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걸까?”
   그녀는 방 안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복도 쪽으로 난 커다란 창문에는 조잡한 무늬의 커튼이 걸려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그녀 키만한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대체 저건 어디에 쓰는 걸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한쪽 벽면에는 유리문으로 된 커다란 장식장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그릇과 컵, 사진 앨범과 장식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작은 책상과 벽에 걸린 교복. 장식장이나 창틀에서는 먼지 한 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주머니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주면서(그녀는 바닥에서 잠을 자 본 경험이 없었다)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새 이불이야. 너 때문에 꺼냈어. 아까 널 그냥 보냈다면 너희 할머니가 나중에 만났을 때 날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녀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할머니는 십 년 전에 돌아가셨고, 그녀는 빈말로도 그런 말―죽으면 천당에 간다느니 어쩐다느니―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할머니네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일종의 가사도우미였다. 할머니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유일한 손녀였던 그녀가 할머니로부터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유산이 주어지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액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놔두었다. 그건 그녀가 줄곧 고수하고 있는 삶의 태도였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 도시를 방문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정오도 지난 시간에 잠에서 겨우 깨어났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가봐야겠어, 라고. 왜 그런지는 몰랐다. 막연하게 이 동네에 도착하면 할머니가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당연하게도) 그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집은 이제 다른 사람의 소유였고 (물론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집의 초인종을 누를만한 배포도 없었다. 도대체 집주인에게 자신에 대해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그녀가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누구인지도 곧바로 알아봤다. 그러고는 마치 어제 마지막으로 만난 사이처럼 거리낌 없이 말을 걸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맞잡은 이 나이 든 여자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었고, 사실은 두려운 마음조차 들었다. 약간의 언쟁 끝에 그녀는 아주머니의 집에서 아주머니의 딸과 셋이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에는 처음보다 다소 긴 언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아주머니에게 졌고, 결국 이 집에서, 그러니까 아주머니의 딸 방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칫솔을 찾으려고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밖에는 아주머니의 딸이 서 있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그 애는 그녀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 애가 적어도 자신을 환영하고 있는 건 아니리라고 추측했다. 그러다가 식사가 거의 끝날 때쯤에 그 애가 쭈뼛대는 태도로 이렇게 물었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 애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그녀와는 열세 살 차이가 났다. 그녀는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대답해준 후 뭔가 더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그 애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그 애가 그녀가 임시로 머무는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왜 그러니?”
   목소리를 낮추라는 의도로, 그 애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 앞에 갖다 댔다.
   “엄마가 깰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말한 후 그 애는 가슴팍에 품고 있던 종이 뭉치 중 맨 윗장을 건네주었다. 종이의 상단에는 고양이 사진이 복사되어 있었다. 흰색 털에 짙은 회색 줄무늬가 있는, 웅크리고 앉아서 눈을 가늘게 뜨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나이는 여섯 살, 한쪽 귀 끝이 약간 컷팅되어 있고, 코 부분에 점이 있습니다. 이름은 코미, 찾아주신 분에게는 사례하겠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번호. 전체적으로 조잡한 느낌을 주는 전단지였다.
   “누구네 고양이야?”
   그녀는 그 애가 시키는 대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제 고양이요. 이 주 전쯤에 고양이가 집을 나갔어요. 그냥 잠깐 문을 열어놨을 뿐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까지 말하고 그 애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고양이를 찾으려면 이거를 붙여야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녀는 전단지를 그 애에게 돌려주며 물었다. 일부러 더 과장되고 은밀한 말투를 사용해서.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은 밤에 이걸 붙여야 해?”
   질문을 하는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내용은 더할 나위없이 타당했다. 시간은 이미 열한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질문에 그 애는 아까보다 훨씬 더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엄마 몰래 해야 해요. 엄마가 싫어하시거든요.”
   “뭘? 왜?”
   “고양이를요. 고양이를 찾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싫어했던가?. 옛날에, 할머니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녀는 방학 때마다 할머니 집에 머물렀고 그때마다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고양이의 배설물을 치우거나 밥을 챙겨주는 건 아주머니의 몫이었다. 아주머니는 작은 양철 그릇에 우유나 생선을 담아서 하루에 세 번씩 같은 장소에 놔두었다. 고양이의 온몸은 까맣고 눈썹 부분만 희끗희끗했다. 얼핏 보면 그 부분에만 털이 비어있는 것 같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에게는 이름도 없었다. 집 안으로, 그러니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허락된 적도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 집의 넓은 정원이 다 그 고양이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고양이 통로가 있었다. 아, 맞아, 그런 게 있었지. 고양이는 담장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정원과 바깥을 왔다갔다했다. 그녀는 할머니가 고양이를 만지거나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그 고양이가 자기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그녀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고양이가 쥐를 먹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어둠 속, 몸을 잔뜩 웅크리고 쥐를 물고 있는 검은 고양이. 입 주위와 기다란 수염에 묻어있는 검붉은 피와 살점 같은 것. 그리고, 우드득거리는 소리. 어린 그녀가 울면서 할머니에게 그걸 이야기했을 때, 할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식으로, 이렇게 대답했었다. “우리집 고양이는 쥐를 안 먹는다, 쥐를 안 먹어.”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전단지를 품에 꼭 안고 서 있는 열아홉 살짜리 여자애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도 작은 키는 아니었는데 그 애는 그녀보다 한 뼘 정도 컸다. 몸은 아주 말라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 그 애가 새 모이만큼밖에 먹지 않았던 게 기억났다.
   “그래, 어차피 칫솔도 사러 나가야 하니까 같이 가줄게.”
   여름이 끝나가는 중이었지만 여전히 대기에는 습기를 품은 뜨거운 공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열기이리라. 그 애는 아주머니의 출근길(아주머니는 마트의 캐셔로 일을 하고 있었다)과 자주 다니는 동선을 제외한 동네의 전봇대나 담벼락에 전단지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늦은 귀가를 하던 사람들이 가끔 멈춰서서 그들이 전단지를 붙이는 걸 쳐다보았다. 걷다가 그 애의 전단지―거의 벽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가 이미 붙어 있는 담벼락이나 전봇대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이건 언제 붙인 거야?”
   “나흘 전에요. 사나흘에 한 번씩은 밤에 몰래 나와서 전단지를 붙여 놓았어요.”
   “혼자서?”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지 않냐고 물으니까, 그 애는 잠시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고는 붙어있던 전단지를 떼어낸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전단지를 벽에 딱 붙이고 가만히 서서, 그 애가 초록색 테이프를 잘라내서 전단지의 모서리에 다 붙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너희 엄마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분명해?”
   전단지를 거의 다 붙여갈 때쯤 그녀가 물었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엄마는 고양이가 너무 무섭대요. 코미를 안아준 적도 없고요. 밥을 챙겨 준 적도 없고요. 그렇지만…… 내가 개를 키운다고 해도 싫어하셨을 거예요. 그건 확실해요.”
   “왜?”
   그 애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건 무조건 싫어하시거든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자신이 한 대답 때문에 스스로도 좀 놀랐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라니. 대체 뭐가 그렇지 않단 말인가?
   “뭐가요?”
   그 애의 질문에 그녀는 벽에 붙어있는 전단지 속, 고양이의 얼굴―그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딸을 사랑해. 생각해 봐, 너네 엄마는 어쨌든 고양이를 키우게 해 주신 거잖아. 그걸 잃어버린 건 너고.”
   그 애는 테이프를 뜯던 손을 멈추고 한숨을 한번 쉬었다. 그러고는 딱딱한 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걔가 집을 나간 거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언닌 모를 거예요. 언니는 부자잖아요.”
   “얘, 난 부자 아니야, 그리고 그런 게 지금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네.”
   “우리 엄마는 언니네 집 가정부였죠?”
   “우리집은 아니고, 우리 할머니 집. 우리집은 서울에 있었어. 가정부도 없었고. 그럴 형편이 아니었어.”
   “우리 엄마는 언니 좋아해요. 엄청요.”
   어이가 없어서 그녀는 웃음이 났다.
   “너네 엄마랑 나는 십 년 만에 만난 거야. 좋아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그 애는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전단지를 붙이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 애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돼. 초록 테이프는 금방 떨어질 거야. 이런 식으로 하니까 고작 나흘 전에 붙인 전단지도 몇 장 남아있지 않은 거잖아. 이렇게는 절대 고양이를 찾을 수 없을 거야. 이런 궁금증도 들었다. 이 애의 엄마가 전단지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걸 본 적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이 애를 혼냈을까? 뭐라고 혼냈을까? 어떻게 혼냈을까? 그녀는 초록색 테이프를 전단지 위에 붙이고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또 누르는 그 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간절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표정, 콧잔등에 맺혀 있는 땀방울과 민소매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팔뚝, 그리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팔목.
   왜 갑자기 그런 말이 그 애에게 하고 싶어진 걸까? 엿듣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한 태도로, 그렇지만 아까와는 달리 장난기 하나 없이 아주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다 붙이면,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살던 집에 한번 가볼래? 구경하고 싶어?”
   그런 말을 하고 나니까 그녀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우습게도 그녀는 고양이 통로를 떠올렸다. 고양이가 할머니 집 정원과 바깥을 왔다갔다할 수 있게 해주던 그 조그만 구멍. 뭐 어쩌자는 건가, 그 구멍으로 몸을 구겨서 그 집 정원에 들어가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할머니 집은 골목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집이 너무 거대해서 골목의 초입에 서면 이미 지붕이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어째서 이런 작은 동네에 이렇게까지 으리으리하게 집을 지어두고 살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커다란 철제문과 그 문 옆으로 길고 높은 벽돌 담장이 이어져 있었는데, 담장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낮은 관목이 이어졌다.
   “와, 엄청 크네요. 대단해요.”
   그들은 문 앞에서 약간 멀찍이 떨어져서 서 있었고, 그 애는 무언가에 감동을 받은 사람처럼 말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오랜만에 방문하는 장소가 작아보인다고들 하는데, 어쩐지 할머니 집은 십 년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웅장해진 느낌이었다. 낮에 이곳에 들렀을 때에는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
   “이리 와 봐.”
   그녀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관목 숲 쪽으로 이어지는 담벽락 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에 고양이 통로가 있었어.”
   “고양이 통로요?”
   “응.”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최대한 밑으로 숙인 후 한쪽 손으로는 휴대 전화 불빛을 비추고 다른 쪽 손으로는 벽을 만지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여기 있어야 하는데……아무리 찾아도 고양이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거지. 이상했다. 지난 십 년 동안 고양이 통로 같은 걸 떠올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없어졌다고 생각하니까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치 그걸 찾지 못하면 인생에 커다란 재앙이 닥치리라는 예언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그녀는 점점 절박한 심정이 되어갔다. 아, 제발 제발 제발,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고 필사적으로 통로를 찾는 동안 그 애는 팔짱을 끼고 서서 철제문 안쪽으로 보이는 건물의 이층 쪽을 바라보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마치 압도당한 사람처럼. 불 꺼진 여러 개의 창문들, 위로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두운 하늘. 먹색의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쪽 관목 숲 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휴대 전화의 불빛을 껐고, 고개를 들어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눈길이 가닿는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어둠 속 한가운데 서 있는, 하얀색 몸통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코 옆의 점, 끝이 약간 잘린 한쪽 귀. 코미,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진보다 약간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고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고양이는 그녀와 그 애를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애가 고양이의 이름을 부르거나 고양이에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애는 소금기둥이라도 된 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고양이는 몸을 돌려 관목 숲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요하게, 아주 고요하게. 도망친다거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태도로. 결국 고양이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벌떡 몸을 일으켜 그 애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그 애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고양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 그랬어?”
   그 애는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었다.
   “왜 그랬냐고.”
   “코미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후 그 애는 몸을 획 돌리고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나가서 그녀는 반쯤은 뛰듯이 걸어야 했다. 그 애와 나란히 걸으려고 노력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얘, 저건 너의 고양이였어.”
   “아니에요. 내 고양이는 내가 알아봐요. 저건 내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언니가 뭘 알아요?”
   그 애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이 그들이 발로 지면을 구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도 뛰기 시작했지만 그 애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그녀는 그 애를 잡고 싶었다. 그 애를 잡아서 코미의 앞으로 데려다놓고 싶었다(대체 그녀는 코미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아무리 필사적으로 뛰어도 그 애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그 애를 따라잡는 걸 포기하고 멈추어 서야만 했다.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잡은 채 숨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이마에 맺힌 땀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줄줄 흘렀다. 머리카락이 젖은 게 느껴졌다. 저렇게 마른 아이가, 밥도 새 모이만큼밖에 안 먹는 아이가, 금방이라도 뼈가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그렇게나 빠르게 뛸 수 있다니.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너는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니? 쿵쿵쿵쿵, 그녀는 심장이 뛰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쿵쿵쿵쿵, 그건 마치 어디선가, 그녀 외부로부터 그녀에게 끊임없이 보내는 어떤 암호 같았다. 그녀는 때때로 자신 앞에 떠오르는 삶의 암호를 해독하고 싶다는 극심한 욕구에 시달리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녀는 결국은 그 욕구들을 이겨낼 것이었다.
   잠시 후, 달리는 것을 그만둔 그 애가 왔던 길을 되짚어서 그녀에게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애 역시 땀투성이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리를 접고 숨을 고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그녀 앞으로 다가온 그 애는 자신의 두 팔을 쑥 내밀고는 말했다. 숨이 차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내 팔뚝 좀 봐요. 엄청 말랐죠?”
   그녀는 그 애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모델이 될 거예요.”
   “모델이 되는 게 너의 꿈이야?”
   그 애는 자신의 허리에 두 손을 짚은 채로, 자신이 다시 걸어온 길 너머로 시선을 주며 대답했다.
   “희망, 그런 거요? 꿈? 장래 희망?”
   “다른 것도 있어?”
   그녀는 자신의 숨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느꼈고 허리를 쭉 폈다. 심장 박동 소리도 잦아들고 있었다. 괜찮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
   “더워요. 땀이 너무 많이 나요.”
   그 애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했다.
   “이제 금방 괜찮아질 거야. 이제 금방 여름이 끝날 거야.”
   그때, 그 애가 불쑥, 말했다.
   “언니, 나는 진짜 부자 남자랑 결혼을 할 거예요. 그래서 언니네 할머니 집 같은 그런 집에서 매일 아침 깨어날 거예요.”
   그녀는 그토록 어린 여자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 때문에 놀랐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애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터였다. 그 애 자신이 어린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도 그 나이 때에는 그런 식―물론 내용은 달랐겠지만―으로 말할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보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절대로 이 세상에 대해서 절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서.
   그 애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말을 한 걸 창피해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 애에게 창피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얘, 그럴 필요 없어. 창피해할 필요가 없어. 주위는 적막했고,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그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양이는 절대 쥐를 먹지 않는다. 아, 고양이 통로, 그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그녀는 자신과 그 애를 제외한 세계가 일시 정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닌가, 우리 둘만 일시 정지한 걸까?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들이 속한 세계에 남은 건 그들 자신의 숨소리밖에 없었으니까.
   “언니,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요?”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자신이 깜짝 놀랐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 애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더운 기운과 함께 시큼한 땀 냄새 같은 게 느껴졌다. 땀에 젖은 그 애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볼을 간지럽혔다. 거의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볼에 와 닿은 마른 입술의 표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어떤 지도의 축소판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야, 그런 생각은 그저 작은 속임수에 불과한 것뿐이야.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그 애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그런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그녀는 가끔 자신이 어릴 적 봤던 그 장면―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난 후에 그녀는 그 기억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과장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을 하고 난 후에도 그 기억 속 장면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그 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아무리 그게 가짜 기억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진짜로 자신이 봤던 장면을 떠올리고 싶어도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끝내 그 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애는 그날 밤 처음 붙인―그러니까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붙어있는―전단지 쪽으로 걸어간 후, 그 앞에 한동안 서서 전단지 속 코미의 사진과 자신이 적은 글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테이프 부분을 꾹꾹 눌렀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요? 고양이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무척 행복한 거래요. 언니, 걱정하지 마요. 전단지가 떨어지면 또 붙이면 되니까. 그건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날 밤, 그녀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고양이였다. 그녀는 검은 꼬리를 느리게 움직이면서 할머니 집의 정원을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대기를 감싸고 도는 여름의 마지막 습기…… 그녀는 얼굴에 달려있는 수염을 통해서 공기의 미묘한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에 있는 진회색 빛 작고 연약한 쥐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모두 세 마리였다. 길고 가느다란 꼬리의 약삭빠른 움직임, 이리저리 살펴보기 위해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눈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었다. 쥐들은 당분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쥐들은 그저 그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며 그녀가 포기하고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사라질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그런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자세를 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정확한 타이밍만 노리면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일단 한번 쥐를 물면, 그녀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 집의 정원의 한가운데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결국은 자신이 느끼게 될 그 감각, 작은 생물의 살과 뼈가 자신의 입속에서 으스러뜨려지는 그 감각과 그 소리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손보미

소설가, 하루의 작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 내일 와서 또 쓸 수 있잖아." 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행복하다.

최근에 짧은 소설집 『맨해튼의 반딧불이』를 출간했다.

2019/11/26
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