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비유》
67호 네 개의 문 너머에

   크롬

   물질을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다

  차마 붙잡지 못했던 네 손에 손톱이 자라나서
  내 꿈속의 손목을 할퀴었다.
  꿈 밖으로 이어지는 통증에 대해 생각하며 눈을 뜨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는 인간이란
  어떤 종에 속하는 것일까요.
  오늘만은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루에 몇 번씩 떠올리던 장면을
  하루에 한 번 떠올리게 되고
  일주일에 몇 번인가 찾아오던 느낌이
  일주일에 한 번쯤 찾아오게 되면

  잊는 것입니까.
  잊는다는 것은 아프지 않다는 뜻입니까.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까.

  순교자도 파렴치한도 성인도 아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건 나의 삶인가요.
  다른 사람의 삶인가요.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핏방울들로 기록된 책을 한 글자씩 지워나가는 하루들이 모여
  이룩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며 눈을 뜨고

  질료는 적이고 물질은 어리석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 끝없는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는 것*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만의 아침

  내가 만질 수 없는 곳에 화인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날개뼈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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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하는 인간

   당신의 보고서에는 너무 많은 영혼이 들어 있다.
  모든 계층의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가능한 일이지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돼

  카프카는 보험회사 직원이었고
  아시쿠라치오니 제네럴리의 급료는 형편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고객상담센터 직원인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보험회사 직원인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변호사 사무실 서기인 사람들과
  태어날 때부터 벽돌공인 그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백 인분으로 지어진 밥의 쌀알은 투명하고
  일 인분의 백반을 먹은 그는 조금 더 투명해진다.

  나는 전쟁과 묘지를 증오해.
  그러나 곧고 단단한 벽을 쌓는 일은 나의 정확한 노동.

  벽돌 한 개를 쌓아 올릴 때마다
  그의 영혼이 평안을 얻고
  벽은 핏방울을 머금은 것처럼 조금 더 붉어진다.

  이 회사의 벽이 완성되고 나면
  그는 휴가를 떠날 것이다.

  마침내 그의 시력이 약해진다
  그는 자기 주변이 정말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눈이 착각을 일으키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니스는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레지옹 알프마리팀 데파르트망의 수도.
  북위 43도 42분 10초
  특산물은 꽃과 향수와 올리브.

  당신의 보고서에는 너무 많은 죽음이 담겨 있다.
  죽음이 아니라 바로 이곳의 삶에 관한 내역을 작성해야 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긴 휴가를 떠날 것이다 니스 지방으로
  꽃과 향수와 올리브를 담을 커다란 가방을 지니고서
  투명해진 몸에 검은 외투를 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