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 휘파람새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저것 봐, 저기 검은 새 한 마리가 있어. 당신이 검은 새를 가리키자 어둠 속 검은 새가 보인다. 검은 새 한 마리가 빛나고 있어. 날개가 불타는 검은 새가 있다. 검은 새의 날개가 검게 불타고 있다. 자기 뼈가 부서지는 무서운 소리를 들으며 날아가는 새. 가지에 부딪혀 부서지면서도 날아가는, 날아가면서도 부서지는 날개가 있다.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는 것. 부서지는 것은 부서져 가는 것. 부서져 가면서 날아가는 것. 날아가면서 빛을 내는 것. 빛을 되쏘는 어둠이 있다. 완전한 어둠만이 빛을 되쏠 수 있다고 꿈속의 당신은 말했다.
크고 붉은 동백의 곁이었다. 잎사귀 아래 둥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얼음 아래 냇물은 흐르고 있었다. 꿈처럼 물은 흘러갔다. 흐른다는 것만이 사랑임을 깨우쳐 주듯. 숨죽여 나는 듣고 있었다. 검은 새가 흔들고 간 나무 한 그루 있었다. 검은 새의 부재를 밝히는 검은 울음소리 있었다. 눈이 다 녹기 전에 나는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걸었다. 당신은 없고 당신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이것만이 길이라는 듯. 지우면서 지워지면서 따라가는 걸음 있었다. 깊어지면서 부드러워지는 색의 침묵 있었다. 길가의 흰 자갈들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눈 뜨면 창밖은 새벽이었다.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그 속에 깃든 풍경은 입김이 닿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숨을 멈추고 바라만 보았다. 정원의 꽃은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피어 있었고 피어서도 꿈꾸고 있었다. 죽는다는 것처럼, 다시 살아간다는 것처럼. 꽃은 눈 먼 초록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휘파람새
휘파람새
휘파람새는
레몬 태양을 물고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이 잎사귀에서 저 잎사귀로
휘파람새는
빛을 튕기며 바느질하고
노랑에서 파랑으로
붉음에서 울음으로
휘파람새는
빛 속에 참여하고
수런거리는 물의 소용돌이로
우글거리는 꽃의 한복판으로
휘파람새는
반복의 반복
반복의 반복을 반복
허공은 고요
구멍 뚫려 빛나는 고요
잎사귀들은
창문처럼 열려 있고
거울처럼 비추고 있고
한 걸음 들어서면
한 걸음 짙어지는 녹음처럼
휘파람새는
자두 무덤을 향해
뱀의 혀처럼
작은 불 날름거리는
여린 잎들을 지나
휘파람새는
숲의 혈관
초록 풀씨를 물고
이 세계를 건너고 있다
영원히 건너고 있다
장혜령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뜻 없이 살아가는 생명의 소리에 깊은 위로를 받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흐른다는 것이고 흐른다는 것은 사랑임을 내게 일깨워준. 그저 살아가라는. 나는 그 목소리들에 응답하기 위해 쓴다.
2019/06/25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