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랑의 미래
그해 여름 우리는 1주년을 맞이했다. 하필 윤년이어서 365일 하고도 하루를 더 보태야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나는 주년의 ‘주’가 기둥주(柱) 혹은 머무를주(駐)일 거라 막연히 여겼는데 얼마 전에 사전으로 검색해보니 두루주(周)와 돌주(週)를 동시에 뜻하는 자였다. 널리 돌아다니다가 종내 제자리로 회귀한다는 의미랄까. 그러자 시간이 가늘고 긴 호를 그리며 느릿하게 회전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궤적이 마침내 하나의 원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가 카페에 마주 앉아 케이크에 초를 꽂아 넣는 모습이 떠올랐다. 숫자 1 모양의 초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위태롭게 흔들렸으나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케이크를 가슴 높이로 들어올린 채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너의 사진을, 너는 나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서랍의 맨 아래 칸을 열어 그날의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 보며 생각했다. 왜 이제야 ‘주’의 뜻을 알게 된 것일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시점에, 더는 너와 만날 수 없게 된 시절에 말이다. 그러자 내 손에 남아 있는 것들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내 것이긴 하지만 더이상 내 것이라 명명할 수 없는, 그렇다고 다른 누구에게 이양할 수도 없는, 함부로 폐기할 수도 없는 상태로 남겨진 것들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지 말이다.
*
입추와 처서 사이, 골목길 담장 아래로 주홍빛 능소화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것이 출근하던 이들의 발길에 채어 산산이 바스라지던 모습도. 1주년을 열흘 정도 앞두었을 때였다. 그날 우리는 회사 업무 시간에 틈틈이 서로에게 줄 선물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나이키 러닝화와 딥디크 오데썽, 보스 헤드폰, 애플 워치에 이르기까지 각종 아이템의 상세 정보가 담긴 링크를 퇴근할 때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어떤 맥락에선지 분명치는 않으나 선물 대신 동대문에 위치한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함께 1박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날짜상 365일이 되는 목요일 오후에 체크인하여 하룻밤을 보낸 뒤 달력상 1주년이 되는 금요일 오전에 체크아웃하기로. 그렇게 윤년이라는 치윤법이 바로잡으려 하는 시간의 간극이랄까 오류를 활용하여 우리의 기념일을 두 배로 누리자고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소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는데―그러므로 나의 아이디어였을 공산이 크다―이것이 제법 값나가는 선물들을 제치고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즈음의 우리가 연일 이어진 프로젝트와 야근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둘 다 어렵게 낸 휴가이니 좀 쉬고 싶었던 것 같고, 선물이야 뭐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태를 우리가 내심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무렵 나는 너의 기분이랄까 컨디션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거의 볼 수 있었고, 그런 것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흐릿한 블루나 옐로처럼, 꼭짓점이 뭉툭한 삼각형처럼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장면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나는 네가 회사 일로 자정을 훌쩍 넘겨 귀가하는 밤이면, 네가 하우스메이트인 사촌 누나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현관문 여는 모습을, 퇴근길에 산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책상에 늘어놓고 혼자 먹는 모습을, 욕실에서 칫솔질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어렴풋한 실루엣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이미지로 목도할 수 있었다.
―형도 그래? 말은 안 했는데 사실 나도 가끔씩 그런 게 보여. 형이 회사에서 남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으면서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이나 집 거실 소파에서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까무룩 잠드는 모습 같은 거. 이상하지?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인데 마치 몇 번이나 본 것처럼 눈에 선하니 말이야.
―안 봐도 비디오라는 건가.
―음, 그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
―혹시 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
―없는 것 같아. 형은?
―나도 없는 듯.
―신기하네. 참, 그거 알아? 이게 우리 첫날밤인 거.
―첫날밤?
―첫날밤!
―지금까지 같이 잔 건 기억도 안 나니?
―아, 그런 게 아니라……
너는 분홍색 복숭아가 효자손으로 제 머리를 긁적이는 이모티콘을 보낸 뒤 그동안 우리가 한 번도 같이 밤을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억 안 나? 연초에 계획했던 방콕 여행이랑 그 후에 잡아뒀던 제주도 여행이랑…… 전부 취소됐잖아. 그래서 1년 가까이 사귀었는데 밤새 함께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러네, 자는 사이에 같이 잔 적이 없네.
―이 세계가 우리의 첫날밤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지.
―우리의 사랑을 전염병으로 방해하고 있었구나.
―전염병 하나면 다행이게.
그래, 어쩌면 우리는 그저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한 침대에서 느긋하게 뒹굴거리다가 나란히 잠들고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나 분명하게 이루어질 관계의 진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서로의 면면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고, 조금 더 사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촌누나한테는 뭐라고 말했어?
―그냥 친구네서 자고 온다고. 형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어?
―나도 뭐, 비슷하게 둘러댔어.
*
그날 우리는 스타벅스 새문안로점에서 조촐한 세리머니를 올렸다. 클라우드 치즈케이크에 초를 꽂아 넣고 불을 붙인 뒤 번갈아 가며 사진도 찍었다. 촛불을 끄기 직전에는 각자 소원을 빌었는데, 나는 네가 무엇을 빌었는지 묻지 않았다. 너 역시 묻지 않았지. 그것은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 탓도 있었으나 어쩌면 내가 너의 소원을, 네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으리라는 예감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너와 결혼할 수 있다면―이런 가정을 적용해본 건 네가 처음이었다―과연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런 상상의 나래를 머릿속으로 펼쳐보곤 했다. 그런 전제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본 적 없는 삶의 형식이어서 도무지 구체화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웨딩홀을 대관하여 결혼식을 올린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여 구청에 제출한다. 공동명의로 얻은 집에서 함께 생활을 꾸려나간다. 여느 부부들처럼. 그다음에는?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상상은 번번이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겪게 될 불의의 사건이랄까 봉변을 당하는 장면으로 뻗어나갔다. 내가 한밤의 귀갓길에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는다거나 네가 회사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승진에 누락된다거나 하는……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제발 이사를 가달라는 이웃들의 탄원을 마트에서 장을 보던 와중에 듣게 되는 일 따위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결혼이 가능해지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을 불가능에 대한 추측, 아니 확신 때문이었다.
케이크를 나누어 먹은 뒤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반 뼘쯤 열어둔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달뜬 볼을 식혀주었던 기억이 난다. 8월 하순이었고,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볕이 뜨거웠다. 그날 우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 뒷좌석에서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은 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우리의 몸짓과 대화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친구나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 노출될 수 있을 때, 공연히 불쾌한―혹은 위태로운―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가급적 언행을 삼가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행선지가 숙박업소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었고, 하고 싶은 행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을 은닉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누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우리를 위해서! 하지만 그런 식의 경계와 단속이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는 걸―오히려 우리를 조금씩 상하게 만들었다는 걸―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광화문에서 동대문에 이르기까지 대로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나는 햇볕에 뭉근하게 데워진 차창에 이마를 붙인 채 그것들을 올려다보았다. 저것 좀 봐. 그때 너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룸미러로 우리를 흘끔거리는 운전사의 시선이 느껴져 입을 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저 색깔 좀 봐. 그날 착용한 마스크가 유난히 얼굴을 죄었던 것도. 키가 훌쩍한 나무들의 우듬지가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제 한계를 넘어서까지 햇빛을 수용한 탓이겠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올라간 가지의 잎사귀들이 전부 볕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나무가 태양을, 빛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 몸의 일부가 타들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꺼이 내바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끓어 넘치는 생명력이란 죽음의 위협을 끌어안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걸 나는 그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창밖의 이파리들이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어째서인지 내 귓가에는 질책하는 듯한 아우성이 들려왔다. 뜨거운 여름의 일광 속에서 두 팔을 벌린 채 타들어가는 나무들의 목소리가.
*
이제는 여름마다 그 소리가 들려온다.
*
호텔에 들어서자 바깥 공기와는 사뭇 다른 청량함이 은은한 장미 향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자줏빛 샹들리에를 지나자 어디선가 나직한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비에는 체크인을 마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대학생 남녀 커플과 호텔 수영장에서 사용하려는지 노란색 튜브를 어깨에 멘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제 체격보다 큰 리모와 캐리어를 지키고 있는 걸 보니 아이의 부모는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모양이었다.
데스크의 여직원은 우리를 반갑게 응대했다.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릴 정도로 커다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입가의 미소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서류 한 장을 꺼내 항목마다 동그라미를 치면서 숙박 요령을 일러주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 두 명이 트윈룸이 아닌 디럭스 더블룸을 쓰는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그저 무심한 것이 아니라 우호적인 이해와 포용의 뉘앙스를 띠는 것, 바로 그것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평소와 다르게 네 옆에 붙어선 채로도 조금씩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돈이 좋구나.
그럴 때마다 나는 화폐로 구입할 수 있는 안정과 완전을 실감했다. 한없이 많은 돈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이런 호텔에서 너와 하루가 아닌 1년을, 10년을, 아니 평생을 함께 지내고 싶었다. 호텔을 갖고 싶었다. 그 어떤 무례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공간. 감시와 제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견고한 대리석 벽 안쪽에서 마냥 평온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나는 호텔의 규모나 화려함보다 현실과 유리되는 듯한 감각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론 이런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복도 모퉁이에서 부모가 돌아오자 남자아이가 눈썹만 실룩여 어떤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혹시 착각이었을까―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엷은 미소를 띤 채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앞으로 나섰고, 데스크에 한쪽 팔을 올린 채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모습으로 용건을 진행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던 기억이 난다. 무슨 판단이란 걸 해볼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던 기억. 나는 너의 등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한 걸음 다음에는 두 걸음, 세 걸음을 더 물러나서 마치 체크인 과정이 지루하여 주변을 좀 둘러보려는 사람처럼 벽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에는 거의 바닥과 천장만 보았지. 그렇게 내가 로비를 한 바퀴 돌고 왔을 때 아이와 부모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대학생 커플도 없었고, 여직원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데스크 앞에는 너뿐이었다.
그 모습.
그날 너는 소리 내어 나를 부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기만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따금 그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데스크 앞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줄곧 기다리고 있는 네 모습이. 등 뒤의 유리창으로 한가득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맞고 서 있는 네 모습이. 그럴 때 너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고,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서글픈 웃음을 짓고 있기도 하다.
*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장마가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였을 즈음 을지로의 허름한 갤러리에서였다. 갤러리라곤 하지만 졸업 작품으로 찍은 영화를 상영하거나 소규모 플리 마켓이 열리는 옥탑방 같은 곳이었다. 그날 진행된 퀴어 세미나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것에 비해 실제로 참석한 인원은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 발표의 요지는 소수자를 향해 쏟아지는 그 어떤 편견과 혐오에도 증오로 맞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당시의 나는 묘한 반발심을 느껴 그 자리에 3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수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그토록 온당하고 이성적인 다짐을 왜 약자들이 먼저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간에 자리를 떴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이벤트에 응했다. 대금을 치르고 수령지를 남기면 곧 출간될 세미나 자료집을 저자들의 서명본으로 발송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름 후, 내 손에는 엉뚱한 책이 도착해 있었다. 봉투에 적힌 수신자명은 나였는데 전화번호는 다른 이의 것이었고, 주소는 우리 집이 맞았는데 내용물은 다른 이의 이름이 적힌 서명본이었다. 그날 나는 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그런 행사에 참석한 이라면―심지어 출간 이벤트에 응할 정도라면―특별히 조심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오후 늦게 우리는 갤러리 앞에서 만났다. 훌쩍 큰 키에 동그란 안경, 흰 피부에 앳된 얼굴이 휴대전화로 들었던 중저음의 목소리와 연결되지 않아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너는 책을 받고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더니 이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한잔하자고 말했다.
“인사는 처음이어도 이 자리에서만 두 번째인 거잖아요.”
허튼수작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장난기보다는 진중함이 묻어나는 투였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너는 긴장했는지 말끝을 살짝 더듬었다. “진짜 괜찮아요.”
나는 너를 바라보다가 조그맣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요.” 네 어깨를 부드럽게 쳤다. “봐둔 데가 있어요.”
그날 우리는 햇빛이 너르게 드는 카페 창가 자리에서 히비스커스 티를 두 잔 시켜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던 책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었는데,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혐오가 결국 타인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대 맞았다고 해서 한 대 때릴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에요.”
“그럼 맞고만 있으라고요?”
내 물음에 너는 난처한 웃음을 짓더니 얼마간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저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거든요. 거의 당하기만 하는 입장인데 뭔가 더 높은 도덕성이랄까 윤리 의식을 요구받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시잖아요. 앙갚음 같은 거 해봤자 후련해지지도 않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닮아가는 게 훨씬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주자는 거죠?”
나는 괜히 한번 더 어깃장을 놓았다.
“희생하자는 거죠?”
“희생이라기보다…… 사랑하자는 거죠.”
그날 우리는 두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억눌렸으나 올바름을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우리의 유년 시절과 성장통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후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과 죄의식에 괴로워하느라 하얗게 지새웠던 밤들. 상대를 향한 긴장이 풀어지면서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잠시나마 진지하게―자살을 고려했던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동안에 너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점, 어느 조직에서든 부침을 겪기 마련인 클로짓 게이로서 여전히 두려움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공유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 너는 대화가 끊어질 때마다 우리가 각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없이 책장을 넘겨보거나 테이블 모서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 순간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침묵을 함께하는 와중에 불편함은커녕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고 말이다. 이후로 나는 사적이고 예민한 질문에도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 너의―도톰한 입술과―솔직함에, 언제부터인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는 너의―연갈색 눈동자와―당돌함에 매료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다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기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자리를 옮겨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나는 너를 흉내 내며 말했다. “진짜 괜찮아요.”
너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요.” 그러면서 테이블 위의 내 손을 잡았다. “봐둔 데가 있어요.”
우리는 바로 옆 건물의 호프로 향했다. 그 가게에서 가장 어두침침하고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아 페일에일과 필스너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며―이따금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맞대면서―한 시간 남짓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을 멈췄고, 한동안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으며, 더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합의하에 모텔로 향했다.
“그때 나를 뭘 믿고 따라왔어?”
5층의 더블룸은 한쪽 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조였다.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 옆으로 사무용 책걸상, 와인색 소파와 원목 테이블이 놓인 널찍한 방이었다. 우리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그 커다란 창 앞으로 다가섰다.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체크인 시간을 훌쩍 넘긴 탓에 어느덧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믿기는. 나 부모님도 못 믿는 거 알잖아.”
창 너머로 10차선 대로와 고풍스러운 자태의 흥인지문, 연둣빛 언덕을 따라 이어진 성곽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대답에 너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등 뒤로 다가와 나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지금은?”
내 목덜미에 키스했고 양쪽 손목을 조심스레 붙들었다. 그러곤 어깨높이까지 천천히 들어올렸다.
“뭐 하는 거야?”
“타이타닉 자세.”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그곳에서는 너와 나의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했고, 그러다 보니 이 세계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지. 그즈음 검푸른 빛 어스름이 너르게 드리워지며 사위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로변에 줄지어 선 가로등과 신평화시장 건물의 간판에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이러면 밖에서 우리 보이지 않나.”
까맣게 물든 유리창에 우리의 실루엣이 얼비쳤을 때 나는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 보라지.”
너는 손을 뻗어 내 바지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
그때 나는 실실 웃으면서 너를 말리지 않았다. 바지를 끌어내린 뒤 셔츠 안쪽으로 뻗어 들어오는 손길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 되었는데, 그것은 창밖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눈앞의 현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우리를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그로 인해 우리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는 감각 말이다. 이윽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상현달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뱉어냈다.
“보라지.”
유리창에 허연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사그라졌다.
“다들 좀 보라고.”
*
그날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깨어났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었다. 암막 커튼을 치고 수면 등까지 꺼버린 방안은 빛 한 점 없이 캄캄했다. 눈꺼풀을 들어올린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코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어도 그것을 거의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상체만 일으켜 침대 헤드 보드에 기대앉았다. 천장의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다가 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네가 호텔 방을 나섰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장면이 저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인근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각자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때였다. 내가 냉장고를 열어 안을 살펴보는데 등 뒤에서 네가 “혹시 거기 있는 거 마실 거야?”라고 물었다.
“글쎄.”
“괜히 비싸기만 하고. 탄산이랑 주스밖에 없지 않아? 내가 나가서 사 올게.”
“뭐 하러, 귀찮게.”
“금방이야. 오는 길에 보니까 형이 좋아하는 공차도 있더만.”
“문 닫았을 시간 아니야?”
“이 동네 가게들은 24시간 영업한대.”
너는 벌떡 일어나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담배라도 피우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더이상 말리지 않고 조심히 다녀오라 말했다.
“당도 50에 얼음 적게?”
“블랙펄 추가요.”
그런데 네가 방문을 나선 순간부터, 그리하여 찾아든 적요를 인식한 순간부터 나는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락하고 포근하던 방 안이 갑작스레 낯설고 어색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려 해도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고, 텔레비전을 보려 해도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공연히 실내를 배회하다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 앞으로 다가갔다. 무심코 건물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는데 놀랍게도 네가 보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서 너는 호텔의 창문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헤아리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이 어디인지 찾고 있었다. 내가 너를 찾았을 때, 너도 나를 찾은 듯했다. 내가 반갑고 놀라워 머리 위로 손을 흔들자 너는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곤 느닷없이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거리는 춤을 췄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리 위로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다. “뭐 하는 거야.” 들릴 리가 없는데도 너를 향해 말했다. “돌아와, 빨리.” 그런데 너는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목과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자세로 섰다. 마치 무대 위에서 퇴장하려는 배우처럼 오른손을 바깥으로 천천히 휘두른 다음 제 왼쪽 가슴에 얹으며 상체를 숙였다. 그러곤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작아지는 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네가 우거진 나무의 잎사귀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까지 보았다.
일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흐느꼈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 네가 이곳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고 느꼈다. 너와 헤어지게 되는 순간을 앞서 경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오래지 않아 너는 돌아왔다. 당도 50에 얼음은 적게, 블랙펄이 잔뜩 든 밀크티와 함께. 그날 나는 달콤한 음료를 입안에 머금은 채 창문을 통해서 너를 보았던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뒤늦게야 그 사람이 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우리는 그 밤에 있었던 만남과 이별에 대해 그 이후로도 한 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이튿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우리는 조식 뷔페가 마감되기 30분 전에야 가까스로 라운지에 입장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당연한 말이지만―어째서 당연한가―그곳에는 자녀를 둔 중년 부부와 젊은 남녀 커플들뿐이었다. 일행이 남자 둘인 경우는 우리가 유일했다. 테이블 간격은 바로 옆 손님들이 아침 식사로 무엇을 집어 왔는지, 그러니까 타인의 음식 취향과 플레이팅 솜씨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어머 저거 뭐야. 서로가 서로의 접시를 흘끗거리며 괜한 의구심을 한 번쯤은 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직원들을 제외하고 손님들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식사 공간이고 전염병이 꽤 수그러든 시기이긴 했으나 마치 이곳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병에 걸릴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식사하는 내내 크림 수프와 오렌지주스의 당도, 의자의 푹신함, 창밖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다시피 했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가 자리를 뜨기 직전까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우리를 곁눈질한 탓이었다. 사실 그들은 별생각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선을 예민하게 감지했고 경직되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옆 테이블 사람들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머 저거 뭐야. 저런 애들까지 여기 들어오면 어떡해.
*
달력을 넘기자 계절도 변한 듯 서늘한 공기에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나는 선풍기에 커버를 씌워 창고에 들여놓았고, 서랍장에서 긴소매 셔츠와 카디건을 찾아 꺼냈다. 갈색으로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느덧 가을이었고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었다. 1주년 이후로도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 데이트를 했다. 극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개봉한 영화를 관람하거나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모텔 방에서 배달 음식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추석을 포함한 긴 연휴가 지나자 전염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 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원인이었다. 확진 환자가 하루에만 6백여 명에 달하자 위기 경보는 심각에서 위험 단계로 격상되었고, 거리의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특별 조치가 있기 전까지 외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정부 명령에 의해 회사 업무는 무기한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 채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되기 전, 너와 마지막으로 데이트했던 밤, 헤어지기 직전에 지하철역 근처 베이커리에서 카눌레와 크루아상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너는 계산을 하기 직전에 바로 옆 쇼케이스에서 숫자 2 모양의 초를 집어들었다.
“뭐 하려고.”
내가 묻자 너는 어깨만 살짝 으쓱해 보였다.
“2주년 때 쓰려고.”
“그때까지 갖고 있으려고?”
“그때까지 갖고 있으려고.”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 평소보다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시시각각 전화로,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나누었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 전송했다. 그렇지만 격리 기간이 일주일에서 열흘로, 보름으로, 한 달 넘도록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연락은 차츰 줄어들었다. 새롭게 알려줄 만한 현재가 없었고, 새롭게 계획할 만한 미래가 없었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간밤에 넷플릭스로 본 드라마의 결말은 어땠는지, 뭐 그런 걸 묻거나 답하고 나면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매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뭔가 해볼 의욕조차 나지 않았지.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때 만성적인 실의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봉쇄 조치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네가 나한테 느닷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냥 몰래 만나자.
이런 와중에도 비밀스레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과 카페를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잘만 돌아다녀. 누구는 몰래 해외여행도 간다던데.
―누가 그래?
―다들 그래.
그날 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답신을 적어 보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밖을 돌아다니다가 전염병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서로에게 병을 옮기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는 와중에 우리가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입을 맞췄다는 정황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러한 사실을 전 국민이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당시에 내가 그렇게까지 메시지를 적어 보낸 건 질병에 대한 걱정이랄까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좀 더 근본적인 갈등에 의해서였고, 오랫동안 견뎌온 공포의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너는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듯했고, 그러므로 더이상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시는 하지 않았지.
이후로 우리는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긴 했으나 그 빈도는 서서히 줄었고, 그러한 흐름은 어째서인지 자연스럽게 여겨졌으므로, 우리는 두 달 만에 위기 경보가 위험에서 심각으로, 경계로, 주의로 격하되어갈 즈음 거의 연락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안부를 묻던 사이에서 며칠에 한 번, 아니 열흘에 한 번 연락을 할까 말까 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날 수 있어도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 내가 크리스마스를 이틀인가 앞두고 실로 오랜만에 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너는 더이상 그 번호로 연결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
요즘 나는 별일 없이 지낸다.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 외곽에 원룸을 얻었고, 얼마 전에는 재수 끝에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았다. 변화된 생활양식에 어색하게나마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도 적응해나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노트북을 열어 출근 체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통 나는 메일 수신함을 죽 훑어본 뒤 급한 요청에만 답신을 보내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전날 만들어둔 샐러드와 토스트를 책상으로 가져와 먹으면서 일하고, 일만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오후 시간에는 다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이어간다. 4시에는 스카이프 화상 전화로 부서 회의를 하고, 6시에는 그날 수행한 업무 결과를 간략한 보고서 형태로 제출한다. 퇴근 체크까지 마치고 나면 어깨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피로감에 침대로 가 드러눕곤 한다. 그대로 얼마 동안 잠들기도 하고, 금세 일어나 저녁을 차려 먹기도 한다.
밤이 이슥해지면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동네 근린공원을 산책한다. 가보면 나와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발소리도 내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 다니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며 말도 걸지 않는다. 보통 나는 1천 미터 산책 코스를 세 바퀴 정도 돈다. 공원 부지를 에워싸는 진초록색 포장길로, 안내도에는 찌그러진 타원형으로 그려진 코스이다. 나는 세 바퀴를 한 번에 다 돌지는 못하고 한 바퀴 반쯤 돌았을 때 늘 똑같은 벤치에 앉아 10분 정도 휴식한 뒤 나머지를 돈다. 무리하지 않을 것. 운동이라기보다 산책이었으므로 나는 언제나 숨이 차지 않을 정도를, 땀이 나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날이 풀리기 시작하던 초봄의 어느 날, 나는 벤치 바로 옆의 목련 나무가 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특별히 나무에 관심을 기울인 적 없었으니까. 그저 좀 허전하다는 느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밑동만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아름 크기의 밑동을 내려다보았고, 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쪼그려 앉아 손을 뻗었다. 매끄럽게 잘린 면은 차갑고 단단했다. 연갈색의 나이테를 따라서는 미세하게 거스러미가 일어나 있었다. 그날 나는 여러 겹으로 늘어선 시간의 궤적을 어루만지며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손끝에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만져졌다. 살펴보니 테두리의 한끝에 조그마한 연둣빛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다시 자라나고 있었고,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싹의 머리를 어루만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 코스로 돌아갔고 남은 한 바퀴 반을 마저 돌았다.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줄기를 따라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걸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 세계가 우리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이 세상이지 내가 아니었기를 바랐다.
돌고 돌아 원점에 이르렀을 때에는 내리막을 지나 공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보냈던 밤을 떠올렸다. 그날 우리는 불을 끄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방 안이 너무 어두워서 우주 같다고 했고, 우리가 그 속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고마워.” 그러다가 네가 덧붙였을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고마워.”
“그동안 형 덕분에 좋은 날이 많았어.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잠들 때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다.”
“신기할 건 뭐야. 아무튼 좋다니까 나도 좋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찾아 쥐었고 잠을 청했다. 그 밤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누군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심지어 그가 나의 사랑이라는 것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기쁨을 느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손을 놓고 각자 편안한 자세로 다시 누웠을 때에는, 그리하여 잠들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에는, 어째서인지 이런 밤은 처음이고 다시는 없으리라는 예감에 선득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입추와 처서 사이, 골목길 담장 아래로 주홍빛 능소화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던 풍경이 기억난다. 그것이 출근하던 이들의 발길에 채어 산산이 바스라지던 모습도. 1주년을 열흘 정도 앞두었을 때였다. 그날 우리는 회사 업무 시간에 틈틈이 서로에게 줄 선물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나이키 러닝화와 딥디크 오데썽, 보스 헤드폰, 애플 워치에 이르기까지 각종 아이템의 상세 정보가 담긴 링크를 퇴근할 때까지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어떤 맥락에선지 분명치는 않으나 선물 대신 동대문에 위치한 JW메리어트 호텔에서 함께 1박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날짜상 365일이 되는 목요일 오후에 체크인하여 하룻밤을 보낸 뒤 달력상 1주년이 되는 금요일 오전에 체크아웃하기로. 그렇게 윤년이라는 치윤법이 바로잡으려 하는 시간의 간극이랄까 오류를 활용하여 우리의 기념일을 두 배로 누리자고 말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다소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는데―그러므로 나의 아이디어였을 공산이 크다―이것이 제법 값나가는 선물들을 제치고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즈음의 우리가 연일 이어진 프로젝트와 야근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둘 다 어렵게 낸 휴가이니 좀 쉬고 싶었던 것 같고, 선물이야 뭐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태를 우리가 내심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무렵 나는 너의 기분이랄까 컨디션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거의 볼 수 있었고, 그런 것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흐릿한 블루나 옐로처럼, 꼭짓점이 뭉툭한 삼각형처럼 보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상당히 구체적인 장면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나는 네가 회사 일로 자정을 훌쩍 넘겨 귀가하는 밤이면, 네가 하우스메이트인 사촌 누나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현관문 여는 모습을, 퇴근길에 산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책상에 늘어놓고 혼자 먹는 모습을, 욕실에서 칫솔질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어렴풋한 실루엣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이미지로 목도할 수 있었다.
―형도 그래? 말은 안 했는데 사실 나도 가끔씩 그런 게 보여. 형이 회사에서 남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으면서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이나 집 거실 소파에서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까무룩 잠드는 모습 같은 거. 이상하지?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인데 마치 몇 번이나 본 것처럼 눈에 선하니 말이야.
―안 봐도 비디오라는 건가.
―음, 그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
―혹시 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
―없는 것 같아. 형은?
―나도 없는 듯.
―신기하네. 참, 그거 알아? 이게 우리 첫날밤인 거.
―첫날밤?
―첫날밤!
―지금까지 같이 잔 건 기억도 안 나니?
―아, 그런 게 아니라……
너는 분홍색 복숭아가 효자손으로 제 머리를 긁적이는 이모티콘을 보낸 뒤 그동안 우리가 한 번도 같이 밤을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기억 안 나? 연초에 계획했던 방콕 여행이랑 그 후에 잡아뒀던 제주도 여행이랑…… 전부 취소됐잖아. 그래서 1년 가까이 사귀었는데 밤새 함께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러네, 자는 사이에 같이 잔 적이 없네.
―이 세계가 우리의 첫날밤을 가로막고 있었던 거지.
―우리의 사랑을 전염병으로 방해하고 있었구나.
―전염병 하나면 다행이게.
그래, 어쩌면 우리는 그저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한 침대에서 느긋하게 뒹굴거리다가 나란히 잠들고 깨어나는 과정을 통해 뭐라고 규정할 수는 없으나 분명하게 이루어질 관계의 진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서로의 면면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고, 조금 더 사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촌누나한테는 뭐라고 말했어?
―그냥 친구네서 자고 온다고. 형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어?
―나도 뭐, 비슷하게 둘러댔어.
그날 우리는 스타벅스 새문안로점에서 조촐한 세리머니를 올렸다. 클라우드 치즈케이크에 초를 꽂아 넣고 불을 붙인 뒤 번갈아 가며 사진도 찍었다. 촛불을 끄기 직전에는 각자 소원을 빌었는데, 나는 네가 무엇을 빌었는지 묻지 않았다. 너 역시 묻지 않았지. 그것은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 탓도 있었으나 어쩌면 내가 너의 소원을, 네가 나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으리라는 예감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나는 너와 결혼할 수 있다면―이런 가정을 적용해본 건 네가 처음이었다―과연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런 상상의 나래를 머릿속으로 펼쳐보곤 했다. 그런 전제만으로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본 적 없는 삶의 형식이어서 도무지 구체화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웨딩홀을 대관하여 결혼식을 올린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여 구청에 제출한다. 공동명의로 얻은 집에서 함께 생활을 꾸려나간다. 여느 부부들처럼. 그다음에는?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의 상상은 번번이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겪게 될 불의의 사건이랄까 봉변을 당하는 장면으로 뻗어나갔다. 내가 한밤의 귀갓길에 느닷없이 물벼락을 맞는다거나 네가 회사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승진에 누락된다거나 하는…… 자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제발 이사를 가달라는 이웃들의 탄원을 마트에서 장을 보던 와중에 듣게 되는 일 따위 말이다. 그것은 우리의 결혼이 가능해지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을 불가능에 대한 추측, 아니 확신 때문이었다.
케이크를 나누어 먹은 뒤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반 뼘쯤 열어둔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달뜬 볼을 식혀주었던 기억이 난다. 8월 하순이었고,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볕이 뜨거웠다. 그날 우리는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 뒷좌석에서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앉은 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우리의 몸짓과 대화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친구나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사실이 노출될 수 있을 때, 공연히 불쾌한―혹은 위태로운―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가급적 언행을 삼가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행선지가 숙박업소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었고, 하고 싶은 행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을 은닉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누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우리를 위해서! 하지만 그런 식의 경계와 단속이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는 걸―오히려 우리를 조금씩 상하게 만들었다는 걸―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광화문에서 동대문에 이르기까지 대로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나는 햇볕에 뭉근하게 데워진 차창에 이마를 붙인 채 그것들을 올려다보았다. 저것 좀 봐. 그때 너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룸미러로 우리를 흘끔거리는 운전사의 시선이 느껴져 입을 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저 색깔 좀 봐. 그날 착용한 마스크가 유난히 얼굴을 죄었던 것도. 키가 훌쩍한 나무들의 우듬지가 연한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제 한계를 넘어서까지 햇빛을 수용한 탓이겠지. 하늘을 향해 높이 뻗어 올라간 가지의 잎사귀들이 전부 볕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나무가 태양을, 빛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제 몸의 일부가 타들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기꺼이 내바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끓어 넘치는 생명력이란 죽음의 위협을 끌어안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걸 나는 그때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창밖의 이파리들이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어째서인지 내 귓가에는 질책하는 듯한 아우성이 들려왔다. 뜨거운 여름의 일광 속에서 두 팔을 벌린 채 타들어가는 나무들의 목소리가.
이제는 여름마다 그 소리가 들려온다.
호텔에 들어서자 바깥 공기와는 사뭇 다른 청량함이 은은한 장미 향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자줏빛 샹들리에를 지나자 어디선가 나직한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비에는 체크인을 마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쁜 대학생 남녀 커플과 호텔 수영장에서 사용하려는지 노란색 튜브를 어깨에 멘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제 체격보다 큰 리모와 캐리어를 지키고 있는 걸 보니 아이의 부모는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모양이었다.
데스크의 여직원은 우리를 반갑게 응대했다.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릴 정도로 커다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입가의 미소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서류 한 장을 꺼내 항목마다 동그라미를 치면서 숙박 요령을 일러주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 두 명이 트윈룸이 아닌 디럭스 더블룸을 쓰는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다. 그저 무심한 것이 아니라 우호적인 이해와 포용의 뉘앙스를 띠는 것, 바로 그것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평소와 다르게 네 옆에 붙어선 채로도 조금씩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돈이 좋구나.
그럴 때마다 나는 화폐로 구입할 수 있는 안정과 완전을 실감했다. 한없이 많은 돈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이런 호텔에서 너와 하루가 아닌 1년을, 10년을, 아니 평생을 함께 지내고 싶었다. 호텔을 갖고 싶었다. 그 어떤 무례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공간. 감시와 제재로부터 멀리 떨어져 견고한 대리석 벽 안쪽에서 마냥 평온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나는 호텔의 규모나 화려함보다 현실과 유리되는 듯한 감각에 마음을 빼앗겼다.
물론 이런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복도 모퉁이에서 부모가 돌아오자 남자아이가 눈썹만 실룩여 어떤 신호를 보내는 모습이―혹시 착각이었을까―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는 엷은 미소를 띤 채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앞으로 나섰고, 데스크에 한쪽 팔을 올린 채 우리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모습으로 용건을 진행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던 기억이 난다. 무슨 판단이란 걸 해볼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던 기억. 나는 너의 등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한 걸음 다음에는 두 걸음, 세 걸음을 더 물러나서 마치 체크인 과정이 지루하여 주변을 좀 둘러보려는 사람처럼 벽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에는 거의 바닥과 천장만 보았지. 그렇게 내가 로비를 한 바퀴 돌고 왔을 때 아이와 부모는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대학생 커플도 없었고, 여직원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데스크 앞에는 너뿐이었다.
그 모습.
그날 너는 소리 내어 나를 부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기만 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따금 그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데스크 앞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줄곧 기다리고 있는 네 모습이. 등 뒤의 유리창으로 한가득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맞고 서 있는 네 모습이. 그럴 때 너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고,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서글픈 웃음을 짓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장마가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였을 즈음 을지로의 허름한 갤러리에서였다. 갤러리라곤 하지만 졸업 작품으로 찍은 영화를 상영하거나 소규모 플리 마켓이 열리는 옥탑방 같은 곳이었다. 그날 진행된 퀴어 세미나는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것에 비해 실제로 참석한 인원은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 발표의 요지는 소수자를 향해 쏟아지는 그 어떤 편견과 혐오에도 증오로 맞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당시의 나는 묘한 반발심을 느껴 그 자리에 30분도 채 앉아 있지 못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수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그토록 온당하고 이성적인 다짐을 왜 약자들이 먼저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간에 자리를 떴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행사장 한편에 마련된 이벤트에 응했다. 대금을 치르고 수령지를 남기면 곧 출간될 세미나 자료집을 저자들의 서명본으로 발송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름 후, 내 손에는 엉뚱한 책이 도착해 있었다. 봉투에 적힌 수신자명은 나였는데 전화번호는 다른 이의 것이었고, 주소는 우리 집이 맞았는데 내용물은 다른 이의 이름이 적힌 서명본이었다. 그날 나는 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그런 행사에 참석한 이라면―심지어 출간 이벤트에 응할 정도라면―특별히 조심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오후 늦게 우리는 갤러리 앞에서 만났다. 훌쩍 큰 키에 동그란 안경, 흰 피부에 앳된 얼굴이 휴대전화로 들었던 중저음의 목소리와 연결되지 않아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너는 책을 받고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더니 이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한잔하자고 말했다.
“인사는 처음이어도 이 자리에서만 두 번째인 거잖아요.”
허튼수작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장난기보다는 진중함이 묻어나는 투였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너는 긴장했는지 말끝을 살짝 더듬었다. “진짜 괜찮아요.”
나는 너를 바라보다가 조그맣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요.” 네 어깨를 부드럽게 쳤다. “봐둔 데가 있어요.”
그날 우리는 햇빛이 너르게 드는 카페 창가 자리에서 히비스커스 티를 두 잔 시켜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는 우리가 손에 쥐고 있던 책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었는데,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혐오가 결국 타인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대 맞았다고 해서 한 대 때릴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에요.”
“그럼 맞고만 있으라고요?”
내 물음에 너는 난처한 웃음을 짓더니 얼마간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저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거든요. 거의 당하기만 하는 입장인데 뭔가 더 높은 도덕성이랄까 윤리 의식을 요구받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시잖아요. 앙갚음 같은 거 해봤자 후련해지지도 않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닮아가는 게 훨씬 무서운 일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주자는 거죠?”
나는 괜히 한번 더 어깃장을 놓았다.
“희생하자는 거죠?”
“희생이라기보다…… 사랑하자는 거죠.”
그날 우리는 두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억눌렸으나 올바름을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차츰 우리의 유년 시절과 성장통에 대한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후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고민과 죄의식에 괴로워하느라 하얗게 지새웠던 밤들. 상대를 향한 긴장이 풀어지면서 우리는 생애 처음으로―잠시나마 진지하게―자살을 고려했던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동안에 너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고 있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점, 어느 조직에서든 부침을 겪기 마련인 클로짓 게이로서 여전히 두려움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공유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 너는 대화가 끊어질 때마다 우리가 각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말없이 책장을 넘겨보거나 테이블 모서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 순간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침묵을 함께하는 와중에 불편함은커녕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고 말이다. 이후로 나는 사적이고 예민한 질문에도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 너의―도톰한 입술과―솔직함에, 언제부터인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보는 너의―연갈색 눈동자와―당돌함에 매료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다소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기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자리를 옮겨 술이라도 한잔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나는 너를 흉내 내며 말했다. “진짜 괜찮아요.”
너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요.” 그러면서 테이블 위의 내 손을 잡았다. “봐둔 데가 있어요.”
우리는 바로 옆 건물의 호프로 향했다. 그 가게에서 가장 어두침침하고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아 페일에일과 필스너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며―이따금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맞대면서―한 시간 남짓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을 멈췄고, 한동안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으며, 더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합의하에 모텔로 향했다.
“그때 나를 뭘 믿고 따라왔어?”
5층의 더블룸은 한쪽 면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조였다. 푹신한 킹사이즈 침대 옆으로 사무용 책걸상, 와인색 소파와 원목 테이블이 놓인 널찍한 방이었다. 우리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그 커다란 창 앞으로 다가섰다.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체크인 시간을 훌쩍 넘긴 탓에 어느덧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믿기는. 나 부모님도 못 믿는 거 알잖아.”
창 너머로 10차선 대로와 고풍스러운 자태의 흥인지문, 연둣빛 언덕을 따라 이어진 성곽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대답에 너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등 뒤로 다가와 나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지금은?”
내 목덜미에 키스했고 양쪽 손목을 조심스레 붙들었다. 그러곤 어깨높이까지 천천히 들어올렸다.
“뭐 하는 거야?”
“타이타닉 자세.”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그곳에서는 너와 나의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했고, 그러다 보니 이 세계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지. 그즈음 검푸른 빛 어스름이 너르게 드리워지며 사위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대로변에 줄지어 선 가로등과 신평화시장 건물의 간판에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이러면 밖에서 우리 보이지 않나.”
까맣게 물든 유리창에 우리의 실루엣이 얼비쳤을 때 나는 약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 보라지.”
너는 손을 뻗어 내 바지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
그때 나는 실실 웃으면서 너를 말리지 않았다. 바지를 끌어내린 뒤 셔츠 안쪽으로 뻗어 들어오는 손길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에 온몸이 떨릴 지경이 되었는데, 그것은 창밖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눈앞의 현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우리를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그로 인해 우리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는 감각 말이다. 이윽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상현달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뱉어냈다.
“보라지.”
유리창에 허연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사그라졌다.
“다들 좀 보라고.”
그날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깨어났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었다. 암막 커튼을 치고 수면 등까지 꺼버린 방안은 빛 한 점 없이 캄캄했다. 눈꺼풀을 들어올린 지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코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어도 그것을 거의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상체만 일으켜 침대 헤드 보드에 기대앉았다. 천장의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다가 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네가 호텔 방을 나섰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장면이 저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인근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각자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때였다. 내가 냉장고를 열어 안을 살펴보는데 등 뒤에서 네가 “혹시 거기 있는 거 마실 거야?”라고 물었다.
“글쎄.”
“괜히 비싸기만 하고. 탄산이랑 주스밖에 없지 않아? 내가 나가서 사 올게.”
“뭐 하러, 귀찮게.”
“금방이야. 오는 길에 보니까 형이 좋아하는 공차도 있더만.”
“문 닫았을 시간 아니야?”
“이 동네 가게들은 24시간 영업한대.”
너는 벌떡 일어나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담배라도 피우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더이상 말리지 않고 조심히 다녀오라 말했다.
“당도 50에 얼음 적게?”
“블랙펄 추가요.”
그런데 네가 방문을 나선 순간부터, 그리하여 찾아든 적요를 인식한 순간부터 나는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안락하고 포근하던 방 안이 갑작스레 낯설고 어색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려 해도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고, 텔레비전을 보려 해도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공연히 실내를 배회하다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창 앞으로 다가갔다. 무심코 건물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는데 놀랍게도 네가 보도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서 너는 호텔의 창문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헤아리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이 어디인지 찾고 있었다. 내가 너를 찾았을 때, 너도 나를 찾은 듯했다. 내가 반갑고 놀라워 머리 위로 손을 흔들자 너는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곤 느닷없이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거리는 춤을 췄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리 위로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다. “뭐 하는 거야.” 들릴 리가 없는데도 너를 향해 말했다. “돌아와, 빨리.” 그런데 너는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목과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자세로 섰다. 마치 무대 위에서 퇴장하려는 배우처럼 오른손을 바깥으로 천천히 휘두른 다음 제 왼쪽 가슴에 얹으며 상체를 숙였다. 그러곤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작아지는 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네가 우거진 나무의 잎사귀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까지 보았다.
일순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까지 들썩여가며 흐느꼈다. 이제 와 다시 생각해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 네가 이곳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고 느꼈다. 너와 헤어지게 되는 순간을 앞서 경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오래지 않아 너는 돌아왔다. 당도 50에 얼음은 적게, 블랙펄이 잔뜩 든 밀크티와 함께. 그날 나는 달콤한 음료를 입안에 머금은 채 창문을 통해서 너를 보았던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뒤늦게야 그 사람이 네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우리는 그 밤에 있었던 만남과 이별에 대해 그 이후로도 한 번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우리는 조식 뷔페가 마감되기 30분 전에야 가까스로 라운지에 입장했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당연한 말이지만―어째서 당연한가―그곳에는 자녀를 둔 중년 부부와 젊은 남녀 커플들뿐이었다. 일행이 남자 둘인 경우는 우리가 유일했다. 테이블 간격은 바로 옆 손님들이 아침 식사로 무엇을 집어 왔는지, 그러니까 타인의 음식 취향과 플레이팅 솜씨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어머 저거 뭐야. 서로가 서로의 접시를 흘끗거리며 괜한 의구심을 한 번쯤은 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무엇보다 직원들을 제외하고 손님들 중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식사 공간이고 전염병이 꽤 수그러든 시기이긴 했으나 마치 이곳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병에 걸릴 만한 이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의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식사하는 내내 크림 수프와 오렌지주스의 당도, 의자의 푹신함, 창밖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다시피 했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가 자리를 뜨기 직전까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우리를 곁눈질한 탓이었다. 사실 그들은 별생각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선을 예민하게 감지했고 경직되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옆 테이블 사람들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어머 저거 뭐야. 저런 애들까지 여기 들어오면 어떡해.
달력을 넘기자 계절도 변한 듯 서늘한 공기에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나는 선풍기에 커버를 씌워 창고에 들여놓았고, 서랍장에서 긴소매 셔츠와 카디건을 찾아 꺼냈다. 갈색으로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느덧 가을이었고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었다. 1주년 이후로도 우리는 주말마다 만나 데이트를 했다. 극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재개봉한 영화를 관람하거나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모텔 방에서 배달 음식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추석을 포함한 긴 연휴가 지나자 전염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무렵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 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원인이었다. 확진 환자가 하루에만 6백여 명에 달하자 위기 경보는 심각에서 위험 단계로 격상되었고, 거리의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특별 조치가 있기 전까지 외출을 전면 금지한다는 정부 명령에 의해 회사 업무는 무기한 재택근무로 전환되었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한 채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되기 전, 너와 마지막으로 데이트했던 밤, 헤어지기 직전에 지하철역 근처 베이커리에서 카눌레와 크루아상을 샀던 기억이 난다. 그때 너는 계산을 하기 직전에 바로 옆 쇼케이스에서 숫자 2 모양의 초를 집어들었다.
“뭐 하려고.”
내가 묻자 너는 어깨만 살짝 으쓱해 보였다.
“2주년 때 쓰려고.”
“그때까지 갖고 있으려고?”
“그때까지 갖고 있으려고.”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 평소보다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시시각각 전화로,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나누었고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해 전송했다. 그렇지만 격리 기간이 일주일에서 열흘로, 보름으로, 한 달 넘도록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연락은 차츰 줄어들었다. 새롭게 알려줄 만한 현재가 없었고, 새롭게 계획할 만한 미래가 없었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간밤에 넷플릭스로 본 드라마의 결말은 어땠는지, 뭐 그런 걸 묻거나 답하고 나면 더이상 하고 싶은 말도 궁금한 것도 없었다. 매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뭔가 해볼 의욕조차 나지 않았지.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때 만성적인 실의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봉쇄 조치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네가 나한테 느닷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냥 몰래 만나자.
이런 와중에도 비밀스레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음식점과 카페를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잘만 돌아다녀. 누구는 몰래 해외여행도 간다던데.
―누가 그래?
―다들 그래.
그날 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답신을 적어 보냈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밖을 돌아다니다가 전염병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서로에게 병을 옮기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를 받는 와중에 우리가 서로의 몸을 만지고 입을 맞췄다는 정황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러한 사실을 전 국민이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면?
당시에 내가 그렇게까지 메시지를 적어 보낸 건 질병에 대한 걱정이랄까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좀 더 근본적인 갈등에 의해서였고, 오랫동안 견뎌온 공포의 무게를 끝내 이겨내지 못한 탓이었다. 너는 그것을 단번에 이해한 듯했고, 그러므로 더이상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시는 하지 않았지.
이후로 우리는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긴 했으나 그 빈도는 서서히 줄었고, 그러한 흐름은 어째서인지 자연스럽게 여겨졌으므로, 우리는 두 달 만에 위기 경보가 위험에서 심각으로, 경계로, 주의로 격하되어갈 즈음 거의 연락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안부를 묻던 사이에서 며칠에 한 번, 아니 열흘에 한 번 연락을 할까 말까 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날 수 있어도 만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 내가 크리스마스를 이틀인가 앞두고 실로 오랜만에 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너는 더이상 그 번호로 연결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 나는 별일 없이 지낸다. 서울을 떠나 한적한 시 외곽에 원룸을 얻었고, 얼마 전에는 재수 끝에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았다. 변화된 생활양식에 어색하게나마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도 적응해나가야 하리라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깨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노트북을 열어 출근 체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통 나는 메일 수신함을 죽 훑어본 뒤 급한 요청에만 답신을 보내고는 부엌으로 향한다. 전날 만들어둔 샐러드와 토스트를 책상으로 가져와 먹으면서 일하고, 일만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오후 시간에는 다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이어간다. 4시에는 스카이프 화상 전화로 부서 회의를 하고, 6시에는 그날 수행한 업무 결과를 간략한 보고서 형태로 제출한다. 퇴근 체크까지 마치고 나면 어깨를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피로감에 침대로 가 드러눕곤 한다. 그대로 얼마 동안 잠들기도 하고, 금세 일어나 저녁을 차려 먹기도 한다.
밤이 이슥해지면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동네 근린공원을 산책한다. 가보면 나와 비슷한 차림의 사람들이 발소리도 내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 다니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며 말도 걸지 않는다. 보통 나는 1천 미터 산책 코스를 세 바퀴 정도 돈다. 공원 부지를 에워싸는 진초록색 포장길로, 안내도에는 찌그러진 타원형으로 그려진 코스이다. 나는 세 바퀴를 한 번에 다 돌지는 못하고 한 바퀴 반쯤 돌았을 때 늘 똑같은 벤치에 앉아 10분 정도 휴식한 뒤 나머지를 돈다. 무리하지 않을 것. 운동이라기보다 산책이었으므로 나는 언제나 숨이 차지 않을 정도를, 땀이 나지 않을 정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날이 풀리기 시작하던 초봄의 어느 날, 나는 벤치 바로 옆의 목련 나무가 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특별히 나무에 관심을 기울인 적 없었으니까. 그저 좀 허전하다는 느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밑동만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날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다. 한아름 크기의 밑동을 내려다보았고, 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쪼그려 앉아 손을 뻗었다. 매끄럽게 잘린 면은 차갑고 단단했다. 연갈색의 나이테를 따라서는 미세하게 거스러미가 일어나 있었다. 그날 나는 여러 겹으로 늘어선 시간의 궤적을 어루만지며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손끝에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만져졌다. 살펴보니 테두리의 한끝에 조그마한 연둣빛 움이 돋아나고 있었다. 다시 자라나고 있었고,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 싹의 머리를 어루만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 코스로 돌아갔고 남은 한 바퀴 반을 마저 돌았다.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줄기를 따라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걸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 세계가 우리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이 세상이지 내가 아니었기를 바랐다.
돌고 돌아 원점에 이르렀을 때에는 내리막을 지나 공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보냈던 밤을 떠올렸다. 그날 우리는 불을 끄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는 방 안이 너무 어두워서 우주 같다고 했고, 우리가 그 속을 부유하는 먼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고마워.” 그러다가 네가 덧붙였을 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고마워.”
“그동안 형 덕분에 좋은 날이 많았어.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잠들 때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다.”
“신기할 건 뭐야. 아무튼 좋다니까 나도 좋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손을 찾아 쥐었고 잠을 청했다. 그 밤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누군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에, 심지어 그가 나의 사랑이라는 것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기쁨을 느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손을 놓고 각자 편안한 자세로 다시 누웠을 때에는, 그리하여 잠들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에는, 어째서인지 이런 밤은 처음이고 다시는 없으리라는 예감에 선득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박선우
남자친구와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20/10/27
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