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돌봄의 온도

소영현

팬데믹 시대를 통과하면서 마스크만큼이나 익숙해진 것 가운데 돌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자들이 겪는 피해는 언제나 재난 앞에서 더 커지죠. 팬데믹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사회와 국가가 감당해야 할 복지의 책임이 가족이나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졌고,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는 의미의 ‘돌보다’라는 말과 노동이나 서비스와 같은 말과 함께 놓여야 덜 어색해 보였던 ‘돌봄’이라는 말 사이의 간극이 단박에 좁혀졌지요. 돌봄 바깥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면서, 따지자면 저 말들이 언제나 겹쳐진 지대를 가리킨다는 것을 더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말에도 온도가 있다면 돌봄이라는 말에는 체온의 미지근함이 배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요. 돌봄의 시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종종 우리가 잊곤 하는 생명체로서의 종의 한계, 모두가 아프고 병들고 죽는 존재라는 사실의 환기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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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쓰다)는 ‘돌봄, 노동, 환경’을 키워드로 한 비평 특집으로 꾸렸습니다. 루인, 염선옥, 오세란, 오은교, 전승민, 전청림, 최선교, 황유지 여덟 분의 평론가가 청소년 영 케어러(Young Carer)에서 노년 여성의 돌봄 노동까지, 돌보는 이의 자리에서 퀴어-노동자로 이어지는 박탈된 삶의 자리까지 두루 살펴주셨습니다. 문학을 깊이 읽을 때 어떻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존재들이 자리를 마련하는지, 그로부터 어떤 기운이 피어오르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 알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비평 독서가 전하는 서서히 일깨워지는 연결되어 있음의 감각을 찬찬히 음미하시길 권해봅니다.
‘!’(하다)에는 장소통역사 팀과 흡사 팀의 3회차 실험적 협업의 결과물이 실립니다. 「2막, 언어 표현 가능성」과 「ESL」을 통해 문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고민 가운데 하나가 언어의 발견이자 발명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번호 ‘?’(묻다)가 더없이 풍성합니다. ‘공동(체)’ 코너에 기획 원고와 세번째 특별 원고가 함께 실립니다. ‘책+방’ 코너에서는 구미 골목 사랑법을 어린이들과 나누고 있는 그림책 서점이 소개됩니다. 지난호에 이어 ‘담談’ 코너에 「비유-뷰view :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 후속편도 실립니다. 더 많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기약해봅니다. 이번호를 함께 만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올 한 해 《비유》와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와 안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