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영은 우진이 대학시절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언니다. 여자친구 집에 놀러가면 해영은 자다 깬 부스스한 얼굴로, 키우던 고양이에게 하네스를 채우고 산책을 나가곤 했다. 여자친구는 그런 언니를 보며 혀를 찼다. 자신에게 혀를 차는 동생을 향해 해영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어서 우진은 신기하다 생각했다.

   몇 개월 만에 연락한 해영이 J시를 언급했을 때 우진은 흔쾌히 그녀의 제안에 응했다. 해영은 J시에 도착할 때까지 세 시간 반가량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운전했다. 시골의 밤공기는 초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했다. 적당히 수증기를 머금은 바람이 우진의 얼굴을 쓸고 지나가자 시야가 상쾌해졌다.
   해영은 톨게이트를 지나 처음 보이는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담배 네 보루와 라이터, 그리고 이온 음료를 샀다. 우진은 계산을 하는 해영의 뒤에 섰다. 올해로 마흔인 해영은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이 보였다. 그녀의 목덜미에 후, 바람을 불어보았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 아래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칼이 입김에 살살 흔들렸다.
   해영은 차 키를 우진에게 넘기고 조수석에 앉았다. 상향등 켜. 우진이 시동을 걸자 해영이 담뱃갑의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로드킬을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지방 도로를 다닐 때면 그녀는 길에 뭔가 지나가지 않는지 특별히 신경을 썼다. 해영은 서울의 한 동물 보호 협회에서 십 년 넘게 일하고 있었다.
   장충단 공원 옆을 해질 무렵 지나고 있었어. 차로. 해영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한 십 미터쯤 앞 도로에 고양이가 누워 있었어. 난 고개를 돌렸지. 그런데 운전하던 사람은 못 본 거야. 피하라고 말하기엔 이미 늦은 거리였거든. 난 눈을 감아버렸는데, 고양이가 있겠다 싶은 부분에서 차가 덜컹, 하더라고.
   해영은 띄엄띄엄 말을 마친 후 담배를 깊게 빨았다.
   ……그냥 돌이나 뭐 그런 거였을 수도 있잖아.
   너는 모를 거야. 그 느낌.
   우진은 할 말을 찾지 못해 화제를 돌렸다. 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왔어?
   해영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작게 대답했다. 맡기고 왔지.
   왠지 더이상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아 우진은 입을 다물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내내 예민해 보였던 해영은 운전대를 넘긴 후 피곤이 몰려오는지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해영은 굳이 자신이 운전을 계속 하겠다고 우겼다. 그리고 그의 요구를 묵살하고 모든 휴게소를 그냥 지나쳐 왔다. 고속도로에서 최소한 두 번은 과속 카메라에 잡혔을 거라 짐작했다. 우진은 상향등을 켠 채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가 자꾸만 입가에 맴돌았다. 아이유 노래 한번 더 들을까? 해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우진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시골의 진한 여름밤 내음을 한껏 들이마셨다.
   
   최종 목적지는 시내에서 이십 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면 단위 마을로 주로 포도 농사를 짓는 작은 동네였다. 게다가 그들이 가는 곳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와는 또 좀 떨어진, 저수지와 뒷산 사이에 비슷하게 생긴 단층의 석조 건물 두 채가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외진 곳이었다.
   우진은 검은 산으로 둘러싸인 어둑한 시골의 밤길이 익숙지 않았다. 혹시라도 산짐승이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불안했다. 음악 볼륨을 좀더 높였다. 해영은 팔짱을 낀 채 아무런 감흥도 싣지 않고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갔는데도 우진은 마을 입구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차를 돌리는 동안 해영은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해영이 낮은 비명을 지르자 우진도 놀라 짧게 소리를 뱉었다. 허름한 회색 점퍼에 머리는 덥수룩하게 긴 남자가 초록색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너 때문에 내가 더 놀랐다. 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우진이 말했다. 너도 봤지? 나만 본 거 아니지? 해영은 놀란 마음이 가시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 아니잖아.
   사람이 아니라고?
   마네킹에 옷 입힌 거잖아.
   둘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어느 순간 해영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우진도 따라 웃었지만 마냥 웃기지만은 않았다.

   띄엄띄엄 늘어선 가로등 너머로 불 켜진 낯익은 집이 보였고 이어서 대문 밖에 서 있는 한의 실루엣을 확인했을 때 둘은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한은 따뜻한 미소로 둘을 맞아 주었다. 한에게 우진은 선물로 준비한 씨디 몇 장과 케이크를, 해영은 담배 세 보루를 건넸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개 짖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낮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다란 도베르만 두 마리가 우진과 해영을 보고 짖어댔다. 한이 다가가 개들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짖지 않는 개는 아무 소용이 없거든. 해영이 이름을 부르며 개들에게 다가가 손등을 내밀었다. 개들은 해영의 냄새를 맡고는 금방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해영은 익숙하게 개들을 쓰다듬었다. 다 컸구나.
   한은 해영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그에 대해 우진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정확한 나이도 본명도 알지 못했다. 일이 년에 한 번씩 볼 때마다 함께 사는 사람도 매번 바뀌어 있었다. 우진의 물음에 해영은 한 번도 시원하게 대답해 준 적이 없었다. 이건 좀 불공평한 거 아니야? 저 사람은 내 이름이랑 직업이랑 다 아는데.
   아마 한은 네 이름이랑 직업에 관심이 없을 거야. 그런 사람이야.
   해영은 언제나 이런 식의 대답뿐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공부가 목적이면 공부만 열심히 하다 오면 되는 거야. 그래, 안 그래.

   우진은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갔다. 제대 후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유학을 떠나 음향 공부를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이혼하는 바람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파리는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끊어진 삶에 아무런 대비도 해놓지 않았던 때였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집세가 싼 곳을 찾아 어떻게든 버텨서 졸업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당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도 한몫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을 공격하는 기분이었고 우진은 그것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 졸업장이 없었던 탓에 서울에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친구의 소개로 겨우 작은 프로덕션에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정직원이 되었으나 대우가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고 여전히 티브이나 라디오 광고에 들어가는 음향을 만들었다. 광고주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 나중에 독립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다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연말이 올 때마다, 아 시간 더럽게 빠르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음향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 자체가 한국에는 아직 없어요. 멜로디나 임팩트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소리의 질에 대한 감각은 빵점이에요. 아, 이제 빵점은 아닌가. ASMR이 유행했잖아요. 그래서 그나마 이젠 한…… 사십 점은 되는 것 같네요.
   그게 뭐죠?
   네? 아 그게, 하여간 이게 다 한국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우진은 대답 대신 엉뚱한 질문을 던진 후 지나치게 큰 소리로 웃었다.
   ‘공부’란 보통 마리화나를 말아 피운다는 뜻으로 그들끼리 쓰는 은어였다. 한은 대마초나 마리화나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우진은 유학 시절 친구들과 하시시를 자주 피웠다. 평소보다 청각이 예민해져 작업을 할 때 유용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는 하시시를 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청각을 곤두세우고 작업을 할 만한 일이 없었다. 헤드폰을 끼고 밤을 새워 섬세하게 작업을 해 가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을 만나 답답함을 토로하면 오히려 은근히 비꼬는 투로 말했다. 여기는 프랑스가 아니야. 아직도 감 못 잡았냐?

   한의 안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하늘색 반팔 티셔츠에 트레이닝 팬츠를 입은 여자는 우진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민수라는 친군데, 잠깐 일 도와주고 있어.
   한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소개했다. 소개를 받은 여자는 고개를 까닥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간단한 안부가 오간 후 짐을 내려놓고 일행은 거실의 좌식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아, 우리 오다가 이상한 사람 봤어. 기절하는 줄 알았네. 해영의 말에 우진이 덧붙였다. 그거 사람 아니라니까. 왜 있잖아요, 허수아비 같은 거. 마네킹에 옷 입혀 놓고.
   혹시, 머리 길고 모자 썼어요? 그거 사람 맞아요. 근데 죽었는데.
   한이 민수의 머리를 장난스레 탁 치며 말했다. 또 거짓말한다.
   나 급한데. 일단 먼저 하면 안 돼?
   해영이 재촉하자 한은 서랍장에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왔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든 비닐 팩에서 잘 마른 잎을 한 줌 쥐어 얇은 종이에 올렸다. 연초를 마는 한의 능숙한 손동작을 나머지 셋은 조용하게 주시했다. 한은 종이에 침을 발라 꼼꼼하게 마무리한 후, 연초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민수는 우진이 가져온 자미로콰이 베스트 시디를 틀었다. 한은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빨고 숨을 멈추고는 연초를 해영에게 건넸다. 해영은 조심스레 연초를 받아들고 그가 했던 것처럼 연기를 빨아들인 후 숨을 멈추었다 천천히 내뱉었다. 연초는 계속해서 옆 사람에게로 건네졌다. 두세 번 정도 돌아간 후에는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향의 연기가 공중에 자욱하게 배어들었다. 한이 두 번째 연초를 말고 끝까지 다 피웠을 때쯤에는 모두의 표정이 한결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한이 만드는 연초는 담배보다는 목 넘김이 부드러웠고 피운 후에도 입안이 텁텁하거나 머리가 탁해지는 기분이 없었다. 하시시를 과도하게 피우고 났을 때 느꼈던 매스꺼움도 전혀 없었다. 대신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눈이 편안해졌고 음악은 바로 옆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풍부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식욕이 왕성해졌고 소화도 금방금방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맨발로 보들보들한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처럼 하나하나가 평온하게 즐거웠다. 아무런 욕망도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물처럼.
   넷은 달짝지근한 아이스 와인을 한 병 따고 사이좋게 녹차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한은 레드 와인 한 병을 더 땄고 민수는 치즈와 크래커, 과일 따위를 꺼내왔다. 해영은 안주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운 후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음악은 첫 번째 곡으로 다시 넘어갔다. 민수가 일어나서 한의 팔을 끌었다. 둘은 서로의 손을 잡고 음악에 맞추어 가볍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진은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자미로콰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거니까…… 아닌가, 대학 때였나. 왜 한은 언제나 예전 음악을, 그것도 꼭 씨디로 듣는 걸까. 우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과거의 어떤 장소에 와 있는 듯했다. 낯선 곳인데 사실은 어릴 때부터 알았던 장소 같은. 이제 조금만 더 애쓰면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한과 민수도 기억을 해보면 내가 아는…… 이건 말이 안 되나. 우진은 코웃음을 치고 고개를 흔들었다.
   얘기 좀 해봐. 또 어떤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우진이 해영에게 말을 걸었다. 해영은 답이 없었고 우진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요즘은 얼마나 데리고 있어, 집에? 더 늘었어? 해영은 손가락 다섯 개를 다 폈다가 곧 하나를 접어 넷을 만들었다. 하나가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지.
   나이가 많았어?
   아니. 새끼. 얼마나 던지고 밟고 했는지 걷지도 못해서 똥도 앉아서 쌌어. 그래서 집으로 데려왔는데 밥을 안 먹더라고. ……죽고 싶었나. 동물 중에도 그런 애들이 있거든. 별수 없지. 아, 요전날에는 눈알에 쇠구슬 박힌 고양이도 들어왔었다. 누가 정성껏 아주 정확하게 박아 놨더라고. 정말 창의적이지 않니?
   살아 있는 애한테? 안 죽었어?
   그냥 애꾸눈 됐지 뭐. 이런 얘기 이제 안 지겨워?
   아니 들을 때마다 화가 나는데.
   너는…… 멀리 있어서 그런가.
   해영은 길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미소가 마치 무표정인양 한참을 묘하게 웃는 얼굴로 있다가 일단은 자야겠다고 했다. 지금 딱 너무 행복한 기분이라고.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한과 민수는 부엌 옆 방으로 들어갔다. 둘에게는 거실 쪽에 있는 방을 쓰라고 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같은 방을 썼기에 어색한 일은 없었다.
   전에 있던 남자는 어쩌고 이젠 여자애? 딱 봐도 어린데. 미성년자 아니야.
   방에 들어오자마자 우진이 작게 말했다. 해영은 씻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 불을 끄라는 손짓만 했다. 불 꺼진 방은 한순간에 밀도 높은 어둠으로 가득찼다. 밖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더듬어 자리에 눕자 우진도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잔잔한 호수 위에 누운 듯한 느낌이었다. 눕자마자 신기하게도 몸이 무거워져 손가락 들 힘도 없었지만 그게 좋았다. 마치 오랫동안 떠돌다 고향집에 내려온 듯한 낯설고도 안온한 느낌. 시골에 고향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때 주영이가 소영이를 밖에 내보낸 게 맞아. 그년이 일부러 그랬다고. 너도 기억하지?
   잠 속으로 빠져들려는 찰나, 해영의 목소리가 우진을 물 밖으로 끌어냈다.
   주영이는 잘 지내고? 둘째는 유치원 들어갔나?
   우진은 해영의 말에 동조도 반박도 하기 힘들어 다른 말을 꺼냈다.
   주영과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주영에게 전화가 와서 집으로 달려갔을 때, 해영은 두 눈이 벌게진 채로 넋이 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주영은 고양이가 집을 나갔는데 늦은 밤인데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연락했다고 했다. 해영은 몇 시간 동안 동네를 헤맸고 119에 전화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억지를 부렸다고 했다. 소영이라니까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이없어했다고 주영은 전했다. 자신을 의심하는 언니 때문에 억울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가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우진은 해영과 밤새 동네를 뒤졌다. 그 뒤로도 전단지를 만들어 붙였고 며칠간 시간을 내어 함께 소영이를 찾으러 다녔다. 찾지 못할 거라는 확신 사이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해영의 고양이 소영은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소영이는 열 한 살이었어. 주영이는 소영이를 싫어했어. 너도 알잖아? 동물이랑 같이 사는 거 자체를 혐오했지.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난…… 그런데 주영이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우진은 해영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그러나 고양이를 찾아 헤매던 밤을 분명히 기억한다. 고양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해영의 뒷모습을. 땀에 젖어 동그랗게 얼룩이 번진 그녀의 등을. 그때 그 골목들, 발소리, 밤공기의 습도까지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영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그날 밤에는 정말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주영이랑은 왜 헤어졌더라.
   해영이 동물 보호 협회에 들어갔다고 했을 때에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술에 취한 해영의 잠투정일 것이다. 해영이 뭐라 웅얼거리는 소리가 음향처럼 여겨졌다. (명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함께 고양이를 찾으러 다닌 사이지요. (고양이 소리) 소영아! 어, 아니네. (여자의 웃음소리) 이렇게 쉬울 리는 없겠죠. 이들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시는 분들은 전화번호 1577…… 우진은 갑자기 웃음이 나려는 것을 입에 힘을 주어가며 겨우 참았다. 우진은 해영의 머리칼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진이 눈을 떴을 때 해영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모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은 계란프라이를 만들고 커피를 내렸다. 해영은 야채를 씻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민수는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토스터의 식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며 하품을 했다. 오늘 낮 기온이 삼십도 가까이 된대요. 아닌가, 넘는댔나. 민수가 햇살이 드는 거실을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진의 귀에 사람들이 식사하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우진은 눈을 감고 공간에 번지는 고소한 향과 소리들을 음미했다. ASMR…… 그게 그러니까, 무슨 뜻이더라.
   식사를 마친 후 각자 커피잔을 손에 들고 넷은 또다시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민수는 커튼을 꼼꼼하게 쳤다. 연초는 항상 한이 말았다. 진짜 잘 만다. 고1 때부터랬나? 해영의 물음에 한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거의 장인 수준이네.
   우진은 한의 이력이 무척 궁금했다. 외모만 보면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그러나 물어봤자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을 것이 뻔해 입을 다물었다. 부잣집 아들이었겠지. 그러니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 멋대로……
   낮에 말이야, 한이 꼼꼼하게 만 연초를 들어 종이에 침을 발라 붙이며 물었다. 이렇게 환하고 조용한 대낮에 말이야, 공부하며 듣기에 제일 좋은 음악이 뭔지 알아?
   Take Me Somewhere Nice. 우진이 말하자 민수가 대뜸, 뭐라고요? 나이스? 오빠는 트와이스 좋아할 거 같이 생겼는데, 하며 팔을 긁적였다. 우진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해영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한이 웃었고 민수도 따라 웃었다. 이어서 해영도 웃기 시작했다. 우진은 어리둥절했지만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웃겨서 함께 웃었다.
   한이 완성된 연초를 해영에게 건넸다. 해영은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연초 끝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빠져나와 허공 속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뭐든 다 좋지만, 오늘은 베토벤 소나타를 듣자. 안드라스 쉬프로, 정확하게.
   한은 몸을 일으켜 음악을 틀었다. 잠시 후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거 월광 아니에요? 맞아. 소나타 14번. 사람들은 월광 하면 무조건 밤만 떠올리니까. 그런데 이런 환한 햇빛에 더 어울리는 곡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해영이 읊조리듯 말했고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낮은 단조의 예리하고 우아한 피아노 소리가 빛과 연기 사이로 침범해 들어왔다. 해영은 바닥에 누웠다. 민수는 한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한은 그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번졌다.
   제목을 잘못 지었네. 어떤 새끼가 월광이래. 선 라이트라고 바꾸자. 해영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빛을 만지듯 천천히 허공을 쓰다듬었다. 우진은 마치 오래된 필름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빛에 닿은 사람들이, 테이블이, 커피잔이, 점점 희미하게 색이 빠져버리고 있었다. 보여? 정말 아름답지. 말을 하려 했으나 발음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아쉬웠고, 그런 무력한 기분이 드는 게 참을 수 없이 감미로웠다.
   배고프다. 고기 먹으러 갈까. 한참 뒤 해영이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한은 개들을 목욕시키고 집 정리를 해야 하니 셋이 다녀오라고 했다. 올 때 피자나 몇 판 사 와.
   우진은 여자들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한을 따라 마당에 나가 개들과 놀아주었다. 햇살 때문에 정수리가 금방 뜨끈해졌다. 한은 수도꼭지를 틀어 호스로 잔디며 나무에 물을 뿌렸다. 개들은 꼬리를 치며 물줄기를 따라 뛰었다. 개들의 리듬과 물줄기의 속도, 길게 늘어져 반짝이는 붉은 혀의 미세한 움직임. 우진의 눈에 각각의 장면들이 슬로 모션처럼 각인되었다. 개와 돌과 나무와 흙, 플라스틱 의자와 이 모든 사물이 햇살에 달궈져 독특한 냄새를 만들어 냈다. 한은 개의 등에 비누칠을 했다. 검은 등에 금방 하얗게 거품이 일었다.
   민수는 민소매 티셔츠에 핫팬츠 차림이었다. 드러난 다리에는 울긋불긋한 멍과 함께 모기 물린 자국에 딱지가 앉은 것 같은 붉은 흉터로 어지러웠다. 해영은 청바지에 처음 보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민수에게 빌린 것이라고 했다. 옷을 못 챙겨왔네. 정신이 없어서.
   운전대는 우진이 잡았다. 민수는 뒷좌석의 창을 내리고 한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 하고 외쳤다. 마치 멀리 떠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그러나 한은 팔을 한 번 들어 보였을 뿐 곧 개의 털을 닦는 일에 몰두했다.
   어떨 땐 너무 차가워. 민수가 말했다. 아무 대꾸도 없는 둘에게 민수가 물었다. 그런데 둘은 어떤 사이?
   결혼 안 하는 사이. 해영의 대답에 민수는 피식 웃었다. 이 언니 진짜 재밌다니까.
   민수는 시내 지리에 밝았다. J시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에어컨에서 쿰쿰한 냄새가 올라왔다. 우진은 에어컨을 끄고 창을 모두 내렸다. 민수가 팔을 창밖으로 뻗었다. 위험해.
   촌스럽긴. 시골은 괜찮아요.
   식당은 허름했으나 유명한 곳인지 대낮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셋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생갈비 주세요. 환기가 잘 되지 않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셋이 오 인분을 먹어치우고 나왔을 때에는 누구랄 것 없이 온몸에 고기 냄새가 배어있었다.
   소화도 시킬 겸 오락 한 판 할래요?
   오락실이 있어?
   민수는 앞장서서 식당 맞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학교 때 이후로는 본 적 없는 오락실이 그곳에는 과거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끄러운 전자음과 곰팡이와 먼지 냄새, 찌든 담배 냄새와 군데군데 금이 간 기계들. 지나치게 투박하고 큰 기계들은 알록달록한 버튼을 달고 반복되는 화면만 보여주었다. 인서트 코인. 버튼이며 의자는 가운데가 반질반질해서 오랜 시간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역력했다. 여기도 신장개업이라는 걸 한 적이 있을까. 우진은 해영의 혼잣말을 들었다. 그리고 신장개업…… 하고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낯설었다.
   민수가 자리를 잡았고 둘은 민수 뒤에 섰다. 동전을 넣고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자 민수는 바지에 손을 쓱 문질러 땀을 닦았다. 그녀는 어깨를 한껏 구부렸다 폈다 하며 게임에 몰입했다. 해영은 열심히 돌려차기를 하고 있는 화면 속의 거대한 초록색 괴물을 응시했다. 우진은 레버를 흔드는 민수의 가는 손목, 다리를 떨 때마다 흔들리는 허벅지, 리듬감 있게 버튼을 누를 때 함께 팽팽하게 당겨지는 매끈한 목덜미에 자꾸 눈이 갔다.
   귀가 멍멍해. 소화도 잘 안 되고. 너무 급하게 먹었나.
   해영이 나가자고 했을 때 민수는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가 지금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걸 뭐라더라, 펠라치오? 플라시보? 하여간 뭐 그런 거 아니에요?
   민수의 말에 우진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고 해영은 소리 내어 웃었다. 셋은 근처의 피자집을 찾아들어갔다. 주문한 피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해영은 소화제를 사러 약국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민수와 우진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민수가 다리를 까딱대다 발로 우진의 다리를 한 번씩 쳤다. 그럴 때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오빤 뭐하는 사람이에요? 들었는데 까먹었네.
   몰라도 돼.
   치. 유학파라면서요. 프랑스는 좋아요? 불어 한 번 해봐요.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해봐요. 섹스가 불어로 뭐야?
   우진은 기가차다는 듯 콧방귀를 끼고는 대뜸 반문했다. 섹스가 섹스지. 섹스가 한글로는 뭔데? 기를 누르려고 내뱉은 말에 속으로 아차 싶어 급히 말을 이었다. 너 몇 살이니? 고딩? 설마 중학생? 민수는 그런 우진을 빙글거리며 바라보다 한마디 던졌다. 왜요? 신고하게?
   해영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피자를 포장해서 셋은 다시 차에 올랐다. 해영은 얼마 가지 않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벗어나 몇 분쯤 달렸을까. 해영이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민수가 손짓으로 샛길을 가리켰다. 저기로 들어가면 저수지 근처에 세울 수 있어요. 샛길로 오십 미터 정도 들어가니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공간이 나왔다. 불과 일 이십 미터 앞이 바로 저수지였다. 뒤쪽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저수지에서 진한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해영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풀숲에 들어가 구역질을 했다. 등 두드려줄까?
   해영은 손을 크게 내저었다. 풀 사이로 쪼그려 앉은 해영의 등이 보였다.
   참 별일이다. 원래 공부하면 소화가 엄청 잘 되는데.
   오빠도 그게 대마초 뭐 그런 거라 생각하는 거지?
   우진은 민수의 말에 잠깐 혼란스러웠다. 이 어린 여자애에게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자꾸 반말 할래? 우진이 정색했다. 민수는 피식 웃으며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 보면 참 신기해. 다 전문가들이래. 아무 이파리나 말려서 줘도 다 좋대. 어떤 아저씨는 타이레놀 갈아줬더니 신나서 코로 들이마시고 질이 끝내준대나…… 나 참. 어, 그런데 저게 뭐지?
   민수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바닥에 무언가 납작하게 얼룩처럼 붙어 있었다. 우진은 내키지 않았으나 가까이 가보았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개인지 고양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동물의 사체가 분명했다. 민수는 징그럽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고 말했다. 여기 원래 애들이 연애하러 오는 덴데.
   연애?
   그거.
   설마.
   그게 뭔 줄 알고? 민수가 놀리듯 또다시 빙글거렸다.
   뒤로 하는 거 좋아해요?
   우진은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반사적으로 해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민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리를 긁다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해영이 천천히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우진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언가 숨기는 기분이 들었다. 해영도 쪼그려 앉아 민수가 발견한 사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우진이 재촉했으나 말이 없었다. 대신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사체를 이리저리 건드려보기까지 했다.
   이건 누가 죽인 거야.
   해영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털고 일어섰다.
   토했어?
   해영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셋은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영이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수는 빙긋 웃으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피자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호수랑 저수지랑 어떻게 다른 거예요?
   자갈이 튀는 좁은 길을 빠져나오다 셋은 길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목 주위가 너덜거리는 회색 점퍼를 걸쳤고 얼룩진 바지는 지퍼가 열려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해서 목덜미까지 자라 있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남자였다. 어? 잠깐. 차 좀 세워봐요. 민수가 말했고 해영은 창을 올렸다. 민수가 창밖으로 팔을 빼고는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병신아, 안녕?
   그녀가 병신이라고 부른 남자는 천천히 민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야 나. 알겠어 누군지?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을 민수 쪽으로 들이밀었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존나 병신아, 나 모르겠어? 감내동 민선이. 장민선. 민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인사하듯 반갑게 말했다. 멍한 눈길로 바라보던 남자는 순간 씩 웃더니 그녀를 향해 침을 탁 뱉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민수는 비명을 질렀다. 야이 씨발 새끼야!
   남자는 민수의 욕설에 아랑곳하지 않고 뒷좌석의 해영을 향해 한번 더 침을 뱉었다. 남자가 뱉은 침이 파편처럼 창에 퍼져 천천히 흘러내렸다. 해영은 놀란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우진은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에 당황해 멈칫하다 액셀을 밟았다. 민수는 휴지로 얼굴을 닦으며 계속해서 욕을 했다. 해영은 고개를 돌려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민수는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재미있다는 듯 싱글거렸다. 아 골때리네. 저 새끼가 저럴 줄 누가 알았어요. 아직 안 뒈지고 살아 있었네.
   야, 너는 말이, 왜 그러냐.
   우진의 비난에도 민수는 킥킥대며 말했다. 집에 가서 소주로 소독해야겠다.
   그런데……본명이 민선이야?
   아니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진은 갓길에 두 번 차를 세웠고 해영은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기까지 했지만 결국 헛구역질만 심하게 했다. 우진은 해영의 등을 쓸어주며 주황색 티셔츠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피자는 거의 식어 있었지만 한은 게걸스레 한 판을 모두 먹어치웠다. 민수도 옆에서 거들었다. 왜 이리 늦었냐는 한의 말에 민수는 차를 타고 오다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런데 내가 분명히 그 새끼 죽었다 들었거든요. 그동안 어디 처박혀 있다 기어나온 걸까? 게다가 늙지도 않아. 옛날이랑 똑같아, 진짜.
   우진과 해영은 둘의 모습을 낯선 듯 멀찍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녁에 거실에 모여 앉아 연초를 피울 때에도 우진은 전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해영은 저녁도 거른 채 이온음료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 나 이거 마셔봐도 돼요? 해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민수가 해영의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해영은 더이상 잔에 입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 그거 알아요? 해영이 민수를 바라보았다.
   언니한테 개 냄새 나는 거.
   한이 민수의 머리를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다. 우진은 해영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코를 대고 슬며시 냄새를 맡는 모습을 못 본 척했다.
   방의 어둠은 어제와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그 밀도에 숨이 막혔다. 개구리 소리는 신경을 건드렸다. 민수의 가는 손목과 탄력 있는 허벅지가 떠올랐다. 다리에 난 상처들. 우리 내일 갈래? 우진의 목소리가 방안을 잠시 떠돌다 사라졌다. 대답이 없어 자는가보다 했을 때 해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싫어.
   의외의 단호한 어조에 우진은 할말을 잃었다. 해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우진도 따라 일어났다. 왜? 아직 속이 안 좋아?
   나 사실, 집에 애들, 아무데도 맡기지 않았어.
   우진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 한참 걸렸다. 장난치지 마.
   해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밥은 주고 왔지? 가만, 오늘이 며칠이지?
   우진이 몸을 일으키자 해영의 차가운 손이 우진의 손을 잡았다.
   장충단 공원 있잖아. 그때 운전하던 건 나였어. 고양이는 내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닐 수도 있어.
   해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우진은 천천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우진아, 나…… 사람 맞아?
   내일 일찍 떠나자. 아니면, 지금 갈까?
   자꾸 모르는 척하고 싶어. 이해돼?
   우진은 살며시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대보았다. 따뜻했다. 해영의 숨이 우진의 얼굴에 닿았다.
   나 등 좀 두드려줄래. 세게.
   해영은 갑자기 등을 돌리고 앉았다. 우진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우진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가 쓸었다가 해주며 목덜미에 후, 하고 가만히 입김을 불어보았다. 해영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위수정

Mogwai의 와 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떠올리며 썼습니다. 정작 글을 쓰는 동안은 음악을 듣지 않았지만요.
오늘의 BGM으로는 뭐가 좋을까요.
오늘, 당신의 BGM은 무엇인가요.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