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잘린목과 이양선에 올라, 뱃머리가 물살을 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마차의 발굽 소리 같아.” 잘린목이 말했다.
  “종이 위로 미끄러지는 만년필 같아.” 내가 말했다.

  잘린목은 보기보다 묵직하여서, 그를 들고 있는 나의 팔이 아리도록 만들었다. 잘린목을 보기 좋게 꿰고 있는 노끈에 지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나는 옷 안감이 젖어 드는 것을 느낀다. 잘린목이 내게로 천천히 퍼뜨리고 있다. 핏빛 얼룩을. 안으로 안으로 이빨을 세우는 잇몸들을. 그럴 때면 나는 동화(同化)를 느낀다. 축축한 기쁨을 느낀다.

  잘린목은 먼 곳을 보고 있다.
  나는 먼 곳을 보려 하고 있다. 잘린목이 보고 있는 수평선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때때로 잘린목과 입맞출 때면, 내 혀가 그의 식도를 뚫고 나와 흐를 것 같다.

  이양선의 뱃머리에는 나와 잘린목을 합친 것보다 수십 배는 크고 무거운 쇳덩이 달려 있다. 그를 내세워 이양선은 북해를 지날 때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기세 좋게 빙하를 무너뜨리며 나아갈 따름이다.

  자꾸만 두 팔이 뚝뚝 흘러내려서, 나는 잘린목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그를 오래 들 수 있을까.
  ……먼 곳을 계속 보여줄 수 있을까.
  ……내 곁에 바짝 둘 수 있을까.

  나는 오래전 나와 잘린목이 함께 샀던 티켓에 적혀 있던 도착지, 서른 자는 족히 되었던 그 항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안내 방송이 모르는 지명을 거듭 부른다. 그 발음은 날이 갈수록 낯설어져 언젠가부터는 한 줌의 들숨 내지는 잔기침으로만 들린다.

송희지

시와 희곡을 쓴다.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등을 펴냈다.

「어떤 여행」은 열한 개의 꼭지로 이루어진 시로, 작품의 포문을 여는 두 개 꼭지를 골라 싣는다. 나의 몸을 여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행할 때, ‘나’라는 건 무엇이고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런 물음이 쓰는 나를 통과했고 몇 개의 텍스트들이 유효기한 지난 티켓처럼 내 앞에 남았다. 최초의 동력을 제공한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에 감사를 표한다.

2025/07/02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