가를 위해 작가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피해자를 위해 피해자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가해자를 위해 가해자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정의를 위해 정의롭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배우를 위해 배우이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확신을 위해 확신하고 싶지 않아요.
배우
난 연극을 위해 연극을 하고 싶지 않아요.
배우
그래요. 우리 놀아요.
배우
놀아요 우리. 그래요.
배우
가만히들 있지 말고 우리 놀아요.
배우
여기에 유다를 위한 재판도 없고 예수를 위한 미사도 없고 인간을 위한 제례도 없고 연극을 위한 작가도 없고 작가를 위한 배우도 없으니까. 무책임으로 책임을 지고 있는 명분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신인류뿐이니까. 그 신인류를 이렇게들 말하더이다. 듣도 보도 못한 신인, “젠가”라고.

2장 – 도미노

도미노를 쌓고 있다.
배우
말 걸지 마세요.
배우
아무 말도 안 했어.
배우
행동하세요.
배우
무대에서 배우는 뭘 하든 행동이야.
배우
배우 아니라며.
배우
그래요, 배우입니다. 배우에요.
배우
그리고 관객이기도 하구요.
배우
작가가 아니긴 하죠.
배우
인간이지.
배우
인간도 아니잖아요?
배우
자살생존자지.
배우
자살실패자 아니에요?
배우
피해자가 아니래요.
배우
가해자라고?
배우
자기 자신한테요.
배우
그건 너무 어려운 얘기지.
배우
도미노가 쉬워요?
배우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렵지.
배우
문제삼으려면 삼을 수 있다고?
배우
삼으라고 해. 난 가련한 피해자니까.
배우
무슨 자신감?
배우
나 말고는 이런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
배우
뭘 그렇게들 말하고 싶어하는데?
배우
가련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모든 말.
배우
악몽.
배우
그런 거.
배우
좀 데려와봐.
배우
그래. 데려오자.
배우
난 아버지랑 얘길 좀 하고 싶었어요.
배우
뭐에 대해서?
배우
강간.
배우
넌 강간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배우
입 다물라고만 하니까, 계속 하는 거지.
배우
삐딱하니까.
배우
또 뭘 할까. 그럼 또 잔다르크 되나.
배우
그래서 자살생존자야, 자살실패자야?
배우
연극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는 거야.
배우
햄릿은 패배했지.
배우
이아고는 그럼 승리했어?
배우
이 나라는 셰익스피어 말고는 말할 연극이 없나?
배우
그럼 누굴. 연극의 아버지 데려와?
배우
그 아버지 말고.
배우
그럼.
배우
무대에 이제 있고 싶지 않아.
배우
배우가 무대에 있어야지.
배우
배우가 있는 자리가 무대가 되어야 하는 거지.
배우
우리가 설 데가 어딨어. 여긴 감방이야.
배우
그리스 신전일 걸.
배우
다들 현자라서?
배우
거룩하고 정의로운 연극의 드라마여!
배우
그리스 신전은 아니지.
배우
그럼 어딘데.
배우
관객석.
배우
관객석은 저기지. 조명이 어디를 비추냐?
배우
눈치를 보는 건 우리니까.
배우
언제는.
배우
그런 거 말고.
배우
소설이나 읽자.
배우
누구 대단한 소설 좀 낭독하는 게 어떻겠어?
배우
오해한다 누가 들으면.
배우
대단한 희곡 읽는 거나 대단한 소설 읽는 거나 눈치보긴 매한가지야.
배우
봉산탈춤 말고 우리한테 희곡이란 게 있나?
배우
슈퍼스타 말고 우리한테 공정이란 게 있나?
배우
이득과 손해로 따질 게 아니잖아.
배우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배우
도미노에 무슨 이득과 손해가 있어.
배우
부조리로 여행이나 가자.
배우
3박 4일로 저기 하이볼에 고도나 한 잔 할까.
배우
고도가 만만해?
배우
아니.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는 낙원이지.
배우
판타지가 비겁해?
배우
SF가 비겁하지.
배우
섹스머신로봇도 모르고 나는 섹스머신로봇을 쓰니까.
배우
고전이 당당해?
배우
장사하기 좋지.
배우
먹고 살기 힘들다.
배우
지겨운 얘기들 하지 맙시다.
배우
그럼 도대체 무슨 말을 해?
배우
광대한테 비겁함이 어딨고 지겨움이 어딨고 고민이 어딨어.
배우
그거 위험한데.
배우
정당화될 수 있는게 따로 있지!
배우
뭘 정당화했는데.
배우
도미노로 정당화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배우
난 책임지고 있어. 무책임으로.
배우
간편하고 좋다.
배우
원래 가위바위보가 가장 재밌는 놀이야.
배우
그런데 왜 우린 도미노를 해?
배우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두어야 해.
배우
젠가처럼.
배우
음모론을 말해볼까.
배우
연극이 젠가나 도미노같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인생도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인간도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작가도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배우도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자살이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정의도 그렇잖아.
배우
그렇지.
배우
관객도 그렇잖아.
배우
관객은 그렇지 않지.
배우
그렇다는 거야 어떻다는 거야.
배우
관객이 무너져서는 안 되지.
배우
관객에게 그런 정당화를 요구할 순 없는 거지.
배우
관객이 책임질 건 없는 거지.
배우
관객에게 꿍꿍이가 있을 순 없는 거지.
배우
연극이 그럴 뿐이야.
배우
희곡이 그럴 뿐이야.
배우
인간이 그럴 뿐이야.
배우
작가가, 정의가, 확신이, 불신이, 모순이, 감수성이, 사회가, 피해자가, 가해자가.
배우
무너지면 뭐가 남는 거야?
배우
그리스 신전.
배우
데우스 엑스 마키나?
배우
아니.
배우
현자들만 남지.
배우
그럼 관객들은.
배우
앞에 안 보여?
배우
관객들은 없어.
배우
저 사람들은 누구야.
배우
배우들이지.
배우
그럼 우리는.
배우
도미노 쌓는 사람들.
배우
네 명.
배우
규칙 지키는 사람들.
배우
그리고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것을 명 받은 사람들.
배우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
배우
규칙이 뭐였더라.
배우
확신하고 불신할 것.
배우
정의롭고 부패할 것.
배우
도발적이고 신중할 것.
배우
관객들을 존중하며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을 것.
배우
희곡이되 연극일 것.
배우
언어이되 행동일 것.
배우
위선적이되 정직할 것.
배우
어른이되 아이일 것.
배우
권위적이되 평등할 것
배우
그리고 이 모든 규칙을 지키되 이 모든 규칙을 지키지 않을 것.
배우
참 원하는 거 많네.
배우
이런 놀이가 있나.
배우
왜 없어.
배우
뭐.
배우
주제 놀이하는 거지.
배우
주제 놀이가 뭐야.
배우
이 극의 주제는 어떻고 저떻고 무엇을 의도했고 어떻고 관객으로 하여금 어떻고 저떻고 그래서 이 시대는 어떻고 저떻고 블라블라.
배우
도망가자.
배우
그래. 도망가자.
배우
거룩한 작품이 되자.
배우
그리고 작품 따위도 되지 말자.
배우
쓰러뜨려!
배우
무너뜨리자.
배우
모든 걸.

3장 – 주제

배우
안녕하세요. 관객과의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배우
관객과의 대화는 정말 참 화가 많이 나요.
배우
우리가 욕을 퍼부을 수도 있어요.
배우
이것도 연극이란 점을 알아주세요.
배우
제발 좀 연극적 약속임을 알아주세요.
배우
작품성이 없는 것 같다구요.
배우
작품성 따지기엔 쓸 언어가 없어요.
배우
문제를 삼으려면 모든 게 문제거든요.
배우
전 특권이 있는 사람이라 가능합니다.
배우
모든 것에 프리패스죠.
배우
대신 말하러 나왔어요.
배우
하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거에요.
배우
이유는 묻지 마세요.
배우
그게 주제거든요.
배우
손을 내밀어보세요.
배우
젠가냐 도미노냐 그것이 문제로다.
배우
서서히 무너지느냐 한 번에 무너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배우
문제가 아니면 문제가 아니게 되는 거죠.
배우
급진적이냐구요.
배우
그래보입니까?
배우
도미노 쌓는 사람들 중에 그게 쓰러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던가요?
배우
젠가를 쌓는 사람들 중에 그게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던가요?
배우
쌓는 건 우리고, 무너뜨리는 건 관객 몫이죠.
배우
상상이 왜 없냐구요.
배우
드라마는 어딨냐구요.
배우
저 진지합니다.
배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배우
철없이 실패할 순 없거든요.
배우
작가는 실패해도 됩니다.
배우
연극은 실패해도 됩니다.
배우
당신들은 그래선 안되니까요.
배우
당신들이라고 하면 누구일까요.
배우
당신이 당신이지, 누구겠어요.
배우
거룩한 토론을 해보자는 겁니다.
배우
여긴 어차피 그리스신전이거든요.
배우
현실은 누추하니까요.
배우
그 중에 연극이 가장 더럽거든요.
배우
그래서요?
배우
할 거라고는 젠가나 도미노밖엔 없어서요.
배우
하소연이 아닙니다.
배우
거룩한 토론이자 시대와 역사를 꿰차는 담론이죠.
배우
우리는 비극입니다.
배우
그래도 재밌어야합니다.
배우
그래야 연극이죠.
배우
혹여나 스러지더라도 우리의 고고함은 남길 겁니다.
배우
보십시오. 이 도미노들. 젠가들.
배우
그럼에도 쌓아올라가는 놀이들.
배우
피로합니다.
배우
벌써부터요.
배우
도미노하는 데 경솔하게 넘어뜨리는 인간.
배우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배우
어떻게 차곡차곡. 응?
배우
잘못은 덮어주지도 않을 거에요.
배우
젠가에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런 거 없지.
배우
우리 진심으로 놀아야죠.
배우
진심으로 논다는 게 어렵습니까?
배우
해질 때까지 숨바꼭질 해 봤어요?
배우
그 얘길 하는 겁니다.
배우
커튼콜을 기대합니까?
배우
철없고 무책임하고 천진한.
배우
억지로 덧댄 주제를 기다립니까?
배우
그런 게 있겠습니까.
배우
‘손’이라고 합니다.
배우
손가락은 다섯 개거든요.
배우
우린 네 명이죠.
배우
아픈 손가락 하나 있는데요.
배우
말씀드렸지만
배우
쉿!
배우
질 속에 삽입되었는지, 거세되었는지, 클리토리스만 전시되었는지.
배우
기억나지 않습니다.
배우
제정신이 돌아오고 있거든요.
배우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배우
우리의 놀이터로 가죠.
배우
배우가 여기가 놀이터가 아니면 뭐야.
배우
여긴 무대가 아니잖아요.
배우
그럼 여긴 어딘데.
배우
주제를 억지로 덧대기 위한 지면이지.
배우
억지로 했어요?
배우
그거 합의에 의한 거였냐고 묻는 거에요?
배우
합의야 했죠.
배우
도대체 누가요.
배우
그런 건 규칙에 없어요.
배우
그럼 뭐가 남아있는데요. 더 이상.
배우
모독이요.
배우
연극모독.
배우
연극모독.
배우
연극모독.
배우
연극모독.
배우
비슷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아요?
배우
아닐 걸요.
배우
왜요.
배우
혼란이 되어버리니까요.
배우
모독하지 맙시다.
배우
그럽시다.
배우
합의 된 거죠?
배우
네.
배우
합의에 의한 모독은 아니었겠죠?
배우
그렇게 합의합시다.
배우
그런 건 규칙에 없어요.
배우
그럼 뭐가 남아있는데요. 더 이상.
배우
모독이요.
배우
연극모독.
도미노가 쓰러지고 젠가가 무너진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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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미

김옥미
‘미투 고발자이자, 정신질환자이자, 자살생존자.’ 이외에는, 듣도 보도 못한 신인(류). 2019 부산일보 <도착> 당선, 2019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발화> 당선, 2020 김옥미낭독극전 <독대>, <리셋> 발표
33527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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