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



   어느 날은 그렇겠지요. 집에 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아 골목길에 주저앉았을 때 뒤꿈치에 스프링이라도 달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저기 튀어오르다 넘어질까요. 젊은이의 뼈는 훌륭해서 척척 붙습니다만. 아침엔 뭘 먹었는데 그게 뭘까요. 백년을 뛰어넘은 밥상입니다. 점심에는 이웃을 만났는데 그게 누굴까요. 잘 지워지지 않는 것은 고향의 언덕 바람의 냄새 엄마의 손가락. 빙판의 난반사가 시야를 가렸을 뿐인데 팔다리가 즐거워졌습니다. 대자로 뻗었습니다 그려. 마음은 벌떡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1918년이었어요. 누가 알았겠어요. 일 년 후에는 난리가 나고 피칠을 하고 목청이 터질 줄이야. 지푸라기에 비린내 풍기는 생선을 싸매고 먼먼 길을 달려왔는데 꿀단지는 깨지고 무르팍도 지워지고. 엄마의 손바닥 그건 여기가 백 년 전이라는 소리입니다. 1918년의 하루가 붉습니다. 일 년 후에는 더욱더.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내일은 더 반갑겠지만 고년이 어디로 나가서 지 맘대로 날뛸지. 걱정 반 재미 반입니다. 생마늘 같은 발가락을 다섯 개, 열 개나 달고 달려나가 목청껏 부르짖을 때 마음껏 봄이 옵니다. 내 인생은 백 년 전의 것이어서 훌륭합니다.





   노력하는 삶



   탁탁탁 지팡이 소리와 망설임 없는 걸음걸이. 눈먼 아저씨와 나는 자주 만난다. 내가 졸졸 따라다닌다. 오 초도 못 버티고 눈을 뜰 수밖에 없는데 모서리가 벌떡 일어나고 계단이 너무 많은데. 팔짱을 끼고 함께 가고 싶지만 어쩐지 부끄럽다. 졸졸졸 뒤따라가는 수밖에. 그랬지. 아닌 척 많이 따라다녔다. 교회 오빠들. 하나님과 오빠들을 위해 부지런히 기도를 했다. 노력하는 입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보름달과 나뭇잎도 다 아는 식상한 얘기. 이제 와서 깡마른 눈먼 남자를 못 잊어 매번 이렇게 따라다닐 줄이야. 잘 보이는 피로와 안 보이는 고통 사이에서 춤을 출 줄이야. 빗물은 지팡이에 걸리지가 않아서 젖은 발로 걸어가는 멋진 남자. 깡마른 등허리에 팔을 둘둘 감아주고 싶은데. 아뿔싸 나는 팔이 짧고 이해심도 없고 이해력도 떨어지는구나. 세상은 어려운 참고서 같고. 다 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 수리부엉이가 날아오를 시간.2) 파괴되지 않고 좀먹으며 가니까 빈대 벼룩이 보이고 간이 아프고 쓰리다. 한 무리가 계단을 쓸고 내려간다. 소녀들의 가슴은 밋밋해서 팔다리가 너무 길고 하얘서 간지러운 세상을 마구 휘저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발걸음. 골탕 먹은 것 같은 기분으로 잠시 눈을 감고서.

이근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팔다리를 남의 것처럼 내려다봅니다. 실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천둥 같은, 노을 같은, 구름 같은 마음입니다.

2018/09/25
10호

1
“환자분, 올해가 몇 년이지요?” 의사가 물었을 때 엄마가 망설이며 대답했는데 내가 그만 웃어버렸다.
2
하루키도 집안에서는 등 뒤의 서늘한 시선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와 고양이는 즐거울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