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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지운 존재들, 그리고 다시 쓰기

극발전소301 <소년공작원>

송이원_연출가

제146호

2018.08.23

극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앳된 소년들이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무대와 세상을 향해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열 살 남짓한 나이를 밝혔고,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태어나 어떻게 자라왔는지, 또 그런 자신에게 ‘어머니의 국수 가게’는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떤 의미일지를, 수줍지만 한껏 부풀어 외쳤다. 세상에서 가장 구체적인 마음이란 게 만약 있다면, 대통령이 되었든,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든, 혹은 세계 제일의 국수 가게 사장이 되었든,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는 아이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리고 1972년, 그들은 경기도 파주의 한 폐공장에 모이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인들에 의해 끌려와 감금당하게 되었다. 국수 가게를 마음에 품었던, 달리기 선수를 꿈꿨던,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또 동네에서 신발을 닦던, 그런 아이들. 이렇게 품어온 삶도, 생김새도, 심지어는 억양도 모두 달랐던 네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이름과 삶을 박탈당하며, 그 자리에 “빨갱이 개새끼들”이란 (분단)국가의 증오를 대신 새겨넣을 것을 강요당하였다. 소년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도, 또 직접 겪은 적도 없었던 ‘빨갱이’의 존재는, 그들의 삶과 몸에 떨쳐지지 않는 생채기를 새겼다.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페스티벌의 여섯 번째 참가작 <소년공작원>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남으로부터 북으로 파견되었던 특수임무수행자, 즉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 기반의 연극이며, 제목에서도 보이듯 대다수가 비자발적으로 징집된 미성년자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있지만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 2018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해 당사자인 국가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소년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극발전소301’을 만나보았다.

송이원
대략 15년 전에 영화 <실미도>를 통해 북파공작원이라는 존재가 있었단 건 알고 있었는데 미성년자로 이루어진 소년공작원의 존재는 오늘 이 공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김성진 작가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김성진
이 소재를 제가 먼저 생각한 건 아니고 정범철 연출님께서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조사해서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건 연출님이 말씀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범철
이번 ‘권리장전2018_분단국가’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면서 '분단국가'라는 큰 주제 아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었어요. 2015년에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서 ‘소년 북파공작원(978회)’에 대한 이야기를 방영했었고 그때 방송을 보고 사실을 알고는 있었는데, 그러다 이번에 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싶더라고요. 그래서 김성진 작가에게 이 소재로 작품을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송이원
작품을 보면서 소재에 대한 조사가 아주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사망하지도 않았는데 사망 처리가 되어서 주민등록이 없어졌었다거나, 그래서 실종된 형의 이름을 빌려 살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이름만 등장하는 형은 왜 실종되었던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일기도 했는데, 어쨌든 조사하실 때 접근 가능한 자료는 많았나요?

김성진

김성진
사실 많이 없었어요.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렇고, 인터뷰도 그렇고, 당사자분들이 많이 언급하려 하지 않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료 조사가 좀 힘들더라고요. 작품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시대적 배경 같은 건 세세하게 조사가 되어 있는데, 한 인물의 삶과 관해서는 픽션이 많이 가미된 작품이에요.
작품 속에 주인공 ‘대수’의 실종된 형이 '대식'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잖아요. '대식'이라는 분은 실존 인물이시고, 그분의 성함을 살짝 바꾸고 이야기를 덧입혀 작품을 일차적으로 완성지었었는데, 수정 과정에서 연출님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성함을 언급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식’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달리기 선수를 꿈꾸던 ‘대수’는 북파 공작 가운데 함께 훈련받은 친구들을 모두 죽음으로 잃게 되고 자신 또한 다리 한쪽을 다쳐 절게 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어떻게든 ‘이후의 삶’을 되잡아 보고자 하였지만 국가에 의해 이미 사망한 사람으로 처리되어 주민등록이 삭제되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실종된 형 ‘대식’의 이름을 빌려 최소한의 ‘사회적인 삶’을 살아나간다. 학교를 다닐 수도 없었던 ‘대수’는 접시닦이와 당구장, 나이트클럽 화장실 청소 등의 일자리를 전전하는 와중에 형 ‘대식’의 이름으로 ‘다시금’ 입영통지서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송이원
이야기의 힘이랄까요. 픽션이지만 한 인물의 삶을 극장에서 직접 보고 겪으니 이게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국가폭력에 의해 한 사람의 삶이 망가진 구체적인 비극으로 다가왔어요. 극 후반부에 ‘대수’가 겪어온 소외당한 삶과 한국의 근현대사가 영상으로 동시에 제시되는데 심정이 되게 복잡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아직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계속 이야기되어야 하는 점도 있지만, ‘대수’의 이야기를 오늘날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정범철

정범철
그동안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고, 그 사이사이에 국가적인 큰 사고들이 계속 있어 왔잖아요. 그런데 국가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 와중에 그 안에 있는 한 개인의 삶은 우리가 주목을 안 하지 않았나 싶어서 대비를 시키고 싶었어요. 국가라는 존재가 정말 미숙하고, 제대로 대비하지도 또 처리하지도 못 한 일들이 이렇게 많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의 권력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개인을 이제는 우리가 좀 직시하고 알아야 하지 않나, 이런 관점에서의 대비를요.
송이원
국가가 미숙하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매우 공감되고 씁쓸해지네요. 개인적으로 갑갑하고 가슴 아픈 지점은 그 부분이었어요. 극 중의 ‘대수’로 대표되는 소년공작원들은 국가가 나서서 지우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또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작품에서는 사적 보복이라는 결말을 선택하게 되었고요. 출구가 없는 느낌이었어요.
김성진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갑갑하다고는 생각을 안 해요. 이 나라가 참 웃긴 게, 목소리를 내야만 그에 따른 보상이나 배상을 하거든요. 북파공작원의 경우도 영화 <실미도> 이전에는 전혀 배상이 없었는데 영화를 계기로 국민들이 많이 알아가니까 일부이고 아주 조금이지만 배상이 이뤄졌고 그 존재가 인정을 받게 되었어요. 하지만 당시의 소년들은 몰랐기 때문에 계속 외면을 당하고 있는 건데, 처음 생각의 계기를 제공해주신 건 연출님이었지만, 소재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이 작은 극장 공간에서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더라고요. 지금은 나이들이 너무 많으셔서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도 안 하시지만, 작품을 쓰면서 우리가 여기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게 맞지 않나, 그래야 이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크게 작용을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송이원
주인공 ‘김대수’ 같은 경우는 두 분께서 ‘소년 대수(이성민 배우)’와 ‘늙은 대수(도창선 배우)’ 이렇게 두 시점으로 나누어 연기를 맡으셨어요. 과정 가운데 두 배우분께서 소통을 많이 하셨을 텐데, 특히 도창선 배우님께서는 앞의 일들을 직접 연기로 겪으신 게 아니다 보니 어떤 식으로 전사(前史)를 쌓고 캐릭터를 만드셨을지가 궁금해요.
도창선
일단 ‘소년 대수’ 삶 자체의 행적들이 모두 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게 저에게 정서적인 면에서 구체적으로 체득이 되어 있어야만 했어요. 그래서 연습의 시작부터, 그리고 연습하는 내내 제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집중력을 안 놓치고 끝까지 보려고 했어요. 이성민 배우와 계속 같이 호흡했던 거죠. 성민 배우가 곧 저니까, 이 친구의 힘들어하는 호흡들을 최대한 안 놓치려고 노력을 하면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요. ‘소년 대수’가 겪어왔던 모든 것들을 저는 간접적으로 연습실 안에서 형상화하였고, 호흡이나 육체적인 접촉이 생기는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상상하였어요.

도창선

송이원
저는 오늘 첫 번째 줄에 앉아서 공연을 봤는데, 소년들이 상의도 탈의하고 있고, 몸을 많이 쓰면서 또 몸으로 많은 걸 겪기도 하잖아요. 액션 장면도 많았고요. 도창선 배우님께서 연습 가운데 상황을 몸으로 많이 가져가려고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관객에게도 그 감각이 많이 전달되었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맞은 곳이 빨갛게 올라오는 게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되게 아프셨을 것 같아요.
이성민
제가 살이 좀 예민한 편이어서 좀 힘들었습니다. (웃음)
김성진
또 소년공작원 역할을 맡은 배우분들(김형섭, 신진호, 유명진, 이성민)은 다들 거의 10kg씩 감량하셨어요. 리스트를 만들어서 이름도 써놓고 체크를 해가면서 관리를 하시더라고요.
이성민
저희가 맡은 역할이 소년들이고, 작품이 1960-70년대 배경의 이야기이다 보니, 그때는 많이 못 먹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는 잘 먹고 살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배도 많이 나오고해서 다 같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닭가슴살, 바나나, 수박 같은 과일류만 먹고 으쌰으쌰 하면서 술도 잘 안 먹었고요. 다들 평균 8kg에서 10kg씩은 감량을 했어요.
송이원
공연을 봤을 때는 공연 연습만 하셨어도 충분히 10kg이 빠졌을 것 같아요. (웃음) 액션 장면에도 연습 시간을 많이 할애하셨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범철
극중의 액션 장면들 같은 경우는 멋있게 보여주기보다는 그 당시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소년공작원들이 그때 느꼈던 고통이 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송이원
‘소년 대수’를 맡은 이성민 배우님께서는 앞부분의 삶을 살고 도창선 배우님과 일종의 바톤터치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늙은 대수’의 환영 속에 등장한 ‘소년 대수’가 “저는 아저씨를 이해해요”라고 할 때 많은 공감이 되며 여운이 남더라고요. 분명 다른 두 배우지만 두 분이 따로 있는 인물로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이성민

이성민
무대에서 나가서도 계속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장면이 ‘늙은 대수’가 저를 환영 속에서 불러내는 거라고 해석했기 때문에 일부러 좀 천천히 걸어 나와서 그의 ‘환영’ 속에서 그 말을 했어요. 무대에서 쌓인 감정들을 그 밖에서도 갖고 있다가 그 감정을 ‘늙은 대수’에게 담아냈던 것 같아요.
정범철
세상 속 아무도 ‘대수’의 말을 들어주지도 또 믿어주지도 않잖아요. 내 편은 다 떠났고요. 세상에 유일하게 혼자 남은 존재인데, 그렇다면 지금 남은 나의 편은 나 자신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과거의 나와 이야기를 하면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말년의 그 인물을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결국 ‘대수’에게는 자기밖에 없겠더라고요, 이 사람은.

사실과 허구, 그 사이에서

송이원
당시의 고통을 몸소 겪어야만 했던 ‘소년 대수’와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늙은 대수’의 대비도 그렇고, 공연이 여러모로 이중의 구조 내지는 대비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해설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쫓아가는 층위가 있고, 소년들이나 ‘늙은 대수’가 당사자로서 겪어가는 드라마적인 층위가 있는데, 해설자의 입장에서 ‘대수’의 이야기를 최대한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극 중에서 세계관이 바뀌니 모종의 객관화나 거리를 두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두 층위를 분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범철
역사적인 사실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관객분들에게 ‘이게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할 수 있으려면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계속 안고 갈 수 있도록 해설자라는 인물이 중간중간 객관화시켜서 정리하고, 또 그 과정에서 거리 두기가 생길 수 있게 의도하였고요. 이야기 자체에 빠지지 않게끔 성진 작가에게 요구했었고, 이 부분을 중요하게 가져가면서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김성진
다큐멘터리와 극적인 재미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야 되는데, 이 여건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설명하기가 되게 어렵더라고요. 저는 연출님을 믿고 조금 신경을 덜 쓰면서 편하게 썼고, 연출님이 그 지점에서 선택과 결정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얼마만큼을 숨기고 얼마만큼을 노출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깎아도 주시고, 추가도 해주셨고요. 아마 제가 쓴 대로 작품이 그대로 올라갔다면 정말 사실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받아들이기에는 좀 부담스러웠을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걸 관객들을 많이 만나본 경험이 있는 연출님께서 ‘이 부분은 불필요하고, 이 부분은 필요하고’ 하는 식의 선택과정을 맡아주셨기 때문에, 과정에서 조금 마음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웃음) 결과적으로 작품이 잘 나와서 좋았어요.
송이원
쓰신 그대로 올라갔다면 보다 사실적인 형태로 올라갔을 거라고 하셨는데, 사실적이라는 게 사실주의적 드라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김성진
네, 그런 지점도 있고, ‘대수’의 심리상태를 훨씬 더 많이 대변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본이 너무 길었고, 한 인물의 내면에 대한 대사들이 너무 많았어요. 저는 그 세세한 심리를 대사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연출님의 생각은 그림을 통해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인물에 대한 이해는 관객들이 가져가야 할 몫이지, 그걸 배우가 말로 모두 표출해버리면 오히려 그만큼을 못 가져가게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범철
원래 대본대로라면 1시간 반 정도가 나왔을 텐데 최종 러닝타임이 1시간이니까 30분, 한 3분의 1을 걷어낸 거죠. 성진 작가랑 얘기한 것처럼 어쨌든 이게 사실을 전달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만약 사실을 그대로만 전달하면 그냥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중간 지점을 기준과 목표로 삼고 치우친다는 느낌이 드는 건 다 빼버렸어요. 너무 다큐멘터리로 갔다, 너무 꾸민 이야기처럼 갔다, 이런 건 다 빼버리고 그 경계를 선택적으로 잘 유지하려고 많이 걷어내고 추가하고 이런 과정이 있었어요.
도창선
저는 배우로서 이 작업을 하면서 많이 느끼게 된 건, 배우는 배우의 욕심이 있잖아요. 연기, 그러니까 액팅을 하고자 하고, 또 인물을 분석할 때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강박관념도 생기고, 뭔가 항상 더 이해를 해야 할 것만 같고요. 캐릭터와 만나면 이런 것들 가운데 항상 놓이게 되는데, 연출님께서 너무 조급하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게 정확한 타이밍에 코멘트를 주면서 브레이크를 걸어줬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오면서 연출님한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했던 말인데, 보통 ‘사실’이라는 건 무언가가 첨가되거나 화려한 게 아니더라고요. 지극히 단순한 건데, 그걸 자꾸 ‘사실’에 가깝게 가려고 하면서 뭔가를 더하려고 한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조바심 때문일 수도 있고,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요. 그런 지점에서 연출님이 우리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려줘서 연습과정이 신기하고 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아요.
김성진
조금 신기했던 건,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사에 심리적인 묘사가 세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 부분이 전체가 날아가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첫 공연을 보면서 그게 충분히 느껴진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냥 배우분들의 표정에서요. 그래서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배우분들에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송이원
역사적인 사실도, 또 이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도 일단은 비극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준비하셨던 과정과 뒷이야기를 들으니 ‘사실’이란 무엇인지, ‘이야기’란 무엇인지, 또 이것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네요. 당장 어떤 결론이나 좋은 말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확실히 극장이란 공간은 이것들이 ‘만나게 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 초반에 김성진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작은 극장 공간에서라도” 어떤 만남들을 이어가는 게, 나비효과의 첫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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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원

송이원 연출가
‘丙 소사이어티’에서 글 쓰고 연출하는 사람.
eewon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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