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물곰 가족 / 방랑 시인과 파란 엽서
물곰 가족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봉씨는 아내가 커다란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봉씨는 미동도 없이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서 아내의 기다랗고 마디진 더듬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침부터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할 일을 생각해냈다는 듯 입술만 움직여 허공에 둥글게 늘어진 더듬이의 마디 수를 세었다.
예상했던 대로 오른쪽 왼쪽 더듬이 마디 수가 서로 달랐다. 오른쪽이 하나 더 많았다. 마디 수의 좌우 비대칭은 벌레가 되기 전의 아내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다. 신혼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딸 둘을 낳고는 아내의 육체는 뭐랄까, 왼쪽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왼쪽 아랫배의 수술 자국을 둘러싸고 단단하게 살덩이가 뭉치더니, 매끈했던 아랫배가 맨 처음 좌우 대칭을 상실했다. 둘째를 낳고부터는 왼쪽 엉덩이가 처지기 시작했고,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왼쪽 젖가슴이 일 센티미터쯤 늘어져버렸다.
언젠가 그 사실을 지적했더니 아내는 아, 그래, 하고 도끼눈을 떴다.
“넌 무슨 완보동물 같은데? 작고 둔하기가.” 아내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하하, 병신이 좋단다, 완보동물이 뭔지도 모르면서.” 봉씨가 휴대폰을 꺼내서 켜고 네이버를 열어 완보동물의 뜻을 검색하고 이해하는 동안 아내는 숨도 안 쉬고 그를 놀려댔다. “작으면 귀엽기라도 해야지, 넌 그냥 작기만 해. 보잘것없고 볼품없어. 내가 요가를 배우면 뭐해, 쓸 데가 없는데.” 그러고 아내는 지가 싫어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안 하는 걸 기초학문이 몰락하고 있다고 멍청한 소리나 칼럼에 써 갈긴다고 그의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냈다.
봉씨가 처음 보는 아내가 그 앞에 와 있었다. 첫째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그의 수더분한 내조자였다. 시간강사 시절 서울에서 대전으로 강의를 다니며 일주일에 하루만 집에 들어와도 말없이 눈만 흘길 뿐이었다. 그가 허리를 덥석 안으며 한 달 안에 삼 인치 줄이지 않으면 여학생이랑 바람을 피울 거라고 협박을 해도 그저 분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완보동물이 물곰이었어?” 봉씨는 화도 못 내고 몰랐던 사실을 당신 덕에 알았네, 하는 뉘앙스로 입을 열었다. “물곰은 둔해서 십 년을 굶겨도 배고픈지 모른다네. 너도 한 번 굶어봐.” 아내는 어기적어기적 물곰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주방에서 욕실까지 걸어보였다.
순하고 무던해서 학교식당의 주방아줌마 같았던 아내는 이제 없었다. 첫 아이를 낳고 말대꾸를 시작하더니 둘째를 낳고는 자신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서 잔소리는 끝없어지고 남편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봉씨는 이제 벌레가 된 잔혹한 여왕을 바라봤다. 더듬이 아래 붙은 흑갈색의 겹눈은 눈꺼풀이 없어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래턱은 볼트커터처럼 우악스럽게 변해버려 호흡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어제 아침만 해도 아랫입술을 추접하게 떨며 거친 숨을 내뱉곤 했다.
봉씨는 배가 고팠다. 목이 말랐고 볼일도 보고 싶었다. 직장은 없었지만 왕립 식물원에라도 가서 좀 걷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침대를 들썩였다가는 잔혹한 벌레 여왕이 깨어나 물어뜯을지도 몰랐다. 그는 오로지 그 걱정만 했다. 그는 저게 아내가 맞는지, 맞다면 어쩌다 저리됐는지, 벌레 여왕이 과연 딸 둘을 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봉씨는 벌레 옆에 누운 채로 도로 눈을 감고는, 호주 멜버른과 팔천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고향 시골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그리운 어머니와 함께 정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워낙 작은 경북 청송의 시골이라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번쩍 떠봤다. 침대머리에 드리워진 더듬이는 여전했다.
봉씨는 아내 무섬증이 있는 데다 벌레 무섬증까지 있었다. 그는 가슴을 조여 오는 숨을 참으며 초당 일 센티미터의 속도로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는 욕실로 가 소변을 보고 세수를 하고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아내로부터 극적인 승리를 쟁취한 중년 사내가 웃고 있었다.
고난의 시작은 봉씨가 강의 시간에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어린아이의 자아 형성기에는 특히 예쁘다 잘생겼다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어린이의 자아가 외면에 형성되어 내면이 부실해진다는 얘기를 하던 날이었다. 다들 열심히 듣는 듯했고, 강의의 깊은 뜻을 이해한 듯했다.
그다음 수업에 두 여학생이 ‘나한테도 어디 한번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해보시지요.’ 하고 대들 듯이 온갖 액세서리와 색조 화장으로 한껏 꾸미고 나와 강단의 봉씨와 빤히 눈을 맞추었다. 그가 대학생이던 때의 대학 캠퍼스에는 그만한 화장술의 경지에 오른 여학생은 없었다. 두 여학생 중 윗머리 몇 가닥만 오렌지 빛깔로 염색을 한 학생에 그는 특히 끌렸다. 그는 갓 딴 오렌지처럼 신선한 머리가 그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특별히 꾸민 것이라고 덜컥 믿어버렸다. 그는 강의가 없는 날에 굳이 교수실로 출근해서는 학생을 불러 중국 광저우에서 있을 세미나 이야기를 했다.
교수와 학생의 사랑의 모험이 시작됐다. 성폭력 사건들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였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봉씨의 호승심을 부추겼다. 누가 감히 나를…… 그는 이 세상에서 누가 자신을 해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기까지 했다. 어린 연인이 임신을 하고 그 친구가 학교 당국에 투서를 한 다음에야 그는, 일렁이는 파도처럼 블러 처리된 푸들이 악어 아가리를 벌리고 누군가의 성기를 물어뜯는 꿈을 꿨다. 둘 사이에 주고받은 카톡 밀어가 마침내 윤리위원회에 공개되었을 때 비로소 그는 카카오톡이 조금도 은밀한 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밀어가 실은 성희롱뿐이었다는 사실을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딸들의 교육을 핑계로 멜버른으로 왔다.
봉씨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두 딸이 깨어나 엄마의 더듬이와 검고 굽은 등을 본다면 어떻게 나올지 근심했다. 틀림없이 꺄악, 꺄악 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매달려 당장 서울로 돌아가자는 둥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둥 가당찮은 요구를 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가족이었다. 그에게 서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북쪽으론 머리도 두지 않았다. 그가 서울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딸들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었다.
봉씨는 콧노래를 부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다가 문득 두 딸이 일어날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쯤이면 둘 다 일어나 이 층에서 욕실 문을 사이에 두고 큰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을 시간이었다. 아닌가? 그는 다시 두 딸이 엄마를 닮아 늦잠꾸러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도 그렇지! 그는 오늘이 어학원에 가는 날이고 아홉 시 반에 수업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봉씨는 두려움에 떨며 젖은 몸을 닦고 가운을 걸친 다음 이 층으로 올라갔다. 벌써 햇살이 층계를 달구고 있었다. 맨발바닥에 닿는 나무계단은 따뜻했고 공기는 더웠다. 그는 두 딸의 침실 앞에 숨을 멈추고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그저 문을 여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 돌리며 문을 밀었다. 노크를 하라는 딸들의 요구는 이번에도 잊어버렸다.
첫째 딸의 침대엔 햇살에 번들거리는 자줏빛 커다란 가지가, 둘째의 침대엔 초록색 뿔처럼 싹까지 돋은 커다란 생양파가 올라와 있었다. 이불은 잠결에 걷어찬 것처럼 구겨져서 발치에 밀려나 있었다.
봉씨는 멍청한 얼굴로 두 침대 위의 딸일 수도 없고 딸이 아닐 수도 없는 가지와 양파를 바라보다 살금살금 문을 닫고 나왔다. 가지와 양파가 깨어나 아빠, 싫어, 싫다고! 하고 평소처럼 소리라도 지를 것처럼.
양파와 가지는 봉씨가 식탁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식재료였다. 그에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생김새와 냄새였다. 그는 가지와 양파를 주방에 들여놓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아내와 딸들은 가지와 양파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으면 그를 놔두고 외식을 했다. 중식당에 가서 가지볶음 요리인 어향가지를 먹었고, 일식당에 가서 양파 향이 듬뿍 나는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아래층 거실로 내려와 소파에 앉은 봉씨는, 딸들이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생양파와 가지로 변한 일의 의미를 곰곰 따져보았다.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의미를 알 리 없었다. 그는 어쩌면 딸들이 양파와 가지만큼이나 싫었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했다. 음……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딸들은 아빠 때문에 일 년 내내 여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아침마다 빈정대고, 영어로 어떻게 친구들을 사귀냐고 저녁마다 원망했다. 딸들도 그를 싫어했을 게 분명했다. 그가 먼저 축구공으로 변했을 수도 있었다. 딸들은 축구 중계도 싫어했고 축구공도 싫어했는데, 모두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싫어했던 게 분명했다.
봉씨는 혼자 남았다. 문득 현관을 열고 나가 호주인 이웃들도 아내와 딸들처럼 벌레나 채소로 변했는지 둘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런 재앙이 자기 집에만 내린 축복일 리 없었다. 재앙과 축복, 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봉씨는 거실의 벽시계가 열두 시를 가리킬 때까지 기다리다가, 일 층과 이 층의 침실에서 아무 기척도 나지 않자 천천히 두 발을 끌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헬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젠투펭귄이 날개를 손처럼 흔들며 봉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지, 여긴 남극이 가깝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차고로 들어가 차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왔다. 아내가 실내금연은 물론이고 집안에 담뱃갑도 가져오지 못하게 해서 늘 차 안에 넣어놓고 다니는 담배였다. 그는 현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당겼다.
그저 라이터 불을 켜는 것뿐인데도 네 개의 다리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봉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다보았다. 나머지 네 개의 다리가 미끄러질까 봐 그런 것처럼 층계를 꼭 붙들고 있었다. 집 앞 도로에선 얼룩말 그림이 새겨진 커다란 베개 하나가 “늦었어, 늦었다고!” 하고 소리치며 뒤뚱뒤뚱 달려가고 있었다.
봉씨는 볼트커터 같은 턱이 달린 아내와 매끈한 가지로 변한 첫째 딸과 통통한 양파로 변한 둘째 딸과 함께 가정을 이룬, 다리 여덟 개 달린 굼뜬 완보동물 물곰 한 마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중 물곰이 가장 생명이 질겼다. 그 생각에 그는 잠깐 행복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도 찰라 이상은 지속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서로의 꿈속에서 서로가 싫어하는 형상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그는 물곰 가족의 가장 물곰이었다.
방랑 시인과 파란 엽서
시인의 마을엔 동편 하늘 없이 서편 하늘만 있었다. 해안을 따라 달리는 가파른 산맥의 서편 등마루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어서, 동편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면 아찔하게 솟은 절벽 같은 산자락만 보였다. 그래서 일출 같은 동편 하늘의 일을 보려면 산을 타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집에 묵으러 오는 손님들에게 마을을 한 장에 담은 그림지도를 나눠줬다. 마을은 A4용지 반절 크기에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손으로 그려 복사한 그림지도에는 동편 하늘을 가로막은 산봉우리들과 상주하는 스님도 없는 작은 사찰이 담겼고, 이웃 마을들을 오갈 수 있는 선착장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서편 하늘만 있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의 위치와 약국, 슈퍼마켓, 시인이 운영하는 ‘파란 엽서’라는 이름의 민박집이 그려져 있었다.
손님들은 A4용지 반절 크기에 다 들어가는 마을의 사이즈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마을이라니, 손바닥에 올려놓고 볼 수 있는 마을이라니, 하면서 즐거워했다. ‘파란 엽서’의 손님들은 세계의 모든 마을에서 오는데 그 마을들에선 서편과 동편의 하늘이 다 보였다. 그래서 시인이 그림지도를 쥐여주며 이곳은 서편 하늘만 있는 마을입니다, 라고 운을 떼면 눈을 반짝인다.
“오오, 그렇담 동쪽 하늘은 어디 있죠?”
“이 다섯 봉우리 너머입니다. 그런데 실은 지도에만 다섯 개지 봉우리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몰라요.”
또 이렇게도 물었다.
“설마, 산 너머에도 없는 건 아니죠?”
“여러분이 바로 산 너머에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방향치라 자신이 어디에 왔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손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시인은 거실의 캡슐커피 머신 사용법을 설명해주고 끝으로 진분홍 매화꽃들이 흐드러진 작은 꽃바구니를 건넨다. “매일 아침 방문을 열면, 갓 구운 빵하고 수제 과자가 담긴 이 바구니가 걸려 있을 거예요.” 빵과 과자는 그의 외종사촌이 하는 빵집에서 새벽에 가져오는 것들이었다. 조식 대신 그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였다. “드시고 다시 방문에 걸어놓으시면 돼요.”
시인은 향긋한 빵 냄새가 방문 틈으로 흘러들면 저절로 잠에서 깨어날 거라고 했다. 시계 알람이 필요 없다고. 그는 꽃바구니에서 수제 초콜릿 하나를 꺼내 건네줬다. 손님들은 이제 마을을 떠올릴 때마다, 초콜릿의 조금 쌉쌀하고 많이 달콤한 맛을 기억하고 ‘파란 엽서’ 민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옛날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서편 하늘만 보다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는데, 죽어서야 묻힐 땅을 찾아 산봉우리를 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서편 하늘만 보고 서편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 듣고 서편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만 느끼며 살았다.
시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동편 세상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도 산봉우리 너머에서 다녔다. 중학교는 이웃 마을에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기차를 타고 산에 뚫린 터널을 지나 동편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는 기나긴 통학길이 싫어 가다말다 하다가 겨우 졸업을 했다.
그 정도면 동편 세상은 볼 만큼 봤다고 할 수 있었다. 동편 하늘의 일출도, 동편 바람에 묻은 흙 맛도, 바닷바람이 뭔 줄 모르는 희멀건 얼굴들도 실컷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시인은 동편에 대한 미련이 애초에 없었다. 동편 세계에서의 삶을 동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편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이 산봉우리를 넘어와 그의 마을에 놀러 오고 있었다.
시인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씻고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가 외종사촌의 빵집에 가서 그날 치 빵과 과자를 종이봉지에 나눠 담아왔다. 그러고는 이 층부터 삼층까지 방을 돌며 종이봉지를 하나씩 꽃바구니에 넣었다. 꽃바구니의 매화꽃은 가짜 꽃이었지만 향기만은 진짜였다. 달콤하고 따뜻한 진짜 버터 향이 가짜 꽃에 배어들었다.
일곱 시부터는 일 층의 주방에서 자신의 아침을 준비했다. 시인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주로 낚싯배에서 구해온 잡다한 물고기들을 굽고 튀기고 끓여 만든 반찬들이었다. 정오까지는 부산을 떨며 일을 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온 손님들이 대개 그 시간까지 잠을 자기 때문이었다. 체크아웃 시간인 열두 시를 기다리며 조용히 책을 읽거나 창가의 화초를 가꾸면서 시간을 보냈다.
정오가 지나면 시인은 본격적으로 청소를 했다. 체크아웃한 방에 들어가 쓸고 닦았다. 복도를 돌며 타월을 채워 넣었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민박집 앞길까지 청소를 하면 오후 세 시였다. 그는 언덕길에 서서 손차양을 하곤 새로 마을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행렬을 살폈다. 그러곤 거실의 데스크톱으로 민박 홈페이지의 예약현황을 점검했다.
해가 지면 마을 사람들처럼 시인의 얼굴도 어두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주방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아침에 먹다 남은 반찬을 데웠다. 어쩌다 그것도 귀찮으면 침대에 누워 외종사촌의 빵을 먹었다. 그가 외식할 때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그는 모든 식당의 모든 메뉴의 맛을 다 외웠다.
그러고 잠들 때까지는 온전히 시인의 시간이었다. 시인의 시간, 그렇다. 해가 지면 그는 오롯이 시인으로 살았다. 그의 침실엔 할머니가 물려준 나무 책상이 있었다. 할머니가 가계부를 쓰던 책상이었다. 그 시절 책상들이 대개 그렇듯 그 책상도 키가 좀 낮았다. 그래서 그는 네 다리 아래 1998년도 그 지역 전화번호부를 네 권 받쳐놓았다. 1998년부터 그는 책상에 앉기가 불편할 정도로 키가 부쩍 커졌다. 책상 상판에는 원목의 나이테가 흉터처럼 남아있었고, 다리에는 옹이가 시커멓게 멍처럼 박혀있었다. 듣기로 할머니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어떤 나무로 짜였다던데, 그렇다면 원목은 할머니보다 얼마쯤 더 나이 든 나무였을까.
시인은 책상 앞에 앉아 꼿꼿이 등을 펴고 노트북을 켰다. 물론 노트북에 워드 프로그램의 정갈한 새 창을 띄운다고 해서 영감이 떠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없었고 대개는 첫 문장, 첫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시상을 독수리타법으로 한 자 한 자 박아 넣는 그런 영화 속 시인은 이 마을엔 살지 않았다. 그는 많은 시간을 멍하니 흰 모니터와 눈을 맞추며 보냈다.
시 한 줄 쓰지 못하고 밤을 새울 때면 시인은 슬픔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슬픔의 이유를 몰랐다.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슬퍼할 것까지는 없었다. 시는 내일이나 모레 쓰면 되었다. 민박집은 운영이 어려웠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 무일푼이 되어 죽을 게 뻔했지만 벌써부터 슬퍼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게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을 내가 이루지 못했나 생각했다. 돌이켜보건대, 굳이 바랐다고 할 것도 없었고 굳이 이뤘다고 할 것도 없었다.
시인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적어도 시를 쓰려는 시간에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 사실을 그는 많은 시간을 생각만 하느라 허비하고 나서야 알았다. 어쩌면 그가 싱글이어서 외로움을 타는지도 몰랐다. A4용지 반절에 다 들어가는, 서편 하늘만 있는 작은 마을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옛날, 그는 사랑 고백을 했다. 이웃 마을의 여자애였다.
“아냐.” 여자애가 말했다.
“밖에 나가봐. 산 너머 도시들에는 네가 좋아할 만한 머리 길고 얼굴 하얗고 예쁘고 착한 여자애들이 널렸을 거야. 너무 한 곳에만 머무는 것도 좋지 않아.”
“하지만 굳이 마을을 떠나지 않아도 세상을 볼 수 있어. 난 이 마을의 방랑 시인인걸.” 시인이 말했다.
진심이었다. 시인은 마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일 깊은 책의 숲속으로 모험을 떠났고, 시들이 인쇄된 아름다운 계곡들 사이를 방랑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애와 평생 그러고 살고 싶었다.
“뭐라고? 방랑 시인?”
여자애는 아버지처럼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난 그렇게 살 수 없어, 난 시도 이해 못 해.”
“알아.”
시인은 현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나한텐 ‘파란 엽서’가 있어. 그것으로 우리 둘이 먹고살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여자애가 다시 껄껄 웃었다.
“미안해, 하지만 난 이곳에서 엽서나 쓰며 살 순 없어.”
그녀는 시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알아, 알아, 나도 네가 좋아, 하지만 난 한 마을에서만 살 순 없어. 내게 엽서를 보내줘. 도시로 나가면 고향 이야기가 궁금할 거야.”
여자애는 동편이 잘려나간 하늘 저 너머로 사라졌다.
시인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여자애에게 고향마을 이야기를 써서 엽서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옛날에 쓴 엽서나 어제 쓴 엽서나 들어있는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고, 어느 날 결혼한 여자애로부터 남편이 싫어하니 엽서는 그만 보내라는 전화를 받았다.
시인은 방랑을 계속했다. 아직 누구도 그가 시인인 걸 눈치채지 못했지만 ‘파란 엽서’에 묵고 가는 손님들은 어쩐지 그가 시인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불분명하고 드문 느낌이라 누구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물어보지 않았다.
시인은 발바닥 대신 눈이 시리고 아리도록 책 속의 다른 세상들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오직 서편만 있는 하늘 아래, A4용지 반절만한 마을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의 방랑은 저녁이면 세계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는 행복했다. 이따금 슬퍼졌지만 왜 슬픈지에 대해서는 완강히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시 한 줄 못 쓰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시 한 편 완성하는 날도 많았다. 그날은 유난히 행복했다.
백민석
엽편 소설 두 편을 썼다. 내년에 나올 연작 소설집에 개작해서 실을 예정이다. 이십 년도 더 전에, 나는 이런 형식의 엽편 소설 연작을 문예지들을 통해 발표했던 적이 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게 파격이었다. 지금도 그럴지……
2018/12/25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