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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장지혜

제202호

2021.06.10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등장인물
윤희
정연
병태 (정연 동생)
현주 (윤희 모)

1.

거리. 윤희, 이어폰을 낀 채 재빠르게 헬스장 오픈기념 전단지를 붙이고 있다.
정연, 손에 들린 전단지를 든 채, 윤희를 빤히 바라본다.
정연
저기요.
윤희, 노래에 심취한 듯, 흥얼거리며 전단을 붙인다.
정연
(툭툭) 이봐요.
윤희, 이어폰 한쪽을 빼며 돌아본다.
윤희
네?
정연
(전단지 가리키며) 그거.
윤희
(건네며) 아, 여기.
정연
아뇨. 그게 아니라. 방금 붙인 전단지 떼 주세요.
윤희, 정연을 아래위로 훑는다. 그러다 정연의 손에 들린 전단지를 본다.
윤희
그거 붙이시게요? 그럼 여기 옆에다 붙이세요.
정연
아니요, 그게 아니라.
윤희
(가로채며) 사거리 새로 생긴 필라테스? 아님 어디 음식점에서 나오셨나?
정연, 윤희가 붙인 전단을 뗀다.
이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보용 전단지를 떼자,
속에서 툭. 하고 같이 떨어지는 하얀색 전단지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윤병태 나이 / 35세
외모 / 키 175cm, 베이지 카고 바지, 검정 티. 갈색 샌들. 약간 배가 나옴
특이사항 / 같은 말을 반복함. (정신질환을 앓고 있음.)
실종일자 / 2019년 8월 20일 새벽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음
윤병태씨를 보셨거나 행방을 아시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윤희
(주우며) 아.
정연
헬스장에 붙여주세요.
윤희, 전단을 빤히 바라본다.
윤희
(건네며) 저 이거 못 가져가요.
헬스장 직원이 아니라 그냥 하루 전단알바 뛰는 거라. 죄송해요.
정연
그럼 그냥 한 장 가져가세요.
정연. 퇴장.
윤희, 손에 들린 전단을 바라본다.

2.

집. 윤희, 가방을 맨 채 한 손엔 등 받침이 없는 둥근 의자를 들고 등장.
현주
(등짝) 얘가 또 뭘 주워갖고 왔어
윤희
민재가 안 쓴다고 해서 받아 온 거야.
현주
우리 집에 의자가 없어?
윤희
이만한 거 하나 있어도 괜찮지 뭐. 크기도 작고. 가볍고.
다리가 좀 삐걱거리기는 한데, 고쳐 쓰면 돼.
윤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데, 툭 하고 떨어지는 전단지.
현주, 줍는다.
현주
사람을 찾습니다.
윤희
이리 줘.
현주
(읽으며) 이름 윤병태.. 175... 같은 말을 반복한다?
윤희
(낚아채며) 달라니까.
현주
왜. 보면 닳아?
윤희
봐서 뭐해. 엄마가 찾아 줄 거야?
현주
그럼 넌 왜 갖고 들어왔냐. 네가 찾아줄 것도 아니면서.
사이.
윤희
그냥 주니까 받아 온 거야. 엄마가 필라테스 전단지 갖고 들어오는 것처럼. 그런 거랑 똑같은 거지 뭐. 버릴 거야.
현주
그 의자나 갖다버려.
윤희
엄마는 그게 문제야. 왜 멀쩡한데 버리래 자꾸.
현주
네 눈엔 그게 멀쩡해? 다리 한 짝이 덜렁덜렁 거리는데
윤희
아쉽잖아. 아깝잖아. 고작 그 이유 하나로 갖다 버린다는 게.
현주
아까울 것도 많다. 네 방 좀 봐. 갖고 들어온 거 천지야.
그래, 여태 뭘 갖고 들어 왔는지 기억은 해?
윤희
기억해. 다 기억한다고.
현주
퍽이나.
현주. 퇴장.
윤희, 손에 쥔 전단지를 짜증스레 쓰레기통에 버린다.

3.

윤희, 길을 지나는데, 전단지를 붙이는 정연을 마주 한다.
정연, 까치발을 들며 제일 위쪽에 전단지를 붙이려 안간힘을 쓴다.
겨우 한 장을 붙이고서 한숨을 쉰다.
윤희
저기.
정연, 돌아본다.
윤희
식사 하셨어요?
정연
이제 먹으려고요.
윤희
여기 매일 이 시간에 오시는 거예요?
정연
네.
윤희
아, 혹시, 연락 온 적 있나요?
정연
아뇨.
정연, 다시 가려는데.
윤희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전단지에 써져있던데.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어떤.. 말을 하는 거예요?
정연
딱히 정해진 말은 없고. 어떤 말에 꽂히면 따라 해요. 앵무새처럼. 배고파요? 라고 물으면 배고파요? 라고 답하죠. 그럼 하루 종일 그 말만 반복해요. 배고파요? 배고파요? 이렇게.
윤희
아아. 감사합니다.
정연
저도요.
사이.
정연
그렇게까지 물어봐주는 사람. 많이 없거든요.
윤희
꼭 찾으실 거예요. 근데... 그 분 혹시 남편분이신가요?
정연
제 동생이에요. 하나뿐인 가족.
윤희
죄송해요. 자꾸 물어봐서.
정연
괜찮아요.
윤희, 걸음을 옮기다, 다시 돌아온다.
윤희
전단지 한 장 더 주실래요? 제가 잃어버렸거든요.
정연
처음이에요.
윤희
뭐가요?
정연
(건네며) 한 장 더 달라고 하는 사람. 고마워요. 정말.
정연, 가볍게 고개인사. 퇴장.

4.

집. 윤희, 의자를 고친다.
됐다. 싶어서 올라가면 휘청거린다.
다시, 고친다. 계속 고친다.
현주
며칠째냐. 좀 쉬었다가 해.
윤희
빨리해야 돼.
현주
왜. 집에 의자 많잖아.
윤희
그건 그거고.
현주
어때. 될 거 같아?
윤희
좀만 더 하면.
현주
애쓴다. 애써. 어차피 이미 고장 난 걸 뭘.
윤희
(멈추며) 엄마. 그 말 좀 그만해.
현주
네가 뭐하나 제대로 고쳤으면 이런 말도 안 해.
현주, 방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를 본다.
현주
버린다며.
윤희
버렸어.
현주
근데 왜 저기 붙어있어.
윤희
먼저 받은 건 버렸고 저건 새로 받아 온 거야.
현주
일부러?
윤희
응.
현주
왜?
윤희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래. (가리키며) 엄마. 저 남자 있잖아. 어떤 말에 꽂히면 그 말만 반복한데. 좋아요?라고 물으면 좋아요? 라고 되묻는 것처럼.
현주
별걸 다 알아왔네.
윤희
(의자 보며) 됐다.
윤희, 의자 위에 조심스레 앉는다. 멀쩡하다. 다시 일어섰다, 앉는다.
윤희
봐. 됐지.
현주
어째 아슬아슬한데.
윤희
어딜 봐서.
현주
됐다. 말해 뭐해. 나 나간다.
윤희
어디 가는데.
현주
드라이브.
윤희
엄마 바쁘네.
현주
너도 하루 종일 방에서 고장 난 의자나 고치는 딸이랑 살아봐. 답답해서 어디 안 나가고 버티나.
현주, 퇴장.
윤희, 벽에 붙여놓은 전단지를 마주보고 선다.
윤희
윤병태. 175. 앵무새...
윤희, 시계를 본다. 의자를 갖고 나간다.

5.

거리. 정연, 빈손이다.
윤희, 의자를 갖고 등장.
윤희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의자를 건네며) 이거 밟고 저 위에 붙이세요.
튼튼해요. 아, 그냥 좀 쉽게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정연, 말없이 의자를 보다, 의자 위에 올라선다.
이전에 붙였던 전단지를 뗀다.
윤희, 당황스러운 듯 정연을 쳐다본다.
이때, 의자 다리가 툭. 하고 부러진다.
정연, 넘어진다.
윤희
괜찮으세요? 제대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몇 번 앉아봤는데 그땐 진짜 괜찮았거든요 그래서 -
정연
저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정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윤희
...혹시 찾으셨어요?
정연
죽었어요. 동생.
사이.
정연
근데 의자가 망가져서 어떡하죠. 죄송해요.
윤희
아, 아니요 괜찮아요. 원래부터 고장 난 의자였거든요.
사이.
정연
원래부터 고장 난 게 어디 있어요. 그리고 그게 왜 괜찮아요?
윤희
그게 아니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정연
(가로채며) 그쪽한테는 지금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여야 하는 거 아녜요? 이거 고친 거잖아요. 고쳤는데. 다시. 망가진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요?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안 된 거잖아요. 고장 난 상태로 돌아온 거잖아요. 저는 안 괜찮은데 그쪽은 이게 괜찮아요? 진짜?
사이.
정연
미안, 미안해요...
윤희
있잖아요,
정연, 윤희를 바라본다.
윤희
맨 처음에 저한테 전단지 주셨던 거 저 그거 사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짜증나고 그래서. 뭔가 꼭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이
정연
...저 말고 제 동생한테 미안해하세요.
정연, 퇴장.
윤희. 바닥에 나뒹구는 의자를 바라본다.

에필로그.

방. 윤희 모로 누워있다. 한쪽에 놓인 고장난 의자.
현주, 의아하게 바라본다.
현주
왜 저래?
사이.
현주
야.
윤희
아, 엄마 왜.
현주
의자가 또 망가졌어?
윤희
...응
현주
왜.
윤희
올라섰는데 부서졌어.
현주
부서져? 너 괜찮아?
사이.
윤희
.......아니.
현주, 윤희를 바라보다, 조용히 퇴장.
윤희, 방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지 앞에 선다.
사이. 전단지 속 병태와 마주한다. 병태, 살짝 웃고 있다.
윤희
...의자가 고장 났어요.
병태
고장 났어요.
윤희
아무리 고쳐 봐도 잘 안되네요.
병태
고장 났어요.
윤희
병태씨.
병태
고장 났어요.
윤희
.....미안해요.
병태
고장 났어요.
윤희
잘 있어요?
병태
(활짝) 고장 났어요.
윤희
...행복해요?
병태
........ 고장 났어요?
윤희, 병태를 바라본다.
병태, 천천히 자신을 찢는다.
허공에 흩날리는 종잇조각.
아니, 병태.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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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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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사람을 그리고 싶습니다. instagram_artist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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