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러닝 트립(running trip) / 바이칼 플레이(Baikal Play)
러닝 트립(running trip)
내가 여섯 살 때
달리자, 구호를 외쳤을 때
친구들이 이어서 부를 때
결국 오줌 줄기를 끊었을 때
달리자, 언덕 위의 성까지, 우리 너머의 태양과 박음질용 실뭉치처럼 구르던 사슴 앞까지, 전학생을 소개받은 다음, 우리는 서로를 껍질이 벗겨진 축구공처럼 차댔다 어디까지 굴렀을까, 바보야, 외친 다음에야 그날의 저녁으로 돌아가던 얼굴들, 가장 작은 것이라 믿었던 강아지와 공장에서 얻어온 타이어 기둥들, 달리자, 나동그라져도 심장을 수돗가에서 대충 문지르면 새것 같아지던 때로,
나는 어렸고 마음이 쉽게 괴로워지면
망가진 기계장치를 모아서 핥았다
녹의 맛, 가장 쓸모 있었던 건전지의 맛
머리가 간지러워지던 오후 2시의 맛
친구들은 화가 아저씨의 산장을 지나 호수로 뛰어들었던 망나니, 여자애들은 어제보다 더 광대뼈가 부드러워진 채 바보야, 외치고 웃었다 별은 짙은 속눈썹으로 물가를 흔들고, 밤은 속이 빈 삼나무로 불 피운 자리를 메우며 삐죽이기만 하는 것, 입술이 두꺼운 안경원숭이처럼 서로의 비밀이 부풀 때, 바지 단추가 떨어져나간 여자애들의 몸은 모래시계처럼 흔들렸다는 것, 빙글거렸다는 것,
그때 했던 문신 중 철자가 틀린 것은 사랑, 가슴에 문지른 사과를 씹으며 우리는 이러다 큰일을 내고 말 거야, 웃다가 하나 둘 쓰러졌던 친구들이 매미 날개처럼 빛나기 시작할 때,
나는 심야버스를 탔고
친구들은 큰길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달리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바이칼 플레이(Baikal Play)
당신은 세상의 끝에 도착해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었다 지니고 있었던 장식은 먼지가 되고, 지난밤 그러쥐었던 그림자에서 퍼렇게 질린 얼굴이 튀어나올 때까지,
어떤 부족의 어떤 심정을 견디는 동안 얼음은 별의 허물이 되었고, 발끝이 미끄러운 순록과 바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당신을 건너갔다 이렇게까지 인간에게서 멀어진 기억을 누구든 지니고 있어야 할 때, 고래 무늬 가득한 모자를 끌어안고 오후는 정적 속에서 발가락을 움직였다 그것을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후는 고통스러웠다 당신은 잘 곳이 없었다 그러나,
화간(和奸)하고 수간(獸姦)하고 계간(鷄姦)한 자들과 먹고 마시고 울상을 짓고 뿌리쳐진 자들과 보리를 빻고 나무를 하고 작은 집에서 작은 가족과 잠든 자들은 저마다의 끝으로 떠나는 중,
근처에는 곶(串)과 날붙이가 달린 썰매 배가 있었다
우리를 자라게 한 특이점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안다 한 번도 잇자국이 난 적 없는 젖꼭지로 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 젖꼭지가 있다는 것은 당신을 한 번도 부끄럽게 하지 않았다
날은 더욱 추워지고 하늘은 섬뜩한 애꾸의 것, 불러오는 배를 긁으며 승냥이는 잠든다 활시위에 감아둔 줄을 돌리는 동안 불은 낡은 울타리에 등을 기댄다 그런 날이 있었지, 당신은 휘파람을 분다 싹이 움트는 날, 씀바귀에 손 베인 아이들과 볼이 패인 사내들이 양을 몰고 돌아오는 날, 조장(鳥葬)이 끝난 할머니 손뼈로 옷감을 눌러두었던 날, 흰나비들은 땔감마다 매달려 있었던 이슬을 머금고 겨울을 더듬이마다 올려둔 기분, 당신은 아껴두었던 벙어리장갑을 불 속에 집어넣고 자신이 돌아가지 않을 것을 깨달은 기분,
이곳은 배를 탄 사람이 배 밑창으로 내뱉은 침의 색, 선착장에서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인분(人糞)으로 키운 불꽃은 당신을 껴안아줄까 물었다 당신이 즐거워질 때까지,
이상정
고양이는 볕을 피해 사람의 눈 찡그림 속으로 뛰어든다. 세상은 평안하다. 나는 허락받지 않고 산다. 요즘은 무너지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