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레몬 / 눈사람
레몬
레몬은 레몬나무의 열매다 리카와 가디의 정원에는 레몬나무가 있다 겨울에 그들을 방문했고 레몬이 열린 나무 곁에서 시소를 탔다 서른 즈음의 가디가 만든 좌우로 돌아가는 원형 시소였다 시소를 돌리면 레몬나무 가지와 잎과 레몬들을 스친다 그가 늙었고 그의 나무가 자랐기 때문이다 시소를 돌리면 몸을 숙인다 레몬나무 가지와 잎과 레몬은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몬나무 아래는 떨어진 레몬들이 있다 레몬을 주워 레몬냄새를 맡는다 레몬이 내는 냄새가 좋아 더 깊이 들이쉰다 코에서 레몬이 자란다면 매번 향기로운 숨일 것이다 그렇지만 코가 무겁겠지 레몬냄새만을 맡는다면 세계는 레몬 한 알 만큼일까 그것은 세계를 생략하는 일이 되어 버릴까 레몬 한 알을 주워 냄새를 맡는 일은 향기롭다가 무서운 것이 된다 생략된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신체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슬프다는 것은 무얼까 나는 슬픔에 놓여서도 슬픔을 알지 못한다 거실 안의 리카와 가디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 앞으로도 그들을 잘 모를 것이다 그들에게는 종종 떠올리게 되는 레몬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들은 레몬나무와 함께 떠오른다 그것은 시소가 레몬나무와 함께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면 나는 또 레몬나무에 매달린 레몬들과 레몬나무 아래 떨어진 레몬들의 밝기를 떠올리게 되고 레몬이 일정한 빛을 내는 전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몬의 밝기는 안정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거의 레몬을 숭배하는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앙 없는 사랑이다 레몬이 켜진 그들의 정원에서 좌우로 돌아가는 시소를 타고 레몬나무를 스칠 때 즈음 몸을 숙이는 나는 레몬의 안정적인 밝기를 생각하고 레몬나무 가지와 잎과 레몬은 피하지 않기 때문에 더 깊숙이 몸을 숙인다 그러고서도 몸이 닿는다
눈사람
너는 좋아했지
머랭의 녹는 맛을
녹는 맛
겨울의 흰 눈 속에
붉은 혀를 내미는 맛
이상한 가벼움이
스며드는 맛
조금씩 내가
사라지는 맛
잠이 없는 나는
너무 졸려서
나는 또 잠든다
눈 위로 쌓이는 눈의 사태처럼
잠 위로 덮이는 잠의 사태처럼
마음이 생겨나
발이 녹으면
나를 깨우러 와도 된단다
심지아
밤에는 야옹, 밤에는 멍멍, 인사처럼, 잠꼬대처럼,
2019/02/26
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