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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복수, 그 사이의 심연

국립극단 <2센치 낮은 계단>

김태희_ 평론가

제141호

2018.06.07

연극을 보러 다니다보면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할텐데 나의 경우에는 당시 고민하고 있던 지점들과 만나는 작품들이 주로 그러하다. 공연을 보다가 징그러울 만큼 나와 비슷한 인물을 만나거나 혹은 무릎을 탁 칠만큼 내 것과 유사한 고민을 만나거나. 나의 경우에는 어쩌면 그 경험이 좋아서 계속 연극을 보러 다니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엠파인투>(공동창작, 부새롬 연출)는 몇 년이 지났음에도 구체적인 장면이 떠오를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분노와 증오를 키워드로 공동창작 된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극 진행 중간 중간 배우들은 인터뷰 형식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분노와 증오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자신들이 느끼는 소소한 증오와 분노에 대해 세밀하게 증언하는 것에서부터 사실은 분노와 증오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메르스와 흙수저, 헬조선이 연말 키워드로 뉴스를 장식하던 시기였다. 나 역시 분노와 증오가 무엇인지 이제 막 고민을 시작했던 찰나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큰 공감을 느꼈다. 극장을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2센치 낮은 계단>은 부새롬 연출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공동창작 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후술하겠지만 <2센치 낮은 계단>과 <아이엠파인투>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품이다. 배우들은 가까운 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피해자 주변인의 삶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번 작품에서 관객들은 배우가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에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데,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미덕으로 작용한다.

‘복수심’에 대한 이야기

부새롬

김태희
키워드 이야기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왜 하필 복수심이었는지 궁금해요.
부새롬
작품 속에 복수가 등장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뭔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해자를 처벌하고 정의로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복수를 행하는 과정을 그리거나 혹은 복수를 하는 과정자체가 스릴러화 되면서 흥미를 유발하는 이야기가 있죠. 제가 복수라는 키워드가 아니라 복수심이라고 그 범위를 좁힌 이유는, 앞의 두 가지 이야기를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저희는 이 사람들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혹은 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어쩌면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잔혹한 복수심을 마음 속으로 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의다 아니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마음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윤리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으니까 누구한테 말하기도 힘들죠. ‘나 걔 죽이고 싶어’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반면에 정의로움을 말하기는 되게 쉽죠. 그래서 말 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좀 궁금하더라고요. 그 질문을 가지고 배우들하고 만나게 되었어요.
김태희
그렇다면 애초에 그 마음이 궁금해진 계기 같은 것이 있을까요?
부새롬
있는데 비밀이에요. (웃음) 왜냐면 제가 그 계기를 얘기하면 특정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제가 실제 사건의 인물들이 그런 복수를 꿈꾸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리잖아요. 그 분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어요.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실제 삶을 사는지 저는 모르죠. 안다고 하면 오만한 거고 말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럴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 거기 때문에요.
김태희
연출님의 전작인 <아이엠파인투>를 재밌게 봤어요. 특히 무대에 극중 인물과 배우가 같이 있는 게 좋더라고요. 사회적으로 분노와 증오가 들끓는데 저는 아직 분노와 증오가 뭔지 모르고 있던 때였어요. 제 안에서 사회적 이슈나 개인적인 문제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아요. 무대 위 배우님들도 그런 혼란을 토로하고 계셔서 저는 극중인물보다는 오히려 배우님들한테 감정을 이입하면서 봤어요. 그래서 이 작품도 그런 걸 기대하면서 왔는데, 전혀 다르더라고요.
노기용
제가 반대했어요. 사실 나의 진짜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배우인데 배우가 작품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좀 불편하기도 했고요.
부새롬
<아이엠파인투>의 경우에도 사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이 다 불편해했어요. 일종의 가면 없이 무대에서 온전히 자신의 말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해서 많은 시간에 걸쳐 설득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발견한 게 당사자는 앉아있고 다른 배우가 그 배우 개인의 말을 대신해주는 걸로 처리했었죠. 저는 그걸 ‘배우의 시선’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걸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극렬하게 반대를 하고 그러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 이 작품에 배우의 시선이 맞는가. <아이엠파인투> 같은 경우는 사회 일반에서 보편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잡았고 배우 당사자들이 이 사회에서 느끼는 게 뭔지 말해지는 게 의미가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2센치 낮은 계단>이 다루고 있는 복수심이라는 건 굉장히 특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배우의 시선으로 복수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결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형태로 작품을 만들게 된 거죠. 어떻게 보면 좋은 계기를 준 거죠.

조재영김정백석광

질문하기, 상상하기, 구축하기

김태희
연출님이 질문을 제시하시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이 만들어졌잖아요. 어떤 과정들이었는지 듣고 싶어요.
마두영
처음부터 구체적인 인물을 정해놓고 작업이 이루어지진 않았어요. 복수에 대한 장면부터 발표했어요. 짧은 장면이었지만 정말 무수히 많은 장면들을 만들어 와서 발표했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 인물들의 전사가 필요하겠다고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아졌고 그래서 연습실에서 고시원 분위기가 형성되었죠.(웃음) 집에서도 할 수 있지만 연습실 와서 같이 하면 더 잘 진행되는 게 있어서요.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구체화하고 그 피해자 주변인의 역할을 정하고 장면들을 만들었죠. 대략 그런 과정을 통해 발전시켜 나간 것 같아요.
김태희
장면 만들기 작업을 이어서 하다보면 초반에 만든 장면과 지금 버전의 장면들이 결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목록을 보니까 들어가지 못한 장면이 많아서 아쉬움이 남는 장면도 있으시지 않나요?
김정
저는 초반에 정원이가 만들었던 장면이 아쉬워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무대에 투명한 의자가 있었어요. 정원이가 거기 앉았다가 갑자기 의자를 들더니 투명한 의자의 방석 부분에 얼굴을 막 문지르는 거예요. 마치 누군가 죽어가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강렬한 시각적인 인상을 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걸 계속 쓰고 싶었는데 못 들어간 아쉬운 장면 중에 하나에요.
마두영
저 개인적으로는 ‘옥탑방 고양이’ 장면이 아쉽다기보다는 기억에 남아요. 첫 번째 장면에서 제가 연기하는 딸을 잃은 엄마는 딸이 죽은 후 그 딸이 살던 옥탑방에 와서 유품을 정리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잖아요. 원래는 엄마가 처음 딸의 방에 왔을 때 도둑고양이가 몰래 따라 들어와서 이 장면을 설명해준다는 설정을 했어요. 특히 고양이의 후각이 예민하다는 점에 주목해서 고양이의 후각을 따로 형상화해서 그 후각이 돌아다니면서 딸의 흔적을 감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부새롬
그런데 장면을 만들다 보니 형식적으로 너무 어려운 거죠. 결과적으로 고양이 대신 배우가 일종의 해설자 역할을 해주는 식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그런 식으로 배우들이 원래 발표한 장면이 있고 저나 드라마터그, 다른 배우들이 의견을 얹어주면서 지금의 결로 다듬어져 온 과정이었어요.
김태희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오브제나 키워드들도 기억에 남아요. 그건 어떤 필요 내지는 의도를 갖고 만드신 거였을까요.
부새롬
배우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키워드나 오브제나 사운드나 가져온 것도 있고요, 때로는 본인은 그걸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가져왔는데 제가 강화 시킨 것도 있고요. 사실 저희 작품은 완성된 서사를 바탕으로 인물들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관객들이 보기에 인물들을 조금 더 기억할 수 있게끔 붙여 넣은 것도 있어요. 가령 조재영 배우는 장면이 많지 않고 인물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 인물에게 금붕어를 주었을 때 관객들에게 이 인물을 환기시켜주는 게 있으니까요.
김정
또 하나는 저희는 이 작품이 감각적으로 관객에게 가닿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서로 각각의 감각을 담당해서 표현하기도 했어요. 가령 두영 오빠는 후각이어서 담배가 든 소주병이 등장하는 거예요. 또 저는 익사당한 여동생 때문에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어요. ‘숨이 잘 안 쉬어진다’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검은 봉지를 가지고 와서 뒤집어 써보고 그런 식으로 키워드가 발전하게 된 것도 있어요. 극 초반에 비닐봉지 뒤집어쓰고 나오는 장면은 제 아이디어였거든요. (웃음)
부새롬
정원이는 청각과 관련이 있어요. 남편이 차사고로 사망한 후에 아내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는 상태면 그런 증상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두영노기용신정원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백석광
제 장면에서는 용서라는 키워드가 있어요. 처음에는 용서를 부각시키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던 순간도 있었거든요. 왜냐면 우리는 용서의 길로 가지 않는 단계를 짜보자고 했기 때문에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그 부분이 자꾸 밟힌다고 해야 하나,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용서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용서하지 못한 그런 마음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김태희
용서가 되게 잔인하다는 느낌이 마지막에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냥 법적으로 적당한 선에서 처벌해주고 그 벌을 받았으니까 피해자와 그 주변인들이 가해자를 용서해주고 이제 다 끝났으니 모두 다 화합해서 잘 살아보자. 이거 너무 피해자들한테 잔인한 것 같아요.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닌데 강요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가면들의 등장도 기억에 남아요. 그게 저한테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나도 내 감정을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그렇게 표현되는 것처럼 보였어요. 용서나 이런 걸로 해소되지 않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마음있잖아요.
마두영
그 가면의 시작은 재영이였어요. 장면을 만들 때 재영이는 완전 동화처럼 장면을 써왔거든요. 그 중에 한 아이가 요괴를 만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시각화 할지 고민하다가 가면이 나왔어요.
부새롬
처음에는 재영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요괴였는데 지금은 만들다 보다 또 다른 정체성을 구체화시킨 것 같아요. 상징적인 어떤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가면을 들고 들어왔는데 눈앞에 가면이 있으니까 다른 의미로 확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의 상태로 무대에 존재하는 건데, 지금도 사실은 아주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든 추상적인 상태에요. 마음이라고 표현한 그 말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김태희
각 인물들이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 할 때부터 가면들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더라고요. 무대에 등장하는 빈도나 비중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아져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부새롬
사실 복수심, 혹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냥 짐작해본 것 같아요. 어떻게 상상도 안 되고, 이렇지 않을까. 배우들도 다 그럴 것 같아요. 연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보통 배우들은 텍스트가 있어서 이렇다, 라고 자기 확신을 갖고 할 텐데 기댈 데도 너무 없고 힘들 것 같아요.
노기용
저는 심각하고 어둡고 이런 걸 힘들어하고 그래서 늘 좀 재밌고 웃긴 걸 찾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번 공연에 다행히도 생일축하 장면이 하나 들어가서 다행이었어요. (웃음) 연기라 하긴 하는데 뭔가 이런 복수심을 고민하다 보니까 참 웃는 순간이 없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그게 좀 힘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어떻게 살지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뒤로 갈수록 피해자 주변인들이 복수를 위해 가해자의 행적을 추적한다는 설정으로 만들었는데 저는 못 갈 것 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인물이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이는 것이 인물이 아니라 나한테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조재영
조금 다른 지점의 힘듦이지만, 저는 애초에 나이가 어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아주 어릴 때 피해를 당해서 그가 혹은 그녀가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인 거죠. 그런 피해 주변인을 해보고 싶다고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면 발표를 시도할 때도 자연스럽게 동화 같은 것도 나왔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어린 애를 표현하는 것이 자신 있었는데 하면서 후회를 많이 했어요. 오히려 기용이가 맡은 오빠가 죽은 여동생의 또 다른 오빠이자 또 다른 피해주변인의 정서가 더 공감이 많이 가고 연기를 하면서도 제일 편해요. (웃음) 저도 짐작을 해보는 거지만 사실 복수라는 걸 계획하고 실행하는 게 너무 영화 같은 일이잖아요. 대부분은 그 분처럼 매번 술에 의존하든 뭐에 의존하든 그럴 때만 복수심이 막 끓어올랐다가 현실에 와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 못하고 오히려 걱정해주거나 힘들어해주는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 짧은 장면에 그런 것들이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장면이 가장 좋아요. 제 장면도 물론 좋지만.
신정원
어렵죠. 제 경우에는 처음부터 되게 축축 처져요. 두영 오빠가 연기 시작하는 거 보고 있으면 그 때부터 울컥울컥 하거든요. 관객석도 울컥울컥하고요. 특히 제일 마지막에 복수를 실행하고 암전 되었다가 헉 하고 놀라서 깨어나잖아요. 그러면 다시 그 직전의 순간으로 돌아가 있고요. 내가 그 피해자 주변인이라면 매일 이런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감정도 이렇고 연기할 때 기댈 곳도 없고요. 그런데 문득 배우들 각자 역할이 만드는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 같기도 해요. 서로의 이야기에 얹어 가면서 결국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것 같아요.
김태희
서로 한 작품인 것 같다는 말씀이 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작품 보면서 제가 그걸 언제 느꼈냐면, 엄마가 살인범이 잡고 있는 버스 손잡이 바로 위를 잡고 있는 아가씨를 보면서 애가타서 이 버스 안에 살인자가 있다고 소리 지르고 싶어 하잖아요. 그게 비슷하게 몇 번 반복되더라고요. 오빠를 죽인 살인범을 쫓아갔던 동생도 그 동네에 살인자가 살고 있다고 소리 지르고 싶어 하잖아요. ‘여기 살인자가 살아요’ 얼마나 피해자 가족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고 일상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그런 대사들이 모이니까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복수는 용서와 한 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회는 피해자의 용서를 ‘강요’한다.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은 법적 절차로 대체되는데, 사실 피해자가 가족을 잃은 심각한 상실의 경우 법적 절차로 그 상처가 위로되기는 심히 어렵다. 따라서 피해자의 용서는 사회의 안정을 위한, 일방적 요구에 가깝다.
복수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리적 비난, 스스로의 가책 등을 이겨내고 차라리 가해자와 같아짐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복수심은 실제 복수로 행해지기까지 무수한 내적 갈등을 거친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용서와 복수 사이의 심연을 더듬어 보는 것, 그뿐이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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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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