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와이
너무 길다.
김과장이랑 같이 가.
둘만?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한―인사불성인―남편을 집까지 데려다주곤―부축해오곤―했던 김과장. 같이 술을 마셨을 텐데 김과장은 언제나 말쑥해 보였다. 타이를 느슨하게 풀거나 바지 밖으로 삐져나온 셔츠 밑단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에게서는 술이나 음식 냄새가 아닌 은은한 머스크향이 풍겼다. 현관문 밖에 서서 그는 늘 같은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많이 드셨어요. 나는 대답했다. 과장님이 왜 죄송해요. 조절 못 하는 이 사람 문제지. 그는 말했다. 저 때문에요. 저 때문인 것 같아서요. 어째서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았다. 대화가 길어지면 서로 피곤할 것 같았고, 어쨌든 회사 일이니 내가 더 알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어서 쉬세요’ ‘조심히 가세요’처럼 뻔한 인사만 나누었다. 하지만 늦은 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이를 닦을 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 뒤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릴 때처럼 넋을 놓고 있어도 괜찮은 찰나에 나는 종종 그의 단정한 옷차림을 떠올린다. 나보다 키가 큰데도 어쩐지 왜소해 보이던 몸. 그의 향기.
근데 이름이 뭐랬지?
달력을 넘겨 출장 날짜를 체크하며 물었다.
누구?
김과장.
아, 김주호.
달력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다해 생일에 자기는 하와이에 있겠네.
수납장에서 위스키병을 꺼내며 남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런가. 생일 선물 좋은 걸로 사오지, 뭐.
좋은 거라면 어떤 거?
글쎄. 가서 찾아봐야지.
차라리 직접 물어봐. 갖고 싶은 거.
남편은 대답 없이 니트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근데 주호씨는 아이가 있어?
와인잔을 꺼내며 물었다.
아니, 결혼 안 했어. 앞으로도 생각 없대.
수납장에서 와인병을 꺼내 빛에 비춰봤다.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스토퍼를 제거하고 와인을 잔에 따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혼자가 편하지.
남편도 나를 따라 중얼거렸다.
맞아, 혼자도 나쁘지 않지.
우리는 서로의 잔을 가볍게 부딪친 뒤 거실 등을 끄고 각자의 공간으로 향했다. 남편은 침실, 나는 서재로. 남편은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태블릿을 볼 것이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오늘 받은 이메일에 답장을 보낼 예정이고. 다해는 자기 방에서 무엇을 할까? 알 수 없다. 나는 다해의 문을 열어볼 수 없다. 먼저 말을 걸 수도 없다. 요즘 우리 사이는 최악이다. 다해는 나를 투명 인간처럼 대한다. 다해를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이해란 무슨 뜻일까 곱씹다보면 결국 회의적이다. 다해가 나를 증오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 이해라면, 다시 말해 다해가 나를 증오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무너지지 않으려는 노력뿐이다.
거래처 미팅을 마치고 상담 시간까지 잠시 틈이 났다. 미팅 장소가 마침 태주의 작업실 근처여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금 서촌인데 태주씨는 어디에요? 바로 답장이 왔다. 작업실에 있어요. 괜찮으면 잠깐 들러도 좋아요. 메시지를 보냈다. 커피 사갈까요? 답장이 왔다. 감사합니다:)
작업실 문을 열자 산뜻한 향기가 나를 와락 껴안는 것만 같았다. 태주의 작업실은 언제나 다양한 향기로 가득했다. 나는 다만 ‘좋은 향기’라고 부르는 그것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있고 태주는 매번 설명해줬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거의 기억을 못 하고 태주는 핀잔 없이 또 설명해준다. 태주에게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숲에 온 것 같아요. 이건 무슨 향이었더라. 전에 말해줬던 것 같은데.
재스민이요. 유칼립투스도 섞였고.
커다란 테이블에는 석고 방향제, 디퓨저 용기, 스포이드 같은 도구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나는 늘 앉던 의자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마카롱 서너 개를 꺼내 접시에 담으며 태주가 물었다.
오늘 목요일이구나. 상담 가는 길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좀 전에는 미팅 있었어요. 상담까지 시간이 좀 떠서.
테이블에 접시를 놓으며 태주가 물었다.
상담은 계속할 거예요?
아직 회차가 남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상담 가기 전까지는 너무 싫다는 생각뿐이야.
그럼 그만한다고 말해요. 돈 써가며, 시간 써가며, 감정 써가며 그걸 왜 억지로 해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그러게. 나는 왜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을까.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이후 상담실에서 또 못난 꼴―상대를 나의 적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방어적인 말만 일삼는―을 보일 것만 같아 급히 이유를 만들어봤다.
나는 모르는 어떤 면에서는 도움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죠.
태주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걸 재희씨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태주씨는 상담하면서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느꼈어요?
아, 나는 정말 누구든지 상관없었어요. 내 상황이나 상태를 말할 수만 있으면 성직자와 경찰 빼고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태주는 무엇 때문에 힘들었을까? 직장 문제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었다. 결국 사람 문제일 거라고 나는 이해했고. 태주는 일 년 가까이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종료하는 시점에 퇴사를 결심했고 곧바로 개인 공방을 차렸다. 지난봄, 나는 태주에게 상담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엄청난 무게의 불안감이 나를 짓누르면 움직일 수 없는 증상 때문이었다.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비이성적 예감에 사로잡혔다. 끔찍한 일이란 이런 것이다. 집이 폭발한다. 땅이 꺼진다. 불이 치솟는다. 내가 창밖으로 몸을 던진다. 집 밖으로 뛰어나가 누군가를 해친다…… 그저 나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앎은 소용없었다. 희뿌연 불안에 완전히 포박당한 채 책상 앞이나 싱크대 앞에 선 상태로 수십 분을 꼼짝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몇 차례 반복한 뒤 정신과와 심리상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태주에게 연락했다. 당시 태주는 내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요?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그와 똑같은 대답을 요즘 상담 시간마다 하고 있다. 상담사가 어떤 질문을 하든 대답은 ‘모르겠어요……’로 시작하거나 끝났다. 처음에는 말버릇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차차 깨달았다. 내 상태를 알고 싶지 않거나 말하고 싶지 않아서란 걸. 스스로 상담을 신청해놓고 진솔한 대화를 거부하는 상태. 내가 진단하는 나의 상태였다. 태주가 말했다.
다른 상담사를 찾아봐요. 재희씨에게 맞는 사람을.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해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상담사에게 그만하고 싶다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에게 내린 벌. 상담은 어느새 그와 같은 의미가 되었다. 벌을 받고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끝이라니? 무엇을 끝낸다는 거지? 문득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 감각. 불안이 향기처럼 나를 휘감으려 했다. 팔다리가 무감각해지면서 서서히 굳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태주를 바라봤다. 태주가 포장을 뜯은 마카롱을 나에게 건넸다. 손을 들어 그것을 받아들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던 태주가 마카롱을 접시에 내려놓고 내 손을 지그시 잡았다. 손에 조금씩 힘을 주면서 악력을 전했다. 천천히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재희씨, 괜찮아요. 재희씨, 숨을 쉬어요. 재희씨, 들이마시고, 자, 내쉬고, 천천히 한 번 더. 아무 일도 없어요, 재희씨. 나의 뒷목과 어깨를 부드럽게 만지며 계속 말을 걸었다. 서서히 힘이 돌아왔다. 아니, 힘이 풀렸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움직일 수 있었다. 늘 혼자일 때 겪었다. 그래서 몰랐다.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 어깨를 주물러주면,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주면 금세 괜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필요한 건 상담이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 상태를 알아봐주는 누군가. 맞은편으로 돌아가 앉으며 태주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테이블 위를 눈으로 훑던 태주가 작은 갈색병 하나를 집어들었다. 병 속의 오일을 종이에 몇 방울 떨어트려서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일랑일랑이에요. 우울이나 불안에 좋대요.
종이를 가볍게 흔들며 향을 느꼈다.
상담받는 동안 나는 어쩌면 훈련을 받은 건지도 몰라요. 곤란한 상황에서 내 감정을 어떻게 파악하고 다스릴지, 상담사와 그 훈련을 거듭한 거죠. 근데 재희씨 같은 타입은 이런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불안에 빠질 것 같으면 즉시 어떤 향을 맡는다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동일한 자극을 주는 거죠. 자기에게 신호를 주는 거예요. 현실은 아무 문제 없다는 신호. 어때요? 향은 마음에 들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갈색병을 나에게 건넸다.
선물이에요. 보다시피 포장은 못 했어요.
마다하며 황급히 말했다.
이거 태주씨 작업에 쓰는 거잖아요. 그냥 받기는 마음이 불편한데.
재희씨, 선물은 그냥 받는 거예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무엇으로 갚을까 생각했다. 그때 태주가 말했다.
나 다음 달에 하와이 가요. 보름 정도.
하와이요? 갑자기?
태주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어쩌다보니 갑자기.
여행 가는 거예요?
아뇨, 언니 만나러 가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언니가 있어요? 친언니? 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근데 왜 나는 몰랐지? 태주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말한 적 없으니까요. 그동안 왕래가 없었는데…… 그래도 한 번은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더 늦기 전에. 태주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상담 시간이 가까워 작업실을 나서야만 했다. 상담사를 만나러 가면서도,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내내 그것을 생각했다. 태주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그러므로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은 얼마나 많을까. 그날의 상담에서도 나는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모르겠다는 말 뒤에 모조리 감추고 싶었다. 나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알고 싶다면 당신이 찾아내라. 당연하게도 상담사는 내가 감추는 것을 애써 들추지 않았다. 어쩌면 감추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물어봐줘. 먼저 알아봐줘. 제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 그런 생각을 하자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어째서 마흔 넘어서까지 낯선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나. 이십대에 해치우고 그만뒀어야 하는 짓을 왜 아직까지 하고 있을까.
태주와는 이십 년 전 처음 만났다.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였다. 태주는 외근이 많았고 나는 한자리에 앉아 내내 컴퓨터만 들여다봤다. 가끔 업무 요청할 때를 제외하고는 태주와 대화할 일은 없었다. 종무식 끝나고 전체 회식 때였다. 시작할 때는 팀별로 따로 앉았는데 사람들의 취기가 올라가자 자리가 뒤섞였다. 취한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가 넓은 식당의 구석진 자리에서 태주와 나는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다. 태주의 나이, 사는 곳, 취미, 성향 등을 알게 되었고 잠시였지만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다음 날부터 친구가 된 건 아니다.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의례적인 인사만 했다. 다른 팀 직원과 개인적 친분을 쌓는 사람을 팀장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사적인 감정이 섞이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다지 틀린 말 같지는 않아서 지시를 따랐다. 이 년 후 나는 퇴사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조직문화에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주에게 연락이 왔다. 주말 저녁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만났다. 파스타와 와인을 시켜놓고 세 시간 넘게 대화했다. 당시 우리는 이십대였다. 할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태주는 나보다 두 살 어렸지만 나를 언니나 선배라고 부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존대를 했다. 내밀하고 사적인, 남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이를테면 당시 만나던 애인과의 갈등이나 잠자리 취향, 애인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상황, 전 애인과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나 직장에서 치근덕거리는 과장에 대한 불쾌감 등등―서로 예의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거기 있다고 나는 믿었다.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동등한 관계. 말 편하게 해도 돼? 라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 사이. 태주는 나의 친구도 동료도 이웃도 아니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신뢰하는 존재. 친구나 가족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럴 수가 있는가? 이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게 자매가 있음을 모를 수도 있는가? 태주는 내 동생을 안다. 결혼식장에서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종종 이야기했다. 동생의 사치에 대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소비를 지탄하고 걱정했었다. 태주는 왜 언니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할말이 없을 만큼 존재감이 없어서?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존재여서? 태주는 자기가 말한 적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뜻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는 왜 먼저 꺼냈을까. 여태 하지 않던 이야기를.
언니를 만나러 하와이에 가요.
이 한 문장에 내가 모르는 태주의 인생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어서 태주에게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냐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나흘 넘게 연락이 닿지 않자 걱정이 되었다. 태주는 오피스텔에 혼자 산다. 혹시 나처럼, 얼어붙는 것처럼, 또는 얼어붙을 때 나를 짓누르는 상상처럼 무서운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하자마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택시를 불러 태주의 작업실로 갔다. 작업실 문은 잠겨 있었다.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오피스텔로 갔다. 공동현관에서 호출 벨을 눌렀지만 응답은 없었다. 오피스텔 근처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저녁이 깊어질 때까지 태주를 기다렸다. 벌써 하와이에 갔나? 다음 달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검은 창에 반사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괜찮을 거야. 태주에게도 가족이 있잖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연인도 있고. 나보다 훨씬 가까운 존재들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들이 먼저 대처했겠지.
어둡고 고요한 집. 현관 센서 등이 꺼지자 창밖 야경이 빛났다. 신발을 벗고 다해의 방 앞에 섰다. 이 문을 열어도 될까? 다해는 학원에 있을 것이다. 내가 자기 방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더 증오하겠지. 내가 드나들었다는 낌새를 알기 위해서 비밀 장치를 해두었는지도 모른다. 문 위에 종이를 끼워둔다든가 뭐 그런. 나는 다해의 엄마다. 다해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미성년이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연다. 벽면의 스위치를 누르자 환한 빛. 침대 위에 벗어둔 잠옷. 의자에 걸쳐놓은 후드집업. 책과 볼펜, 스티커와 구겨진 종이, 머그컵과 카페인 음료 등이 어질러진 책상. 침대 옆 러그에는 검은 액체가 말라붙은 흔적. 책장에 놓인 도라에몽 인형이 나를 바라본다. 감시하는 것만 같다. 다해에게 일러바칠 것만 같다. 다해가 왜 나를 거부하는지,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무시하는지, 마치 내가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지, 나에게 할 말을 어째서 자기 아빠에게 하는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의 원인을 알려면 이 방에서 어떤 단서라도 찾아내야 하지만…… 나의 아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 대신 죽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마땅히 그렇게 할 유일한 존재가 나를 증오한다. 사람들 말처럼 사춘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나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영영 모를 것이다. 지금 다해가 나를 거부하는 이유를. 나이가 들어도 다해는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자기는 그런 적 없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 어쩌면 시답잖은 이유를 댈 수도 있고 나는 그 이유를 전적으로 믿진 못할 것 같다. 지금이 아니라면 나눌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비밀이 자라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는 영역에서.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거실 등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한다.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다. 남편에게 오늘 늦느냐고 메시지를 쓰다가 지웠다. 그걸 아는 게 무슨 소용 있나. 늦으면 늦는 거고 지금 오는 길이면 곧 도착하겠지. 어둠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지난 상담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남편이 하와이로 출장을 간대요. 보름 동안.
그렇군요.
제 지인도 하와이에 간대요. 비슷한 시기에. 보름 동안.
아, 그래요?
공교롭게도.
하와이는 대표적인 관광지니까요.
두 사람은 관광을 가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알 수 없죠. 관광을 가는지도.
혹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냥, 다들 하와이에 가는구나……
다들 하와이에 가서 재희씨 기분은 어떤가요?
두 사람이 하와이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 우연히 만나면 서로를 알아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하와이는 큰 섬이고 섬도 여러 개잖아요. 우연히라도 만나기는 힘들겠죠. 하지만 또 모르죠. 한국인이 머무르는 곳은 아주 한정적이어서 식당이나 호텔 같은 데서 마주칠 수도 있겠고.
두 사람이 하와이에서 마주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재희씨는 어떨 것 같아요?
그렇구나, 서로 알아봤구나, 생각할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르나요?
결혼식장에서 딱 한 번 인사를 나눈 게 전부거든요. 결혼하기 전에 남편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해보려고도 했었는데 지인이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취소했었고…… 그러고는 두 사람이 만날 일도 접점도 없었는데 이번에 같이 하와이에 가네요.
같이 가는 건 아니지 않나요?
네, 물론 따로 가겠죠.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하와이에 가는 게 혹시 재희씨에게 영향을 주나요?
모르겠어요, 선생님. 근데 저는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아요. 제가 가끔씩 얼어붙는 것도 다 상상 때문이거든요.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구체적 상상에 짓눌려서.
그런 증상을 최근에도 겪으셨어요? 어떤 상상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딸이 나를 죽일 것 같아요. 어느 밤 느닷없이 무표정하게. 내 숨통을 차분하게, 잔인하게 끊어놓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끝까지 그 이유를 몰라요. 딸이 나를 왜 죽이는지.
다가오고 있다. 몸이 굳어간다. 가방에서 일랑일랑 오일을 꺼내 향을 맡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가방으로 손을 뻗는 순간 집이 무너질 것만 같다. 콘크리트 잔해에 파묻힐 것 같다. 태주의 처방은 훌륭하지만 혼자일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상담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혼자다. 기다림조차 포기한 혼자. 시계 초침의 일정한 소리에 집중한다. 지나갈 것이다. 곧 몸이 풀릴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만 죽을 것 같다. 상담사에게는 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종종 있지만 그뿐이고 곧 괜찮아져요’라고만 말했다.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한 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상담을 지속하는지도.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이어 현관문 열리는 소리. 센서 등이 켜지고 등뒤가 밝아진다. 방문을 열고 다시 닫는 소리. 다해가 왔다. 내가 모르는, 나를 소외시키는 세계를 점점 확장해가는 다해. 육 개월 가까이 ‘엄마’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얼어붙은 채로 생각한다. 이 불안의 근원을 알고 싶지 않다고. 그것을 아는 순간 뭔가를 대면하고 감당해야 할 텐데,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다해가 없는 주말 오후, 쌀국수와 반미를 배달시켜서 함께 먹던 중에 남편이 말한다.
향수를 사달래. 샤넬 향수.
다해가?
입안에 면발을 가득 넣은 채로 남편은 고개를 끄덕인다.
직접 물어봤어?
아니, 카톡으로. 아직 어린데 그런 걸 사줘도 돼?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당신이랑 상의해보겠다고 했지.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나랑 상의하겠다고 한 다음에 사줄 수 없다고 말하면 결국 내가 반대한 게 되잖아.
쌀국수 국물을 한 입 떠먹은 다음 남편은 대꾸한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겠어.
다해는 그렇게 생각할 거야. 전부 엄마 때문이라고. 자다가 악몽을 꿔도 엄마 때문이고 친구랑 오해가 생겨도 엄마 때문이고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는데 가방에 생리대가 없어도 엄마 때문이고 급식에 마늘쫑이 나와도 엄마 때문이라고. 성적이 떨어져도 엄마 때문이고 좋아하는 아이돌 컴백이 늦어지는 것도 엄마 때문일걸?
남편은 웃음을 터트렸다.
야, 진짜 그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다해는 세상 편하겠다. 부럽다, 부러워.
웃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난 심각해, 여보. 지금 걔한테 나는 엄마가 아니야. 자기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니까.
웃음을 거두고 팔꿈치를 식탁에 기대며 남편은 말한다.
글쎄, 난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잠시 말을 고르는 듯 시선을 떨군 남편이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당신을 너무나도 엄마로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자기 감정을 풀 수 있는 대상이 엄마뿐인 거지. 엄마니까 그럴 수 있는 거야. 다해가 어릴 때부터 유독 당신만 좋아했잖아. 당신 말만 듣고 당신한테만 온갖 얘기 다 하고. 나는 그냥 장난감 자판기였지. 지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다해가 나한테 속 얘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할 뿐이지.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해가 나한테 그런 이야기라도 해서. 그러니까 기다려보자. 지나갈 거야.
기다려보자고, 지나갈 거라고, 이제 그런 말은 지겹다. 나도 안다. 지나가겠지. 그다음이 지금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어째서 못하는 걸까.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낙관은 대체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 남편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다해가 나를 죽이는 상상에 시달린다고. 내 상황이 아무리 불안정하고 위험하더라도 아이 아빠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상담사에게 그 말을 내뱉은 것도 후회한다. 뼈저리게 후회한다. 가둬두어야 했다. 속이 곪아 진창이 되고 역겨운 냄새가 나를 가득 채워도 발설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꾸 얼어붙으면 어떤가. 그뿐이다. 실제로 땅이 꺼지면 어떤가. 그뿐이다. 내가 창밖으로 몸을 내던지면 어떤가. 오직 그뿐이다. 그저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고 내가 죽을 뿐이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상담을 신청하고 낯선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딸이 나를 죽일 것 같다는 말을,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나의 아이에 대해 그렇게 말해버렸을까. 나를 위해서? 고작 나를 위해서?
여보, 나가서 좀 걸을까?
나를 바라보던 남편이 티슈를 건네며 말한다.
걷다가 오랜만에 맥주 한 캔 할까? 옛날처럼?
다해는 그걸 싫어해. 내가 술 마시는 걸 싫어해.
당신이 뭐 얼마나 마신다고.
아무튼 싫어해. 그냥 싫어해. 싫어한다고 나를. 내 모든 것을.
당신이 이해해. 한창 예민할 때잖아.
근데 여보, 나는 알아. 다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남편은 나의 말을 기다린다.
내가 나여서 그래. 내가 엄마여서가 아니라 내가 나여서.
남편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재로 간다. 과거에 내가 몹시도 아꼈던 단어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저력, 야심, 야망, 가능성. 그런 단어를 보거나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안에 그것이 존재함을 느꼈고 꿈꾸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땐 미래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건실한 남편을 만났고 귀한 다해를 낳았고 가정을 보살피는 동시에 일도 놓지 않았다. 나와 맞지 않는 조직에서 벗어나 내 이름을 믿고 맡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루하루 꾸준히 무언가를 해냈다. 더는 궁핍하지 않고 조바심도 없다. 내키지 않는 일은 거절할 수 있고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날 필요 없고 윗사람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그래서 깨달았다. 행복은 절대 그런 것에 있지 않음을. 거창한 행복을 바란 적은 없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되새기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도 탓할 수 없어 내가 나임을 탓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 말도 일리 있다. 다해는 엄마를 미워하면서 얻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팽창해서 돌격하는 낯선 세상과 싸울 힘을. 그편이 가장 안전하니까. 마음껏 미워한 뒤 사과할 수 있고 사과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무너지고 있다. 얼어붙고 있다. 잠식당하고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시간이 우리를 망쳤다.
식탁으로 돌아온 남편이 일랑일랑 오일을 건네며 말한다.
이거라도 좀 맡아봐.
멍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남편에게 태주와의 일을 말했던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뭘?
이 오일을?
당신이 말했잖아. 이 향기 맡으면 차분해진다고.
내가? 언제?
남편의 표정이 돌연 굳는다.
당신 태주 만났어?
나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되묻는다.
태주씨를…… 내가 왜?
그럼 당신도 알겠네? 태주 하와이 가는 거. 당신 가는 그때.
남편은 천천히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눈물은 멈추고 기억은 뒤섞이고, 너무 많이 상상하면 때로 현실처럼 남아버린다.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기 힘들다. 나의 생각을 감지한 남편이 중얼거린다.
갑자기 하와이는 뭐고 태주씨는 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다들 하와이에 가는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상담사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나는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상상을 해요. 남편과 태주는 나를 배신하고 딸은 떠나고 나는 완전한 혼자가 됩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잊고 제 갈 길을 갑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요. 그럼 내가 어떨 것 같아요, 선생님?
상담사는 친절하게 되물을 것이다.
그럼 어떨까요?
나는 대답한다.
불안이 사라질 거예요. 더는 잃을 것도 걱정할 것도 없으니까요. 내 인생에 나만 남을 테니까요. 그럼 얼어붙어도 상관없어요. 내가 누굴 해치거나 누가 나를 해칠 경우를 상상할 이유도 없고요. 공허하게 텅 빈 채로 존재할 거예요. 채우려고 애쓰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려고 안간힘 쓰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고독하고 허무한 이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모두 나를 떠났으니까요. 고독과 허무는 아주 당연하니까요.
상담사는 귀기울여 듣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재희씨 기분은 어떤가요?
나는 약간 항의하듯 대답한다.
기분은 몰라요, 선생님. 나는 나의 기분을 알고 싶지 않아요.
상담사는 수긍하고 다시 물을 것이다.
그럼 재희씨 생각을 계속 말해볼까요?
남편이 묻는다.
다해가 가장 큰 거지?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 중에서는 다해가.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오늘 다해 들어오면 내가 진지하게 얘기해볼게. 엄마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내 생각이 짧았어.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무작정 믿었는데 그 시간을 사는 당신이 어떨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는다. 반드시 무언가를 바꿔놓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다해는 자란다. 지금도 자라고 있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이다. 나는 시간이 멈추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얼어붙은 동안에도 변함없이 흐르길 바란다. 다해의 시간이 계속 흐르기를. 그러므로 가장 큰 문제는 다해가 아니다. 문득 태주가 의도적으로 내 연락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딸도 나를 피하는데 태주라고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나에게 실망했다거나 나의 어떤 면이 불편해서 더는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여태 하지 않았던 언니 이야기를 꺼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니까. 남편은 김주호와 하와이에 간다. 태주는 언니를 만나러 하와이에 간다. 다해는 샤넬 향수를 원한다. 그건 나에게도 있다. 화장대 위에 언제나 있다. 언젠가 다해의 몸에서 그 향기가 났다. 하루, 이틀, 사흘을 모른 척했다. 나흘째 참지 못하고 끝내 물어봤다. 엄마 향수 뿌렸구나. 근데 그 향기는 학생한테 어울리지 않아. 다른 향수 사줄게. 베이비파우더향 같은 거. 그런 말 때문에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무심코 했거나 끝까지 참지 못하고 내뱉어버린 이런저런 말 때문에. 딸이 엄마를 미워하는 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그래서 다해는 샤넬 향수를 원한다. 엄마의 향수가 아닌 오직 자기만의 향수를 갖고 싶어서. 엄마랑 상관없이 마음껏 뿌리고 싶어서. 이건 내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서. 남편에게 말한다.
다해한테는 그냥 샤넬 향수를 사주면 돼. 걔가 나를 미워하든 말든 나는 계속 사랑하면 돼. 그러니까 다해는 정말 아무 문제도 아니야.
참지 못하고 말한다.
그리고 실은 그게 제일 문제야.
울음을 참고 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라는 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참는다.
언젠가는 그조차 할 수 없을까봐 너무 무섭다는 거.
하와이에 딱 한 번 간 적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 다해를 꿈꾸기 전. 스물여덟 또는 스물아홉. 두번째 회사를 퇴직했을 때였다. 사람을 왜 그런 눈으로 봐? 기분 더럽게. 팀장의 그 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일을 못한 것도, 사고를 친 것도 아니고 팀장의 무례한 언행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내 눈빛이 문제였다. 나는 팀에서 소외됐다. 주요 업무에서 모조리 배제됐다. 관여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돌아왔다. 다른 팀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흘러다녔다. 나는 모르는 나의 과거가 생기더니 사실처럼 굳었다. 팀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럴 만하니까 그런 사람’이 되었다. 부서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팀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 또한 중요한 업무 능력이라고 부서장은 말했다. 사직서는 바로 수리됐다. 분에 차 울면서 거리를 헤매다가 충동적으로 여행사에 들어갔다. 내일 당장 떠날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찾았고 직원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렇게 혼자, 정신없이, 무계획으로 떠났던 곳.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 섬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을 거라고 해서 카우아이 섬에서만 일주일을 보냈다. 바다, 절벽, 협곡, 숲, 대자연뿐이었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가까운 해변까지 걸어가서 모래사장에 타월을 깔고 누워 있다가 지루하면 걸었다. 해질녘 호텔로 돌아가 맥주를 마시다가 잤다. 하와이까지 가서 오직 그런 날을 반복했다. 해변에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생각했었다. 팀장에게 찍힌 결과 나는 하와이의 한적한 해변에서 일광욕을 한다고. 타인이 시작한 일이라도 결말은 내가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먼 곳으로 훌쩍 떠나서 그곳에 시간을 버리고 오는 것. 단절시키는 것.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 돌아오는 것.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돈은 많이 들었다. 일 년간의 상담비 정도를 썼을까? 나를 위한 선택이었고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게 꾸준히, 나에게 해로운 상황과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그러므로 이제 나를 불안에 빠트리는 존재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 삶은 만만치 않다. 매일 비슷해 보여도 오늘은 언제나 처음이고 새로운 미션은 거듭 주어진다. 다해가 어린이였을 때, 일 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와 엉엉 울면서 말했었다. 엄마, 나는 한다고 하는데 자꾸만 아니래. 나는 정말 모르겠는데 자기들은 다 아니까 나도 아는 줄 알고 안 가르쳐주는데 모른다고 말을 못 해서 나만 자꾸 틀려. 엄마 너무 속상해. 일 학년은 아니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한다고 하는데 자꾸만 아닌 일들이 일어난다.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 현관문이 열린다. 다해가 들어온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 방으로 걸어가는 다해의 어깨를 잡는다. 다해의 몸이 움츠러든다.
다해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간신히 말한다.
나는 정말 모르겠어. 그러니까 가르쳐줘.
다해는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기다리면 돌아오니. 돌아올 거니.
다해는 나를 떠나 자기 방으로 간다. 문을 닫는다. 나는 주저앉아 일 학년 이다해처럼 엉엉 울면서 생각한다. 당장 하와이에 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머나먼 그곳에 무엇이든 버린 뒤 돌아오고 싶다고.
최진영
소설가입니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원도』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단 한 사람』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비상문』 『오로라』를 썼습니다. 현재 제주도 서쪽 바다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하와이에 가본 적은 없다.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는 꽤 들었다. 아이는 없다. 하지만 엄마를 미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주인공이 겪는 불안 증상을 최근에 겪었다. 내 삶에 불만은 없고 하루하루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와 같은 평안이나 만족감과는 다른 차원의 불안에 짓눌렸다. 글을 쓰며 이 불안의 근원을 살펴보고 싶었다. 아무리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삶. 그래서 새롭고 두려운 오늘. 내 잘못으로 무언가를 망칠까 전전긍긍하는 과도한 죄책감.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이상한 책임감은 오히려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와 ‘시간이 나를 망치고 있다’는 혼잣말이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불안과 사랑 또한 유의어 같았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에게 필요한 소설을 썼다. 하와이에 가는 대신 소설을 썼다.
2024/05/15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