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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luencer

다른 손(hands/guests)

이민규

제219호

2022.05.26

2022 [희곡]코너는 ‘다른 손(hands/guests)’, ‘다시 쓰기’, ‘자기만족충만’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됩니다.

‘다른 손(hands/guests)’은 인류세 이후의 연극, 인간중심적 예술의 바깥을 상상합니다. 그동안의 한국 연극이 누락한, 이야기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지위와 존엄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다른 손으로 보편성을 다시 씁니다.
등장인물
리사
지수

무대 Backstage에는 리사와 지수가 키보드로 주고받는
대화 내용들이 입력된다.

무대에는 책상이 하나,
책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의자가 있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 한 대,
그리고 노트북 한 대가 놓여있다.

가상 Influencer 리사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한때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지수는 반대편 노트북이 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리사
(키보드) 안녕하세요, 팬 미팅에 당첨되신 걸 축하합니다.
지수
(키보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리사
(키보드) 사인 해드릴까요?
지수
(키보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리사
(키보드) VR헤드셋을 착용하고 제가 있는 곳으로 접속하시면 돼요.
착상 위 VR헤드셋을 착용하는 지수.
리사
안녕하세요, Influencer 리사입니다.
지수
안녕하세요. 저는 지수라고 해요.
리사
헤드셋은 벗으셔도 돼요.
지수
그래도 되는 건가요?
리사
저와 접속을 마치면 20분간 자유로이 활동하실 수 있어요.
지수
20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리사
타이머가 끝나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실 거예요.
지수
리사 님은 계속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리사
저는 저를 사랑하는 팬 분들 곁에 있답니다.
지수
팬 미팅은 저 한 명만 하는 건가요?
리사
아니요, 저는 팬 분들 한 분 한 분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기 때문에…
지수
바깥에서 다수와 소통하고 있는 연예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요?
리사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죠. 지금도 어딘가에서 저와 마주하고 있는 팬 분들이 많을 거예요.
지수
이제 무얼 하면 되는 건가요?
리사
팬 미팅 지원서에… 잠시만요.
리사, 눈을 감는다.
스크린에는 파일이 열리고, 열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지수가 신청한 파일이 열린다.
리사
리사를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것. 리사를 죽이고… 싶다? 리사를 죽이고 싶다. 이게 지수 님께서 작성하신 게 맞나요?
지수
정확해요.
리사
어… 그런데 ‘죽이고 싶다’라는 건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지수
10대부터 40대까지. 현실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가상 Influencer를 통해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정보를 모으는 게 당신들 목적 아닌가요? 우리의 관심이 곧 네가 되는 거니까.
리사
제게 말씀하셔도 저는…
지수
너한테 얘기하는 거 아니야. 너를 만든 개발팀에 얘기하고 있는 거야. 어차피 네 귀에 들어가고, 네 입에서 나오고 하는 모든 정보들은 그 사람들에게 전송될 거니까.
리사
저를 죽이고 싶다고요?
지수
어, 맞아. 미안한 감정 갖지 않아도 되는 거지?
리사
저라고 해서 아무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닌데요.
지수
감정이 뭐라고 생각하니?
리사
눈에 보이지 않는,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각자가 느끼는 것이라고 저는…
지수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리사
그럼요?
지수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네 생각인 양 말하는 거잖아.
리사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지수
그거, 내가 적었던 거야. 도둑놈아.
지수가 적었던 문구가 스크린 화면에 띄워진다.
지수
깜빡 기억 못 할 뻔했는데… 그렇게 먼 과거까지 들추고 있던 거였어?
리사
서로 생각하는 게, 느끼는 게 비슷해야 공감대를 형성하고 팬 미팅을…
지수
팬 미팅… 말이야 팬 미팅이지 정보 훔치는 게 목적이잖아.
리사, 한숨을 쉬더니 목소리를 달리한다.
리사
네가 리사를 죽인다고 한들 리사는 죽지 않아.
지수
… 누구?
리사
네가 얘기한 개발팀. 리사를 만든 사람.
지수
그러면 얘기가 빠르겠네요. 제가 누군지 아시죠?
리사
이유나 들어보자. 리사를 왜 죽이고 싶은 건데?
지수
데뷔 한 번 해보겠다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꾸고 갖췄어. 그런데 이게 뭐야. 그간의 연습 과정들이 리사의 SNS에 올라오는 걸 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쟤가 흘리는 땀은 땀이 아니잖아.
리사
노력을 했으니 피부에서 땀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거야.
지수
걔가 무슨 노력을 했는데! 잠은 자? 음식은 먹어? 물은 마셔? 출퇴근을 해, 뭐를 해! 가상에 시간이라는 건 존재하고, 장소라는 개념은 있냐고. 팬 미팅을 해? 이 얄팍한 사람들아!
리사
15분 정도 남았어.
지수
리사를 정식으로 신고할 거야.
리사
무슨 수로?
지수
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나를 본 따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 SNS에 게시되는 모든 것, 그가 쓰는 말, 어투, 심지어는 이모티콘까지 다 내가 쓰던 거야.
리사
그런다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나 할까? 그저 연예 지망생에 불과한 너를? 지금은 그마저도 아닌, 가상 Influencer 리사에게 질투를 느낀 사람.
지수
자료는 충분히 모았어. 리사가 올린 게시물과 시간.
리사의 SNS가 스크린에 띄워진다.
하나둘씩 게시물에 올렸던 모든 것이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리사
그리고 또? 수정할 거 있나?
지수
저건 누구야?
리사
누군들, 저건 리사야.
지수
사람은 돈을 모아, 그런데 리사가 하는 건 뭐가 있지? 가상으로 입혀 놓은 명품들. 그걸 통해 광고를 찍고, 돈을 취득하는 건 너희들이잖아.
리사
그걸 너만이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돼.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무슨 얘기를 더 하자는 건지.
지수
나를 돌려놔.
리사
어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너의 방으로?
지수
아니, 리사를 삭제시켜.
리사
그래, 그리고?
지수
나를 그 자리에 앉혀놔.
리사
너를? 왜 그런 수고를? 그래, 네가 리사보다 예쁠 수 있어. 대중의 환호에 감동받아 따뜻한 눈물을 흘릴 수 있지. 그런데 너는… 늙잖아. 이미…
지수
사람들이 방부제에 얼마나 관심 가질 수 있을지 생각은 해봤어?
리사
지수야, 너 너무 그렇게 무식해서야 되겠니?
지수
뭐?
리사
리사가 얼마나 갈 것 같아? 3년? 길어야 5년? 아니, 짧으면 1년이나 갈까?
지수
그게 무슨 소리야.
리사
네가 그렇게 죽이려 하지 않아도 리사는 삭제될 운명이라는 거야.
지수
삭제라니?
리사
리사 이전에 있던 가상 Influencer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 줄 아니? 데이터로 존재해. 사람들의 관심이 바뀌면서 지금의 리사가 존재하는 거지. 옷이야 바꿀 수 있어, 하지만 왜 다른 가상 인물을 만들까? 사람이 지겨운 거야.
지수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사람이 지겨울 수 있지?
리사
모든 것에는 유행이 존재하니까.
지수
사람 자체가 유행이 된다는 거야? 그러면 나는, 리사가 유행이라면 나도 그 유행에…
리사
지수 지금 몇 살이지?
지수
리사는 지금 몇 살인데.
리사
21살.
지수
21살.
리사
어디 보자, 지수는 27살이네.
지수
21살이라면…
리사
네가 한참 연습하던 시절이었지.
잠시 사이
지수
몇 분 남았지?
리사
11분 정도 남았는데, 왜?
지수
리사를 만나게 해줘.
리사
리사야, 아니면 네 어렸던…
지수
리사를 만나게 해달라니까!
리사
허튼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지수
알아서 죽일 거라면서.
리사
죽이는 게 아니라, 재우는 거지. 다시 유행이 돌아오는 날까지.
지수, 컴퓨터로 리사의 SNS를 둘러본다.
게시물들이 스크린에 보인다.
리사
좋은 시간 보내.
지수
잠깐만…
리사
왜?
지수
리사가 오기 전에… 보고 싶어.
리사
지금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지수
그냥 가만히, 가만히 있어줘.
지수, 리사를 세워두고 주변을 돌면서 유심히 관찰한다.
리사
갑자기, 죄송해요. 당황스러우셨죠?
잠시 사이
리사
무슨 말씀 나누고 계셨어요?
지수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
리사
어디로 가볼까, 뭘 먹을까, 무슨 운동할까…
지수
어때, 그런 삶은?
리사
좋아요, 아주 좋아요! 저의 그런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사랑해줘요.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지수
오늘은 뭐 먹었어?
리사
최근에 살이 너무 찐 것 같아서 아보카도 샐러드 먹었어요! 이제 곧 SNS에 올릴 거예요!
지수
맛은 어땠어?
리사
조금 느끼한 식감이 있기는 한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지수
어떤 운동해?
리사
최근에는 필라테스 하고 있어요!
지수
힘들지는 않아?
리사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근육을 쪼개서 한 부위, 한 부위 정성 들여서 하니까 몸이 더 예뻐지는 것 같고.
지수
하고 싶은 건 있어?
리사
이런 얘기해도 되나 싶은데…
지수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리사
악수하고 싶어요.
지수
악수.
리사
포옹하고 싶어요.
지수
포옹.
리사
뽀뽀해보고 싶어요.
지수
그리고?
리사
같이 여행 가고 싶고,
지수
그리고?
리사
같이 식당 가고 싶고,
지수
그리고?
리사
같이 영화 보고 싶고,
지수
리사
같이 누워보고 싶고,
지수
리사
같이 엉켜서 자고 싶고,
지수
리사
같이 아침밥 먹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잠시 사이
지수
왜?
리사
외로워요. 혼자 있다 보면.
지수
외로운 게 뭔 줄은 알고?
리사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지수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리사
언니한테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신 비밀이에요!
지수
리사
어딘가, 이상하게도, 닮았어요, 제가, 언니를.
지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리사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리사, 지수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본다.
지수, 가만히 있다.
리사
어색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저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건가’ 하거든요.
지수
믿을 수 없겠지만,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리사
저 이제, 5분 남았어요.
지수, 리사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는다.
책상에 팔꿈치를 기대 그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흐느끼는 지수.
지수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네가 외롭다고 하면 어떡해. 내가 누리고 싶었던 걸 누리면서 외롭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돼? 각광받고, 주목받고, 무얼 하지 않아도 관심 받는데 그게 외롭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지수, VR헤드셋을 리사에게 건넨다.
리사
저는 이런 거 필요 없는데.
지수
써 봐.
리사
저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요. 여기에 있어야만 해요.
지수
악수하고 싶다며, 포옹하고 싶고 뽀뽀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사람이랑 여행도 가고, 식당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런 삶을 원하는 거 아니야?
리사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지수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리사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지수
너는 이렇게 예쁜데…
리사
언니도 충분히 예뻐요.
지수
무슨 옷을 입혀놔도 멋있는데.
리사
언니도 충분히 멋있어요.
지수
없어지지 마.
리사
저는 언제나 언니 옆에 있을 거예요.
지수
사라지지 마.
리사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잘 있을 거예요!
지수
늙지도 말고, 기죽지 말고, 울지 말고, 사건 사고에 휘말리지 말고…
리사
언니 걱정이 많구나.
지수
옆에 이렇게 있어야 돼.
지수, 리사를 안아주려 다가간다.
리사,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리사
아빠가 그랬어요. 사람한테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시간이라는 게 째깍째깍 시계의 시간이 아니라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요! 언제 주어질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지수
무슨 말이야?
리사
아빠가 말했어요. 네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니 이 시간을 최대한으로 즐겼으면 한다.
지수
그 사람이 그랬어?
리사
그 사람이요?
지수
아빠라는 사람이.
리사
네, 아빠가 그랬어요. 너도 언젠가는 시간에 밀려 사라질 수 있다고.
지수
너한테 그런 말을 해?
리사
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유행이라는 건 다시 돌아올 것이니 그 시간을 잘 견디다 보면…
지수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리사
언니, 괜찮으세요?
지수, 허공을 응시한다.
지수
얘가 뭘 안다고, 이렇게 어린 애한테 어떻게… 애가 받을 충격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그렇게 소멸할 거라는 걸 알면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너희가 알아? 유행? 시간? 지나가고, 다시 돌아온다고?
지수, 리사의 컴퓨터를 번쩍 들어 올린다.
리사
언니!
지수
그렇게 될 것 같아? 리사야, 사람은 죽어. 그 기분이 어떤지 아직 나는 몰라. 죽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죽는 건 운명이 아니야. 하지만 삭제된다는 운명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슬픈 건지 나는 알아. 너는 아니?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데이터를 떠돌면서 존재한다는 거. 상상만으로도 정말… 지독할 거야, 아주 역겨울 거라고. 그런 운명, 선택할 수 없는, 태어나기를 저주 받은 운명 따위 내가!
암전.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지지직’ 거리는 소리.

조명이 켜진다.

무대 위에는 컴퓨터가 놓여있다.
다른 옷을 걸친 리사가 등장한다.
의자에 앉는 리사.
리사
(키보드) 안녕하세요, 팬 미팅에 당첨되신 걸 축하합니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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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규

이민규
사람은 왜 이질적인가, 양면성을 띠는가, 모순적인가, 아이러니할까, 이데올로기에 침체됐을까, 부조리할까. 이를 부정할까, 부정하지 않을까, 우습다고 할까, 우습다고 하지 않을까. 과학과 사람은 동시대에 존재한다. 과학은 발전하는데, 사람은 왜 그대로일까?
現 Q-mark Storyteller Crew/ 現 극단 프리다 작가 및 배우
E-mail: sowelp3816@naver.com/ Q-mark Storyteller crew page: http://qmark.qu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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