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곁에, 함께

소영현

미국의 오픈에이아이(OpenAI) 사가 두 달 전 출시한 ‘챗지피티(ChatGPT)’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뜨겁습니다. 학술 논문이나 판결문을 척척 써내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기대되면서도, 문화 예술계에 가져올 거대한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게 사실입니다. 수준급 시나 소설도 써낼 수 있는 능력은 문학의 창작이나 향유, 독서 문화와 출판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왠지 모르게 조급해진 마음으로 저 멀리 허공을 뒤쫓다가 문득 이곳의 삶으로 눈 돌려 봅니다. 팬데믹이라는 막막한 터널을 이제야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많은 부분 아동, 여성, 퀴어, 장애인, 노인, 난민, 이주민 같은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로 채워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문학이 삶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되묻게 됩니다만, 그럼에도 문학이 삶에서 온 것이라면, 문학의 자리는 앞으로도 내내 보이지 않거나 말해지지 않은 고통과 슬픔, 외로움과 두려움의 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유》에 실린 글들을 빌려 말해보자면, ‘서로의 입속에 도토리를 심는 마음’이나, ‘일렁이는 빛과 철썩대는 소리로 상상되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물속 같은 온기로, 곁에, 함께 있는 일이 야말로 언제나 해야 할 문학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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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코너에서 박혜선의 동시, 김혜온의 동화, 김승일, 이제니, 주하림의 시와 김유담, 박민정, 조예은의 소설이 보여주듯, 문학은 내내 고통과 슬픔 곁에 있으며, 그 옆에서 무한히 흥미롭고 유쾌하며 때로 낯설고 무서운 상상력으로 뻗어갑니다. 장은정 평론가는 「연대 실패」에서 문학의 일을 두고 그것이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자신이 누구의, 무엇의, 곁에 있는지/있을지 계속 돌아보는 비평의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묻다)의 ‘책+방’ 코너에서 편집자K는 문학의 일을 기계 미디어 시대의 책에 대한 사랑으로 바꿔 말합니다. 곁에, 함께 있는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리자니, 긴 호흡의 책 사랑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하다) 코너에는 ‘안경’ 팀과 ‘장소통역사’ 팀 그리고 ‘흡사’ 팀의 마지막 작업이 실립니다. 이름 그대로의 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하다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다루지 못하는 아픔이 훨씬 많다는 깨달음으로 아쉬워하면서도 완전한 마무리는 없음을 커튼콜로 보여준 장소통역사 팀의 앵콜 무대와 인사, 시를 찾고 번역하고 함께 읽으며 시와 번역을 향한 ‘무분별한’ 사랑을 알려준 흡사 팀의 협업과 함께, 릴레이 소설을 쓰며 그 작업을 아래로 향해 가는 일이라고 부른 안경 팀 작업 노트의 한 구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삶에서 시작된 문학예술이 어디로 가닿는지 알 수 없지만, 문학예술은 ‘곁에서, 함께’하는 과정과 그 기록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유》가 앞으로도 문학예술의 자리를 넓히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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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사랑해주신 많은 분께 중요한 소식 하나를 전합니다. 《비유》가 웹페이지 시스템 개편을 위해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갖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재정비를 하고 좀더 오래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도록 알찬 기획을 담아 곧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2기 편집위원은 물러납니다. 그간 문학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는 현장에서 문학하는 일로 고군분투한 《비유》 팀과 2기 편집위원의 협업 ‘과정’의 흔적이 《비유》 어딘가에 새겨져 있으리라 믿으며, 그 노고가 《비유》를 좀더 나은 쪽으로 이끌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 《비유》에 많은 기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비유》 공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