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이처럼 사소한 생각

서효인

2023년 11월, 개편을 통해 새롭게 독자를 찾은 웹진 《비유》가 그 두번째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개편 이후 《비유》에 힘을 보태준 작가들의 글이 하나하나 소개될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글이 퍼져나가는 행로를 생각했습니다. 처음보다는 그다음이 그 방향을 가만히 가늠하는 데에는 더 나은 시기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설렜고, 그다음은 조금 신중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웹진이라는 매체를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어느덧 웹이라는 공간은 종이라는 물질보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것이 돼버렸고, 종이에서만 특유의 완고한 의무를 다할 것 같았던 문학이라는 예술도 어쩌면 웹에서 전에 누리지 못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이겠지요. 친숙하고 자유로운 웹에서의 문학 그 너머의 것까지 해내기 위해 웹진 《비유》는 힘차게 걸어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동행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주인공 ‘펄롱’은 부지런히 일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현실의 성취에 기뻐하고, 공동체의 안락함에 기거하는 게 그의 인생에 더 유용할 게 분명하지만, 그의 태생과 성장을 기억해보는 것으로 시작한 그의 생각은 그에게 위험이 될 게 자명한 어떤 윤리적 선택을 결심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가 생각을 그토록 많이 하지 않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결정이고, 그 결정은 그와 그의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선택합니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생각이 그를 그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어쩌면 우리에게 비/합리적인 선택지를 부여하고,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마저 넘깁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생각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일까요. 당당하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요.
  이번 호에 발표될 여러 작품에서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화진의 신작 소설 「다른 사람」의 ‘나’가 특히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요. 마음속에 깊은 동굴을 숨겨놓기보다, 뼈와 살과 털로 이뤄진 인간이기가 더 편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대해 더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에 대해 생각할까요.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필요한 친구를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게 소설에서는 ‘혜수’인가 봅니다. 소설이 궁금하다면 1월의 웹진 《비유》를 꼼꼼히 따라 읽어주시길. 문학 파트에서는 이외에도 강보라, 정선임의 짧은 소설과 박선민, 허주영의 시 그리고 김물의 동시와 이미주, 성욱현의 동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판도’에서는 지난 호 이 시리즈에 대한 편집위원의 글에 이어,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소소문구의 브랜드 매니저 김청의 생생한 글이 실립니다. ‘비평 교환’의 두 필자 오석화, 금동현의 글을 시차를 두지 않고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읽고 보는 사람으로서의 당신의 생각 또한 궁금하군요. ‘해상도 높은 장면’을 읽으며 생각을 더 이어가보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2023년 8월부터 11월까지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화매개실천연구소가 주관한 ‘위험포럼’에 관한 보고이자 르포인 이 글이 우연하게도 아니 필연적으로 앞서 말한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웹진 《비유》를 알리는 글로 새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비밀이지만 어느 정도는 비밀도 아니기에 말하자면 웹진 《비유》는 벌써 여름께까지의 기획을 말하고 있습니다. 덕에 저도 조금은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네요. 우리가 이 공간에서 함께 만들어갈 사건이 기대됩니다. 우리가 나눌 생각의 조각이 더 날카롭길, 우리가 나눌 문학의 온기가 더 뜨겁길 바랍니다. 약간은 거창한, 그렇지만 간절한, 저희의 새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