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푸른 생선이



   프롤로그
   내 몸의 소금기 있는 것들은 좀 사라졌으면 간절히 기도
   했던 지난 밤 치사량의 사랑을 복용한 외국인 노동자가 실종됐다
   지역 신문의 공고는 간결하게 끝맺었다

   1장

   손가락을 상상하며 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느러미로 이름을 쓰면
  ‘힐라스,1) 오오, 힐라스’

   파도에 휩쓸려가겠지 새까맣게 탄 난nān처럼
   공장 기숙사에서 꾸역꾸역 숨 쉬고 있던 검은 쥐
   무단주거침입죄
   남녀노소 넘쳐나던 그의 애인들
   남은 그의 몫을 두고서 치사해진다

   홍차를 마시면 이빨 사이로 홍차가 걸러지고
   숨을 들이마시면
   사랑이 걸러지듯

   이는 실종 뒤에 따라붙는 자연스러운 현상들이다

   2장

   등 푸른 생선 DHA가 풍부하다는
   그날 밤 비늘 한 조각 잃어버렸지 애써
   뭍과 가까운 먼바다까지 나아가지 않았다면

   그의 발톱이 조금만 더 성가시게 자랐다면

   차라리 비늘 대신 감을 수 없는 두 눈을 잃어버렸더라면

   분주한 물고기 떼
   접시 위에 힐라스를 올려놓고 칼로 썬다
   하나하나
   당신도 드셔보세요 이놈은 특히 안쪽 허벅지 부위가 맛나답니다
   머리카락은 이쪽에 내어두세요 따로 그릇을 준비했으니

   식사 시간은 프랑스식 정찬처럼 풍성해지고
   그의 가슴은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3장

   그의 실종이 선고된 지 꼭 5년이 되었다
   눈을 깜빡이듯 죽음이 선고되었고,
   그의 애인들은 삼삼오오 슬퍼했다 사실
   지금도 그는 내 뱃속에서 자위를 하고 있는데

   힐라스, 오오, 힐라스
   오늘은 이빨을 잃어버렸어 안쪽 어금니가 웃다보니 빠져버렸어
   뭐라고? 씹는 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어
   당신의 갈비뼈를 해체 중이야 사랑이 모자란 것 같아서

   눈을 감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늘만큼은 다행스러워
   당신의 1초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니

   당신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니



   에필로그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외노자 힐라스
   그의 여기저기 널려있는 애인들
   제 살길 찾아간다
   지역신문 폐간된다

   힐라스 새 직장을 구한다
   살아생전엔 화장품 뚜껑의 표면을 매끈하게 가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용달차 끄는 일을 한다
   퇴근 후 일주일에 서너 번 자위를 한다
   등 푸른 생선은 오늘도 그를 먹고 푸르게 자라난다
   바다는 꾸준히 깊어지고 그 밑바닥에서는
   러시아워에 갇힌 힐라스가 무신경하게 경적을 울린다

   꿈에서 깨어나 꾸는 꿈처럼





   국수의 유래



   인간을 국수 뽑는 기계라고 가정해보자
   말(言)이 면발처럼 탱글탱글해진다
    말실수를 하더라도 후루룩 먹어버릴 수 있다
   풀어먹기 딱 좋은 다대기 종지가 마침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는 곧 죽어도 감기 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환자(남, 71)가 있다 그렇다면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동네 의사의 수염은 뽀얀 육수와 같이 먹기 딱 좋게 생겼으므로 환자는 그 병원을 갈 때마다 국수를 먹었다 자기는 곧 죽어도 감기 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환자(남, 71)가 있다 그렇다면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동네 의사의 수염은 뽀얀 육수와 같이 먹기 딱 좋게 생겼으므로 환자는 그 병원을 갈 때마다 국수를 먹었다

   큰 병원에서도, 더 큰 병원에서도, 더더 큰 병원에서도 원하던 답을 찾지 못한 환자

   이보다 더 큰 병원은 없었기에 환자의 병은 이름 찾기를 실패했다(잠시 미뤄두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병을 앓고 있는데도 앓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병일 텐데”

   병의 이름은 뒤에 ‘-병’을 붙이면 그럴듯해지므로 환자는 제멋대로 그것을 ‘이병’이라 부르기로 한다(환자의 성이 이 씨였다는 단순한 이유) 그래 그렇다면 너는 내 아들이다! 병은 걷는다 전역 날짜를 세듯 병은 숨 쉰다 숨 쉬지 않는 모양으로 병은 때때로 소리죽여 운다 내버려두기로 하자 환자는 한동안 자신이 이름붙인(그것은 갓 태어난 자식들에게 ‘너의 이름은 XX이다!’라고 기쁘게 속삭이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럴 듯한 병에 대해 생각하며 편지라도 보내볼까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힘이 없듯 곧 잊혀지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할 때까지 환자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럴듯한 병명 지을 노력으로 그럴듯한 유언 한 마디라도 남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남은 자식들은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 홀로 남은 아내의 눈가엔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이게 다 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
   조물주가 태초의 인간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것은 태초의 인간이 받은 태초의 언어였으나 허망하리만치 짧은 찰나 만에 허망하게 잊혀지고 말았다 인간들이 그것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조물주에게 한 번 더 정확히 물어볼 걸 그랬는데

   그래서 나중에 태어난 인간들은 이름을 받고 나서도 언제나 ‘내가 뭔가 잊은 것 같은데’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그 불완전한 언어를 견디다가 못해 마침내 스테인리스로 널찍한 국수 그릇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구불거리는 그것들을 젓가락으로 건져 먹으며 수염이 구불거리는 동네 의사는 꺼억- 소리를 냈다

   트림을 했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었다, 고 할 수 있다

박윤서

시와 시나리오를 동시에 쓰면서 시멘트 뭉치를 박력 있게 던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9/06/25
19호

1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아르고호 원정에 참여했다가 그의 미모에 반한 물의 요정들에게 유혹되어 연못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