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리사로 독거노인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장례지도사로서 경력을 끝낸 이후였다. 그러니까 나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세계로 옮겨온 셈이었다. 나더러 음침하다고 말할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단것과 손으로 뜬 직물을 좋아하는 오십대 여성으로, 베고니아와 고사리에 진심인 식집사이기도 하다. 평범하고 취미도 따로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따금 일기를 쓰는 바람직한 습관도 있다.
  요즘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은 박우경씨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경증 치매 노인으로, 당뇨와 류머티즘과 쇼그렌 증후군이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다. 암을 두 번 이겨내고 무릎에 철심도 박혀 있지만 휠체어는커녕 보행기도 없이, 좁고 느린 보폭으로 여전히 잘 돌아다닌다. 상냥하지 않던 운명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보인 관대함이란 기억 삭제인지 비어가는 뇌 속에 햇살만 들이치듯 잘 웃는다.
  그런 우경씨가 느닷없이 죽었다. 가족과 연이 끊긴 노인이기에 유품 정리는 내게 맡겨졌고, 대부분은 재로 사라졌다. 손글씨로 빽빽한 노트 한 권만은 태우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병 속에 든 편지처럼 내게 수신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글에서 자신을 그녀, 혹은 우경이라고 칭한 것도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도 종종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좀더 젊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젊은 노인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내 사회생활은 무덤에서 시작하여 점차 살아 있는 사람들 쪽으로 옮겨가는 셈인데, 이러다 보면 내 나이와 만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

그녀는 맑은 정신일 때 벌어진 운명에 대해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차피 구멍 뚫린 뇌에 쓸 만한 기억이라고는 별로 없고, 이렇게 되기까지의 자취도 그리 보기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자들은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하고, 그 소망은 너그러운 대접을 받을 만하다.
  우경에게는 두 가지 기벽이 있다. 사춘기 때는 ‘시소 타기’라고 명명한 공상을 즐겼다. 우선 가상의 시소 한쪽에 본인이 앉는다. 반대편에는 짝사랑하던 소년들을 하나씩 태워본다. 시소는 기우뚱기우뚱 오르내리고 그 상태로 ‘그림체’를 감상한다. 어울리는가? 별로. 그러면 다음 사람에게로. 자라서는 가지 않은 삶과 가버린 삶에 대한 무게를 달아보곤 했다. 그래서 꿈속의 늙은 남자가 거래를 제안했을 때도 시소 놀이의 일환이라고 여겼다. 저울추를 움직이며 무게를 가늠해보는 것은 평생의 버릇이었으니까.
  더 오래된 습관은 좋은 꿈을 꾸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릴 적 엄마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서운 꿈을 꾸고 엉엉 우는 우경에게 “왼손잡이는 꿈을 더 잘 기억한대. 엄마도 왼손잡이야. 그래서 깨어나기 전에 꿈의 끝부분을 살짝 만져놓곤 해.”라고 속삭여준 것이다. 그때부터 그녀는 잠들기 전의 공상을 꿈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실험해보았다. 잠이 오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고, 나쁜 꿈을 꾸고 나면 결말을 ‘만져’ 놓은 후 다시 잠을 청했다. 깨어났을 때는 바꿔놓은 결말까지 꿈으로 쳤다. 이런 술수가 통하지 않는 때도 많았지만 인생이 급격히 추락한 다음부터는 보상이라도 해주듯 좋은 꿈의 타율이 올라갔다. ‘시소 타기’와 ‘행복한 꿈꾸기’는 그녀의 인생에 독특한 패턴을 만드는 두 개의 뜨개바늘이다.
  충동적인 결혼을 하는 젊은 여자는 이야기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 소녀가 어디에서 자신의 무지를 배울까? 어리석은 연애밖에 더 있겠나? 과격한 공상에 빠져 열아홉에 출산을 하자 그녀는 자신이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일 년 뒤에는 남편을 ‘전 남편’이라고 공상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겨났다. 그러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 ‘전 남편의 스모킹 재킷’ 이런 말은 꽤 멋지게 들린다. 갓난아기를 피해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남편이 걸치는 가죽재킷도 처음에는 근사했다. 패치가 덕지덕지 붙은 가죽재킷의 위용은 서서히 사라졌다. 남편도 그렇다. 한때는 빛나는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같이 외출하기에도 부끄러운 남자.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이력도 없이, 이렇다 할 명함도 없이, 가정에는 불화를 일으키고 사회적으로는 쓸모를 입증하지 못한 채 더더욱 과묵해진 그는 낡은 스모킹 재킷처럼 퀴퀴하기만 하다. 우경은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사라진 딸에게 걸맞은 운명을 걸어왔다. ‘우리 딸은 사춘기도 없었어.’ 엄마는 막내를 이렇게 소개하곤 했는데 그 딸이 가출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육체노동자로 살 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소년 남편을 얻은 소녀들은, 소녀로 남는 법이 없다. 둘 중 어른이 된 건 그녀뿐이었으니 책임을 지고 감당을 하는 것 또한 그녀 몫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은 것은 두 아이와 남편을 비난하는 습관뿐이다. 습관. 이 무서운 습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인상을 찌푸린 그녀가 괴로운 뉴스를 얼마나 재빨리 모으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우경은 스마트폰에서 또래의 여자들이 누리는 행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일터에서 성취를, 가정에서 행복을, 아이들에게는 죄책감 없는 사랑을 베푸는 여자들을 곁눈질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습관이 카르마야.’ 세신사 선배인 미란씨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까지 살아온 나날이 전생이고, 그렇게 만든 습관이 오늘의 내 업이라고.’ 업을 닦기 위해 우경은 타인의 육체를 벅벅 문질러 정화했다. 접시를 닦고, 유리창을 닦고, 에스컬레이터를 닦고 투잡, 쓰리잡을 마다않으며 반지하에서 옥탑으로 이사 오기까지의 분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보다는 나은 처지를 바랐기에 자주 분노를 터트렸다. 그녀가 폭발할 조짐을 보이면 남편은 즉시 ‘아내’로 변한다. 빨래를 거두거나 집 안 정리를 하는 식으로.
  여기가 현실이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달아날 데 없는 그녀의 현실.

*

사실 달아날 곳이 한군데 있기는 하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건너가는 꿈의 세계는 아직도 천진난만하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아슬아슬하게 탈출하는 꿈을 꾸고, 추워서 떨다 온 날에는 야자수 사이에 걸린 해먹에서 흔들거리는 식이다. 이 일인용 천국은 필요에 따라 아코디언 주름처럼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정서적 환기구 노릇을 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말에는 한나절 내내, 누가 부르면 대답하고 누가 요구하면 가져다주며 그녀는 시간과 돈에 쫓기며 산다. 손님과 가족의 요구는 끝없이 이어지고 청구서와 대출금도 꼬박꼬박 날아든다. 왜 그렇게 살았냐고 물으면, 그 방법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반면 꿈속의 우경은 자유로운 여행자다. 운동화 바닥에 야광 페인트를 듬뿍 칠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다가 밤 비행기를 타고 한 바퀴 돌며 별자리처럼 흩뿌려진 자신의 발자국을 보는 것을 즐긴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의 지붕 위에, 피라미드와 나일강 펠루카 위에, 지구라트의 계단을 오르고 사막을 횡단하는 쌍봉낙타의 혹등 위에 통통 떠다니며 가볍게 부유한다. 대부분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풍경에 불과하나, 꿈속에서는 지명만 빌려올 뿐 전혀 다른 형태로 부풀어오른다.
  물론 교묘한 조작이 동원된다. 알다시피 꿈에는 두 가지 중요한 변곡점이 있다. 처음에는 꿈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만 공을 들였으나, 점차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놓치지 않고 덧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야말로 뒤집힌 타로카드처럼 최종적인 느낌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레코딩 과정과 비슷하다. 녹음을 하다가 피치가 어긋나면 그 부분을 지우고 다시 불러 덧입힌 버전만을 남겨두는 것처럼, 결말을 바꿔두면 다음번에 꿈을 이어서 꿀 때 좋지 않은 부분은 편집할 수 있다. 우경은 꿈을 이어서도 꾸고, 반복해서도 꾼다. 타고난 재능은 이것뿐이니 갈고 닦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초고를 다듬는 작가처럼 꿈의 줄거리를 다듬어 세계일주 레퍼토리를 완성했다. 현실이 시궁창 같아도 꿈만은 왕처럼 꾸는 능력이 면역계처럼 작동하여, 그녀를 미치지 않도록 보호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지구본을 사주면서 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다음에 신혼여행으로 갈 곳을 골라볼래?”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 휙 돌리기. 여러 색깔로 칠해진 대륙이 뒤섞이고 지구는 열두 번도 더 회전한다. 뱅글뱅글 도는 지구본을 어린 딸이 손가락으로 콕 찍어 정지시키면 큰 소리로 지명을 말해준다.
  “멕시코의 과나후아토 당첨! 멋진 곳이네. 우리 딸은 이다음에 여왕처럼 이곳에 가게 될 거야.”
  그러나 그날 밤 과나후아토를 가는 사람은 딸이 아니라 스물일곱인 그녀 자신이다.
  걸어서 알프스를 넘어간 적도 있다. 단체관광객 사이에 끼어 설산을 넘는데, 동화 속 그림 같은 예쁜 마을을 내려다보는 순간 주변이 무대 뒤에 걸린 배경 그림처럼 뒤로 넘어가 가라앉아 버렸다. 그녀는 아래에 깔린 만년설과 발목까지 차오른 빙하수를 보면서 깨닫는다. 이 꿈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고. ‘종이 알프스’는 항상 마을이 보이는 시점에서 끝나고, 모든 것이 이차원인 세계에서 삼차원적 존재인 자신을 각성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꿈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을 꿈 밖으로 꺼내와 펼쳐놓을 수 있다면! 안으로 접혀 점선으로만 존재하는 장소를 다 펼쳐놓으면 아마 지구를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녀는 중국과 적도와 그린란드에 간 적도 있고, 빙하와 밀림 사이의 틈을 늘려놓았을 뿐더러 달은 물론 화성에도 다녀왔다. 장미처럼 겹겹의 꽃잎을 가진 꿈속의 영토에서 우경은 나비가 꿀을 빨 듯 행복하게 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스물아홉이 된다.
  아홉수에는 과연 많은 일이 벌어진다. 전세금으로 모은 돈을 속아서 날리고, 바이크 사고를 겪은 남편은 집구석에 틀어박힌다. 연년생인 두 아이들은 방송에 나올만한 ‘금쪽이’로 자라나는 중이다. 게다가 부당하게 일터에서 잘리기까지 한다.
  그날 밤 꿈에서 우경은 은하철도 999를 타고 떠나온 철이였다. 높고 긴 모자를 쓴 메텔이 서 있었다. 황량한 어느 별에서 철이는 메텔에게 애원했다.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고. 그러자 메텔의 기나긴 속눈썹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메텔은 영혼을 가져가야 할 소년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선택했던 것이다. 진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방울 때문에 온 우주가 부옇게 변했다. 메텔은 은하철도 777을 타러 떠나가버렸다. 우경은 흐느껴 울다가 깨어났다. 우주에서 메텔에게 버려지는 꿈은 그녀의 꿈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비통했다.
  잠에서 깨어나자 실컷 울고 후련해진 상태였다. 심오한 이별을 겪고 나니 현실이 작게만 느껴지면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이야 구하면 되지.’ 어차피 고만고만한 파트타임 알바 아닌가. 꿈은 이런 식으로 우경의 감정을 정돈해주었다. 권투선수가 공이 울려 코너의 링으로 물러나듯, 꿈의 환상으로 도피하여 회복력을 키울 수 있던 것이다.

*

“……조금만 덜어내면 되는 거죠. 이 즐거운 꿈을 밖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오래전에 읽어 기억조차 희미해진 책에 손을 대었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내용도 주인공도 가물가물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의 감정만 희미하게 살아나는 것처럼 어딘가 익숙한 느낌. 우경은 꿈속에서 저절로 알게 되는 공식에 따라 그가 이 어둠의 주인이고, 이 꿈은 귀신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야기가 재미있고 목소리는 다정했기에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꿈의 빈자리는요?”
  “……현실에서 가져와야죠. 양팔 저울을 떠올려보세요. 이쪽에서 덜어내는 만큼 저쪽으로 가져가는 겁니다. 쓰라린 현실에 달콤한 꿈을 넣고, 달콤한 꿈에 쓰라린 현실을 넣으면 균형이 맞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시소 놀이가 떠올랐다. 이런 거래를 여러 번 상상해왔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누가 천만원만 주면 영혼까지 팔겠다’는 식의 농담뿐 아니라 불운이 닥칠 때마다 손해를 벌충하는 행운이 있을 거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말끔한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는 막상 얼굴을 보니 목소리와 달리 몹시 늙었다. 남자는 꿈의 일부를 떼어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현실에서 쓸 기회를 주겠다고 역설했다.
  “후시딘처럼요?”
  명사가 생각나자 어쩐지 실무적인 모드로 바뀐 그녀는 이익과 손해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보았다. ‘난 밤의 여행이 너무 좋은데.’ 뒤이어 생활비와 고질적인 허리통증이 떠올랐다. ‘이건 모두 꿈일 뿐이잖아. 할 일이 태산인데 사는 게 더 중요하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꿈속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헬기를 타고 뉴욕까지 날아간 참이었다. 뉴욕에는 여러 번 왔지만 한 번도 헬기 아래로 내려간 적은 없다. 그래도 저 마천루의 바다가 맨해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창이 기울어지자 칵테일잔에 담긴 술처럼 도시의 야경이 역삼각형으로 빛났다.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넓은데.
  “그렇게 할게요.”
  늙은 남자는 우경의 눈썹과 눈썹 사이, 움푹한 안와를 살짝 눌렀다.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승인의 몸짓이었다. 뒤돌아선 그는 휘파람을 불며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더니 하늘의 일부를 쭉 찢었다. 그러자 밤하늘이 포토프린트 된 패브릭처럼 힘없이 일렁거리며 발치에 깔렸다.

잠에서 깨어나자 눈먼 삼손이 연자 맷돌을 돌려야 하듯 고된 하루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그날따라 삼손의 허리통증이 나아져서 연자 맷돌을 돌리기가 수월했다는 점이 다를까.
  ‘이상한 꿈이네.’
  그녀는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설거지통을 휘저어 신탁을 들여다보듯 생각에 잠겼다. 꿈이라는 게 대개 그렇듯 자세히 기억하려 할수록 파편적으로 부서지기만 했다. 악몽도 길몽도 아니라는 것이 최종 결론이었다.
  악마의 사악함은 덫을 묻어놓고 결과가 돌이킬 수 없어질 때서야 당사자가 알아차리게 한다는 점에 있다. 절연한 친정오빠에게서 연락이 오자 그녀는 그저 감격하기만 했다. 오빠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간병을 도와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덕분에 일을 하나 줄일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변화와 꿈을 연결 짓지 않았다. 꿈속의 거래? 그거야말로 잠꼬대 같은 소리 아닌가. 두려운 것들이 미뤄지고, 바라는 것들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우경은 마음 놓고 행운을 누렸다. 가정불화가 줄어들자 닭 싸우듯 싸우던 아이들도 잠잠해졌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새로 옮긴 청소 구역이 연구소 직원들의 숙소라는 점이다.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연구원들의 방은 우경에게 일터가 아니라 쉼터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했다. 연이은 행운에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꿈속의 여행지가 하나둘 사라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변화가 많았던 그해가 저물기 전, 늙은 남자는 다시 한번 꿈속을 방문했다.
  그는 새의 깃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높은 암석 위에 앉아 있었다. ‘새들은 항상 새로운 소식을 가져오지.’ 우경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외국어를 들은 사람처럼 우경은 생소한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고 흔해빠진 잡몽에 불과하다. 요즘에 신경 쓰는 게 많다보니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이다……
  “거래를 유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꿈을 더 잘라가야 하는데요.”
  그날 밤 꿈속의 무대는 ‘바람이 한쪽으로만 부는 외은하의 어느 행성’이었다.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란 풀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부끼고 있는데 한 번도 방향이 바뀐 적은 없다. 풀마다 동물의 머리 모양으로 생긴 열매들이 달려 있는데, 무심코 건드리면 동물이 태어난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열두 마리의 토끼와 여덟 마리의 고양이, 세 마리의 아기 사슴과 알파카 한 마리를 탄생시킨 참이었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온순한 동물들을 쓰다듬는 중인데, 어디선가 나타난 외계인이 흥을 깨는 것이다.
  “제가 외계인이라면 당신의 또다른 무의식이겠지요?”
  “당신은 외계인이 아니고 악마.”
  “저번에는 귀신이라더니…… 그래서, 거래를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해야죠, 당연히.”
  대답이 툭 나왔다. 이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는 여덟 마리의 토끼와 여섯 마리의 고양이, 아기 사슴과 알파카 한 마리를 분화구 뒤로 데려갔다. 도살의 낌새를 느끼며 우경은 찜찜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며칠 뒤 남편이 취직을 했다. 월급은 어린이집 등하원 차량을 운전하면서 받는 75만원에 불과하지만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던 인터넷 명언이 빗나가는 순간이다. 사람을 고쳐 쓰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가. 십 년 넘는 희생이 마침내 결실은 맺은 거라고 우경은 생각했다.

*

반면 꿈의 품질이 꾸준히 나빠진 것만은 분명하다.
  버릇처럼 둘러보던 이스탄불, 카이로, 쿠스코, 로마가 사라졌다. 알프스도 사라졌고, 나일강과 빙하와 화성은 일부만 남았다. 땅이 꺼지고 바다가 마르고 숲이 사라졌다. 야만적인 개발의 포클레인이 휩쓸고 간 폐허처럼 풀포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여행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평범한 일상이 재현되어 나오곤 했다. 이를테면 재방송 같다고 할까. 전날의 일이 변주되거나 연예인이 잡담을 떠드는 등 꿈의 내용은 시시하고 진부해졌다.
  ‘뭐, 그렇다 해도 꿈일 뿐이잖아.’
  아쉽지만 뚜렷한 ‘손실’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꿈이란 깨어난 순간부터 힘을 잃고 스러지는 환각에 불과하니까. 형편이 나아지니 도피성 환상에 더는 의지하지 않게 된다. 이 시기에 우경은 확장하고, 나아갔다. 가속 페달을 밟자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어느 때는 돈을, 어느 때는 일을, 어느 때는 인간관계를 원하며 그녀는 ‘단골 꿈’의 대부분을 넘겼다. 열심히 목돈을 모으다보니 ‘월세가 아닌 전세. 빌라 이층의 방 세 개’의 집으로 이사 가는 날이 왔다.
  그녀의 인생에서 행복이 최고조로 달한 순간이 이 무렵이다. 지혜는 반드시 사후적으로, 그 일의 의미를 쓰라린 후회와 더불어 알게 되는 순간에야 찾아온다. 전셋집으로 이사 가는 순간은 드물게 시소의 균형이 맞아떨어진 한때였다.
  빛나는 꿈들을 내어주고 얻은 것이 고작해야 소도시 전셋집에 불과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제는 마을도, 광장도, 분수대도, 가로수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소년 소녀들도 모조리 뽑혀나가고 없다. 이 밋밋한 우주가 낯설어 꿈속의 우경은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이다.
  아무렴 어떠랴. 아침에 나가 저녁에 퇴근하는 남편, 성적이 점점 올라가는 아이들, 주말에 치킨 두 마리를 배달해 저녁으로 먹으면서 우경은 이 행운이 믿기지 않는다. 경제적 안정과 화목한 가정이야말로 누리기 힘든 소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렇게 평생 살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좋을 수도 있나……?’
  마음 한편에 의혹이 일었다. 그러자 행복이 낯설어 불길함부터 감지하는 자신에게 즉각 짜증이 났다. 남들은 출발부터 가진 것을 마흔 넘어 이뤘는데, 뭐 대단한 것이라고 불안을 느끼는가.
  “이 정도가 딱 좋아, 이 정도가!” 우경은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

그러나 악마와의 계약에 ‘이 정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연장되는 보험처럼 그녀의 꿈은 질이 나빠진 정도가 아니라 흉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경은 조소, 배제, 음해에 이어서 감금, 폭력, 고문에 대한 꿈을 연속으로 꾸었다.
  파티 테이블에 섞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는 편안하고 익숙한 관계들에 휩싸여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모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호응해준다. 우경은 웃음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자신감이 충족되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어떤 의견을 피력했는데 누군가 피식, 비웃는다. 피식. 조소에는 강력한 감염력이 있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연달아 우경을 비웃기 시작한다.
  둘째 날에는 빌딩 지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줄을 섰다. 그런데 배급해주던 아주머니가 회사 사람이 아니면 식당을 이용할 수가 없다고 큰 소리로 망신을 준다. 이제 보니 우경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목에 회사 사원증이 걸려 있다. 태연한 척 빠져나오지만 견딜 수 없이 부끄럽다. 대기업 사원 사이에서 자격을 지적당했기 때문이다.
  셋째 날 꿈에서는 누군가 우경을 지독하게 비방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적’은 그녀가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을 지어내 소문거리를 만들어 궁지에 몰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이유를 모르던 우경은 뒤늦게야 상황을 파악하고 따지러 나선다. 꿈속에서도 어찌나 화가 났던지 이를 갈며 깨어났을 정도다.
  넷째 날부터는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라 무서운 꿈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은 지하실에 갇히거나, 옆방에서 들려오는 고문 소리를 듣게 되는 등 폭력과 공포의 정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영문 모르고 잡혀온 여자아이, 한 남자가 후려치는 소리, 이후 둔탁한 마찰음과 비명만 끝없이 재생된다. 더 끔찍한 것은 아이의 공포심과 남자의 가학적인 쾌락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온몸에 단추가 꿰매지는 ‘단추 여인’이 된 꿈이 가장 끔찍했다. 전신이 단추로 뒤덮인 우경은 영락없이 괴물이고, 움직일 때마다 단추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잇몸까지 단추가 꿰매어지자 우경은 실과 바늘을 피해 발버둥을 치다 눈을 떴다.
  남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가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나?”
  그렇다. 부부가 창업을 한 것은 반년도 되지 않았다. 육체노동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녀가 겁도 없이 청과물 시장에 뛰어든 것은 생선에 이어 과채류가 두번째로 마진율이 높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목이 좋지 않은데도 장사가 잘된다. 불경기 가운데서도 웃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냐면 우경이 맥베스 부인처럼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경은 정오에 가장 힘이 나고 일몰 무렵부터 기분이 가라앉다가 밤이 깊어지면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꿈은 집요하게, 낮 동안 누린 평화를 벌하기 위해 잠의 망토를 펼치며 다가온다. 자정! 그녀에게 자정처럼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자정은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고, 행운이 불운으로 넘어가는 페이지이며, 그녀가 머리채를 잡혀 악몽 속으로 질질 끌려가는 포박의 순간이다.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고 커피를 여러 잔 마시지만 인간이 잠 없이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우경은 청약에 당첨되어 소원이던 아파트를 장만했다. 딸의 간병을 받던 엄마가 유산을 남겨준 것이 큰 도움이 됐지만, 그럼에도 치러야 할 것은 또 있다. 한숨, 목마름, 체중감소와 눈꺼풀 떨림, 밤마다 고함을 치며 깨어나는 야경증…… 결국 수면장애와 우울증 진단이 떨어진다. 내 집에서 발 뻗고 자는 일이 이제는 요원한 꿈이 된다.
  나쁜 꿈은 흉측한 식충식물처럼 밤마다 입을 벌린다. 이제 어디로 달아나야 한단 말인가? 괴로운 현실의 도피 장소가 꿈이었는데, 꿈을 팔아 소시민의 행복을 산 지금은 숨을 곳이 없다.
  악마가 구태여 수고하지 않아도 그녀가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고생으로 얻은 것조차 아까운 꿈을 판 대가라고 의심하게 된 것이다. 노력은 부정되고, 좋은 마음으로 한 일도 의미가 변한다. 그녀의 전부이던 아이들, 그 애들은 ‘아파트 아이’가 되면서 요구가 많아진다. 첫애는 미술을, 막내는 음악을 하고 싶단다. 뒷바라지를 위해 그녀가 감당해야 할 괴로움은 알지 못한 채. ‘버릇을 잘못 들였어, 버릇을!’ 울화가 치민다. 자식들은 제 어미가 누리지 못한 기회와 무책임을 마음껏 누릴 권리를 요구하면서도 고마운 줄을 모른다. 엄마가 늘 찌푸린 얼굴로 노려보기 때문이다……

*

우경은 감옥에 갇힌 사상범처럼 바싹 여윈 채 늙은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남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뭐 하러 나타나겠는가? 모든 것이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러다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다. 통잠을 둘이나 셋으로 쪼개어 토막잠을 자는 가운데 남자가 건드리지 않은 영역을 발견한 것이다. 태양이 높은 고도에 떠 있는 정오부터 2시에 낮잠을 자면 용케도 약탈당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꿈을 만날 수 있다.
  유년기 꿈의 테마는 단연 ‘탈출’이다. 쫓기고 쫓기다 마침내 달아나는 데 성공하는 이야기. 그녀는 독립군이 되어 일본군에서 쫓기고, 전쟁중에는 북한군에 쫒기고, 나중에는 히틀러에게 쫓겼다. 학교 옥상에서, 감옥에서,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스파이가 되어 기밀문서를 전달한다. 마지막에는 언제나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 끝의 추락 장면은 어느 꿈에나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두 발로 착지한 적은 없는데 곧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잊고 있던 장난감을 되찾은 아이처럼 바람에 몸을 실으며 삶에 대한 활력을 되찾았다. 관대하게도 꿈은 잘 늘어나는 고무줄 같아서, 한순간을 백년처럼 늘려놓을 수 있었다.
  그날은 미키마우스와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우경은 미키의 팔짱을 낀 채 오픈카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인다. 월터 디즈니 로고가 새겨진 전용기에 오르기 전에 영부인처럼 손을 흔드는 가운데, 인파를 헤치고 한 남자가 다가온다.
  “얘기 좀 할까요?”
  우경은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가볍게 묵살한다.
  “안 돼요. 신혼여행을 가야 해서.”
  “치사하게 이러기에요.”
  위아래가 붙은 청소부 복장의 남자는 도박장에서 사용하는 칩 같은 것을 손에 쥐고 있다.
  “전 바라는 게 없어요. 거래는 중단하고 싶어요.”
  “바라는 게 없다고? 당신이?”
  늙은 남자가 둥근 칩을 높이 던지자 그녀의 시선이 따라간다. 어느 틈에 그의 옷차림이 신부님처럼 로만 칼라로 변하고, 공중의 칩은 미사 시간에 나눠주는 성체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경 또한 미키마우스의 신부에서 미사포를 쓴 소녀로 변했다.
  남자의 손이 다가오자…… 우경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입을 벌린다. 왜? 꿈에서조차 현실만이 ‘진짜’라고, 환상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에. 타성에 젖어 베팅하는 도박꾼처럼 고정관념이 그녀로 하여금 같은 선택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우경은 종이 맛이 나는 룰렛 칩을 오랫동안 녹여 먹었다.

*

롤러코스터는 정점에 오를 때까지 천천히 오른다. 그러나 하강은 벼락처럼 빠른 법이다.
  남편이 죽었다.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인생에 우연이 없다는 걸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영안실에 꿈속의 남자가 찾아오자 우경은 멱살을 잡아야 할지, 사정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다시 보니 평범한 문상객이었다.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편은 언제 들어둔 지 몰랐던 사망보험금을 남겼다. 우경은 혼자서 운영할 수 없는 가게에 권리금을 붙여 정리한 뒤, 그 돈에 보험금을 더해 상가 두 채를 사들였다. 월세를 받음으로써 마흔다섯에 돈벌이에서 해방되었다.
  갈망하는 것이 남아 있으리라는 남자의 말은 옳았다. 우경은 검정고시를 보고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이십대에 선망하던 ‘강의실에 앉아 교수의 말을 들으며 필기하는’ 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 사이 자식들은 결혼하거나 독립했고, 부모로서 최소한은 해주고 보낼 수 있었다.
  우경은 가장으로 짊어지던 짐을 내려놓고 자기 한 몸만 건사해도 되는 홀가분함을 꿀처럼 떠먹었다. 악몽은 세를 불려나갔지만 그래봐야 하루에 대여섯 시간에 불과하다고 애써 무시했다.
  아파트 상가에 원두를 볶는 카페가 생겨나자 우경은 단골이 되었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다보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즐겁게 몰두하는 여자들이 보인다. 우경에게는 평생 또래 친구가 없었다. 젊었을 때는 엄마뻘 되는 여사님들과 일을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식뻘 되는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다. 언제나 엉뚱한 장소에 와 있는 느낌, 한 칸 위나 아래에 단추를 잘못 채운 느낌이 들어 시무룩해진 그녀는 카운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사장이 열심히 원두를 볶고 있다. 단정한 셔츠에 베이지색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조용히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우경은 문득 ‘시소’가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이쪽에 앉고 그가 저쪽에 앉는다면…… 어떤가, 균형이 맞을까? 저 사람이 무탈하고 조용한 노년으로 동행할 짝이 될까? 갈망이 남아 있으리라는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낮잠에 깃든 유년기의 꿈마저 내어주고, 그와 재혼했다.

*

우경은 칼에 찔려 허우적거린다. 공포심이 극에 달해 구석으로 내몰린다. 하지만 어디로 달아난단 말인가? 새로운 남편이 있다. 새로운 남편이 그녀에게 여자라는 장소를 되돌려준다. 새로운 남편이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주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수면클리닉과 심리상담사에게 데려가준다. 그럼에도 베개는 땀으로 흠뻑 젖고, 침대 밑에는 언제나 폭풍이 몰아치는 느낌이다.
  “어떤 문제는 우리가 규정한 바로 그것 때문에 커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규정 자체가 문제의 시초인 셈이죠. 결론부터 내려놓고 원인을 찾다보면 반복적인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꿈속의 거래는 상징일 뿐인데,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경님은 갱년기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겪고 계신 겁니다.”
  심리상담사의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합리적이어서 머리에서 끝날 뿐, 심장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진단 바깥에는 여전히 악몽이 천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다.
  우경도 그렇게 믿고 싶다. 꿈 거래는 고장나버린 환상이라고. 너무 오래 소원을 들어주는 악마를 상상한 나머지 그런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이라고. 수면장애는 갱년기의 전조일 뿐이며 호르몬제와 휴식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갈수록 어리석은 자신을 탓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왜 그렇게 바보 같은 계약을 했단 말인가? 보물 같은 꿈들을 안전한 장소에 간직했다가 인생이 끝나가는 시기에 떠먹으면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텐데. 아까운 꿈을 내주고 세속적인 행복으로 바꾸었는데 그 결과 정말로 행복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두렵고 무서웠다. 침대는 생매장당한 관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학대받는 아이가 매 맞기가 두려워 차라리 빨리 맞고 끝내고 싶은 것처럼 아예 악몽을 벼르기도 한다. ‘얼른 두들겨 패고 끝내버려!’ 이런 식의 절망어린 발악을 하는 것이다. 악몽은 꿈 밖으로 새어나와 한낮의 그녀를 엄습하여, 잠들 때나 깨어 있을 때나 꿈속의 남자에게 말을 거는 습관을 멈출 수가 없다.
  그녀는 슬프고 괴로운 거래의 이면을 알게 된다. 간밤의 꿈을 친구에게 말해본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흥미로운 꿈이라도 산이 닿아 부식되는 철처럼 삭아버리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대단한 꿈을 지불하고 얻은 것들이 ‘고작해야……’로 시작할 만한 결과물인 것이다. 고작해야 도시에 널리고 널린 아파트 한 채, 고작해야 부부라는 신분, 고작해야 병원에 다니지 않을 정도의 건강. 고작해야 남들만큼 평범해지는 것.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게 한때의 그녀가 얼마나 갈망하던 것이었나?

*

악몽은 우경의 겉모습을 바꾸어놓았다. 피부는 칙칙하고 눈동자는 탁하며 전반적으로 고생에 찌든 인상이다. 욥의 말년이 이렇지 않을까? 모든 고난이 지나간 후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다시 얻은 욥. 그러나 죽은 아이들은? 신심 깊은 자신을 악마에게 내어준 신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경은 늙은 욥의 얼굴이 자신과 흡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물을 쌓아두고 인색하게 늙어가는 수전노처럼 찌푸린 얼굴…… 어느덧 꿈속의 삶이 진짜 삶이고, 무탈하기만 한 이 현실이야말로 오래된 꿈처럼 몽롱하게 느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과 현실이 뒤바뀐 것이 아닐까? 꿈속의 고통이야말로 진짜 삶이고, 꿈 밖의 현실이야말로 환각의 무지개가 아닐까?
  모든 의심에 방점을 찍어주는 악몽이 그녀의 꿈속에 도착한다.
  우경의 두번째 남편이, 부드러운 성품으로 끝없이 진정시켜주는 남편이 커피를 내려주고 있다. 원두를 분쇄하여 필터에 거르는 그에게 다가가는데 발밑에 물컹한 것이 밟힌다. 설치류의 길고 흉측한 꼬리. 문득 고개를 드니 벽에는 미키마우스의 실루엣이 오려낸 듯 선명하다. 그제야 우경은 새 남편이 질 나쁜 모사품, 꿈의 환등기가 벽에 새겨놓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 32평짜리 아파트는 ‘종이 알프스’가 그랬듯이 뒤로 풀썩 넘어가고, 모든 것이 이차원으로 변해버린 세상 속에 아직도 삼차원인 그녀만이 우두커니 서 있다.
  “왜 그래?”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남편의 얼굴에 미키마우스가 겹쳐 보이는 순간, 우경은 완전히 잠에서 깬 상태인데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악몽에도 관록이 붙는지, 시간이 흐르자 뭉툭해진다. 무서운 꿈들은 서서히 줄거리와 형체를 잃고 멍한 피로와 찌뿌둥한 불쾌감만 남겼다. 생물학적 쇠퇴에 맞추어 그녀의 꿈도 사무적으로 바뀌었다. 꿈속의 세계일주자로 이스탄불과 로마와 쿠스코를 돌아다녔듯, 기이하고 으스스한 기담으로 만들어진 회전목마에 끊임없이 올라타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이 악몽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환상이 꿈속의 여행자로 만든 것처럼 악몽 또한 자신에게 비롯됐을 것이다. 생활이 주는 압박과 그로 인한 분노, ‘내가 경솔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책임지지 않았어? 언제까지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라고 시작하는 비통한 자기혐오, 이것이 악몽의 최초 발화지점이 아닐까?
  또다른 황폐한 꿈에서, 우경은 열린 무덤 사이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였다. 다시 태어나고 싶었는데 어디서도 요람을 찾지 못해 무덤만 헤매는 여자, 그게 자신이었다. 꿈속의 우경은 무덤을 배회하면서 다른 주검들의 편안한 잠을 방해한 죄로 욕을 먹고 두들겨 맞았다. 뼈 사이로 찬바람이 불자 슬프고 지겨웠다. 백만 년째 태어나지 못한 중이었기 때문에. 진짜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무덤만 배회해야 할까?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

“정말로 바꾸고 싶어요?”
  남자는 열린 무덤 사이에 걸터앉아 잡풀을 뽑으며 말했다. 흰 티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는 수수하고 친근해 보인다. 우경은 웃음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요. 안락한 삶을 오래 누려왔잖아요.”
  “그다지 안락하진 않았어요.”
  “세월에 이자가 붙을 거란 뜻이에요. 계약을 되돌리는 순간부터 벌어질 일을 말씀드리죠. 당신은 소송에 휘말리다 재산을 잃고,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그 과정에서 자식들과 손절하게 될 거예요. 건강도 무너져서 노년 궁핍의 삶 속에 고립될 겁니다.”
  “대신 밤에는 잘 자겠죠. 꿈들도 정상적으로 돌아올 거고요.”
  “대부분의 꿈을 탕진해버려서 남은 것이 별로 없어요. 악몽이야 중단되겠지만.”
  “그렇다면 좋아요. 지금은 눈을 떠서 살아가는 나날이 악몽이니까.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요.”
  “원래의 나. 그런 게 어디 있죠?”
  남자의 목소리는 ‘갈망하는 게 없다고요? 당신이?’라고 되묻던 순간의 어조와 너무나 똑같아 기시감이 들었다.
  우경은 새삼스레 남자를 훑어보았다. 평생 꿈속에서 보아온 그가 두 명의 남편보다 더 남편 같고, 품을 떠난 자식들보다 더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몽과 흉몽이 드나드는 꿈속에서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존재. 그게 눈앞의 남자였다.
  “왜 그런 거예요?”
  “뭐가요?”
  “왜 나에게 꿈과 현실을 뒤섞게 했어요? 난 언제나 시소가 평평해지는 순간을 바랐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것 같아요. 딱 한 번, 치킨 시켜먹으면서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생각한 하루만 빼고요.”
  “시소는 중립적이지 않아요. 거래를 시작했던 순간부터 균형은 사라지는 겁니다. 한번 시작하면 연줄처럼 도로 감을 수가 없어요.”
  우경은 남자를 물끄러미 지켜보다 문득, 맞은편 시소에 그를 앉혀보았다. 기우뚱기우뚱. 상상 속의 시소가 오르내리더니 마침내 평평해졌다. 남자와 우경의 무게가 똑같았다. 사과 한알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것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뤘다. 젊어진 남자와 늙어가는 우경 또한 남매처럼 닮아 보였다.
  “당신은 조금 젊어졌군요. 그러고보니 그래요. 내 꿈을 약탈해가더니 그 덕에 젊어진 건가요?”
  부지런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늙은 남자는 조금 덜 늙은 남자일 뿐, 우경의 꿈속에서 결코 소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경은 충동적으로 제안했다.
  “차라리 나와 자리를 바꾸는 건 어때요? 나는 이 꿈에 남고, 당신이 현실로 나가서 내 모습으로 살아요. 무대와 배경 그림도 전부 내 책임이니 난 여기도 괜찮아요. 당신은 꿈의 부산물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살아볼 기회를 갖는 거고.”
  “싫습니다!”
  남자는 불시에 얻어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허공을 휘저었다. “현실? 현실이라고 했어요?” 남자는 지옥이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화를 냈다. 우경이 역으로 거래를 제안하자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뜻대로 해드리죠. 거래를 끝내자고요.”
  남자는 유경의 안와에 붙어 있던 붉은 점을 스티커 떼어내듯 떼어버렸다. 그때까지 그런 것이 붙어 있는 줄도 몰랐던 그녀는 깜짝 놀라 커다랗게 눈을 떴다.

*

깨어나보니 아침 햇살이 그녀의 방주 같은 침대를 밝히고 있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경은 눈썹 사이를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채무와 재무가 달라질 것이다. 시소의 이쪽과 저쪽의 균형추가 분주히 옮겨갈 테니까. 마음속에 희망이 섞여 있는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남자가 예고한 대로 물질적인 기반이 가장 먼저 녹았다. 평생 이뤄온 작은 성취들, 두 개의 가게와 그녀의 명의로 된 집도 사라졌다. 여자가 생긴 남편과의 이혼 과정에서 집을 분할했고, 재혼 때부터 거리를 두던 자식들은 영영 멀어져버렸다. 수술과 입원으로 남은 재산마저 탕진하고 기초수급자가 되기까지의 추락은 가파르고 일사분란했다.
  이제 우경은 쪽방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잔다. 대부분 꿈 없는 잠이 이어진다. 알츠하이머가 시작되자 꿈 없는 잠 속에서 겪는 일과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도 벌어진다. 밀도가 떨어지고, 시간이 아무렇게나 되감기고, 낯선 곳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는 순간들. 그러나 가끔 회로에는 불이 들어오고, 꼬마전구가 밝아지듯 그녀는 생각을 한다.
  ‘놀랍게도 난 전혀 외롭지 않았어.’ 돌연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꿈과 현실의 엔트로피에 몰두하는 동안 친구도 없이,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큰 실수가 저질러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자기만의 공상에 몰두한 나날들. 시소 놀이와 꿈 거래를 제외하면 자신의 삶은 뭐란 말인가. ‘인생 초기에 경솔한 선택을 했으나 잘 버텨내어 중년으로 건너왔고, 아이 둘을 키워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 후 불후한 말년을 맞았다.’ 이 정도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삶이 아닌가? 우경은 자기가 평범하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놀랐다.
  이제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것은 하얀 계란처럼 생긴 꿈 없는 잠이다. 우경은 흠 없이 깨끗한 알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홀가분하고 후련하게 그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펼쳐진 왼손에 움켜쥔 꿈 하나 없이.

*

노트를 덮은 나는 황망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커서 손에 쥘 수 없는 물건을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알츠하이머를 앓던 노인이 쓴 글 치고는 지나치게 정연한 것이 도리어 광기의 증거처럼 보였다. 그러나 죽어가는 독거노인을 수없이 봐왔던 나로서는, 이 노트를 망상이 아닌 ‘해석’으로 보고 싶다.
  그날 밤 한 소년이 내 꿈으로 찾아왔다. 숲에서 걸어나온 소년은 내가 키우는 호야와 스킨답서스와 넝쿨 몬스테라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몽상가의 꿈속을 떠다니는 남자는 우경씨의 꿈과 죽음을 흡수한 탓인지 어려진 모습이다. 내게도 열심히 제안을 했지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부주의한 거래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우경씨의 노트를 읽었기 때문이다.
  “……안 해요? 정말 한 번도? 아무에게나 주는 기회가 아닌데……”
  서투른 외판원처럼 말을 더듬거리던 소년은 신경질적으로 스킨답서스 줄기 하나를 뚝 부러뜨리고 가버렸다. 그 외톨이 꼬마가 오늘 밤 당신의 꿈속을 기웃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우경씨가 한 가지는 제대로 얻어낸 것 같다. 자신에 대해 어떤 의혹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홀가분함 말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말했듯이 악마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다.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려다 결국은 도와주게 되니까.
  잠에서 깨어나자 부러진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유리컵에 줄기를 꽂아놨는데, 스킨답서스는 물꽂이로도 뿌리를 잘 내리기 때문이다. 삼색달개비도 그렇고 안스리움도 흙 없이 키울 수가 있다. 수경재배를 할 때는 뿌리 전부를 물에 담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뿌리가 물 뿐만 아니라 공기도 흡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절반은 필요한 모양이다.

김성중

저는 오른손잡이입니다만, 꿈을 꽤나 잘 기억합니다.
꿈의 결말을 바꾸다가 소설가가 된 것 같습니다.

2024/04/03
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