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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페미니스트 연극인들의 ‘나이브’한 대화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송이원_연출가

제144호

2018.07.19

참여자
나희경: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기획자·페미씨어터 대표
방혜영: 연극집단 공외 <우리집에 손주며느릿감이 온다> 작·연출·출연
이리: 여기는, 당연히 극장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작·출연
임성현: 쿵짝프로젝트 <예수고추실종사건> 작·연출

송이원
‘연극이 끝난 후’ 코너가 보통은 한 공연을 관람하고 해당 공연 프로덕션과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각기 다른 작품을 올린 세 분과 페스티벌 기획자님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대화 형식이 처음이다 보니 어떤 시간이 될지 떨리기도 또 설레기도 하네요.
나희경
저는 오늘 인터뷰 조합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축제 기간 중에 서로의 공연을 모두 본 사람들이거든요.
송이원
그래요? 오늘 인터뷰는 제가 진행을 안 해도 되겠는데요? (웃음) 서로 궁금하신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점만 나누어도 인터뷰가 풍성하겠어요. 음. 그래도 진행은 해야 하니 제가 간단한 감상을 나누며 첫 시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세 분의 공연을 보면서 물론 여러 감상이 들었지만, 일단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웃음의 결이 다 달랐달까요. 세 분의 유머 코드가 제각기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리
방혜영 연출님의 <우리 집에 손주며느릿감이 온다>에 되게 큰 ‘똥 개그’가 있잖아요. 그게 나오는 순간 ‘저건 못 이긴다’ 싶었어요.
방혜영
저는 김영준 배우 M자 탈모 얘기할 때 관객분들이 웃으셔서 미안하더라고요. 웃으라고 넣은 건 아니고 배우 맞춤형으로 리얼리티를 살려 쓴 거였는데…. 사실 웃기려고 한 건 ‘배달의 민족’의 광고문구 “가재는 게 편이고 나는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 그땐 아무도 안 웃었어요.
송이원
임성현 연출님의 <예수고추실종사건> 공연 같은 경우는 제가 대만에서 오신 ‘여성연극페스티벌’ 기획자분들이랑 같이 봤거든요. 마리아의 ‘마’가 ‘마귀(魔鬼)’의 ‘마’ 자 아니냐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다 웃는데, 어떻게 해도 통역을 할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어요.

마리아(실성한 듯 웃으며) 어차피 말해도 안 들을 거잖니?
베드로당신, 마리아의 ‘마’자도 마귀 ‘마(魔)’ 자 아니야!?

막달레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 스탑 모션. 막달레나 혼자 방백.

막달레나(방백) 아시다시피 마리아는 영어 이름이죠. 여기는 지금 팔레스타인이구요. 저희는 지금 한국어로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1세기 아람어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학자들에 따라선 저희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사용했다고도 해요. 중요한 건, 저 베드로가 지금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하고 있단 거죠. 개새끼….

<예수 고추 실종사건> 中

이리
뭔지 알아요. 제가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시리즈로 일본에 공연하러 갔을 때 난교의 ‘난’ 자가 어려울 ‘난(難)’ 자다, 이게 영어로 번역이 안 돼서 아주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방법을 찾으려고 진짜 안간힘을 썼는데 불가능했어요. 아무튼 정말 취향 저격이었어요.
임성현
저도 난교 때 엄청 웃었어요.

아버지는 “연극하면 난교하고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냐.” ‘연극하는 거 존나 짱인데?’ 연출 어머니는 “연극하면 뒷주머니에 대본 꽂고, 막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 아니냐.” 막상 연극을 하고 나서야, 알았죠. 난교의 ‘난’자가 어려울 난이라는 걸.

<미아리고개예술극장> 中

이리
아 ‘난교의 난은 어려울 난(難)이다’ 이게 원래 목소가 얘기한 거거든요. 자기에게 크레딧이 있다는 걸 공식적인 자리에서 꼭 밝혀달라고 얘기했는데,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그리고 <미아리고개예술극장> 공연에서도 밝혔듯이 제가 한때 ‘여호와의 증인’ 출신이라 성경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이 정말 재밌었어요. 베드로와 막달레나, 요한, 야고보가 같이 있는데 전형적인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남자 선배랑 여자 후배인데, 좀 센 여자 후배가 대립하는 듯한 모습이 정말 전형적이더라고요. “아니야….” “밖인데요?” 뭐 이런 거.
송이원
그것도 결국 번역에 실패했어요….
임성현
사실 대본이 제가 재수학원에서 데스크 보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학원에서 막 써놓고 배우분들께 드렸던 건데 욕을 엄청 먹었어요.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냐’,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무섭다’ 식으로요. 그런데 저도 사실 그 장면을 제일 못 보겠더라고요. (웃음)
송이원
뭐랄까요. 그래도 본인이 밀고자 하는 게 있다면, 특히 그것이 웃음과 관련된 코드일 경우에는 자신 있게, 또 용기 있게 외로운 길을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이리
사실 그런 순간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웃기려고 벼르던 대목을 했는데 안 터졌을 때. 아, 이 시리즈의 공연에 제가 춤을 추다가 객석에 손가락 총을 쏘는 게 있거든요. 한 번도 반응이 없었어요. 근데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첫날 공연에서 관객분한테 '빵' 했는데 관객분이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윽'을 해주시더라고요. 근데 다른 관객들은 또 아무도 모르고 저희 둘만. 하면서 너무 웃겼어요. ‘지금 저한테 뭐 하신 거예요?’ 같은 느낌이랄까요.
송이원
극장이 아무리 친밀하고 내밀한 공간이라지만 이렇게 내밀할 수 있을 줄은 또 몰랐네요.

이리나희경방혜영임성현

연극집단 공외 <우리집에 손주며느릿감이 온다>

송이원
방혜영 연출님께서는 지난 2017년 ‘권리장전 국가본색’ 때도 비슷한 제목으로 공연을 하셨는데, <우리집에 –이/가 온다>는 시리즈로 진행하실 예정이신가요?
방혜영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저번 ‘권리장전’ 페스티벌에선 <찾아가는 대통령: 우리 집에 문제인이 온다>를 통해 동성혼 법제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어요. 그러다 앞으로 하게 될 <우리집에 활보(활동 보조)가 온다>나 <우리집에 증인(여호와의 증인)이 온다>처럼 <우리 집에 –이/가 온다> 시리즈를 ‘인권 시리즈’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관심 있는 소재들을 하나씩 다 건드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에 시달렸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성폭력과 또 이와 관련된 제3자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고요. 저는 가해자 자체도 문제지만 걱정을 표방한 2차 가해에 더 관심이 많아요. 생활 속에서의 태도가 연관이 되는 문제니까요. 저는 한국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폭력적인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 아닌 듯 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싶더라고요. “일 크게 벌이지 마라”, “자리 봐가면서 해라” 이런 말들이 저는 정말 폭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송이원
관심에 대한 참여도의 정비례일까요? 이번 낭독 공연에서는 작과 연출 또 출연까지 모두 겸하셨어요.
방혜영
저는 이 연극제가 참가 지원을 받는다는 걸 마감일이 지나고 알게 됐어요. 알았다면 신청을 했을 텐데 싶어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딱 한 번 공연하였던, 그래서 아쉬웠던 작품을 낭독으로 하자는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옳다구나 하고 물었죠. 이전 공연 때는 ‘방선자’ 역이 제가 아닌 다른 배우분이었는데 이번엔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 또 좋은 기회를 놓치나 싶다가 “그냥 연출님이 해” 이래서 ‘내가 해볼까?’ 하다가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이리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걱정이 됐어요. 연출님과 할머니 ‘장선자’ 역 두 분이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연기를 하면서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왜냐하면 저도 전에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이란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 제가 개가 없어져서 계속 개를 찾는 역할을 하면서 되게 힘들었거든요. 거리를 두고 작업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심리적인 건강이 염려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방혜영
대본 쓰면서도 울고, 사실 공연 날도 제가 그렇게 빨리 울면 안 되는 거였어요. 대사가 없는 사이에 연출의 역할로 돌아오게 되어서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가 지문에 나와 있는데 벌써 울어서 어떡하지 싶더라고요. 그리고 할머니 ‘장선자’ 역의 임정아 배우님 같은 경우는 신기했어요. 연습을 하면서 뒷부분 대사가 나와서 눈으로도 안 읽어보고 바로 읽었는데, 처음 본 텍스트인데도 다 아는 것 같이 읽더라고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서를 알고 있는 게 좀 슬프기도 했어요. 그전 공연에서 ‘방선자’ 역을 했던 박승희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사람이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나희경
혜영씨 공연 때는 사실 걱정을 좀 했어요. #MeToo를 주제로 한 이야기이니까요. 연극계에서 세월호 만큼이나 #MeToo가 큰 사건이라고 생각을 하고, ‘세월호 페스티벌’ 같은 경우도 처음에 고발적인 연극에서 드라마 형식으로 가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잖아요. 그런데 시기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관련 주제가 드라마로 다루어졌고, 물론 저는 기획자로서 이게 맞다고 생각해서 일단 하자고는 했지만 사실 걱정은 좀 있었죠. 관객이 어떻게 볼지는 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공연이 상연되고는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리고 관객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안심했던 것 같아요.
송이원
저는 제일 뒷자리에 앉았는데 중간중간 다른 관객분들의 코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고 눈물 닦는 제스처도 보았던 것 같아요. 공연을 보고는 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껏 너무 쉽게 범주화를 시켰던 거죠.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서 이 비극은 제국주의와 전쟁 성노예의 문제다, 라고 감히 일반화하여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 <아이캔스피크>나 <허스토리> 등의 영화들을 거치면서, 또 올해 초의 사건들과 연출님의 작품을 보면서, 아주 오랜 시간 피해와 폭력의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피해생존자로서의, 그러니까 주체로서의 발화 경험이 한국에서 이야기된 적이 없구나 싶더라고요. 어떤 피해와 희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피해 이후의 발화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쿵짝프로젝트 <예수고추실종사건>

송이원
<예수고추실종사건> 같은 경우 제목부터 워낙 강렬하다 보니 공연에 대한 리뷰들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 준비하면서 트위터나 블로그 같은 SNS에 작품을 검색해 봤는데, 기독교 진영과 관련 미디어에서 ‘한동대 출신에 목회자의 아들이 <예수고추실종사건>을 공연한다’ 이런 글들을 게재한 걸 보았어요.
임성현
졸업하기 직전에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공부를 하게 됐어요. 저는 제가 나름대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성경을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어쩌다 최초예술지원에 선정돼서 2017년에 처음 공연을 올리게 되었는데, 쓰고 나서도 또 이번에 낭독 공연 준비를 위해 다시 읽었을 때도 '내가 되게 기독교적으로 썼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보시면 거리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송이원
조금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되나 싶은데, 당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어요?
임성현
처음엔 제목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렇게 해도 되냐"고, “거부감이 든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초연을 보고서는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공연은 기독교인들이 봐도 되는 공연이라고 하셔서 크게 갈등은 없었어요. 올 초에 기독교계에서 갑자기 기사도 뜨고 여러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는데 부모님은 오히려 편을 들어주셨어요.
나희경
공연 내용이 전혀 비하적인 내용이 아니니까요. 사실 처음에 낭독 공연을 제안할 때 또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까 봐, 물론 설명하면 되긴 하지만 귀찮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제목을 감추고 할까, 같은 얘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결국 제목 그대로 가게 됐죠.
송이원
공연이 질문하는 바가 정말 좋았어요. 오히려 더 본(?)모습의 예수를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약자와 소수자를 위하던 예수가 왜 생식기 하나에 구애를 받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이리
저는 <예수고추실종사건>이 여러 레이어로 진짜 재밌었던 게 아무리 봐도 한국 사람인데 내가 요한이다, 베드로다, 마리아다 이러고 있으니까 그냥 거기서부터 의미 발생이 막 되더라고요. 그리고 예수에게 성별이 있냐 없냐를 얘기하면서 천사 역과 고추 역은 또 남자가 1인 2역으로 맡는 것도 재밌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성경을 읽으면서 천사의 존재가 가장 의문이었거든요. 이 연극에서 천사를 남자가 하고 있는 게, 그리고 남성이고 무언가를 주는 천사(가브리엘)와 그걸 받아 잉태를 하게 되는 마리아의 구도가 정말 재밌었어요.
나희경
<예수고추실종사건>은 이틀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정말 달랐어요.
임성현
첫 공연 때 대실수가 나와서 그 환호성은 격려와 위로의 환호성이었어요. 그때 솔로 곡을 부르는 천사가 등장을 하면서부터 음이탈이 났어요. 그 후로는 잘 부르겠지 싶었는데 계속 음이탈이 나다가, 앞에 네 명의 배우들도 노래를 부르다가 빵 터지더라고요. 그래서 관객들이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송이원
어쩌면 그것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인 것 같아요. 제가 본 회차가 그 공연이었는데 배우들이 빵 터지면서 인물에서 배우가 될 때 웃겨 미칠 것 같더라고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나?
임성현
그날은 그냥 ‘웃었으면 됐지’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날 아침에 너무 분하더라고요. (웃음)

여기는, 당연히 극장 <미아리고개예술극장>

송이원
이리 배우님은 <혜화동1번지>에 이어 일본에서의 을 거치시고, <미아리고개예술극장>으로 시리즈를 세 편이나 이어 오셨어요. 방대한 대사 분량과 함께.
이리
잠깐 공연의 맥락과 배경을 설명드리자면, 2016년 '혜화동1번지' 가을 페스티벌 초연 때 페스티벌의 주제가 '주거'였어요. 그때 제가 옥탑방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연출이 집에 놀러 왔었거든요. 제가 옷장이 없고 캐리어에 옷을 쌓아놓고 살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대본으로 써서 공연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대요. '혜화동1번지' 페스티벌 때는 제작비가 없었지만 배우가 한 명이면 그래도 나한테 몰빵이니까 ‘적게 받진 않겠다’ 싶었죠.

(일동 공감의 웃음)

이리
그래서 그 공연을 했었고, 올해 초에는 고주영 PD님이 일본의 TPAM에서 공연을 해보면 어떻냐고 해서 BankART Studio NYK kawamata Hall 극장에서 했었고요. 사실 ‘페미씨어터’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고 ‘화가 많아서 시작’해야겠다는 유튜브의 영상도 봤어요(https://youtu.be/kDz9ckiDwac). 그래서 저도 화가 많은 사람이라…. (웃음) 공연의 성격도 그렇고,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가를 결정했어요. 첫 회 때부터 해서 쭉 하는 게 좋지 않냐 싶어서 기쁘게 하게 되었습니다.
나희경
배우님 얘기를 들으니 2016년 초연 때가 기억나요. 그때 혜화동1번지 근처 연우소극장에서 셋업하고 있었는데 구자혜 연출님이 와서 "여기 혹시 조명 삑삑이 있냐"고 물었던 거.
이리
그때 극장 구석에 비가 막 새는 거예요. 사고 날까 봐 조명기를 다 다시 확인한 거였죠.
송이원
2016년 초연 땐 비 새는 반지하에서 옥탑방 이야기를 하셨네요.
이리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이 작품을 하기로 했을 때에는 대관이 안 정해져서 극장 이름이 공연 제목이니까, 공연 제목이 안 나오고 있었어요. ‘빨리 공연장을 잡아야 제목이 나올 텐데’ 걱정하고 있었죠. 그런데 구자혜 연출이 갑자기 아르코대극장 어떻냐고, ‘40대 여성의 1인극을 아르코대극장에서 상징적으로 해보자’라고 했었는데, 대관 신청이 홀랑 떨어졌죠.
나희경
처음엔 페스티벌 전체 대관을 다 아르코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으로 했었어요. 떨어져서 극장을 다시 찾은 거죠.
방헤영
이렇게 크게 판 까는 분들이셨군요. 저는 보면서 이 시리즈를 10년 주기로 쉰 살에 한 번 하시고, 예순에 한 번 하시고, 이러면 되게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리
그러면 그건 그냥 신작인데…. 대사를 처음부터 다시 쓰고 외워야 돼요. (웃음)
나희경
저는 어떤 맥락으로 봤냐면, 그동안 저희가 브라운관이나 공연에서 한정된 캐릭터의 여성만 보아 왔잖아요. 나이 든 여성을 보지 못했… (사이) 미안해요.
이리
나이 든 게 아니라 어리지 않은 사람이죠. 40대가 사실 나이가 든 건 아니거든요. 제일 일을 많이 하는 나이인데, 특히 여성 배우의 경우엔 나이가 많이 든 것으로 치부돼요.
나희경
강력한 하나의 롤모델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방송에서도 그렇고 공연에서도 이런 작품들이 많았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예전에 트위터에서 ‘30대 이상의 퀴어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 식의 트윗이 있었는데, 거기에 30대 이상의 퀴어 분들이 멘션을 보냈어요.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직업은 뭐고’ 이런 것들이 계속 쌓였거든요. 그게 되게 인상이 깊었어요.
이리
저도 봤는데 저는 거기 멘션을 못 달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사회경제적으로 20대 때부터, 물론 일은 오래 했으니까 경력이 쌓이면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20대 때랑 큰 변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멘션은 안 보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못 보냈어요. 방혜영 연출님의 작품이 #MeToo 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면 저희 같은 경우는 초연이 2016년이었고, 방향이 잡히게 된 계기가 사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었어요. 그래서 무대에 포스트잇이 등장하는 건데, 방범창 같은 얘기가 그런 맥락에서 쓰인 거죠. 비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남성과 여성 간에 40% 가까이 차이가 나는 소득 격차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겠지 하는 식으로요. 약자고 계급이 낮거나 소수자일 때 삶에 더 많은 돈이 들잖아요. 좀 더 보안이 되어 있는 집에서 살아야 되고, 비혼이기 때문에 세제 혜택 같은 것도 받을 수 없고, 좀 더 가난하니까 전세금이 아닌 월세가 계속 나가는 거고. 이런 식의 그물망이요. 그런데 이번에 공연을 하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지금’ 해서 충분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약자로서의 여성과 성소수자, 여성의 경제력, 비혼인 삶의 불안정성, 이런 얘기는 계속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런데 지금 이것만 가지고 얘기하기엔 부족하다 이 느낌이 공연 전 주와 첫 주에 걸쳐 들었어요. 구자혜 연출이랑 ‘한국에서는 이 공연이 적시성이 떨어진다’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성폭력에 대해 발화를 해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을 하는데 저희 대본엔 그런 내용을 암시하는 내용만 있지 주거에 대한 불안정성이 중심이거든요. ‘이런 암시 정도로는 불충분하다’, ‘좀 더 직접적인 언어로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들을 나누며 아마 이 시리즈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을 나눴어요.
송이원
말씀하신 맥락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태도와 여러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피해자의 당사자성과 이에 대한 연대뿐만 아니라, 척박한 사회환경에서 나름의 길과 방법을 찾아 생활을 하고 계신 게 되게 멋져 보였거든요. 그렇게 본인이 띄울 수 있는 거리를 두고 희화화하면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게, 저는 그 태도 역시 지금의 한국에서도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희는 계속 어떤 고발도 해나가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웃으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

임성현
시의성에 대해 말씀하셔서 저도 생각이 났는데, 첫 공연 사흘 전에 저도 이리 배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이 공연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생각을 런스루를 보다 불현듯 하게 됐어요. 희경 PD님으로부터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조금은 하기 싫다는 마음도 왜인지 모르게 들었는데, 그날 이해가 되더라고요. 문제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대본의 문제를 발견했어요. 2016년도에 대본을 쓸 때 저의 태도 자체가 되게 계몽적인 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날 대사를 좀 많이 지우게 되었고요. 둘째로는 시대가 1년 사이에 많이 바뀌어서, 작년만 해도 연극계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룬 작품도 많지 않았고, 이런 주제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이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리
아까 희경 PD가 세월호 얘기도 하셨는데, 그 후엔 검열 사태가 터졌고, 이번에는 #MeToo 고발과 후속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자꾸 연극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의제를 선점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세월호 공연해야 되고, 정권에 대한 비판도 해야 되고, 검열에 대한 반대도 해야 되고,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돼요. ‘우리 돈 못 번단 얘기는 언제 하지?’ 그리고 요즘에 드는 생각인데, ‘선배들은 똥을 먹어라’ 이 두 가지를 정말 하고 싶은데 그걸 얘기할 틈이 없어요. 의제가 계속 선점당해 있어서. 물론 ‘그걸 남들이 다들 이야기하고 있고 그 이야기가 중요하니까 나도 지금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건 아닌데 그냥 제 정신이, 우리 작업자들의 정신이, 그 의제에 점령당해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그 사건들과 관련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창작자들의 공연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창작의 의제를 오히려 사회 쪽에서 먼저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항상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니까, 간신히 그 발끝 정도의 작업들을 내놓고, 그걸 또 뛰어넘는 사건이 터지고….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이미 다 지나간 일들이 되며 공연의 유통기한이 끝나는 거예요. 아무튼 저는 한국 사회의 개신교 문제도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보수층이 더 이상 기댈 의제가 없으니까 이제 이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예수고추실종사건>이 되게 시의적절한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송이원
돈이 안 되니 거대 자본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매체이고,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 말을 하는 것이기에 연극은 자유롭게 지금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라는 합의가 한편으로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이 과정과 분위기 속에서 연극은 전위적이다, 뭐 이런 거로라도 위안을 해야 되는 건지. 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연극이란 무엇이고 이것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는 말이네요. 오늘 직접적으로 ‘페미니즘 연극제’의 취지나 방향성 등을 다루기보다는 각각의 작품에 대한 감상으로부터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까지 유연하게 이어지는 그물망 같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희경PD님께서 이 자리를 마무리해주신다면요?
나희경
글쎄요. (웃음) 음. ‘페미니즘 연극제’는 되게 나이브해요. 그런데 저는 그걸 기본 태도로 가져가고 싶고, 페미니즘이라는 게 정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송이원
이번에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나희경
내년에도 이분들을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송이원
내년에 꼭 2회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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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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