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바람의 물리학
김유진
초여름이 몰고 온 바람결과 여름 철새들 너머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 자란 백합나무 이파리들은 행여 빗소리가 아닌지 창밖을 살피게 할 만큼 큰 소리로 수런댑니다.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새의 소리도 봄철과는 완연히 다릅니다. 봄 내내 지저귀던 박새 소리 대신 지빠귀 소리가 가득합니다. 간혹 소쩍새 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밤도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사계절의 변화를 두고 개인과 사회와 역사에서의 반복과 변화를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매번 돌아오는 사계절이 선사하듯 반복에서 안정감을 얻으면 좋으련만 정체 속에서 반복이란 퇴보에 가까워 보입니다. 반복과 변화, 퇴보와 진보, 체념과 희망의 이분법이 도돌이표로 흐르거나 시소 타기를 끝내지 않는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새바람이 불기를 기다리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나의 한정된 시공간을 공손한 두 손으로 받들어 다른 지평 위에 올려두고서요. 2차원에서는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3차원에서는 변화로 보이는 물리의 세계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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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에 실린 박은경의 동시와 이선락의 시가 말하는 ‘삐딱함’과 ‘바람’에 눈길이 갑니다. 지구가 삐딱해서 사계절이 생겨났다는데 나라고 삐딱하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바람은 늘 아픈 쪽에서 불어온다면 바람을 일으키는 이는 누구일까요. 장애인 이동권을 말하는 공진하의 동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고단한 노래 구절을 담은 백가경, 고선경의 시에서도 바람의 진원지를 짚어봅니다. 여름에 걸맞게 기이하거나 으스스한 변미나, 김하율, 전석순의 소설에서도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을 고딕 호러에서, 저출산을 타임 슬립에서, 성폭력을 임종 체험관에서 맞닥뜨립니다.
‘?’(묻다)의 ‘책+방’ 코너에서는 ‘책방 오늘’을 세 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소개합니다. 비유에서는 두 가지 고정 질문과 한 가지 자유질문을 ‘책방 오늘’에 전해 듣고 싶은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란히 마련했는데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는 자유질문이 이 코너의 기획 의도를 되새기게 합니다. 문학을 쓰고, 만들고, 파는 모든 과정에 세심한 관심이 깃들기를 또 한번 바라봅니다.
‘!’(하다)에는 이번호부터 올해 공모에서 선정된 세 가지 프로젝트가 연재됩니다. 이번호에서는 ‘안경’팀의 ‘뜻-밖의 오늘’을 선보입니다. 영화 서사의 주변부 인물을 영화 ‘다시 읽기’와 서사 ‘바꿔 쓰기’로 불러내고, 이들의 목소리를 ‘주석 달기’라는 작업으로 구현하는 기획입니다. 배제와 혐오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모색한 이번 ‘하다’‘ 프로젝트 선정작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