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릭크로스 / 라틴크로스
그릭크로스
건강한 자동글쓰기를 방해하는 건 천연 나무 향으로 구성된 생생한 증오
풍경을 등지고 앉자마자
나가는 문이 사라진다 나는
내 의지로 이 상징 한가운데 들어오지 않았다
멍한 눈 기이
적출된 대들보
시대착오적으로 요약되는 어둠의
눈부신 세부
누군가 우는 사이 누군가 더 작게 우는 세계의 상 안에서
나는 이제 아름다움에게 얼굴을 부여하거나 말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반쯤 죽은
늙은 빛을 세공하거나
안절부절 깨어있고 싶지 않다
420년 전에 지어진 사랑의 수동태 모형 천국을 뜻한다는 푸른 천장을 올려다봤지 그것은 정말로 고요하게 최선을 다하는 푸른색 그러니까 매번 새로 태어나 매번 새로 기대하는 삶이자 깊고 충실한 내 성층권의 한 부분이었죠 그러나 고정된 공간
공통의 시대를 여러 번 살아도
언제나 같은 강도의 응답 같은 점도의
괄시를 받는 것은 아니어서
눈비가 조금 새는 이
차가운 평화
이
상상용 천국이
어설픈 도구로 마모된 나만의 대기가 과연 연속적인 무늬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푸른색은 자문하였고
무한히 흐르는 세기
피 같은 졸음 속에서만 유지되고 회복되어온 천장은 자기 안의 이상한 지구력 지나친 붕괴구조를 제대로 따져보거나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생성되자마자 나뭇결 깊숙이
뛰어들어가
더이상 발견되거나
만져지지 않는
상처 끝없이
벌어지는 내
일요일 입술
빛 속에서 무섭게
식어버린 빛을 그저 경험해볼 만했던 경험 축소된 구슬 형태로 보관되는
에너지
다시 말해 과거로부터 맑게 단절된 이야기쓰기로 환산할 수는 없었습니다 큰 나무 자재로
활용하거나
얼굴을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뜨거운
구석책상풍경
닫힌다 눈과
눈물을 지우며
유한한 어둠구조를 세우며
뛰쳐나가고 싶은 대들보로 가득한 실내에서 자기 방식대로 흐르는 천장 떠오를 때부터 무심히
소진되는 단어
환하게
애원하는 세부 세공된 풀밭에 나 누워있습니다
미치지 않았어요 제정신으로
이가 부러졌어요
혀가 잘렸어요
비유가 아니라 상징이
아니라 현실의 내 멍한 치아 오늘 흉하게 나갔답니다
기이한 안식처
천국 고집대로 고수한
결기 죽지도 살지도 않는
기대 때문에요 나의
최선 때문에요
세계는 늘 단체관람객으로 나를 방문해 빛은 새로 붕괴되는
매일의 입구 빗나간
420년을 적시에 준비할 수 없었으며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무는 등을
늙은 침묵을 내보낼 수 없었습니다 세계에 고루
배어버린 나무 향 한순간 지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죽음 아래
푸른 천장 아래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떨리는 윗입술 꾹 다문 채 지워지고 있다 식어버린 자동글쓰기를 붙잡아두는 건 과부하 된
희망과 증오 나는
내 의지로 이 사랑 모형을 버리지 않았다
라틴크로스
줄지어 선 유리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불빛과 짧은 보상처럼 아름다운 중국식 소켓을 본다. 참는 손님도 참아주는 손님도 없는 이곳은 돌발 행동 직전의 소켓에게만 허락되는 삶. 적의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무엇을 삼켜내듯
환하게 멈추고 흔들리는 방. 몇 시에 닫아요? 주인에게 묻지만 대답 대신 위험한 액체로 소독된 유리잔이 두 개 세 개 서 있다. 천장보다 높은 선반을 상상하는 자세로
깨끗하게 비어있다.
나는 잘 참는 사람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의지 고전적인 열성으로 어제까지 참았는데 끝까지는 못 참아 이상하고 슬프게 화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서없이 찢긴 중국 책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어린 소수의 외국 사람
순정한 마음을
돌려받지 못했다. 완전히 잃지도 못했다. 어째서 오래 참아온 사람이 더 구체적으로 엉망이 되는지
뒤늦게 셔터를 내리는 주인은 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대답하고
눈을 뜨면 어둠 속에 새 유리잔 백 개가 놓여 있다.
김연덕
「그릭크로스」는 아름답고 견고한 흑백 사진 두 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현성 사진가에게 신뢰와 감사를 보냅니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