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



   아치형의 문으로 인간 둘이 들어가고
   인간 하나가 나온다.
   (이제 인간은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가 하나의 생각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공중에서 쏟아지는 빛. 보이지 않는 저것이
   분해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다면
   다른 물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저를 드러내는 이상한 물질이 아닌
   신비하고, 아름답고, 은혜롭기만 한 것이었다면
   생각이라는 신호는 시작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친구와 나는 한낮의 루프탑 카페에 앉아 빛을 쬐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빛이,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다 믿는 빛이
   보이지 않는 균을 죽이고
   보이지 않는 힘을 주고
   (잘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믿으면서

   친구와 나는 파괴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것은 무균실이라는 은유를 통하는 다른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해로운 것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감염의 원인균들을 파괴하고
   전염된 치유 불가한 것들을 파괴하고
   차근차근 파괴해나가다가
   자살에 이르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공산권의 업적을 상기시키네요.)

   그 힘의 승인과 추구가
   우리네 보건 정책에 부합한다면
   결말이 비극이더라도 좋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가져본 적 없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얻기를 바라는 인간이

   조금 먼 곳의 다른 루프탑에서 이쪽을 관찰한다면
   친구와 나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 미동도 않는 꼴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상태로밖에
   구더기 두 마리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잠깐 잠든 나는
   꿈에서 잘못을 많이 저지릅니다.
   그런 잘못들은 없었던 일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입니다.
   충분히 반성했다 여기던 잘못들입니다.
   그러나 반성만으로는 뭐가 되지 않는군요.
   저질렀던 잘못을 또 저지르고 저지르게 되는군요.

   잘못했다고 울면서 빌기만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네요.
   민망해진 얼굴을 친구는 볼 수 없었네요.
   친구가 없어서요.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군요.

   나는 혼자 계단을 걸어내려갑니다.
   피가 썩는 기분을 느끼면서요.

   이 이야기는 이렇게 일단락됩니다.
   뒷이야기가 더 있지만, 이 생각 중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빛에 관해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누가 봐도 좀 딱한 일입니다.

   이 생각은 친구와 더는 만나지 않게 된 지도 한참을 지나
   내 죽음 직전까지 이어집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뇌로 밀려오는
   잠깐의 두통
   그간 들어온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들의 통합 버전
   뇌의 마지막 깜박임에 의해
   생의 마지막에 눈에 비치는 것이 흰빛이라면
   (또한 수명이 다한 알전구가 그러하듯이
   흰빛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잠시 이어진다면)
   그것을 아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가 하나의 생각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이제 생각은 페이지를 찢고 나옵니다.





   몽상/구더기



   구더기가 세상을 집어삼키기 전에 너와
   마시던 커피에 관해 생각하던 중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경험했지.
   그리고…… 사물들이 돌아오지 않는 거야.

   계속되는 건 생각뿐이니 계속할 수밖에 없었지만
   만약에. 우리의 여로가 끝나기라도 했다면
   이제부터의 경험은 경험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것일까?
   몽상 속에서 너는 찢어지고 있어.
   너의 피부는 척추에 걸린 채 갈래갈래 나부끼고 있어.
   그런데 나는 그 깃발을 볼 수가 없어.

   슬픈 상황임을 인식하지만
   슬픔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건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라는 거.

   모든 게 끝난 뒤에도 이딴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는 거.
   그건 내 마음을 갉아먹는 일이야.
   네 살을 찢고 나와 너를 해체하기 시작하는 벌레들처럼

   내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면.

   내가 모든 곳에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서
   내가 모든 곳이라면.

   구더기가 세계를 집어삼킨 뒤에
   그래, 그런 일이 있고 나서야
   나는 네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게 되었지.
   꿈에 취한 채

   이제 우리는 우리 아닌 전혀 다른 것들이 되어가고 있고
   아직은 스스로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겠지.
   내장이 다 쏟아지기 전까지

   나는 뭘 찾는 사람처럼 손을 내젓는다.
   (아직은 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무엇 위에
   무엇이 있다.
   뭔지 모르지만 이제 마셔야 한다는 건 안다.)

송승언

대체로 ‘좋은 시’ 와 관계없는 시를 씁니다. 혹은 그러고자 노력합니다. 세상에 참 좋은 시들이 많습니다.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주시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은 것에 싫증이 날 때 가끔 저도 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 시집은 300명의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300권을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0/04/28
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