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린목과 실로 많은 곳을 떠돌았다 : 어느 날 우리는 해안 도시의 풍차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원시림의 늪 속에서 천천히 악어 밥 되었다. 어느 날 우리는 뒷골목에서 얼어붙었다. 어느 날 우리는 불탄 금각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휴양지 호텔에서 고국 노래를 들었다. 어느 날 우리는 고국에서 길 잃었다. 어느 날 우리는 바닥이 유리판으로만 이루어진 다리 건넜다. 어느 날 우리는 낙하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낙하하는 사람의 목격자였다. 어느 날 우리는 조롱 속의 무녀였다. 어느 날 우리는 온몸 털을 뽑혀 제단 위에 올려졌다. 어느 날 우리는 먹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닳은 채찍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ALDS였다. 어느 날 우리는 스톤월 인에서 항거하였다. 어느 날 우리는 부자(父子)였다. 어느 날 우리는 천적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네이트론 호수였다. 어느 날 우리는 시신과 돌을 마시는 구덩이였다. 어느 날 우리는 탈영병 신세로 사막의 국경을 넘어 달렸다. 어느 날 우리는 구르다 멈춘 공이었다.
  어느 날 우리는 화장대에 있었다. 잘린목은 한 덩이 찰흙처럼 말없이 눈 감고 있었고, 나는 분과 붓을 들고 앉아, 잘린목을 뚫어지도록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의 만듦새 다듬을지 고민했다. 어떤 것이 그에게 아름다움일까? 나는 처음으로 그의 본형이 궁금해졌다. 나는 처음으로 어딘가에 붙어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의 손끝이 그의 살갗을 쓸어내렸다. 그때마다 이목구비가 듬성듬성 양각되었다. 잘린목은 인간 같기도 했고 아닌 듯도 했다. 나의 남자들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했고 그 전부였던 듯도 했다. 나인 듯도 나의 아기인 듯도 했으나 그러기엔 너무 구멍이 많았다. 돋음과 들어감이 많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잘린목을 더듬으면서, 왼손을 나의 얼굴로 가져가보았다. 나의 왼손은 강물 같은 허공을 오래도록 헤집었다.

송희지

시와 희곡을 쓴다.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등을 펴냈다.

「어떤 여행」은 열한 개의 꼭지로 이루어진 시로, 작품의 포문을 여는 두 개 꼭지를 골라 싣는다. 나의 몸을 여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행할 때, ‘나’라는 건 무엇이고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런 물음이 쓰는 나를 통과했고 몇 개의 텍스트들이 유효기한 지난 티켓처럼 내 앞에 남았다. 최초의 동력을 제공한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에 감사를 표한다.

2025/07/02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