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튤립이나 히아신스, 아네모네 같은
하재연
새해의 첫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의 구근을 주문했습니다. 핑크 임프레션, 크림 칵테일, 오렌지 벌룬, 블루 자켓, 미스트랄 플러스 화이트. 유원지에서 팡팡 터지는 풍선 같기도 하고, 눈싸움을 막 끝낸 아이의 발간 볼 색깔 같기도 한 머나먼 나라에서 온 이름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아직은 한참 남은 봄에 움틀 각양각색의 향기가 창가에 어른거리는 듯했습니다. 튤립이나 히아신스, 아네모네 같은 구근들은 가을 구근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가을에 심어두었다 찬 겨울을 보내고 봄에 싹트는 초록 잎들에서 꽃봉오리가 시작되지요. 해를 넘겼으니 늦은 셈이지만, 좀 늦더라도 봄꽃은 필 테니까요. 조그만 알뿌리들을 흙속에 도도록하게 묻어두고 추위를 함께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새 글들을 읽습니다. 봄이 오면 피어날 꽃의 색깔보다, 그것을 기다리며 상상하는 시간에 스며 있을 향기가 어쩌면 더 강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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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에는 문현식의 동시, 김연필, 이설빈, 이제재의 시와 황지영의 동화, 권여선, 김지연, 남궁지혜의 소설을 싣는다. 이번호의 동시, 동화와 소설에 빠짐없이 나오는 홀로 또는 함께 먹는 장면들을 눈여겨보았다. 스파게티를, 바닐라 셰이크를, 쟁반 짜장을, 끓인 라면을, 절인 양파와 구운 마늘을, 먹으러 가거나 혹은 못 가는 그들. 때로는 우정과 공감을 때로는 지긋지긋한 냄새를 나누는 작품 속 그들의 대화를 듣는 즐거움을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 바란다. “우리가 어떻게 이 낯선 나라에 오게 됐는지”(이제재) 떠올리고 “새장 안에서 새장을 들고 날아오르는 새”(이설빈)를 보여주는 시들과 함께 교차 창작의 형식으로 제작된 흥미로운 협업의 결과(김연필)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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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의 ‘공동(체)’ 코너에는 작가선언 이후 이어진 작가들의 공동체와 연대 활동에 대한 조원규의 깊은 사유가 담긴 글을 게재한다. 당시 작가들의 활동을 “어떤 버거운 증여의 몸짓”이라 말하는 그의 글에서 문학적 증여의 의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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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하다)에서 만날 수 있는 세 팀의 프로젝트는 특히 흥미롭다. 리틀리터 팀의 「딜리버리 킴 셰프가 추천하는 홈쿠킹 레시피」의 근사하고 끔찍한 사진들에, 오늘의 배달 음식에서 나온 플라스틱 포장 용기들의 면면이 겹쳐진다. “모든 게 잘 돌아가고 있다. 전부 정상이다.”는 신호가 의심스럽다면, 선뜻 팀의 「보스토크-6」에서 보여주는 중력과 무중력, 꿈과 비행에 관한 이야기를 꼭 읽어보시길. 파도 팀의 작업은 ‘나’와 ‘우리’의 미래에 관한 서로 다른 상상들을 펼쳐 제시한다. 이번호의 글들이 펼친 다채로운 상상들에 우리의 상상이 함께 깃들어, 이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를 흙속에 묻힌 알뿌리들처럼 무사하고 향기롭게 지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