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서울, 그리고 당신이 있는 곳

권정현

3기 편집위원과 《비유》를 만들어온 지도 어느새 아홉 달이 되어갑니다. 문학의 독자이기만 했던 저는 문예지를 함께 만들며 이전에는 몰랐던 즐거움을 마주하고 있어요. 전시 기획에는 작가와 자주 만나 대화하며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기쁨이 있다면, 지면 기획에는 필자가 그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설렘과 기다림 끝에 글을 받아 읽을 때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원고를 받을 때마다 막연한 주제를 명쾌히 풀어나가는 필자들의 글을 보며 벅찬 기쁨과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개편 이후 처음으로 하나의 주제로 여러 지면을 꾸렸습니다. 첫 주제는 ‘서울’이라는 우리 대부분이 관계 맺고 있는 장소로 정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는 결코 서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서울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서울에 사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서울과 뉴욕의 관계가 다르고, 서울과 부산의 관계가 다르듯이, 서울은 언제나 서울 바깥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관계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속성이 달라지기 때문이겠죠.
  ‘비평 교환’에서는 문학평론가 이희우와 미술평론가 김신재가 서울을 주제로 대화를 나눕니다. 미술과 문학이 서울이라는 지역과 관계 맺는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역시나 이야기는 서울의 옆으로, 밖으로 흘러 나갑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은 시와 소설을 쓰는 김유림과 사진을 찍는 임효진의 협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글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서울의 경계를 더듬어 그립니다. ‘판도’에서는 기획자 이세옥이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에서 『서울 지역문화 리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의 지역 기반 문화예술 활동을 다른 관점으로 살펴봅니다. ‘요즘 이야기’에서는 배우 조화인이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이라는 지역을 신인 배우의 시선으로 조망합니다. 그 발걸음을 따라가며 읽으면 그 도시의 일환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애환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 송수연은 최근의 어린이·청소년 문학에서 중심으로서 서울이 아닌 다른 서울을 재현하는 작품들의 사례를 살펴보며 서울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서울이라는 주제를 정할 때는 예기치 못했지만 서울을 주제로 한 글들은 묘하게도 서울의 삶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게 합니다. 서울에서의 삶은 때로 서울이라는 중심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평범하게 잘 살기 위해 ‘버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일터에 가기 위해 만원 지하철을 견디는 동시에 그 지하철을 함께 타자는 동료 시민의 목소리를 짓밟는 사회도 견뎌야 하는 곳. 결국 타지 못한 만원 지하철을 떠나보내며, 언젠가 서울이라는 열차에 타지 못해 튕겨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곳. 그런 서울에 발붙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은 참 고달픕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호의 문학 작품들도 각자의 힘든 삶을 응원하거나 위로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김성중의 소설은 삶과 동행하는 갈망을 돌아보게 하고, 이선진의 소설은 슬프면서도 빛나는 사랑의 앞면과 뒷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명재의 시는 내내 향기로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텅 빈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임유영의 시는 담담한 말의 이어짐 안에서 쿰쿰하고 오래된 실내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편 소연의 동화와 최영희의 소설은 어린이든, 어린이가 아니든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기은의 동시는 관계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처럼 읽혔습니다. 모든 글이 그저 평범하게, 행복하고 사랑하며 살고싶은 작은 바람들을 안쓰럽게 보듬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첫번째 독자가 되어 글을 읽으며, 여러 벅찬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기도 하고, 위로이기도 하고, 감사이기도 합니다. 서울, 혹은 서울과 모종의 관계가 있을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