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링



   순서가 섞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그때 본 얼굴형이 마지막일 줄이야

   우리, 이제 방식을 바꾸기로 해요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담요는 벗어 던지고
   그 위로 강아지를 올려두세요. 얘는 이가 조금 간지러워요
   이제 막 돋으려고 한다니까요? 입속으로 손가락을 넣어요
   구멍 속 검지와 중지, 간지럽지만 참을 수 있잖아요?

   검은 개는 헤엄을 칩니다
   앞발과 뒷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발가락 사이로 튜브 같은 작은 물방울들, 강박들, 다시 물방울들
   해먹에 누운 나는 슬슬 지루해집니다, 잠에 빠지고 싶습니다
   이번엔 진짜 내가 되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이프를 든 손이 쓱쓱 그림자를 벗기자
   늪 사이로 수풀을 헤치고 들판 위를 뛰어노는 소녀들, 소리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액자 위로 찍힌 손바닥들, 그 아래, 신경증처럼 차려진 식탁, 그 뒤로 하얗게 불타오르는 화산들이 보입니다
   세계의 모든 재해 너머로 키가 다른 비석들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습니다
   나열된 죽음들은 두 손으로 무게를 가늠할 수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권현지입니다. 현지요. 저 현지에요
   혹시 기억나세요? 기억하세요?
   진동 드릴로 마구 구멍을 낸 벽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과자 집 벽 위로 가만히 귀를 대고 서 있는 교수님, 그 뒤로 이가 없는 우리 아빠, 그 뒤엔 불임인 내 검은 개가 물방울을 털어내고 있습니다 그 뒤엔 식탐 많은 말라깽이가 크림빵을 핥고

   위에서 떨어진 운석들을 내려다봅니다
   나열된 형상들은 측정될 수 있습니까?
   자자, 이쪽으로 얼굴을 틀어보세요
   눈을 감고, 나는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봅니다





   스크린



   이곳은 가시덤불이 피어오르는 노래
   바이올린 리스트, 한 손엔 턱을 괴고 별자리를 잇는다
   활과 활, 샤콘느, 목소리, 스모키, 버건디, 늙은 개의 신경질
   검은 앵무가 나무 위에 올라 이름을 외는 동안
   번진 눈을 감고 숫자를 센다

   리본을 매만지듯 기차들은 달리고
   철길이 달려오는 여름은 아직 시원하고, 말동무가 필요하고
   아직은 방울 소리가 들려와,
   사라진 길들 위로 새들의 사체
   눈을 감은 너는 어디로 날아가길 원하는 걸까?
   검은 표범 고래들의 눈물이 밀려드는

   야간열차가 달린다
   부드러운 수염 사이로 거리를 쏘다닌다
   전화를 걸어봐야지 볼 키스하는 것은 이 세계의 법칙
   나에게 니 하오 마 인사를 건네지 마
   나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이방인의 글씨체로
   엽서를 쓴다
   거짓말을 한다

   스파게티 볼에서 썩어갈 생선들 오늘의 진실처럼
   부엉이의 눈으로
   굿, 이브닝 기차들은 달리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하얀 스크린

권현지

내게 도착한 한 뭉치의 신경 다발
하나를 끊어서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반대편에는 파운드 케이크 조각을 하나씩 올린다.
나는 이 시간을 가늠할 수 있을까.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