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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 온 손님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구지수

제205호

2021.07.29

[희곡] 코너의 주제는 ‘다른 손(hands/ guests)’입니다.
이전 또는 나와는 다른 손으로, 다른 누군가의, 다른 무언가의 희곡을 쓸 수는 없을까.
‘인간’과 ‘비인간’은 누구(무엇)인가의 질문으로부터 그동안 희곡 쓰기의 중심에 두지 않았던 바깥의 이야기를 탐구합니다. 2020년과 2021년, 같은 주제로 희곡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 연극in 편집부
등장인물
효단
효신
새벽1)
무대
무대 중앙에 커다란 식탁이 놓여있다. 식탁의 왼쪽에는 새벽의 방, 오른쪽에는 창문이 있다. 관객은 방 내부를 볼 수 있다. 왼쪽 퇴장로는 화장실, 오른쪽 퇴장로는 현관으로 쓰인다.

1

조심스럽게 열리는 현관문. 새벽이 들어온다. 담요로 감싼 무언가를 들고 있다. 거실을 지나 방으로 가는 새벽.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방바닥에 내려놓는 새벽. 담요가 꿈틀댄다. 암전.

2

명전. 효신과 효단이 무대의 정중앙으로 나온다. 기지개를 켜는 효신.
둘은 집 안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를 맡는다.
효신
이게 무슨 냄새야
효단
그니까.
효신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야? 엄마 청국장 띄웠어?
새벽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효신이 새벽에게 다가간다. 코를 킁킁댄다.
효신
너 똥 쌌냐?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데. 어딜 다녀왔길래 이런 냄새가 나?
새벽
돼지한테 다녀왔어.
효단
무슨 돼지?
새벽
말 그대로 돼지. 돼지가 사는 곳에 다녀왔어.
효단
정육점?
새벽
거기가 어떻게 돼지가 사는 곳이야. 죽은 돼지의 사체가 있는 곳이지.
효신
진짜 돼지?
새벽
살아있는 돼지만 진짜 돼지냐? 정육점에 있는 사체들도 다 돼지의 일부야.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는 새벽.
효단
새벽이랑 싸웠어? 왜 저래?
효신
몰라. 배고파. 밥 먹자.
무대 한가운데에 커다란 탁자를 펴는 효단. 효신은 버너와 야채, 고기를 가지고 나온다. 버너에 고기를 굽는 둘. 냄새를 맡은 새벽이 빨래를 들고 뛰쳐나온다.
새벽
지금 뭐 해?
효신
고기 굽잖아.
새벽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효단
(새벽을 보며) 너 샤워했니?
새벽
응.
효신
(코를 틀어막고) 아직 냄새나. 밥맛 떨어질 것 같아. 대체 무슨 냄새야?
새벽
돼지한테 다녀왔으니까 돼지가 사는 곳에서 나는 냄새겠지.
효신
역시 돼지들은 더러워. 먹고 자고 싸고 밖에 안 한다며? 게을러 빠져가지고.
새벽
돼지들도 할 수만 있다면 자고 먹는 곳에서 용변을 보고 싶진 않겠지.
효단
그럼 왜 그렇게 살아?
새벽
인간들이 그렇게 살도록 가둬놨으니까.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 아니야. 돼지들 되게 깨끗해. 물웅덩이에 온몸을 적시고 따뜻한 햇볕 아래 누워서 낮잠 자는 걸 좋아해. 인간이랑 똑같아. 엄마가 샤워하고 소파에서 낮잠 자는 거 좋아하는 것처럼.
효신
그래도 동물이 어떻게 인간이랑 똑같아. 다르지.
새벽
(버너 위를 가리키며) 너 이 고기가 말티즈 고기면 어떨 것 같아?
효신
뭔 소리야. 말티즈를 왜 먹어. 역겨운 소리 그만해.
새벽
근데 왜 돼지는 먹어?
효신
돼지는 먹는 동물이니까.
새벽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네 말대로 인간이랑 동물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같은 동물끼리 다른 건 진짜 이상하잖아. 엄마 생각은 어때?
효단
글쎄. 개는 먹을 부분이 얼마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새벽
돼지도 원래 저렇게 크지 않아. 약 먹이고 유전자 변형해서 키운 거야.
효신
그래도 개보다는 크겠지.
새벽
몸집이 커서 돼지를 먹는다는 거야? 그럼 하마나 사자는 왜 안 먹어?
효신
내가 지금 이 고기 한 점 먹으려면 네 말에 전부 대답해야 하니?
새벽
적어도 알고 먹으라는 거야. 물론 돼지가 어떻게 살다 죽어서 네 앞에 오는지 알면 넌 절대 못 먹을걸.
새벽은 바닥에 놓은 빨래를 들고 바깥으로 나간다.
효신
쟤 진짜 미쳤나 봐. 호주에서 돌아온 후로 뭐에 들린 사람처럼 왜 저래?
효단
새벽이 쟤가 어려서부터 마음이 여려서 그래.
효신
마음이 여린 거랑 고기를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럼 우리는 무슨 파렴치한이라서 이렇게 산다는 거야? 쟤 앞에서 편들어주지 마. 호주에서 힘들었던 것 같아서 몇 번 들어줬더니 한도 끝도 없잖아.
효단
공장에서 일할 때 무슨 일 있었대?
새벽은 빨래를 널고 다시 들어오면서 현관에서 효신의 말을 듣는다.
효신
몰라. 공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든 이제까지 잘 처먹어놓고 갑자기 저러는 게 웃기잖아.
새벽은 화난 표정으로 효신에게 다가온다.
효신
(들으라는 듯이) 지가 안 먹는 걸 누가 뭐라 그래? 나한테 강요하지 말라고.
새벽
강요한다고 네가 듣냐?
효신
안 듣는다고. 그니까 그만하라고. 지긋지긋해.
새벽은 무슨 말을 하려다 잠시 멈칫한다. 정적이 흐른다. 효신은 고기를 한 점 집어먹는다.
새벽
나는 고기를 보면 살아있는 동물의 눈이 생각나. 그 동물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생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 효신.
새벽
이게 얼마나 슬프냐면 효신아. 너는 믿을 수 없겠지만 정말 어떤 거인이 와서 내 앞에서 너를 데려다가 요리해서 나에게 먹으라고 하는 것만큼 슬퍼.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새벽. 효신은 새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효단
새벽이 말에 대답이라도 해. 그냥 알겠다고 해. 그리고 먹던 대로 먹으면 되잖아.
효신
싫어.
효단
너네 때문에 못 살겠다.
효신
너네가 아니라 새벽이 때문이잖아. 지금 쟤가 유난 떠는 거잖아.
효단
그만해. 엄마 머리 아파.
말없이 밥을 먹는 효단과 효신. 암전.

3

명전. 작은 조명으로 인해 어두운 무대 위. 자정이 지난 시간이다.
방 한편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 낑낑대는 소리와 우는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점점 크게 들린다. 효신과 효단은 거실로 나온다. 자다가 깬 모습이다.
효신
나만 들리는 거 아니지?
효단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효신
아기 울음소리 같은데.
새벽의 방 가까이 가서 문에 귀를 대는 효신.
효신
엄마 이리 와서 들어봐. 여기서 나는 것 같아.
효단
(똑같이 귀를 대고) 어머. 그렇네.
효신은 새벽의 방문을 열려고 한다. 잠겨있는 문고리. 덜컹거리며 문을 흔든다.
효신
야! 이거 무슨 소리야? 문 열어봐.
문을 사이에 두고 씨름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새벽
아무것도 아니야!
효단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열어봐.
효신
엄마. 열쇠 찾아와.
열쇠를 찾으러 가는 효단.
새벽
하지 말라고!
효신
너 그 안에서 뭘 데리고 있는 거야?
새벽
별거 아냐.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온 효단. 열쇠들을 구멍에 넣고 이리저리 돌린다.
효신
(방문을 두드리며) 야. 그냥 네가 열어.
결국 새벽은 방문을 연다. 효신과 효단은 방으로 뛰어 들어온다.
담요 속에서 우는 존재를 확인하는 둘. 경악한다.
효단
이게 대체 뭐야?
효신
뭐야? 돼지야?
새벽
돼지 맞아.
새벽은 효단과 효신을 이끌고 거실로 나온다. 방문을 닫는다.
효단
새벽아. 저게 대체 뭐야? 어쩌다가 우리 집에 돼지가 있어?
새벽
내가 종돈장에서 데려왔어.
효신
사 왔어?
새벽
아니. 그냥 데리고 나왔어.
효단
훔친 거야?
새벽
물건처럼 구매하고 싶지 않았어.
효단
변명이 된다고 생각해?
새벽
도저히 데리고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악취가 코를 찔렀고 바닥에는 이미 죽은 아기 돼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효신
너 이거 절도야.
새벽
알아.
효신
너 미쳤니? 다시 데려다줘.
새벽
그럼 얜 죽어. 약 먹이고 몸 부풀려서 죽일 거야. 데려다주지 않으면 살 수 있어.
효신
그게 얘 운명이겠지.
새벽
그런 운명을 타고나는 존재가 어디 있어. 남의 운명을 왜 우리가 정해.
효신
정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네가 정했잖아. 데려왔잖아.
새벽
죽도록 둔 것도 우리 책임이야.
효신
그게 왜 우리 탓이야.
새벽
돼지를 먹었잖아. 우리가 먹으니까 얘가 죽는 거야.
효신
이건 범죄야. 제발 정신 차려.
새벽
얘는 생명이야. 살아있어. 살아서 숨 쉬고 있어.
효신
엄마, 얘 좀 말려봐.
효단
(침착하게) 그래. 데려다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 후엔 어떻게 할 건데?
말문이 막힌 새벽
효신
이것 봐. 대책도 없이 데려왔잖아. 이 집에서 얘가 죽으면 그땐 정말 네 책임이야.
새벽
안 죽어. 다시 그곳에 데려다 놓지도 않을 거야.
효단
그럼 어쩌게.
새벽
이사 갈 거야.
효신
(비아냥대며) 감옥으로?
새벽
시비 걸지 마.
효단
어디로 이사를 간다는 거야?
새벽
비어있는 할머니 집에 가서 얘랑 살 거야.
효신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그럼 직장은?
새벽
그만둘 거야.
효신
미쳤어? 어렵게 들어간 곳이잖아. 네 인생을 망치지 마.
새벽
난 이제 이 돼지랑 같이 늙어갈 거야. 그게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이야.
효신
돼지를 키우느라 네 삶을 포기하겠다는 거야?
새벽
키우는 게 아니야. 같이 살 거야.
효신
그게 그거잖아.
새벽
아냐. 키우는 것과 함께 사는 건 달라.
효신
그러다 얘가 크면? 다 큰 돼지를 집 안에서 감당할 수 있겠어?
돼지 우는 소리가 들린다.
효단
효신이 너 일단 안으로 들어가.
효신
아, 싫어. 엄마. 쟤 하는 말 들었어? 저 또라이같은 게
효단
조용히 해.
효단은 효신의 등을 떠민다. 효신은 방으로 향한다.
거실에는 효단과 새벽 둘만 남는다.
효단
새벽아. 호주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한테 얘기해봐.
새벽
효신이가 그래? 나 호주 다녀와서 이상해졌다고? (망설이며) 내가 도축 공장에서 일했던 건 알지?
효단
응. 그냥 포장하는 일했던 거 아냐? 그러니까 엄마가 영어공부도 할 겸 도시에 있으라고 했잖아. 남들처럼 카페나 식당에서 일하면 그런 것도 볼일 없었을 거 아냐.
새벽
(고개를 흔들며) 아냐, 엄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어디서 일하든 똑같아. 보이지 않을 뿐이야. 나는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진실을 들여다본 거야. 계속 몰랐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알고 불행한 게 나아.
효단
계속 이럴 거란 얘기야?
새벽
내가 뭘 어쨌는데.
효단
가족들이랑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남의 돼지나 훔쳐 오고 동생이랑 싸우고.
새벽
엄만 지금 내가 하는 행동들을 그렇게밖에 얘기 못해?
효단
사실을 얘기한 거야. 너 앞으로 저 돼지 데리고 평생 그렇게 살 거야?
새벽
응. 적어도 저 돼지가 죽을 때까진.
효단
돼지는 얼마나 사는데?
새벽
건강하게 제 수명대로 살면 20년.
새벽의 방이 밝아지며 효신의 모습이 보인다. 다시 돼지 우는 소리가 들리고 새벽과 효단의 대화 소리는 작게 들린다.
효신
(조용한 목소리로) 야. 시끄러워.
여전히 우는 돼지. 효신은 귀를 틀어막는다.
효신
그만 울어. 제발.
효신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귀에서 손을 뗀다. 효신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춘다. 울음소리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효신
(당황한 목소리로) 뭐야?
담요를 다 들어내고 돼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효신은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연다.
효신
새벽아! 얘 이상해.
새벽
왜?
효신
피가 많이 나.
새벽은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돼지에게 귀를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효단
무슨 일이야?
효신
몰라. 갑자기 숨소리가 이상해서 봤더니 피를 흘리고 있잖아.
새벽은 돼지를 담요에 감싸들고 방을 나선다. 효신은 새벽의 앞을 막아선다.
새벽
병원 가야 해. 비켜.
효신
무슨 병원이야. 제발 지금이라도 다시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놔.
새벽
싫어.
효신
키우던 강아지만 죽어도 벌벌 떨던 애가 왜 이래? 얘 죽으면 감당할 수 있겠어?
새벽
왜 감당을 못 해?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죽는 건 얘야. 다시 데려다 놓든 병원에 데려가든 죽는 건 돼지야. 난 안 죽어. 내가 감당할 것도 없지.
효신
감당할 게 없다고? 잘 살고 있던 돼지를 훔쳐 왔고 그 돼지가 네 눈앞에서 죽으면 넌 당연히 그 죽음을 감당해야지.
새벽
네 말은 눈앞의 죽음에만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뭘 상상하는지 모르겠는데 이 돼지는 거기서 ‘잘’ 살고 있지 않았어.
효신
내가 말하는 ‘잘 살고 있다’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의미가 아냐. 섭리대로 살고 있었다는 거야. 지금 네가 그 섭리를 무시하고 있는 거고.
새벽
돼지들은 서 있거나 온전히 누워있을 공간도 없는 곳에 살아. 죽은 가족이나 친구들 시체를 비집고. 얘는 살겠다고 자기 형제를 밟고 기어 나오더라고. 철창에 짓눌려서 등이 다 긁히는데도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데려왔어. (돼지를 감싼 담요를 내밀며) 잘 봐봐. 얘 아직 살아있어. 숨 쉬고 있어. 아파해.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똑같이 아파. 살고 싶어 해. 우리도 그렇잖아. 돼지라고 뭐가 다르겠어. 왜 다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데 돼지는 돼지라는 이유만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어야 해? 그게 네가 생각하는 섭리야?
효신
더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를 먹는 건 당연한 자연의 섭리야.
새벽
이렇게 고통스럽게 다른 존재들을 가둬놓고 대량으로 학살하는 게 자연이라고?
바로 대꾸하지 못하는 효신. 새벽은 효신의 망설임을 가로챈다.
새벽
효신이 너도 얘가 아픈 건 싫잖아. 그러니까 놀라서 나를 부른 거 아냐? 다시 그곳에 데려다 놓으면 얜 오늘 밤이 아니더라도 수일 내에 죽을 거야. 그건 확실해.
효단
네가 데리고 있으면 살 수 있어?
새벽
물론 그것도 확실하지 않지. 하지만 병원 데려가면 살 수도 있어.
효신
내가 뭐라고 해도 병원에 가겠다는 얘기지?
새벽
응.
효신은 몸을 비켜서 길을 열어준다. 새벽이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에 남은 효신과 효단.
효신
엄마.
효단
응.
효신
새벽이 말에 동의해?
효단
어떤 말?
효신
돼지라고 뭐가 다르냐는 말.
효단
글쎄.
효신
잘 모르겠어?
효단
다르지. 돼지랑 사람이 같을 수는 없지.
효신
그치.
효단
응. 우리는 돼지를 먹으니까. 먹으려고 키우기도 하고.
효신
맞아. 새벽이는 도둑질을 했고 우린 그냥 진열된 고기를 사 왔을 뿐이야.
효단
피곤하다. 엄마는 들어가서 잘래. 너도 얼른 들어가서 자.
효신은 거실을 둘러보다 방으로 들어간다.

4

잠시 적막이 흐른다. 갑자기 무대 위로 돼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전에 들려오던 울음소리와 흡사하다. 고통스러워하는 돼지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다. 효신은 화가 난 표정으로 다시 나온다.
효신
(소리 지르며) 어디 있어!
새벽의 방을 헤집는 효신. 곳곳을 뒤지며 울음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효신의 소리에 잠에서 깬 효단이 새벽의 방으로 온다.
효단
왜 그래?
효신
아무 소리 안 들려?
효단
무슨 소리?
효신
돼지 울음소리가 또 들리잖아. 얘가 데려온 돼지가 한 마리가 아닌가 봐.
효단
(효신을 붙잡고) 진정해. 아무 소리도 안 들려.
효신
분명히 들렸는데.
효단
꿈 아냐?
효신
나 안 잤는데.
효단
피곤하면 잠깐 졸면서 꿈 꿀 때도 있잖아.
효신
그런 걸까?
효단은 하품을 하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집 안에 적막이 흐른다. 효신은 새벽의 방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불을 끈다. 어느새 동이 틀 무렵이다. 주황빛 햇살이 무대 후면을 조금씩 비춘다. 효신은 해 뜨는 하늘을 바라보다 블라인드를 내린다. 햇살이 차단되어 다시 어두워진다. 방으로 돌아가는 효신. 암전.
막.
  1. ‘새벽’은 동물권 단체 DxE 코리아가 2019년 7월 23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돼지농가에서 구출한 돼지의 이름이다. DxE 측은 새벽이를 농가로부터 ‘구매해’ 구조하지 않았다. 농장주의 허락 없이 데려왔으니 ‘불법’이다. 돼지를 죽이는 폭력 현장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해외 동물권 단체들도 이런 방식으로 동물을 공개 구조한다. 새벽이는 지금 생추어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진 생추어리는 동물 권리의 개념을 담은 고유명사다. 기존 축산업과 반대편에 있는 개념으로, 동물이 평생 가능한 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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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수

구지수
한때는 내가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살과 뼈에게, 내가 두르거나 신거나 멨던 피부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눈코입에게, 호흡과 눈빛과 걸음걸이에게, 하나도 갚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씁니다. 동물에게.
sooearth0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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