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기가 어디서 나는지 알고 싶어서 튤립을 찢고 코를 처박은 남자를 안다 그는 사랑을 눈앞에서 보여주려고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절개했다 어리석고 끔찍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장기이식에 관한 은유였다 튤립을 찢다, 코를 처박다, 가슴을 열다 이런 말들이 새 옷을 입고 솟구치는데, 이후 이 이야기에서는 향기가 났다 그러나 튤립 속에도 흉부 안에도 이야기 속에도 사랑과 향기의 실체는 찾을 수 없었다


  2
  이게 다 염증이에요 아유 아프시겠다 이비인후과에 앉아서 입을 벌린다 화면 속에는 새카만 굴이 보이고 굴 앞에는 희박한 눈이 쌓였고 선생님, 저기서 말이 나오는 건가요? 화면 속에는 끝 모를 구멍만 있다 말의 뿌리나 발자국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튤립 하나를 흙에서 쑥 뽑은 것 같았다


  3
  도넛을 이루는 것은 구멍이다
  공갈빵을 살 땐 팽창을 사는 것이다

  시는 행과 연이 떠받치는 꿈이다
  행과 연은 반쯤 뚫린 구멍이라서

  우리는 시에서 향기가 난다고 믿는다


  4
  꽃집에서 꽃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한번은 꼭 눈길을 주고 지나가더라 일상 속에서 시간을 멈추고 싶다면 꽃집에 가요 꽃다발을 안고 걸어요 꽃은 그 자체의 눈부심으로 사회에 구멍을 뚫고 젖은 향기를 남긴다 꽃다발을 안고 인파 속으로 간다


  5
  “구멍이 두 개지요” 유명한 대사를 따라 하면서
  너는 히아신스처럼 환하게 웃는다

  얼마 전에 암 제거 수술을 받느라
  가슴팍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병실에는 꽃도 과일도 두지 않았다
  깨끗한 손으로 왔다가 그냥 깨끗이 가

  그게 사랑이야
  그게 향기 나는 사람
  작은 네가 나에게 그리 말했다


  6
  데카르트는 영혼이 머무는 신체의 기관을 머릿속의 송과선(松果腺)이라고 믿었다 그런 건 다 헛소리로 판명이 났지만 송과선을 솔방울샘이라고 풀어서 읽으면 사시사철 존재가 향을 뿜을 것 같다


  7
  모든 관악기에는 구멍이 있다
  모든 기타의 중심에는 어둠이 있다
  모든 무는 구멍을 넓히며 자란다
  새를 파헤쳐도 그 속에는 자유가 없다
  새는 날아감으로써 자유일 뿐이다


  8
  양말에 구멍이 났는데 아무도 모른다 식당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올렸다 구두 속에서 엄지가 뛰쳐나올 정도로, 쥐가 들락거릴 만큼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커지는 만큼 하루가 더 탱탱해졌다


  9
  자다 깬 아이가 울면서 말한다 고양이가 늙어 죽은 모습을 봤어요 고양이를 흙에 묻고 토닥여줬어요 그런데 왜 여기서 자꾸 고양이가 뛰어요? 고양이를 묻은 곳은 꿈과 머린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떠났다
  꽃차를 마시면 마른 꽃이 되살아났다

  꿈에서 나는 아이였고 고양이를 묻었다

  다알리아는 특히 더 생생해졌다
  어떤 것들은 사람의 손바닥만 했다

고명재

시 쓰는 건 꽃다발을 안은 것처럼 은은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소설 읽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과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가 있어요.

‘꽃의 중심부’에서 시작된 시예요. 동생이 빵 가게를 하고 있는데 매주 가게에 꽃을 꼭 몇 송이씩 두거든요. 그런데 정말 향기로운 꽃을 만나게 됐어요. 코를 박고 향기를 듬뿍 마셨죠.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꽃의 중심부는 다 비어 있더라고요. 맹렬하게 향기가 나는 텅-빔이라니. 수술받은 친구의 농담(시 속에 있어요)도 생각났구요.

2024/03/06
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