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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T-AMI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이남주

제203호

2021.06.24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등장인물
제트 (JET)
아미 (AMI)
손 (Hands)
거대한 나무판 위에 제트와 아미가 누워있다. 제트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한다. 아미는 그런 제트를 보고 안절부절못한다. 제트가 나무판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아미의 시선이 그 행동을 따라가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느 순간 제트가 멈춰 서고는 고개를 들어 아미를 쳐다본다.
제트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 머리를 마구 돌렸다니까!
아미
(제트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래서 어떻게 했어?
제트
내가 마구 소리를 질렀지! 으악! 으악! 살려주세요! 이렇게.
아미
그래서 손이 들어줬어?
제트
(시무룩한 말투로) 아니, 그래서 더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어.
아미
속상했겠다.
제트
내 머리가 비틀려서 부서지는 느낌이었는데.
아미
그랬는데?
제트
손은 절대 들어주지 않았어.
아미
손이 잘못했네.
제트
결국 나 토했어.
아미
아이고.
제트
토했는데 손이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어떻게 한 줄 알아?
아미
또 저번처럼 수돗물에 네 머릴 처박았어?
제트
아니, 그러진 않았어.
아미
그럼?
제트
내 위장을 꺼내고는 다른 위장으로 바꿔버렸어.
아미
아이고!
제트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어.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 온몸이 긴장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으려고 했거든? 근데 죽어도 안 되더라. 나는 있는 힘껏 울부짖었어. 제발 날 살려달라고 말이야. 근데 손은 계속 내 몸을 잡고 돌리고 오만 난리를 치는 거야.
아미
손은 정말 불청객이야! 그냥 콱 손을 향해 토해버리지 그랬어.
제트
말도 마, 그랬으면 지금 난 여기에 있지도 못했을 거야.
아미
어휴, 그런 끔찍한 말은 하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행히 정신을 차리긴 했네.
제트
그럼, 그럼, 나는 정신 차리고 눈을 떴어. 그리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봤지. 내 위장은 건재했고, 내 머리도 제대로 박혀 있었어. 내가 쏟아낼 토사물들이 다시 내 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
아미
다행이다.
제트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아냐! 다행 아니야!
아미
(화들짝 놀라며) 아니야? (정말 의아하다는 듯이) 왜?
제트
어쨌든 내가 다시 내 위장에 가득 찬 액을 쏟아내야 한다는 거잖아.
아미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제트
그래도?
아미
제트, 너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제트
모르겠어, 아미.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내가 정말 살아있는 걸까? 이렇게 매번 다시 태어나면서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젠가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질 텐데. 차라리 일찍 버려지는 게 낫지 않을까?
아미
에이-
제트
진심이야. 장난이 아니라고.
아미
그래도 제트, 일찍 버려지는 건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일 수 있어.
제트
아냐, 그건,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아미
나는 알아.
제트
네가?
아미
응, 내 주변 또 다른 아미들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졌는데.
제트,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아미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엄청난 행운일지 몰라. 버려지는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내게 살고 싶다고 했어. 다시 속이 뒤집어지고 액을 토해내더라도 수십 번의 삶을 반복하는 게 더 행복하다고 말이야. 앞으로 넌 계속 살아날 가능성이 있잖아. 똑같은 공산품이어도 어떤 건 여러 번 회생하고, 어떤 건 그러지 못해.
제트,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아미
이번이 몇 번째야?
제트
기억으론 세 번째.
아미
세 번의 ‘존재함’은 어떻게 달랐어?
제트
정말로 알고 싶어?
아미
나는 너처럼 살지 못할 테니까.
제트
음, 첫 번째 눈을 떴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
아미
어땠어?
제트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내 몸통을 쥐고는 마구 흔들고는 내 입을 막았지.
아미
그때도 토했어?
제트
응, 아주 잠깐이었는데 첫 번째로 토한 거여서 기억이 선명해.
아미
아팠어?
제트
많이 아프지 않았어. 오히려 신기했어. 존재의 감각을 느꼈어. 나는 존재하는 거야. 그렇게 이 세상에 나타난 거야!
아미
그런데?
제트
그런데 점점 속이 꺼져가는 게 느껴졌어. 그래 내 대가리를 짓누르며 무언가를 휘갈겼어. 계속, 끝없이.
제트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는 듯 목소리를 떨기 시작한다.
제트
나는 처음에 너무 두려워서 오줌을 쌀 뻔했어. 아마 그때 오줌을 쌌으면 나는 버려지고 죽었겠지?
아미
네 오줌 구멍은 입과 이어져 있잖아.
제트
갑자기 우수수 액체를 뿜어대면 나는 불량품 취급받았을 거야.
아미
신기하네.
제트
뭐가?
아미
나타남과 동시에 생의 감각을 느꼈지만 그게 다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는 게.
제트
그럼 너는 처음 나타났을 때 뭘 느꼈어?
아미
나?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자매들의 모습을 보았어. 우리는 한 곳에서 나왔지만 모두 다른 곳으로 뻗어갔지. 처음부터 헤어짐의 반복이었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불가능했지. 우린 결국 버려질 테니까.
제트
아냐! 어떤 존재들은 영원히 버려지지 않기도 한다고 누가 그랬어.
아미
장식품처럼 어딘가 고이 모셔지는 그런 존재들? 그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제트
응? 무슨 소리야?
아미
그건 나답지 않은걸. 나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라고.
제트
네 말은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아미
결국 우리는 태어난 이유에 맞춰 사는 거야. 그게 우리의 행복인 거야.
제트
그게 행복이라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게 어떻게 행복일 수 있어?
아미
인정할 거는 인정하자, 제트.
제트
나는 따지는 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에 맞춰 살라는 거잖아. 그게 어떻게 행복이 될 수 있어? 나는, 나는 인정 못 해!
아미
그러면 우리가 뭘 하면서 살 수 있겠어?
제트
그건 그렇지만….
그때, 손이 등장한다. 제트와 아미는 손을 발견하고 침묵한다. 쥐 죽은 듯 조용히 손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손이 까닥거리다가 아미를 집어 올린다. 아미의 몸이 붕 뜬다. 제트는 그 모습을 당황해하며 쳐다본다. 아미는 제트에 손을 흔든다.
제트
(다급하게) 아미! 아미!
손이 아미의 대가리를 만지작거린다. 아미의 몸통을 훑는다. 이리저리 아미의 몸통을 집어 본다. 그리고는 그대로 손이 아미와 함께 사라진다. 제트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멀어져 가는 아미를 쳐다본다.
제트
아미! 아미! 돌아 올거지? 그렇지? (크게 외치며) 제발 돌아와야 해!
제트의 부름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무거운 정적만이 흐른다.
제트
(자신이 몸을 둥글게 만다고 생각하며) 이 몸뚱이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져. 나는 살아있는 걸까? 이 몸체만 바뀌지 않고 내 속의 모든 것들이 매번 바뀌는데, 이게 나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제트, 몸을 데구루루 굴린다.
제트
아미는 운명대로 사는 게 행복이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알고 싶어. 운명대로 살지 않는 존재들의 삶은 그럼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거라면,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은 행복한지. 그래, 나는 알고 싶어. 근데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잖아, 영원히.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지?
제트, 다시 몸을 데구루루 굴린다. 그리고는 어느 자리에 탁 멈춰서 자신의 고개를 들고 관객석을 빤히 쳐다본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제트
(관객석을 향해 허공을 바라보듯) 아미! 내 말 들려? 있지, 두 번째 생의 감각은 끔찍했어! 왜인줄 알아? 미치도록 반복되는 삶이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랬어! 이 삶의 굴레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을 테니! 그게 몇 년이 될지, 몇십 년이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나는 배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어!
제트, 다시 몸을 데구루루 굴린다. 이번에는 자유롭게 몸을 쓴다. 무대를 누비고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킨다.
제트
그리고 세 번째 삶은, 내게 새로운 진실을 알려줬어! 손은 내 몸통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어. 갑자기 왜 그렇게 변했는지 몰라. 진실로 손은 나를 괴롭혔어. 내 존재가 무언가를 적기 위해 태어난 거라면, 적어도 손만큼은 내게 그래선 안되잖아! 근데 손이 내게 왜 그랬을까? 나는 그때 깨달았어! 어쩌면 내 존재는 그 이상의 것을 위해 나타난 것일지 모른다고! 그래, 손이 내 몸통을 갈갈거리며 씹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언가 이런 생활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어!
그때, 아미가 무언가에 밀쳐 무대 위로 넘어지듯 들어온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춰 낮은 보폭으로 기어들어 온다.
제트
아미! 보고 싶었어!
아미
제트.
제트
괜찮아? 손이 괴롭히진 않았어?
아미
(우윽거리며) 근데 아직도 속이 메슥거려.
제트
숨을 크게 간헐적으로 내쉬어봐. 그럼 조금 나을 거야.
아미
아까 네 목소릴 들었어.
제트
정말로? 들렸다니 기뻐.
아미
정말 우리 존재가 그 이상의 것을 위해 나타난 걸까?
제트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아미
하지만… 그렇다면 무얼 위해서?
제트
공산품이라는 틀을 벗어나 보는 거야.
아미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데?
제트
적어도 우리가 규정하는 자신의 모습은 달라질 거야.
아미, 골똘히 생각하더니 제트에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기침을 여러 번 한다.
제트
괜찮아?
아미
아직도 속이 쓰려, 으으. (다시 기침을 몇 번 하고는)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지 이제 겨우 며칠이지만, 너의 진솔한 이야기를 알게 되어서 참 좋았어.
제트
왜 갑자기 그런 소릴 해, 무섭게.
아미
제트, 나는, 이 세상에 나타난 지 너무 오래되었어.
제트
아미?
아미
손은 몹시 나쁜 버릇을 갖고 있어. 그건 다 쓰지 않은 우리 동료들을 쉽게 버린다는 거야. 조금이라도 속을 채운 액체를 보고도 손은 아랑곳하지 않아.
제트
그렇다면….
아미
아까 손이 내 몸통을 비틀었을 때 봤어, 내 존재가 얼마 남지 않았어.
제트
(다급하게)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아미
난 너 같은 비싼 공산품과는 달라, 아미들은 쉽게 쓰고 버려지는 운명을 타고났어. 우리 그러니 미리 작별 인사를 하는 거 어때?
제트
아미, 제발!
아미
네가 살아남는 그 기간 너무 힘들지 않길 바라.
그때 손이 다가온다. 제트와 아미, 둘 다 손을 보고 움찔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바라본다. 아미와 제트는 눈을 꼭 감고 자신들의 운명을 기다린다. 그때 아미를 집을 것처럼 굴던 손이 제트를 집는다. 제트의 몸이 붕 떠오른다. 그 모습을 당황하며 쳐다보는 아미와 자신의 몸이 붕 떠오른 것을 알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멀어져 가는 아미를 바라보는 제트.
(무대 밖 목소리로) 누가 이렇게 잘근잘근 씹으래?
제트
(아미를 향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무대 밖 목소리로) 누가 보면 더럽다고 놀리겠다. 버리고 새로 사.
아미
제트!
제트
아미, 내가 던진 말의 의미를 잊지 말아줘!
아미
가지마, 제트!
제트, 몸을 돌려 손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자신의 입으로 손을 깨문다. 손이 따갑다는 듯 깜짝 놀라 제트를 놓친다. 제트 그대로 바닥 위로 떨어진다. 아미는 그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쳐다본다. 제트가 몸을 데구루루 굴러 손과 멀어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손이 다시 제트를 잡는다. 그리고는 제트를 다시 들고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아미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울부짖기 시작한다.
아미
제트, 제트! 네가 한 말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우리의 운명은 어쩌면 가느다란 실 같아서 금방 끊어질지 몰라! 그러니, 그러니까! 제발 포기하지 마!
싸구려 볼펜인 아미가 열심히 무대 위를 굴러다니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바닥에 치이고, 나무판 위에 놓인 여러 물건에 몸이 긁히지만 아미는 계속 몸을 구른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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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인 친구들을 모아 '창작집단 파란破卵'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던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공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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