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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쓰기, 희곡 읽기, 다른 손으로

‘다른 손(hands/ guests)’ 희곡 결산 수다회 (2)

허선혜

제213호

2022.01.27

지난 몇 개월간 [희곡] 코너에서는 ‘다른 손(hands/guests)’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독자를 만났습니다. 희곡 릴레이를 마치면서 극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일시: 2021년 12월 18일 오후 6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진행: 김은한(극작가), 허선혜(극작가)
참여: 서동민(극작가), 송천영(극작가), 윤소희(극작가), 이철용(극작가)
선혜
안녕하세요. 이렇게 ‘다른 손’ 희곡 작가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좌담회는 공지해드렸던 바와 같이 마니또의 형식을 빌려 진행을 해볼 텐데요. 작품별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고, 자신의 마니또 작품 차례에서는 조금 더 애정을 담아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와 김은한 작가님은 진행을 하기 때문에 실명으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부터 소개하고 돌아가 볼까요? 저는 허선혜라고 하고요. 이번 연도부터 희곡 운영단을 하게 되었고, 오늘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구경이
저는 ‘구경이’입니다. 드라마 <구경이>를 4화까지 봤는데 재미있게 보고 있기도 하고요. 캐릭터를 엄청 응원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닉네임을 ‘구경이’라고 지었습니다.
파란머리
안녕하세요, 저는 파란머리입니다. 마음먹고 파란색으로 염색했는데 일주일 만에 빠져서 한번 지어봤습니다.
희파
저는 ‘희파’입니다. ‘희파’는 SNS 닉네임으로 쓰고 있는데요. ‘희파’ 할 때의 그 발음이 좋아서 희파라고 쓰고 있습니다.
애쉬
저는 ‘애쉬’고요. 24일부터 공연하는데 공연 제목이 ‘애쉬’로 시작되는 것이어서 공연을 알리고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은한
저는 김은한이라고 하고요. 극작가 겸 1인극을 하는 배우입니다. 저는 희곡 운영단 1기를 해서 현재 마친 상태이고요. ‘다른 손’의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사심위원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기획의 작가님들 뵐 수 있어서 조금은 긴장이 돼요. 하지만 기쁜 일이라고 생각돼요.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좋습니다.
선혜
그럼 한 작품씩 차례대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사진01
허선혜
본문사진02
김은한

윤소희 <여기는 당신의 기억의 저장고입니다>
https://www.sfac.or.kr/theater/WZ020700/webzine_view.do?wtIdx=12602

은한
저는 극작 과정이 궁금했어요.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가 있는데, 저는 이것을 창작자의 창작 과정 내면에서 일어나는 거라고 느꼈거든요. 왜냐면, 창작자들은 나 자신이 다 녹아버릴 정도로 창작물을 만들어낼 때 고통을 받잖아요. 이상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다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가의 창작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라는 소설이 떠올랐는데 그건 단순히 그런 이유였어요. 소설에서 작가가 나오는데요. 비행기에서는 글이 안 써진다고 하거든요. 비행기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나의 생각의 속도가 따라오질 못한다고 하는 거예요. 비행기는 가버리니까. 이 작품에서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꽤 SF적인 감각을 받았었는데, ‘지구 자체가 하나의 우주선이다’ 하는 발상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런 이미지들로도 읽혀서 재미있었습니다.
애쉬
저는 지문이 더 집중적으로 읽혔어요. 지문에서 작품의 결이 느껴지는 듯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을 잃은 채라도 발붙이고 사는구나. 달리는 열차, 바뀌는 풍경. 삶의 순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희파
I와 R이라는 인물이 정확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우리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에 더 좋은 것 같아요. 어떤 추상적인 영역의 안개가 잔뜩 낀 공간에서 우리는 인물들의 고통을 짐작만 할 따름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작품의 구조적인 부분과 잘 맞닿아서 되게 흥미로웠어요. 소설 『데미안』을 보면, 새가 알을 깨야 한다고 하잖아요. 작품의 이 인물들이 알을 못 깨고 있는 새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그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 보편적이기도 하고, 디폴트적인 상태이기도 한 것 같았어요. 이상적인 어떤 것을 반복하는 것을 억누르면서 억지로 순응하면서 사는 모습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게 ‘다른 손’이라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비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느껴져서 재미있었습니다. R과 I의 약자가 궁금한데. R은 REAL인 것 같고 I는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나중에 그 뜻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파란머리
저는, 이 뒤에 어떤 장면이 그려질지 궁금했어요. 결국엔 돌아서 다시 만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여러 번 만났던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경이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말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R과 I가 너무 고단하겠다는 게 마음에 확 와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수미상관 구조였는데 ‘지구에 사는 우리들도 이렇게 이상을 잃어버리는 때가 있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혜
저는 혼자 읽을 때는 무조건, I와 R이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보니까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기 전에는 한 문장에 꽂혔었는데요. “너는 사람이 지구에서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매우 실망했어”라는 대사가 반복되잖아요. 저는 어릴 때 ‘내가 세상에서 꺼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대사가 저는 그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반복되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느낌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로 남아버린 어른의 이미지도 생각이 났던 것 같고요.
희파
나라는 존재도 의식하는 내가 있고 무의식의 내가 있잖아요. ‘나는 타자다’라는 말을 어떤 시인이 말했었는데요. 나를 둘로 쪼개 놓고, 나 자신이 게스트로서의 ‘손’으로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여기는 당신의 기억의 저장고입니다> 해시태그 달아보기

구경이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에도 포함이 되어있는데요. ‘고단함’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파란머리
저는 ‘반복과 순환’.
은한
연출이면 의외로, 진지한 톤이기 때문에 배우들에게 연기적으로 익살스러운 걸 요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완화하는 방식으로.
선혜
저는 ‘궤도’. 빙글빙글 도는 이미지가 강렬했던 것 같아요.
희파
저는 ‘망각’. ‘기억을 지우겠습니까?’ 했을 때 결국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본문사진03
윤소희

이철용 <필담>
https://www.sfac.or.kr/theater/WZ020700/webzine_view.do?wtIdx=12301

선혜
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취향인데.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작품들 좋아해요. ‘왼손이 활어처럼 팔딱거린다’ 이런 게 굉장히 흥미로웠고 너무 미우면 오히려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는 말이 생각나요. ‘손’과의 대화지만 결국 내 안에 새겨진 나와 대화를 하는 듯해요. 처음 읽었을 때는 대화가 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 읽어보니 결국 내가 부정하는 나와의 대화구나, 이런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구경이
저는 왠지 모르겠는데 처음 읽었을 때 단서는 없지만 ‘퀴어연극’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는 공감을 많이 하면서 읽었어요. 아무래도 퀴어들은 가족인데도 절연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볼 것 같거든요. 상대 입장에서는 아들이 지금 이상한 주제를 끌고 와서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게 죄책감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공감을 많이 하면서 읽었어요. 엄마가 치매에 걸렸는지 몰랐다고 말하는 부분 있잖아요. 이걸 쓸 때 작가님이 고민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알았는데도 안 갔으면 너무 나쁜 놈 아닌가 하는 고민을 저라면 했을 것 같아서. 누군가는 응원하는 마음에서 그걸 알아도 안 갔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란머리
사실 처음에는, 내용이 잘 안 들어왔어요. 중반에 어머니의 대사 폰트가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제법 나 빨리 내려왔다 생각하고 다시 읽었는데 그제야 저는 ‘선생’이라는 인물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대변인 같은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선생의 대사 중에 “그걸 알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온 거잖아요”라는 말이 있거든요. 이 작품이 명백히 주제가 ‘퀴어’인 것이라면 이 대사가 궁금했어요. 선생이란 존재가 무엇인가. 그래서 저는 ‘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포함해서 해시태그를 미리 달아보자면, ‘소통 불가능성’이라고 달고 싶어요.
희파
이 희곡을 공연으로 올린다고 치면, 필담 장면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구현이 될까 궁금해요. 작품 안에서는 어머니의 말투로 한쪽 손이 말하고 주인공의 말투로 한쪽 손이 말하는데요. 희곡에서는 그걸 쓰면서 말로 한다는 설정인데,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공연에서는 어떻게 더 재미있게 그려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쉬
저는 만화적, 영화적, 정적인 세 가지 버전으로 읽어봤어요. 다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 가독성도 높고 반전이 계속 있어서 작가님이 읽는 사람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는 상상력이 열리는 글이었어요. 한쪽 손으로 얼굴 뭉개는 장면 있잖아요. 근데 “제 손입니다” 말할 때 심장 떨렸어요. 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은한
제시한 분량 사이즈에 맞는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보통 앞뒤를 더 상상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내부에서 이야기가 잘 완결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왜 나를 죽였니”할 때 ‘아, 영락없는 서스펜스다’ 생각을 하다가 나중에 이해와 대화의 과정으로 넘어가니까. 상상했던 맛은 아니었지만 너무 맛있었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괴담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는, 괴담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는 작품 같아요. 작품에서 언급되는 불교 얘기처럼, 자신 내면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사실 강령술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종류의 치유잖아요. 강령술사가 실제로 불러오는지 안 불러오는지 모르지만, 안 불러온다고 쳤을 때도 어느 정도는 떠난 사람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회복시키는 게 있잖아요. 마냥 사기가 아니라요. 그런 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퀴어연극’으로서도, 이 소개를 가져온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쿵짝프로젝트’ 같은 극단이나 ‘극단 동’ 같은 움직임의 메소드가 있는 사람들이, 신체가 분리되는 행동 메소드를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혜
듣고 보니 필담이 어떻게 연출되느냐가 이 작품의 묘미가 될 수 있겠네요. 필담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에. 칠판에 쓸 수도 없고.
은한
그래서 큰 극장에서 아예, 움직임만으로 표현하거나. 스크린 두세 개를 두고 손을 클로즈업해서 연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면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필담> 해시태그 달아보기

구경이
작품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함께 가요, 응원해’.
파란머리
‘소통불가능성’.
은한
저는 가끔 나오는 엉뚱한 종류로 ‘사실 외계인 손 아님’.
애쉬
‘진실노트’. 약간 데스노트처럼요.
선혜
저는 왠지 모르게 ‘손’인 것 같아요. 물론 그냥 왼손잡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왼’이라는 말이 중요하게 다가왔거든요. 소외된 것에 대한 은유도 있잖아요. 그런 방향의 ‘왼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본문사진04
이철용

송천영 <몸>
https://www.sfac.or.kr/theater/WZ020700/webzine_view.do?wtIdx=12585

은한
<몸>도 저희끼리 읽을 때 되게 신기하다,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베케트가 표현하는 방식의 ‘고립’인가 하기도 했는데요. 저는 오히려 만화적인 이미지를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 중에 <도로헤도로>, <체인소맨> 같은 작품들이 지옥에 대한 묘사를 독창적으로 하는데요. 그곳에서 드러나는 지옥의 절망적인 형상들이 있어요. 반면 희곡 속 이 사람들의 대화는 꽤 건조하고 담백해서 흥미로워요. 작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요. 부조리극에서 느껴지는 끝없는 기다림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심위원 중에 한 분이 ‘오이소박이’를 말하는 부분을 좋아했어요. ‘오이소박이’로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되어서요. 이 부분에 대해 듣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부조리극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다른가로 수렴되잖아요. 목만 있고 심장만 있는 삶이라는 것이 제한된 자원에서 제한된 문명으로 제한된 수명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비유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떤 계기로 지금 이 시기에 이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냈을까. 제작 과정이 좀 궁금했어요.
애쉬
이미지로 만들어진 얘기 같았고요. 이미지들로만, 이미지를 연결해가면서 만든 것 같았어요. 무대화됐을 때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좀 있었어요. 시각적으로 거부감이 들면 안 되잖아요. 그런 보편적인 감성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 수 있나 하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희파
저도 은한 작가님처럼, <도로헤도로> 좋아하는데요. 서브컬처에서 다루는 감각과 이미지들이 저도 느껴졌고. 칼 찌르면 튀어나오는 통아저씨가 세팅되어있는 것 같은 이미지도 생각났어요. 이 인물들이 아마도 평생 그렇게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신체의 조건, 재생수로 계속 도와줘야만 하고. 또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그 이미지가 인상 깊었어요. ‘몸’이 중요하구나.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인식까지 확장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은한
설정이 강렬하다 보니까 어떻게 이 대화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던 것 같아요.
파란머리
저는 개인적으로 장르물을 많이 읽지 않아서 지식은 별로 없으나 지금 세대에서 많이 쓰는, 지금 유행하는 장르의 소설들 말고, 19세기, 20세기의 풍이라는 인상을 처음에 많이 느꼈어요. 저는 끝부분에 수염이 “너야?”, “떨어졌어”, “너 거기 있는 거야?”라고 외치는 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몸에 대해서도 앞서서 얘기를 해주셨지만, 저는 작가님이 ‘머리’와 ‘심장’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이유가 궁금했어요. 왜 제목을 ‘몸’으로 고르셨고, 머리와 심장은 있는데 왜 몸은 없는지 그런 것이 궁금했습니다.
구경이
저는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설정이 생소한데 무리 없이 한 번만 보면 다 이해가 되게 표현한 솜씨가 부럽다고 느꼈어요.
은한
설정상으로 통은 안 보인다고 쓰여있는데, 투명한 글라스에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 연출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보여도 재미있겠다.
구경이
저는 옛날에 있었던 일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그러거든요. 그런 상황으로 대화를 쓰신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더 살고 싶은 의지가 있었던 애가 쓰러지는 상황과 더불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네”라는 대사가 재치 있는 대사이면서도 슬픈 대사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극으로 보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습니다. 좋은 의미로 잔인한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혜
제 머릿속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인 것 같아서 굉장히 놀라웠어요. 한 세계를 짜고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잖아요. 신기하다. 이런, 작법을 하시는 분들이 궁금하다. 어떻게 접근을 하시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내 몸이 이미 사라졌는데, 언젠가 다시 생기기를 바란다는 점이 ‘비극적인 희망’처럼 느껴졌어요. 이미 비극이고 앞으로도 비극일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말하는 것처럼요. ‘몸’이 없다는 건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건데 ‘뇌’만 있다면 인간일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몸’이 있어야 인간인가 ‘뇌’가 있어야 인간인가. 둘로 나눌 수가 있는가, 이런 고민이 들기도 했고요. ‘인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한
‘털’의 방향에 대한 것도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를테면, 수염은 머리가 없을 것 같거든요. 옛날에 그런 그림 아세요? 머리털인데 거꾸로 뒤집으면 ‘수염’이고. 하나의 얼굴인데 둘이 대화하는 것처럼 할 수도 있고요.

<몸> 해시태그 달아보기

구경이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시네요’.
파란머리
다들 재치 있게 생각하시는데, 저는 ‘불화’ 하겠습니다.
희파
‘충격’.
애쉬
‘몸과 머리’가 태그일 것 같습니다.
은한
‘오이소박이’요. 왜냐하면, 본연의 몸을 잃고 절여져 있는 상태잖아요. 그래서요.
선혜
‘인간’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사진05
송천영

서동민 <혜수와 올퓌>
https://www.sfac.or.kr/theater/WZ020700/webzine_view.do?wtIdx=12284

은한
작품도 사이즈 감이 좋았어요. 로드무비, 버디무비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오히려 달리지 못하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그들이 뭔가 달리고 달렸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 찾아왔어요. 그리고 사랑에 대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늘 어떤 기사를 봤는데요. ‘인공지능은 정신병에 걸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사고 실험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휴머노이드가 얼마큼 인간과 다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사랑이란 뭘까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이들이 타고 있는 차가 미동도 없다고 하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해봤어요. 그래서 커튼콜을 하기까지가 작품의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쉬
일단, SF잖아요. 이런 장르일수록 읽는 사람들이 작품에 빨리 진입이 되어야 하는데요. 저는 혜수가 “휴머노이드 혐오자야”라고 말할 때 딱 들어가졌거든요. 이 세계 어딘가로. 왜냐면, 저 세계에도 혐오가 있고 차별이 있고 분쟁이 있구나, 그 어디서 시작된 이야기구나, 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그 뒤로 편하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지더라고요. 그 부분이 되게 좋았고요. 같은 맥락으로 또 1인 가구 정책에 대해서 혜수가 얘기할 때도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잘 되었어요.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것에 대한 질문도 들었고요. 휴머노이드가 기억을 통해서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이런 것들을 재미있게 읽었고요. 탐구할 만한 게 많은 소재여서 제 생각을 넓혀 나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희파
액션SF활극 같은 느낌이었어요. 마치 윤여정이 담배를 피우면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미나리>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오히려 차에서 멈춰있다는 제약이 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이들의 대화에서 설정이 드러나는데, 설정에서 확 와닿지 않는 것들도 있었어요. 1인 1가구 정책을 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어요. 로봇 캐릭터 ‘올퓌’가 너무 인간하고 똑같았는데요. 대화나 행동반경이 똑같게 느껴져서 인간과 다른 어떤 변별점이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어요. 결과적으로 이 둘의 대화와 미래의 상을 통해서 동시대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고, 그런 게 SF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해요.
은한
처음에는 아예 동떨어진 미래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노마드랜드>처럼 집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현재의 막막함 또한 느껴졌어요. 그래서 연극화가 됐을 때 되게 조용해도 좋을 것 같고, 요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연출의 스타일을 잘 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란머리
저는 장르를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데 꽤 걸렸거든요. 근데 어렵게 생각할 게 아니고,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이 됐어요. 그리고 은한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길이의 분량으로, 이 시점에 이야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게 마치, 영화였으면 며칠은 둘이 이 오픈카를 타고 다니면서 재미나게 돌아다니는 것이 그려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아니면, 엔딩 크레딧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구경이
약간 정보량이 많은 희곡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기를 잘해주시면 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선혜
저는 미래가 배경인데 들개 떼가 최대의 위험요소인 것이 오히려 신선했어요. 충분히 길들여졌던 동물이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신을 길들였던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인간만 사라지면 지구와 자연이 회복한다는 말이 있기도 한데요. 이런 과정들 끝에는 인간만 사라지고 자연이 남아서 지구가 평화로워지려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기억으로 올퓌가 살아가는데 마치 첫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래서 기계와 사람의 다른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올퓌가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아예 ‘재현’이라고 알려주는데 왜 하필 ‘재현’일까, 머릿속의 기억을 ‘재현’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수와 올퓌> 해시태그 달아보기

선혜
저는 ‘좋아해’.
은한
‘태양열 오픈카’. 오픈카 설정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너무 위험하고, 너무 취약하다.
애쉬
로봇별로 태그를 달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감정형 로봇’, ‘산업형 로봇’, ‘전투형 로봇’ 이렇게.
희파
‘위험.’
파란머리
‘이어지는 사랑’.
구경이
‘로드버디물은 어렵다’.
본문사진06

본인 공개와 나의 작품 이야기

구경이
저는 <혜수와 올퓌> 쓴 서동민(이하 ‘동민’)이라고 합니다. 이 희곡의 이전 이야기나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셨잖아요. 이 작품은 제가 미리 써놨던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희곡으로 옮겨본 것입니다. 아까 ‘혐오’에서 딱 작품에 들어가졌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거 쓸 당시, 코로나에 클럽 가는 거 잘못한 일이지만 왜 하필 언론에서는 ‘게이 클럽 발 코로나 발생’이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또 길거리에서 ‘왜 게이들은 뚱뚱한 사람만 좋아하냐’ 하는 말까지 들었던 상황에서 ‘혐오’라는 키워드를 많이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 것들을 이 작품에 녹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은한
주변 친구들 반응은 어땠나요?
동민
친구들한테는 잘 안 보여주는데, 소설 버전을 편집자가 봤을 때 비슷한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휴머노이드인데 인간의 정지 명령이 안 먹히는 거냐, 이런 건 명확히 해주셔야 한다’ 이런 말도 들었던 것 같아요.
선혜
들개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동민
소설에서 큰 부분은 아니었는데 사람이 급하게 대피할 때, 또 대피하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을 키우다 버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버려진 개들이 세대를 거듭하면 다시 들개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연극에서 강렬한 사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설정하게 됐습니다.
파란머리
저는 <여기는 당신의 기억의 저장고입니다>를 쓴 윤소희(이하 ‘소희’)입니다. 가벼운 대답부터 드리면, I와 R의 의미 아까 맞추셨어요. 원래 혼자만 나오는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근데 기술적으로 진행이 안 됐어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타파하려고 하다 보니 인물이 둘로 나뉘었어요. I가 그 I이기도 하지만 ‘나’ 할 때는 I이기도 하거든요. 구체적인 이름을 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니셜로서 누구에게나 와닿게 느껴지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인물들은 캐릭터성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한
작가님은 작풍이 이런 방향인가요? 아니면 드라마극도 쓰시는데 이런 것도 해보신 건가요?
소희
드라마극을 쭉 하다가, 처음으로 다르게 써본 희곡이에요. 사실 이것은 저의 전사 같은 작품인 것 같아요. 이번 기획 때문에 다시 읽으면서, 제목을 잘못 정했다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것 때문에 제가 ‘다른 손’ 희곡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제목이 다를 수 있겠다 생각을 했어요.
은한
떠오르는 다른 타이틀이 있으신가요?
소희
원래는 타이틀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희파
그럼 제가 말씀드린 것이 마치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소희
감사했어요. 저의 마니또인 줄 알았어요.
희파
안녕하세요 저는 <필담>을 쓴 이철용(이하 ‘철용’)입니다. 저는 청탁을 받고 쓰게 됐는데, ‘다른 손’이라는 주제가 주어지니까 되게 재미있었어요. 주제에 맞게 생각을 쳐내고 쳐내고 쳐내는 것이 뇌를 가속시키는, 부스팅이 되는 느낌이 들어서 쓰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퀴어인 친구들이 있는데 두 명의 친구가 세상을 떠난 일이 있어서 그 당시의 제 정서가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생각을 해보니, 부모와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것을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는 은유로 나타내 보고 싶었었던 것 같아요. 짧은 희곡이지만 제가 애정하는 작품입니다.
선혜
저의 ‘왼손’ 해석 어떻게 생각하세요?
철용
오른손이 주류고 왼손이 비주류잖아요.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왼손잡이’라는 노래도 있는데, 그런 것이 느껴지도록 비유로 썼습니다.
은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만화 <기생수>가 떠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애쉬
저는 <몸>을 쓴 송천영(이하 ‘천영’)입니다. 저는 항상 이런 주제로 써보고 싶었는데 그 세계를 만들기에는, 긴 극이 부담스럽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이 주제를 만났을 때는 이런 세계를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머리 이식 수술을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 몇 년 전에 본 기사인데요. 러시아 어떤 의사가 몸이 불편한 사람의 머리와 식물인간의 몸을 연결하는 수술을 원숭이를 통해서 했다는 기사였어요. 성공 단계고, 인체에 적용해볼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것에 대한 궁금증과 생각이 이 작품을 쓰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 세계의 생각을 좀 더 확장하고 싶은 계획입니다.
은한
‘오이소박이’는 어떤 의미인가요?
천영
인물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했으면 했어요.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요. 또 이미지적인 것들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었어요. 초밥집에서 생선 머리를 빼고 몸을 회치잖아요. 그런 이미지도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 연상으로 ‘오이소박이’가 그려졌습니다.
은한
작품의 기반이 베케트에 가까우신가요, 서브컬처에 가까우신가요?
천영
심사평에서 베케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걸 봤어요. 오히려 그걸 보고 추천해주신 베케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조리극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설정이 그래서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사진: 예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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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혜

허선혜
극작가입니다.
연결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창작살롱 나비꼬리에서 다양한 만남을 위한 기획/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qeqe0321@naver.com
https://www.instagram.com/nabico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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