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극작가들이 직접 꾸리는 코너로 희곡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을 나눕니다.

블랙 소르베 러브 자기만족충만

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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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희곡]코너는 ‘다른 손(hands/guests)’, ‘다시 쓰기’, ‘자기만족충만’ 세 가지 주제로 진행됩니다.

‘자기만족충만’은 작가 스스로가 추구하는 사유 방식, 세계관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입니다.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지점들을 충만하다고 느낄 때까지 끈질기게 탐구합니다.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와 형식을 작품을 통해 관철시키는 작가중심적 작품들을 만납니다.
등장인물

여자
조명 켜진다. 두 여자,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마주 보고 앉아있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사이.
나, 제 앞에 놓인 노트북으로 시선을 내리더니 자판을 두드리며 대사.
(방백) 여자는 작은 핑크색 스푼에 달라붙은 아이스크림을 혀끝으로 천천히 쓸어 올렸다. 시큼하고 까만 설탕 덩어리가 서둘러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반짝’. 순간,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사이로 작은 피어싱이 빛을 발했다. 그녀의 작은 목울대가 살짝 울린다. 여자는 검은 레이스와, 하트 모양으로 조각된 은색 펜던트가 조화를 이루는 초커를 목에 두르고 있다. 어깨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오프숄더의 소매가 양 팔뚝에 간신히 걸쳐져 있다. 오늘의 컨셉은 뭐지? 어느새 나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는 지경까지 이르러 있었다. 이에 대한 여자의 대답은 더더욱 궁금하지 않다. 아마 “RED & BLACK”이라는 지시가 내려져 왔으리라. 여자가 일하는 클럽의 사장은 어딘지 모르게 ‘오타쿠적인’ 면모가 있었으니까. 그것마저도 다분히 여자의 성질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피어싱, 빨간 립스틱, 요란한 의상, 오타쿠, 그리고…… 공공연히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모두 나와 무관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나,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사이) 뭘 보니?
나, 다시 타자를 치며.
(방백) 나는 이 젊은 나르시시스트가 무엇을 상상하고 저런 미묘한 웃음을 건네는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습관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늘 그 기대에 어긋나는 대답을 들려주고는 했다.
사이.
언니 오늘 완전 2000년대 일본 락밴드 보컬 같아요.
여자
퇴폐적이고 시크하다는 뜻이지?
애니메이션 <캐릭캐릭 체인지> 알아요? 거기 나오는 주인공 같아요. 걔가 락밴드 소속은 아닌데요, 걔가 입고 다니는 옷이랑 똑같아요. 그런 걸 펑크룩이라고 하던가.
여자
이왕이면 만화 <NANA>의 주인공이라고 해주면 안 돼? ‘오사키 나나’ 쪽이 ‘아무’보다는 나랑 어울리잖아.
(방백) 이 여자는 역시 오타쿠다. (사이) 그녀는 평소와 같이 샐쭉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 기고만장한 미소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맞바꾸는 날이 내게도 오기를. 나는 쿼터 사이즈의 통 안에 쌓인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뜨며 바랬다.
나,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 통에 팔을 뻗어 한 숟가락 떠먹는다. 그리고는 객석을 바라보며 대사.
(방백) 그녀와 나의 만남은 SNS를 통해서였다. 인터넷상의 지인. 아니, 정확하게는 ‘지인의 지인의 지인’ 관계. 한 다리도 아니고 두 다리를 건넌 우연한 친분이었다. 그녀는 현재 여성 전용 섹스토이샵과 레즈비언 클럽에서 주중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다. (사이) 나는 이 여자를 이번 학기 전공 수업인 ‘희곡 창작 수업’의 소재 연구 대상으로 결정했다. 자신과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온 타인을 인터뷰하기. 주제 한번 부담스럽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존하는 개인의 삶을 토대로 작품을 쓰라니. 창작 윤리 위배 사례가 판치는 시국에 이 얼마나 오만하고 위험한 시도인가. (사이) 그러나 곧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랍시고 섹스, 자위, 그것도 아니면 엄마나 누나,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죽이는 남자의 이야기를 즐비하게 써 오던 학우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저질 포르노를 가져올지 궁금하진 않았다. 교수가 그들 과제에 어떤 점수를 주느냐에 따라선 심기가 거슬릴 수 있을 것 같다만. 그만큼 나는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길 바랐다.
여자
너, 이번 기회에 날 자세히도 알아가겠구나.
(방백) 나를 건너다보는 여자의 시선이 한껏 장난스럽다. 그녀의 입에 물린 스푼이 얄밉게 까딱거렸다. 립스틱이 스푼에 조금씩 묻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나, 한숨을 내쉬며.
우선, 왜 섹스토이샵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여자
그게 말이죠, 여성의 성적 해방과 페미니즘의 정치적 행동을 실천하기 위해서죠.
여자, 돌연 답지 않게 근엄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각을 잡는다. 팔꿈치는 테이블 위로 올리고 양손을 마주 잡아 깍지를 낀 채, 손등을 눈 밑에 수평으로 가져다 댄다. 나는 인심을 베풀듯 받아친다.
그런 식으로 자세 잡는 애니 캐릭터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자
(반갑게 웃으며) 이카리 겐도1)!
만족스럽게 웃는 여자.
여자
그런데 어쩌자고 나랑 인터뷰 할 마음이 생겼어?
나, 피식 웃어 보인다.
미지의 생명체를 탐구하는 데에 취미가 있어서요.
여자
(웃으며) 네가 러브크래프트2) 라도 되니?”
저는 인종 차별주의자3)가 아닌데요. (사이) 그래서 진짜 이유는 뭐예요?
여자, 잠시간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한다.
여자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
(방백) 그게 뭐야, 싶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게 이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까.
여자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지. 애초에 퀴어(Queer)에게는 미래가 주어지지 않거든. 그러니까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방백) 나는 부러 우리만의 농담을 던진다. (사이, 여자를 보며) 언니가 뮤지컬 <사의찬미>의 ‘심덕’이라도 돼요?
나, 다시 객석을 향해 돌아보며.
‘심덕’은 국내 창작 뮤지컬 <사의찬미>의 주인공으로, 대표 대사로는 “순간의 미(美). 그걸 얻을 수 없다면 난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가 있다.
기다렸다는 듯 여자가 한껏 심취한 표정으로 캐릭터 넘버의 한 소절을 부른다.
노래가 끝난 후.
언니의 좌우명은 뭐에요?
여자
행복하게 살자.
(방백) 순간, 나는 떠올렸다. 영화 스터디에서 겪었던 일이다. 그즈음 함께 관람한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였는데, 한 학우가 말하길… 이 영화는 비극적 결말로 끝나지 않아서 ‘퀴어 영화’스럽지 않다나 뭐라나.
여자
(바로) 대체 퀴어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전적 의미를 묻는 거라면, 퀴어란 ‘기묘한’, ‘이상한’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용어로 쓰였는데,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진전되면서 해당 용어를 전유해 당사자들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서는 기존 젠더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을 포괄하는 단어로……
여자
아니. 그런 것 말고. (사이) 확실히 퀴어는 자기들 알아서 행복하거나 슬퍼할 자유의 폭이 제한적인 것 같아. 사람이면 누구나 어떨 땐 웃다가 또 어떨 땐 울 수 있는 건데. 인생이 어떻게 비극과 희극으로 딱딱 나눠지냐. (사이) 성소수자의 삶은 불행하다고? 그냥 우리가 불행해지길 바라는 건 아니고?
아무튼, 저는 그날 결심했어요. 유쾌한 퀴어 문학을 쓰겠다고. 아니, 유쾌한 ‘레즈비언’ 문학을 써 보이겠다고.
나, 양 손가락으로 브이 모양을 만들어 ‘레즈비언’에 강조 표시를 한다.
여자
굳이 ‘레즈비언’ 작품인 이유는?
(방백) …라고 내 눈앞의 레즈비언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여자를 보며) 레즈비언을 다루는 작품이 게이를 소재로 하는 것보다 덜 조명받는 것 같아서요.
여자
하긴, 나도 연극이랑 뮤지컬 보러 다니면 열에 아홉은 게이 캐릭터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 역시 고민이 되는 거예요. 과연 레즈비언 문학이란 뭘까 싶어서요. 고사하고, 퀴어 문학이란 대체 뭘까요.
나, 머리를 싸맨 채 책상에 엎드려 보인다.
언제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문예지에서 ‘이것은 퀴어 문학입니다’라는 주제로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밝히지 않은 퀴어문학’ 원고를 모집한다는 거예요. 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어요.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드러나지 않는 퀴어라니? 그건 애초에 퀴어가 가지는 정의를 거스르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과 혼란이 드는 거예요. (사이) 당최 어떻게 글을 써야 주최 측이 의도하는 바에 부합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여자
창작자라면 가질 법한 고민이지.
여자가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다.
다른 독립잡지에서도 퀴어 문학 원고 공모를 냈어요. 투고하고 싶었는데, 혹시 내 글이 누군가를 상처 주거나 분란을 일으키면 어쩌지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덮치는 거예요. (사이) 제가 너무 자의식 과잉인 걸까요?
여자
적당한 자기 검열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잖아. 네가 그 과정에서 뭐라도 얻어 발전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냐? 다음에 내보면 되지, 뭐.
저도 나름대로 공부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작가들의 퀴어 소설도 찾아 읽어보고. 그러다가 다시 ‘퀴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부딪히더라고요. 그래서, 퀴어란 대체 뭘까요?
잠시간의 정적. 두 사람 사이 긴 공백이 이어진다. 사이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신음 섞인 한숨이 새어 나온다.
여자
나도 하나 묻고 싶네. (사이) 너는 네가 뭐라고 생각하는데?
…… 저는 그냥 전데요.
사이.
저도 저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이) 가끔은 굳이 정의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음, 나는 그냥 나인데.
여자
인간이 왜 각자 이름을 가진다고 생각해?
글쎄요.
여자
누군가 불러주길 원하니까. 존재를 인정받고 싶으니까.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나도 살아있다’라고 존재를 입증해야만 남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으니까. (사이) 이름이 없으면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잖아. 지나쳐 버리는 거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이.
여자
퀴어 영화에서 보란 듯이 키스하고 섹스하는 것도. 그렇게 안 하면 걔네 관계를 그냥 ‘우정’이니 ‘동지애’니 뭐니 하면서… 지들 마음대로 규정하잖아. 그게 오해인지 자기합리화인지는 차치하고. 육체적 결합이 있어야 그제야 ‘아, 이건 유교국의 편견으로도 커버칠 수 없는 단계구나’ 하는 거지. (사이) 그렇지만 네 마음이 어떤지도 알겠어. 비유하자면… 페미니스트를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는 거지?
맞아요.
사이.
그나저나 언니는 항상 그 맛만 먹네요.
여자
블랙 소르베. 나온 지 얼마 안 된 거야. 먹어볼래?
나, 한 숟가락 떠먹는다. 사이.
반전이네요.
여자
그렇지?
언니, 그거 알아요?
여자
뭘?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오면 놀란다잖아요. 동성끼리 스킨십이 스스럼없고, 이렇게 서로 숟가락 돌려가면서 먹여주고 한다고. 동성애 강국이라고.
여자
디나이얼 강국인 건 꿈에도 모르고.
편견이 지켜주는 유교 국가인 건 꿈에도 모르고. (사이) 무지개가 해외에서 어떤 상징인지도 모르고, 그냥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무지개 아이템으로 치장하는 사람들도 널렸는걸.
여자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적 전염병이 발병해서 시종일관 마스크를 끼고 다니거나 외출이 통제되는 아포칼립스 같은 세상이 오지 않는 이상, 그런 문화는 지속될걸?
(방백, 객석을 보며) 참고로, 이 극은 전 세계적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일어나기 전 쓰여졌다.
여자
결국 유교국에 사는 여성애자들만 오늘도 헤녀 우정에 혼자 설레발치는 거지.
여자가 ‘흑흑’ 거리며 우는 체를 한다.
사이.
언니는 내 길티플레저 같은 존재에요.
여자
왜?
… 사실 내 첫 연애 상대는 ‘기독 헤녀’ 같은 느낌이길 바랬는데.
여자
(웃으며) 그것 참 ‘열린교회 닫힘’ 같은 심보로구나. 우리 사귄 지 삼 년이나 된 시점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니?
(장난스레) 할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클리 잡고 반성’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여자
그런 말은 내 앞에서 하면 안 돼, 아가씨.
여자의 얼굴이 나의 코앞까지 불쑥 다가온다.
여자
지금 당장 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지잖아.
여자와 나, 한동안 마주본다.
사이. 나, 객석을 바라보며 일어선다.
(방백) 결국 나는 그녀와의 인터뷰 과정을 희곡으로 옮겨 쓰기로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게 이 연극이다. 나는 여자와 마주 앉은 채로 희곡을 고쳐 나갔다. 그녀, 내 여자친구 말이다. (사이) 이 희곡을 과제로 제출했을 때 어떤 반응이 돌아올는지 심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얼마만큼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애써 써낸 과제물이 F를 맞을지도 모르지. 그건 교수님의 의중에 달렸으니까 말이다. 언젠간, 학과 친구가 전공 교수의 차별적 발언을 지적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거만하다’는 대답과 함께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는데. 혹 나에게도 그런 결말이 닥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 뭐 어쩌랴. 이 작품을 어딘가의 지면에 보란 듯이 다시 게재해 버리고 말 테다. 그게 내 복수가 되겠지. 아마 이 글을 다른 이들이 읽게 된다면, 뭐 이미 그런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고 난 후라는 것만 알아두길 바란다. (사이) 아무튼, 나는 유쾌한 레즈비언 희곡을 쓰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끝.
암전.
경쾌한 음악.
  1.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에 등장한다. 캐릭터 특유의 무게를 잡는 포즈가 유명해서 다양하게 패러디, 오마주 되었다.
  2.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장르를 개척한 호러문학 소설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라는 말을 남겼다.
  3. 러브크래프트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명성 높다.

리리브

리리브
소설,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갈래의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조명하는 작품 창작에 관심이 많습니다. 호러 장르를 가장 애정하며 현재 호러 매거진 창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창작집단 <예;고>의 대표로서 연극 <삶, 사람, 사랑>의 제작 중에 있습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은 @live_ing_any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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