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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니버스

[연극인이 만난 사람] 전윤환 X 유명상

전윤환

제226호

2022.11.24

* 이하 대화에서 섬섬은 전윤환, 마담은 유명상을 부르는 호칭이다.

섬섬
항상 청풍1)에서 저를 인터뷰이로 인터뷰해주시다가 제가 청풍을 인터뷰어로 만나러 오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일단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해보다가 재밌는 게 있으면 더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마담을 잘 알지만, 연극in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마담
안녕하세요. 저는 협동조합 청풍에서 일하면서 강화도에서 살고 있는 유명상이라고 합니다. 보통 별명을 많이 부르는데 유마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섬섬
제가 마담을 알게 된 게 벌써 십여 년 전인데요. 인천과 서울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강화도로 오셨잖아요. 강화에 온 지 이제 10년이 넘으셨죠? 어떤 이유로 강화도로 오게 되었나요? 그간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마담
당시에 슬럼프가 왔던 것 같아요. 인천에서 청년 활동이라든지, 청년 커뮤니티라든지,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기획 활동을 많이 했는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좀 흔들리는 시기였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라든지,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나, 라는 의문점이 들었던 시기였거든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많아지고 영역은 넓어져 갔지만, 결과를 떠나서 과정들이 제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과정이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뭐랄까, 양적인 것보다는 내 안에 질적인 것들이라든지, 깊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파고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강화로 왔어요. 사실 강화가 종착지가 아니라 시작점이었어요. 강화로 시작해서 다른 데도 좀 다니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강화도에 있네요(웃음).
섬섬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강화에 왔어요. 작업 기회는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공연을 하기는 하는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맞나, 어떤 이야기를 누구와 왜 나누고 싶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을 때 멍해지더라고요. 공연을 하는 행위만 남고….
마담은 슬럼프로 강화에 왔는데, 청풍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기획 활동을 강화도에서 이어가게 되었잖아요?
유명상과 전윤환이 마주 보고 서서 환하게 웃고 있다. 유명상은 남색 패딩 재킷의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있고, 전윤환은 베이지색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흡사 직육면체의 상자 같이 보이는데, 바닥은 하얀색이며 양옆의 벽은 검은색이다. 천장에는 기다란 하얀 형광등이 빛나고 있는데, 천장 재질에 광택이 있어 조명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인다. 뒤쪽 배경은 어둠에 잠겨 있다.
왼쪽이 유명상, 오른쪽이 전윤환
마담
문화기획 활동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공공 영역하고 뗄 수 없는 관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공공 영역의 재원이 거의 90% 이상 차지하고 나머지가 다른 재원이다 보니까 결국 공공 재원을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때 어려움이 생겨요. 내 생각이라든지 내 방향성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 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거든요. 공공이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 모두를 맞추려고 결과를 내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고, 인천에 있을 때도 그런 부분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강화에서는 좀 우리 방식대로 지속하면서 다른 삶의 경로들을 찾고 싶었어요. 바텀업, 바텀업 하는데 왜 문화기획자들은 공공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운 좋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지역에서 지속할 수 있는 경제적, 문화적 생태계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서 협동조합 청풍이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하게 되었죠.
섬섬
예술계도 비슷해요. 공공 재원에서 지원을 받아서 하는 작업들이 사실 대부분의 생태계를 받치고 있고, 하려는 사람들에 비해 공공 재원은 굉장히 적다 보니 계속 자기증명을 해야 되는 구조예요. 그래야지 다음 연도에 공공지원을 받을 수 있고, 공공지원이 아니더라도 유사 기회가 생기는 거죠. 그러니 공공이 선정한 주제 혹은 품고 있는 아젠다에 부합하는 작업을 하게 되거나 어떤 영향들을 받게 되는 거예요. 내 생각은 없어지고 끌려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죠. 그래서 강화도로 오게 되었어요. 이곳에서 청풍을 만나게 되고 강화유니버스 친구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러면서 좀 다른 꿈이 생기게 된 거예요. 그래서 강화유니버스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
강화유니버스 활동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어요? 잠시섬 연극제를 만든다든지, 잠시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한다든지, 아트 투어 같은 형식의 작업도 하고, 여러 문화 기획들을 강화유니버스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강화유니버스가 무엇인지 좀 들려주세요.
마담
청풍은 제가 소속된 그룹으로, 정확한 멤버들이 있는 조합이라면 강화유니버스는 실제인 듯 아닌 듯 약간 모호한 경계 지점을 추구하려는 것 같아요. 이게 뭐랄까요, 한국 사회의 지역 안에서 뭔가 함께 한다고 했을 때 공동체 정도가 딱 떠오르는데, 결과 말고 과정이 필요해 보였어요. 강화에서 주변 이웃들하고 해보고 싶었던 것은 커뮤니티의 감각을 익히는 것, 조금씩 우리의 속도로 서로의 영점을 맞춰가는 과정을 보내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강화유니버스는 하나의 세계관 같은 거예요. 강화를 살아가는 유동적인 세계관인 거고 이것은 구성원들에 따라서 언제든 변할 수도 있고, 계속 확장될 수도 있을 거고 망할 수도 있고…. 더 애매모호해졌나요?
섬섬
저에게도 강화유니버스는 뭐야?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강화유니버스라고 적혀있는 티셔츠 한 장을 나누어 입고, 우리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동네, 살아보고 싶은 강화도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팀도 아니고 어떤 조직도 아니고 살아보고 싶은 동네를 꿈꾸는 느슨한 커뮤니티다”라고 말해요. 그래서 강화유니버스에 누구누구가 있어? 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땐 이렇게 대답해요. “몰라. 동네 지나다니다가 티셔츠 입고 있으면 아… 강화유니버스구나!” (웃음)
강화유니버스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열한 개의 키워드와 그 설명이 나와 있다. 로컬, 주체성, 존중, 다양성, 소통, 재발견, 생태, 환경, 안심, 즐거움, 연결이 그 키워드들이다.
이미지 출처: 강화유니버스 홈페이지
마담
제가 강화에서 보낸 10년을 커뮤니티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제 시작 지점에 진입했다고 평가하고 싶거든요. 서사로 따지면 저는 아직 시작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마블 유니버스 이런 영화를 보면 동료를 찾고 하는 초반부가 있잖아요. 뒤에 이야기들이 더 무궁무진하겠지만, 아직 초반부라서 강화유니버스를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은 말 그대로 동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섬섬
강화유니버스에서 요즘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기획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담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려 하고 있어요.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이웃들과 협력의 감각을 키워나가는 거예요. 커뮤니티라고 했을 때 우선은 같이 모이고, 아젠다를 정하고, 그다음에 우리가 이 아젠다를 목표로 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찾는 과정을 겪는데, 저희는 좀 반대로 하고 있어요. 옆에 이웃이 있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좀 같이 할 수 있는 감각들을 키워 볼까, 조그마한 거 하나라도 같이 실행해보고 공통의 경험들을 조금씩 찾아보는 것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 같아요.
섬섬
강화유니버스가 하는 기획들을 살펴보면, 강화에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콘텐츠가 있는 청년들, 예를 들면 카페를 한다든지, 빵집을 한다든지, 게스트하우스를 한다든지, 연극을 한다든지, 음악을 한다든지, 이런 친구들을 조명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하고 있는 부분들을 확대해 주고, 스피커를 달아주면서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동네에 알리고 조금씩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같이 이런 걸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좀 들게 되고요. 작년에 강화유니버스에서 잠시섬 연극제2)를 했었잖아요. 그때 재밌었던 게 강화도에 있는 상점들하고 아티스트가 만나는 경험이었거든요. 아티스트들이 강화에 머무는 동안, 읍내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도 재밌었고, 연극제를 통해 소개받은 동네 상점, 커피숍, 찻집, 에어비앤비, 마을 도서관과 관계를 맺고 그곳에서 공연을 하는 그런 감각들도 되게 재밌었던 기획이었는데요. 동네에 있는 거주민들이 어떤 기획의 객체가 아니라 협업의 상대, 페스티벌의 주체가 되는 형태의 기획이 강화유니버스가 꿈꾸는 모습들 같았어요. 섬 밖에 있는 분들을 환대하는 형식의 잠시섬3) 같은 기획도 하고 있는데 소개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담
개인적으로는 판단했을 때, 저 지역 멋지다, 라는 감각은 그 지역이 얼마나 개방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다른 이들을 환대하는가, 그런 것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지역이 가장 멋진 곳이 되지 않을까, 가장 살고 싶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강화도도 아직 그렇지 못하고요. 그래서 개방성과 환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기획을 하고 있어요. 외부에 있는 친구들이 왔을 때 지역에 있는 친구들과 접점을 만들어가면서 이 지역 안에서 서로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고 맞이하고 환대해주고, 잠시 섬에 머물면서 자신의 속도와 지역의 속도를 맞추어 가기도 하고, 서로 융화되고 교류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잠시섬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좀 재미있는 건 서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예요. 잠시섬을 처음 시작한 6년 전에는 호스트가 청풍이었어요. 저희가 주도해서 지역과 지역 상점을 안내해주는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지역 상점의 사장님들이 마치 롤 플레잉 게임의 NPC처럼 호스트의 역할을 하면서 안내를 다 해주는 거예요. 잠시섬에 오셨다고 하면 환대해주고, 뭐라도 하나 더 주시고, 다른 곳도 소개해주고. 강화가 아닌 다른 지역에도 ‘살아보기’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잠시섬의 강점은 그 단순한 인사 한마디라고 생각해요. “잠시섬에 오셨어요? 잘 오셨어요. 어디 둘러보셨어요?” 딱 그 한 마디.
섬섬
맞아요. 강화유니버스 상점들 보면 환대 연습이 엄청 많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티스트들이 섬에 왔을 때, 모두 당황하지 않고 본인들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익숙하게 맞이해주시고, 협업할 수 있는 근육들도 생기신 것 같아요. 일종의 커뮤니티 작업을 하러 지역에 들어갈 때 긍정적인 시너지가 나기도 하지만 지역민들과 아티스트들 사이에 덜컹거리는 느낌들을 지울 수 없을 때가 많거든요. 아티스트가 기획적인 의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말 걸기를 했을 때,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 끝나면 그 지역에서 사라지고. 그런데 청풍과 강화유니버스가 강화도에 살면서 협업을 하고, 함께 외부인을 환대하기도 하고, 더 좋은 동네를 꿈꾸기도 하는 걸 보면 세월이 많이 쌓였다는 감각이 들더라고요.
마담
결국 저는 시간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세월의 축적이 많은 것을 만들어나간다고 생각해요. 지역에 아무리 좋은 영감을 불어넣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누가 그것들을 만들어가고 누가 주체성을 가지고 해나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게 있잖아요. 주도성을 갖지 못하면 계속 흐지부지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하고 지역 상점이 협업하는 이유도 비슷해요. 새로운 사고라든지 새로운 흐름 같은 것들을 못 받아들이면 결국에는 고착화되고 지역에 고립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외부에 있는 감각들을 계속 연결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지역을 사유했을 때, 지역 분들도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역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가 되는 거고요.
최근에는 상점 분들이 예술가들하고 만나면서 영감을 수용하는 감각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영감을 내 방식으로 풀어내고 내 언어로 이야기 나누고 하는 것들에 익숙해졌달까요.
섬섬
저는 잠시섬 연극제 준비하면서 되게 감동적이었던 순간이 있는데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아티스트와 동네상점 분들이 다 같이 받았거든요. 상점 분들의 수용성도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동네 상점 분들이 연극제에 단순 장소만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에게 이제라도 필요한 감수성이나 다른 가치에 대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네 분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마담은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마담
서울의 속도에 휩쓸릴 뻔했다? 지역은 지역만의 속도가 있고, 그 속도를 존중하고, 그 속도를 맞춰가야 그 지역의 문화 다양성이라든지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한 3~4년 전부터 로컬이 주목받고 다른 지역에서도 로컬 만들기 기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우리도 빨리 무언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급함이 찾아왔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행히 그런 시기가 넘어가면서 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는데, 위기였어요. 제가 요즘 지역에서 경계하는 것은 고도화되는 거예요. 뾰족하게 높게 튀어나오는 것. 그게 도시에서는 성공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역에서 그런 방식은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포식자가 되는 거예요. 지역의 문화를 내가 다 흡수해서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그게 성공하면 서울로 가든지, 아니면 다시 또 다른 지역으로 가든지, 확장판처럼 계속요. 다양한 것들이 생겨나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속도에 휩쓸릴 뻔한 적이 있는 거죠. 지역에서 막막했던 지점들이 있었어요. 앞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구체적인 상이 안 보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섬섬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고. 이런 부분들이 가시화되고, 협업의 경험도 쌓이고 하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
커뮤니티 감각 같은 것들은 확실히 속도가 빠른 감각은 아니잖아요. 문화라는 것도 스며드는 거고요. 그런데 그 스며드는 감각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 살다 보니 인지가 되는 거죠. 강화가 내 삶터이기도 하니까 어느 순간 인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뭔가 변하고 있는 게요.
전윤환과 유명상이 원탁에 앉아 있다. 전윤환은 검정색 후드 자켓을 입었고, 유명상은 검정색 자켓에 안에는 카키색 셔츠를 받쳐 입었다. 유명상은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에 검정색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섬섬
삶터라는 그 단어가 중요한 감각 같아요. 강화도에서는 제가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동네, 내 친구들이 살고 있는 동네, 그러니까 내 삶이 기반이 된 곳에서 작업을 한다는 감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 작업이 내 동네에, 내 삶의 반경 안에 어떤 영향이 될지 혹은 되고 있는지 바로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대가 되기도 하고… 쌓인다는 감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대도시에서 제가 작업을 할 때는 막연한 기대였던 것 같아요. 일종의 희망이랄까요. 제 작업을 통해 다른 질문이 생기고, 다른 감각이 생기고, 막연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런데 작업 이후에 변화라고 하는 게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다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지니까. 하지만 강화에서는 작은 기획이나 작은 만남을 하더라도 그게 좀 느껴져요. 쌓이는 감각이.
마담
저도 인천에서의 활동을 떠올려보면 균열을 만드는 기획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균열을 내고 이 판을 뒤집어 버려야 돼!
섬섬
저도, 그런 마음이었어요. 연극판 다 뒤집어 놓고 싶다! 뭐 이런(웃음).
마담
내가 어떻게든 이 판을 뒤집어 놓고 체인지 메이커가 될 거야, 이런 마음들이 있었는데요. 여기서는 소소하지만 주변과 연결되어 하나하나 쌓이는 감각들이 생기는 거죠. 뒤집어 버리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나도 뒤집혀야 되는 거고, 나도 균형을 잃게 되는 건데, 쌓이는 감각들은 제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거죠. 내 삶을 변화시키고 뭔가 역동성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의 삶을 달리 볼 수 있게끔 하는 기획들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하니까 나이 먹어서 그런 거라고(웃음).
섬섬
그러네. 나이 먹어서 그런 거였어(웃음).
저는 강화에 와서 구체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대도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사이즈처럼 느껴지거든요. 나와 내 친구들 혹은 비슷한 지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꿈을 꿀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구체성이 보여요. 어? 되겠는데? 어쩌면 되게 재밌는 동네를 만들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재밌는 동네 친구들이 많아지겠는데?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도 있겠는데? 이런 꿈들이 다시 생기고 조금씩 저에게는 구체성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질문! 마담이 꿈꾸는 강화는 어떤 모습이에요?
마담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내가 어떤 것들을 원하고 욕망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그런 것들을 주변하고 잘 협력하고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들을 내 생에서 못할 수도 있고, 이게 중간에 망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다음 친구들한테 계속 연장되고, 그게 10년, 20년, 30년 됐을 때는 그때 섬섬하고 인터넷으로 같이 찾아봤던 해외의 지역 축제처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그 정도 속도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라는 것은 결국 세월의 축적인지라 우리가 어떤 세월을 축적해놓고 쌓아 왔을 때에 흔히 말하는 바텀업 방식의 일들이 이 안에서 좀 생겨나지 않을까, 그리고 저는 그 일들을 제가 예측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것들이 생겨났으면 해요. 제가 기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강화에서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재밌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저는 그 하나의 일원으로서 축제에서 빵 먹으면서 좀 즐기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전윤환과 유명상이 테이블의 한쪽 면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둘 다 다리를 한쪽으로 꼬고 앉아 서로의 모습이 대칭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은 부엌으로, 두 사람의 뒤쪽으로 벽면을 절반 정도 채우는 하얀색의 싱크대와 조리대, 상부 수납장이 보인다. 상부 수납장 아래쪽에만 조명이 들어와 있어, 두 사람은 실루엣이 뚜렷하다. 공간의 바닥과 벽면, 그리고 벽면 수납장은 모두 나무 재질이다.

[사진: 필자 제공]

  1. 협동조합 청풍은 2013년부터 약 10여 년간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 로컬공간 운영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해 와 자신만의 삶을 펼쳐갈 수 있는 문화·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가는 청년 그룹이다. 특히 연극, 음악, 시각,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청년 예술인과의 협업을 통하여 지역을 재발견하고, 대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연결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2. 염문경, 「연극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면, 강화유니버스 <잠시섬 연극제>」, 『연극in』 209호, 2021.11.11. 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2562
  3. 잠시섬은 잠시 일상을 멈추고 강화섬에 머무르며 자신과 동네를 탐색해 볼 수 있는 섬 살이 프로그램 이다. 2박에서 최대 5박까지 머무는 일수와 날짜를 선택할 수 있다. http://www.guniverse.net/stay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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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환

전윤환
쓰고 연출하고 가끔 무대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섬에서 살고 있지만, 더욱 섬에 살고 싶어 ‘섬섬’으로 불리길 희망한다.

유명상

유명상
동료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시장상인, 청년, 지자체, 마을공동체, 학교 등 강화 지역의 다양한 세대 및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학습하며,  지역의 문화·경제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전통과 문화를 기록하고 이어나가 새로운 컨텐츠로 만들어가는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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