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메스틱 헬퍼
먼바다의 경계를 육안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온 세상과 시간이 고요에 잠긴 그 무렵, 나는 하늘과 바다 사이를 비집고 나타난 지느러미를 심장으로 보곤 했다.
두근.
나타났다. 한 개, 두 개…… 다섯 개, 열 개, 아니, 그보다 훨씬 많았다. 매 순간 안색을 바꾸는 수면 위로 수십여 개의 검은 등지느러미가 번뜩였다. 곧 뛰어오를 것이다, 되뇌는 순간. 흑단 같은 바다 위로 유선형의 몸이 솟구쳤다. 한 놈이 사라지면 바로 다른 놈이 떠올랐고, 한두 마리는 어김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온몸으로 경계에 부딪히며 두 세계를 오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물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몸들 덕분에, 순식간에 온 바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유난히 높은 점프가 눈에 띄었다. 흥얼거리는 콧노래처럼 부담 없는 유희 속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도약.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한껏 발꿈치를 들어올린 까치발처럼. 평균 2미터, 200킬로그램이 넘는 그 몸을 수면 위 최대 10미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너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깊은 바다에서 솟구쳤을까. 사위는 아직 어둑한데 무엇이 보고 싶어 그처럼 높이 뛰어올랐니. 까마득한 바닷속이 지겨웠을까. 그저 경계 저쪽이 궁금했을까. 그쪽과 이쪽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나는 2035년 겨울 해 뜰 무렵 대한민국 제주도의 최고급 아파트 뒤 베란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돌고래를 훔쳐보며 상상했다. 녀석의 눈에 비친 물의 밑과 녀석이 위에서 굽어보는 세상을. 아무리 노력한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나는 왜 여기 있고 너는 왜 거기 있는지, 나는 왜 네가 아닌지.
하늘이 밝아왔다. 바다는 이내 익숙한 안색을 되찾았다. 수평선 저 밑에서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태양이 우리 눈에 보이려면 아직 30분은 더 필요했다. 그러나 하루를 시작하기엔 충분히 무르익은 시간이었다.
제주도의 서남쪽 해안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아파트 단지 곳곳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일과표대로 종일 잰걸음을 옮겨야 하는 하루의 출발선에서 전방을 주시하기에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그 풍경의 클라이맥스는 먼바다의 남방큰돌고래 떼였다. 나는 실제 살아 움직이는 야생 돌고래를 이곳에 온 뒤에 처음 봤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사람들은 돌고래는커녕, 그 어떤 야생동물도 만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다.
주인 남자가 안방 화장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여자의 작업실은 두 시간 전부터 불이 밝혀져 있었을 것이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알람시계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의 기상도 코앞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도.도.도. 부드러운 맨발이 타일 바닥을 재게 딛으며 점점 가까워졌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미래 이모?”
아이였다.
“이모 뭐해?”
나는 돌아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더 큰 기쁨을 위한 준비 단계랄까.
“돌고래 봤어?”
아이는 알고 있었다. 지나가는 돌고래떼를 훔쳐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지. 사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발견한 것은 아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장소를 누군가 알아봐주었다는 것을 뿌듯해했다. 주인 여자는 뒷 베란다에 앉아 있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거기서 뭐해요?”물었다. 중간에 ‘대체’ 정도가 생략돼 있었다. 거기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유를 짐작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때로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게 대단한 능력이라며 부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가벼운 경이와 거들먹, 혹은 생색은 같은 곳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눈빛에 나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설명한들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이해시킬 방법이, 이해할 도리가 우리에게 있을 리 없었으니까.
아이의 보드라운 손과 팔과 뒤이어 몸이, 내 어깨와 목덜미와 뒤이어 등 전체에 느껴졌다. 나는 앉은 채로 아이를 업고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여섯 살 아이의 익숙한 냄새와 촉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우리는 태양의 정수리가 바다와 하늘과 지상의 모든 풍경을 바꾸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내가 죽었을 때 하늘나라에서 이모를 봤어. 근데 너무 슬퍼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꿈에서 이모를 위로할 거야. 기억나?”
아이는 늘 그렇게 앞뒤 없는 수수께끼를 내뱉었다. 나는 그에 대해 한 번도 되묻지 않았다. 시제가 온통 뒤죽박죽인 아이의 헛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지만 최고로 강력한 주문처럼, 보드라운 축복 혹은 저주처럼, 나는 그 말들을 아꼈다. 어디에도 옮겨 적지 않은 채 기억하려 애썼다. 오직 가슴 속에 담은 채 삼백 년을 건너는 것이 가능할까 궁금해하면서.
완전히 날이 밝았다. 일과의 시작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오늘은 수요일.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주인 부부가 식탁에 앉기 전에 소파 시트와 빈백 커버, 거실 깔개를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한다. 아이의 등원 전에 주인 부부가 출근 혹은 일을 시작해야 하고, 나는 아이를 제시간에 등원시켜야 한다. 본격적인 업무는 그 이후에 시작이다. 대체로 많은 일이 물건을 깨끗하게 만들어 정해진 자리를 찾아가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세탁이 끝난 대형 빨래를 건조기에 집어넣고 다시 생활 빨래를 위해 세탁기를 가동한다. 모든 물건을 제자리로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대걸레질을 하고, 책상과 선반과 창틀과 먼지가 내려앉는 모든 곳을 손걸레로 닦아낸다. 건조기에서 대형 빨래를 꺼내놓고 다시 세탁기에서 생활 빨래를 꺼내면서 건조기와 건조대로 구분하여 보낸다. 이불 커버를 씌우고 침대 시트를 까는 등 뽀송해진 대형 빨래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면 지난 저녁에 주인 여자가 건넨 리스트를 들고 인근 마켓에 다녀올 것이다. 대용량으로 구비해야 하는 공산품들은 주인 여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하지만 야채와 고기 등 신선한 식재료들은 내가 인근 재래시장에서 장만한다. 집에 돌아오면 절차대로 장 본 물건을 분류하고 다듬어 자리를 찾아준다. 건조가 끝난 생활 빨래를 개켜놓고 난 후 오후 시간은 부엌 찬장 정리에 할애될 것이다. 식재료와 그릇 및 주방용품으로 그득한 부엌의 모든 서랍과 상부 장과 찬장과 진열대를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다보면 생활 빨래의 자연 건조 역시 끝나겠지. 이들을 거둬들여 다림질하고 개키거나 옷걸이에 걸어 빨래가 끝난 다른 옷가지들과 함께 각자의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흘러 흘러 아이의 하원 시간이 돌아올 텐데 아무래도 점심 식사는 장보기 직전에 끝내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컵라면이라 시간이 걸릴 일은 없지만 그래도 20분의 점심시간은 확보하고 싶으니까.
처음으로 이곳 마트에 갔을 때, 라면 섹션 앞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수제비, 칼국수, 크림 파스타, 쌀국수, 미고랭, 팟타이, 짜장면, 완탕누들, 짬뽕 등 온갖 국적의 면 요리가 라면으로 구비돼 있었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는 고작 두세 종의 라면이 전부였다. 나는 그 모든 라면을 매 점심 끼니로 하나씩 맛보았는데 못 먹어본 라면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주인 여자는 매일 라면을 먹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역시 예의 그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면 심심하지 않나. 그렇게 매일같이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하면 질리지 않나. 아니,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왜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뭔가를 요리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지 않지. 하다못해 전화기로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이곳 사람들은 때로 굉장히 투명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감추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대할 때도 비슷해서, 옆에 있는 내 눈에는 주인 여자와 남자가 서로에게 감춘 날 선 심드렁함이 다 보이는데 정작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로맨틱한 말과 행동이 오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끝내 감추려고 안간힘 쓰는 생각까지 모조리 읽을 수 있음에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했다. 이를테면 이런 귀여운 생각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니까 그런 삶을 살게 됐겠지.’
그들과 달리 나는 다음과 같은 내 생각을 감추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열심인 일상’이 뭔지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세상은 결국 저렇게 되고 만답니다. 비슷하게 안간힘을 쓰다보면 인간은 비슷하게 우울해지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저마다 고통받아요. 열심히 살지 않는 게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오로지 아이에게만 전달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멍하니 뒷베란다에서 돌고래떼를 구경하다가 아이가 말했다.
“미래 이모,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이 아이도 그 모든 꿈을 곧 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될 것이다.
수요일이 바쁜 편이긴 하지만 다른 날이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빼먹을 수 없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요리 외에도 월요일에는 한 주치 밑반찬을 모두 만들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목요일에는 창틀과 실링팬을 비롯해서 온 집안의 구석구석을 대청소하고, 금요일에는 주인 여자와 함께 다음주 식단을 짜고 필요한 물품 및 식재료를 점검하는 주간 회의가 있다.
서연이가 하원한 뒤에는 물론 상시 대기 상태였다. 저녁 먹은 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물었다.
“미래 이모! 이모랑 놀아도 돼요?”
엄마에게 먼저 물어보는 날도 있다.
“엄마, 이모랑 밖에 나가서 지윤이랑 놀아도 돼요? 저녁 먹고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주인 여자는 그때마다 이모, 그러니까 나에게 직접 물어보라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이모 지금 할 일을 마치면 그렇게 하자. 조금만 기다려 줘. 그러면 15분 안에 식탁 정리와 남은 음식 정리와 설거지와 부엌 정리를 마치고 쓰레기를 한데 모으거나 처리하고 침실 두 개를 미리 정리해 두고 아이의 내일 등원 가방까지 챙겨야 했다. 아이와 놀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지막 샤워까지 이모와 하고 싶다고 조르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온 집안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적막에 잠기면 비로소 퇴근 시간이었다.
결코 한가하다거나 엄청난 한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근무 조건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더욱 안 좋은 상황은 주변부터 도시 괴담까지 차고 넘쳤다.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쌍둥이라던가,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치매 노인이라던가 독거 치매노인 간병을 맡아 하루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던가, 으리으리하게 넓은 집을 새벽부터 밤까지 쓸고 닦아야 한다던가. 하지만 최악은 고된 일과를 끝낸 뒤 한몸 누일 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인 가족이 지정한 잠자리가 부엌 한구석일 수도 있고, 벽장 안일 수도 있고, 심지어 침대 밑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그러니 돌아가 몸을 누이고 나의 짐을 정리해둘 방 한 칸이 있는 나에게 불평은 사치였다.
“좋은 아침!”
주인 남자가 발랄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안방에서 나왔다. 남자가 식탁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갓 내린 커피와 고정 아침 식사 메뉴를 대령했다.
“고마워요.”
남자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였지만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머그잔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그가 다시 말했다.
“그래놀라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3분의 1만 덜어줄래요?”
주인 남자는 그래놀라와 블루베리, 바나나 등에 두유를 부어 아침으로 먹었다. 이전에는 토스트한 식빵 두 조각에 달걀프라이를 곁들였으나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며 고정 메뉴를 바꾸었다.
“우리 아빤 트레이드를 해요.”
내가 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등원 길에 아이가 말했다. 아이에게라면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트레이드가 뭔데?”
“바꾸는 거래요.”
“그럼 아빠는 뭐랑 뭘 바꾸시는데?”
어떤 질문을 들어도 다 대답할 수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던 아이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음…… 싼 돈이랑 비싼 돈……? 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고 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는 이내 같은 반 좋아하는 남자애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나는 아이의 대답이 대체로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이 집을 일자리로 중계했던 에이전트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야 모르지. 자기네가 제일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는 인간들이 투자에 눈이 멀어서 세상 망하는 건 안중에도 없던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그래 봤자, 밤톨인지 완두콩인지 인터넷사이트가 발행하는 가상 화폐 아니면, 두라니엄이니 에네르곤이니 수백 수천 명이 채굴한다고 달려드는 가상 화폐 뭐 그렇고 그런 것들 중 하나겠지.”
나 역시 알 바 아니었다. 주인 가족이 나에게 최소 5년을 보장할 만큼 경제적, 도덕적으로 안정적이기만 하다면, 까마득히 먼 곳에서 건너온 나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반년. 어깨너머로 보게 된 모니터 화면, 저절로 귀에 들어오는 대화 등을 토대로 추정하는 바, 주인 남자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가상 화폐를 거래하고 그 차액을 수익으로 환산하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시간과 공간에도 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돈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소위 창조 경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미래를 저당 잡히면서도 오로지 코앞의 이익에 달려드는 그런 인간들은 모두 눈이 벌건 도박중독자들일 줄 알았다. 이렇게 성실하게 가족을 이루고 일에 임하는 선한 이들일 줄이야.
노트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침 식사를 마친 주인 남자가 식탁을 떠나면서 말했다.
“오늘 점심은 필요 없어요. 어젯밤에 얘기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이미 만들어둔 도시락이야 내 점심이 되면 그만이니까. 지난 월요일에 주인 여자가 알린 대로, 오늘은 저녁 식사 이후 귀가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남자는 집을 나섰다. 주인 여자는 일주일치 일정과 그에 따른 식단까지 미리 계획해서 공유했다. 근무 첫 주부터 그래왔으니 다들 그런 줄만 알았는데, 손님 여섯 명이 저녁 식사에 합류할 것이라는 것을 두 시간 전에 알리는 집도 허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작업실에서 몇 시에 화상 미팅을 할 것인지까지 내가 알아야 할 일인지는 좀 궁금했다. 어차피 난 여자가 작업실에 들어앉은 뒤에는 일절 방 안으로 걸음하지 않았으니까.
주인 남자는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7시 저녁 식사 즈음 혹은 야근을 한다면 아이의 취침 직후인 10시에 맞추어 귀가했다. 주인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다면 주인 여자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 바빴다. 집안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일하는 여자는 아이와 함께 10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 반쯤 기상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원한 이후 모두의 귀가 시간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했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기 위해, 점심 식사를 위해, 그리고 오후에 한두 번 정도 간식을 찾아 방을 나왔다. 어떤 때는 30분마다 팬트리와 냉장고를 뒤적이며 주전부리를 챙겨 들어갔는데 그럴 땐 유난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작업실이라고 해도 청소하기 위해 들어가보면 그저 책상에 컴퓨터와 모니터 두어 개, 그리고 프린터가 전부였다. 종이에 글씨가 인쇄되는 프린터가 다소 낯설었지만 그밖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니 대체 종일 그 안에서 주인 여자가 무엇 때문에 그처럼 고통받는 것인가. 정말 궁금했다.
“우리 엄만 ‘책’을 만들어요.”
부모의 직업을 늘 동사형으로 말하는 아이는 ‘트레이드하는’ 아빠보다 ‘책을 만드는’ 엄마를 좀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아픈 동물을 고쳐준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어쩐지 그 모든 것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아이에 따르면 주인 여자는 지어낸 이야기를 글로 쓰는데 이것이 인쇄되어 종이에 묶여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물건으로 팔렸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야기가 적힌 책을 읽지 않았다. 할머니가 엄마가 언니가 이야기를 들려줬고, 때로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할머니의 언니, 엄마의 엄마, 언니의 할머니에게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번쩍번쩍거리는 성에 사는 으리으리한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이야기를 사서 ‘읽는다’고 들었다.
책을 만드는 주인 여자와 트레이드하는 주인 남자는 언제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들이 쓰는 한국어가 아직은 낯설지만, 몸짓/눈빛 언어에는 이들보다 한결 숙달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진심임을 매번 느꼈다. 힘들면 쉬라고 당부했고, 가족과 떨어진 나를 향해 종종 안쓰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아도 늘 한결같은 부엌의 찬장 구석과 화장실 수도꼭지와 거실 TV장 뒤편, 아이의 침대 밑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재택근무하는 주양육자였던 여자는 내가 이 집에 오기 전까지는 지금 내 일의 거의 전부를 홀로 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매번 그 마음을 해맑게 표현했다. “이모님이 와 주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내 이모뻘인 여자는 나를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나더러 평균 이상으로 열심이라며 그럴 필요 없다고 성화였지만 나는 이들이 평균 이상으로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잃었지만 예의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미적지근한 봄과 가을, 그리고 무더운 여름만 존재했던 고향을 떠나 뚜렷한 사계절의 한복판으로 떨어져 얼떨떨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지났다. 두고 온 얼굴들을 덤덤하게 떠올리던 밤들이 지나고 평생 이곳에서 사계절을 겪어온 듯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떠나온 곳은, 아니 떠나온 시간은 이곳, 아니 지금으로부터 300년 이후였다. 지금과 여기로부터 10년 전, 정확히 300년을 사이에 둔 평행우주 사이의 연결 통로가 발견됐다. 내가 떠나 온 2335년에서는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 끝에 모든 빙하가 녹아내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후 난민으로 태어나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다가 구제시설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1% 미만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모든 것이 통제된 청정지역에서 살아갔다.
엄청난 발견을 앞에 둔 두 세계의 흥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325년의 우리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지구를 엿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환호한 것도 잠시, 암울한 미래에 놀란 2025년의 사람들은 일단 문을 걸어잠근 채 그 통로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5년 뒤, 그 통로를 여행할 수 있는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으로 한정됐다. 과거는 인구 절벽과 노동 인구 절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하고 안정적인 가사 노동 인력이 절실했다. 나의 현재였던 미래의 경우, 인공지능과 로봇 덕분에 인간에게 남은 일자리는 모두 저급 육체노동 업종 혹은 고난이도의 서비스 직군뿐이었다. 이를 통한 경제 활동으로 인구의 절반을 상회하는 노년층을 부양하는 것은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괴듯 언제나 다급하고 위태로웠다. 그러니 과거에서의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킨다면 고전적인 경제성장도 가능하리라 계산했다.
300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가깝고 또 먼 거리였다. 소식을 접한 뒤 평범한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는 건 두 세계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납득하고 체념한 뒤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할 방법을 모색했다. 두 세계 사람들 모두의 편의를 위한 규제가 속속 등장했다. 서로 다른 통화며 물가를 환산하여 계약금과 월급으로 지급하는 금융 시스템이 가장 필요했다. (주인 남자 역시 이 시스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구비된 것은 두 세계를 중계하여 필요한 양과 조건의 노동력을 수급하면서 양쪽(이라고 해보아야 노동력을 제공하는 미래의 우리 쪽에 훨씬 큰 의무와 부담이 있었지만)을 교육하는 에이전시였다. 나도 이곳에 오기 전 미래와 과거에서 각각 2주씩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 세계의 환경과 사회/제도, 생활 규범/문화를 공부했고 요리와 육아, 청소 등의 가사 노동을 실습했다.
같은 민족어 구사자끼리만 고용이 가능했는데 특정 민족어가 우리 세계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했다. 의무교육을 마친 뒤 인공지능 교육용 데이터 입력에 동원되던 나에겐 별다른 목표가 없었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과거로의 취업’ 광고였다. 5년 동안 어린 여동생과 엄마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5년을 견디고 나면 세 식구의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여 관리자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었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내가 더이상 일할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고, 난데없이 이곳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임신하지 않고, 주인 가족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미래는 존재했다.
주인 여자가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작업실에 들어간 뒤 아이와 등원하기 위해 아이가 탄 스쿠터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단지를 벗어나는 길목에서 다른 가사도우미들과 마주쳤다. 교육 기관에서 혹은 이곳에 도착한 이후에 알게 된 우리는 모두 이른바 저당 잡힌 미래였다. 신나게 스쿠터로 질주하던 아이가 10미터쯤 앞에서 넘어졌다. 혼자서 툴툴 털고 일어나는 듯 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동네 할아버지를 보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그 노인은 아이가 괜찮은지 살피는가 싶더니 울음소리에 달려간 나에게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선조를 잘 돌보는 게 자네들 일이 아닌가.”
짐짓 엄한 말투로 꾸짖는 태도에 헛웃음이 비어져 나와 이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선조’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고향의 에이전시에서였다. 과거 사람들 중에 스스로를 ‘선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은 그냥 넘기되 폭력이나 부당한 요구로 이어진다면 해당 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했다.
“쳇, 선조랍시고 고작 미래를 착취할 뿐인 주제에. 이런 거지같은 꼴이 온다는 걸, 그걸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뻔히 알면서 손 놓고 있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것들.”
그 담당자는 두 세계 모두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 사이에서 이윤을 취하기로는 그만한 위치가 또 있을까 싶어서 이를 듣는 내 기분은 다시 묘해졌다.
아래층 가사 도우미가 그 집 아이를 등원 시키느라 내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는지, 멈춰선 우리 옆을 지나쳤다. 짧은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담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너희는 우리가 되겠지. 너의 ‘자손’ 역시 우리처럼 살 거야. 너희가 지금 보지 않으려 하는 그 세계에서. 운이 좋다면 다시 우리처럼 이렇게 이 세계로 건너올 테지.
멀리서 파도 소리와 함께 돌고래의 노래가 들려왔다.
두근.
나타났다. 한 개, 두 개…… 다섯 개, 열 개, 아니, 그보다 훨씬 많았다. 매 순간 안색을 바꾸는 수면 위로 수십여 개의 검은 등지느러미가 번뜩였다. 곧 뛰어오를 것이다, 되뇌는 순간. 흑단 같은 바다 위로 유선형의 몸이 솟구쳤다. 한 놈이 사라지면 바로 다른 놈이 떠올랐고, 한두 마리는 어김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온몸으로 경계에 부딪히며 두 세계를 오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물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몸들 덕분에, 순식간에 온 바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그 가운데 유난히 높은 점프가 눈에 띄었다. 흥얼거리는 콧노래처럼 부담 없는 유희 속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도약.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한껏 발꿈치를 들어올린 까치발처럼. 평균 2미터, 200킬로그램이 넘는 그 몸을 수면 위 최대 10미터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너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깊은 바다에서 솟구쳤을까. 사위는 아직 어둑한데 무엇이 보고 싶어 그처럼 높이 뛰어올랐니. 까마득한 바닷속이 지겨웠을까. 그저 경계 저쪽이 궁금했을까. 그쪽과 이쪽은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나는 2035년 겨울 해 뜰 무렵 대한민국 제주도의 최고급 아파트 뒤 베란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돌고래를 훔쳐보며 상상했다. 녀석의 눈에 비친 물의 밑과 녀석이 위에서 굽어보는 세상을. 아무리 노력한들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나는 왜 여기 있고 너는 왜 거기 있는지, 나는 왜 네가 아닌지.
하늘이 밝아왔다. 바다는 이내 익숙한 안색을 되찾았다. 수평선 저 밑에서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태양이 우리 눈에 보이려면 아직 30분은 더 필요했다. 그러나 하루를 시작하기엔 충분히 무르익은 시간이었다.
제주도의 서남쪽 해안을 바라보도록 설계된 아파트 단지 곳곳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일과표대로 종일 잰걸음을 옮겨야 하는 하루의 출발선에서 전방을 주시하기에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그 풍경의 클라이맥스는 먼바다의 남방큰돌고래 떼였다. 나는 실제 살아 움직이는 야생 돌고래를 이곳에 온 뒤에 처음 봤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사람들은 돌고래는커녕, 그 어떤 야생동물도 만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다.
주인 남자가 안방 화장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여자의 작업실은 두 시간 전부터 불이 밝혀져 있었을 것이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알람시계가 필요하지 않은 아이의 기상도 코앞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도.도.도. 부드러운 맨발이 타일 바닥을 재게 딛으며 점점 가까워졌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미래 이모?”
아이였다.
“이모 뭐해?”
나는 돌아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더 큰 기쁨을 위한 준비 단계랄까.
“돌고래 봤어?”
아이는 알고 있었다. 지나가는 돌고래떼를 훔쳐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지. 사실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발견한 것은 아이였다. 그리고 자신의 비밀장소를 누군가 알아봐주었다는 것을 뿌듯해했다. 주인 여자는 뒷 베란다에 앉아 있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거기서 뭐해요?”물었다. 중간에 ‘대체’ 정도가 생략돼 있었다. 거기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유를 짐작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때로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게 대단한 능력이라며 부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가벼운 경이와 거들먹, 혹은 생색은 같은 곳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눈빛에 나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설명한들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이해시킬 방법이, 이해할 도리가 우리에게 있을 리 없었으니까.
아이의 보드라운 손과 팔과 뒤이어 몸이, 내 어깨와 목덜미와 뒤이어 등 전체에 느껴졌다. 나는 앉은 채로 아이를 업고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여섯 살 아이의 익숙한 냄새와 촉감이 온몸에 전해졌다. 우리는 태양의 정수리가 바다와 하늘과 지상의 모든 풍경을 바꾸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내가 죽었을 때 하늘나라에서 이모를 봤어. 근데 너무 슬퍼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꿈에서 이모를 위로할 거야. 기억나?”
아이는 늘 그렇게 앞뒤 없는 수수께끼를 내뱉었다. 나는 그에 대해 한 번도 되묻지 않았다. 시제가 온통 뒤죽박죽인 아이의 헛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지만 최고로 강력한 주문처럼, 보드라운 축복 혹은 저주처럼, 나는 그 말들을 아꼈다. 어디에도 옮겨 적지 않은 채 기억하려 애썼다. 오직 가슴 속에 담은 채 삼백 년을 건너는 것이 가능할까 궁금해하면서.
완전히 날이 밝았다. 일과의 시작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오늘은 수요일.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주인 부부가 식탁에 앉기 전에 소파 시트와 빈백 커버, 거실 깔개를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한다. 아이의 등원 전에 주인 부부가 출근 혹은 일을 시작해야 하고, 나는 아이를 제시간에 등원시켜야 한다. 본격적인 업무는 그 이후에 시작이다. 대체로 많은 일이 물건을 깨끗하게 만들어 정해진 자리를 찾아가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세탁이 끝난 대형 빨래를 건조기에 집어넣고 다시 생활 빨래를 위해 세탁기를 가동한다. 모든 물건을 제자리로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대걸레질을 하고, 책상과 선반과 창틀과 먼지가 내려앉는 모든 곳을 손걸레로 닦아낸다. 건조기에서 대형 빨래를 꺼내놓고 다시 세탁기에서 생활 빨래를 꺼내면서 건조기와 건조대로 구분하여 보낸다. 이불 커버를 씌우고 침대 시트를 까는 등 뽀송해진 대형 빨래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나면 지난 저녁에 주인 여자가 건넨 리스트를 들고 인근 마켓에 다녀올 것이다. 대용량으로 구비해야 하는 공산품들은 주인 여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하지만 야채와 고기 등 신선한 식재료들은 내가 인근 재래시장에서 장만한다. 집에 돌아오면 절차대로 장 본 물건을 분류하고 다듬어 자리를 찾아준다. 건조가 끝난 생활 빨래를 개켜놓고 난 후 오후 시간은 부엌 찬장 정리에 할애될 것이다. 식재료와 그릇 및 주방용품으로 그득한 부엌의 모든 서랍과 상부 장과 찬장과 진열대를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다보면 생활 빨래의 자연 건조 역시 끝나겠지. 이들을 거둬들여 다림질하고 개키거나 옷걸이에 걸어 빨래가 끝난 다른 옷가지들과 함께 각자의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흘러 흘러 아이의 하원 시간이 돌아올 텐데 아무래도 점심 식사는 장보기 직전에 끝내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컵라면이라 시간이 걸릴 일은 없지만 그래도 20분의 점심시간은 확보하고 싶으니까.
처음으로 이곳 마트에 갔을 때, 라면 섹션 앞에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수제비, 칼국수, 크림 파스타, 쌀국수, 미고랭, 팟타이, 짜장면, 완탕누들, 짬뽕 등 온갖 국적의 면 요리가 라면으로 구비돼 있었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는 고작 두세 종의 라면이 전부였다. 나는 그 모든 라면을 매 점심 끼니로 하나씩 맛보았는데 못 먹어본 라면이 여전히 눈에 띄었다. 주인 여자는 매일 라면을 먹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역시 예의 그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면 심심하지 않나. 그렇게 매일같이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하면 질리지 않나. 아니,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왜 그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뭔가를 요리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지 않지. 하다못해 전화기로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이곳 사람들은 때로 굉장히 투명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감추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대할 때도 비슷해서, 옆에 있는 내 눈에는 주인 여자와 남자가 서로에게 감춘 날 선 심드렁함이 다 보이는데 정작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로맨틱한 말과 행동이 오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끝내 감추려고 안간힘 쓰는 생각까지 모조리 읽을 수 있음에도 아무 것도 모르는 척했다. 이를테면 이런 귀여운 생각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니까 그런 삶을 살게 됐겠지.’
그들과 달리 나는 다음과 같은 내 생각을 감추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순간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열심인 일상’이 뭔지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세상은 결국 저렇게 되고 만답니다. 비슷하게 안간힘을 쓰다보면 인간은 비슷하게 우울해지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가 저마다 고통받아요. 열심히 살지 않는 게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모든 생각은 오로지 아이에게만 전달되는 것 같다. 나와 함께 멍하니 뒷베란다에서 돌고래떼를 구경하다가 아이가 말했다.
“미래 이모,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이 아이도 그 모든 꿈을 곧 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될 것이다.
수요일이 바쁜 편이긴 하지만 다른 날이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빼먹을 수 없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요리 외에도 월요일에는 한 주치 밑반찬을 모두 만들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목요일에는 창틀과 실링팬을 비롯해서 온 집안의 구석구석을 대청소하고, 금요일에는 주인 여자와 함께 다음주 식단을 짜고 필요한 물품 및 식재료를 점검하는 주간 회의가 있다.
서연이가 하원한 뒤에는 물론 상시 대기 상태였다. 저녁 먹은 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물었다.
“미래 이모! 이모랑 놀아도 돼요?”
엄마에게 먼저 물어보는 날도 있다.
“엄마, 이모랑 밖에 나가서 지윤이랑 놀아도 돼요? 저녁 먹고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주인 여자는 그때마다 이모, 그러니까 나에게 직접 물어보라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이모 지금 할 일을 마치면 그렇게 하자. 조금만 기다려 줘. 그러면 15분 안에 식탁 정리와 남은 음식 정리와 설거지와 부엌 정리를 마치고 쓰레기를 한데 모으거나 처리하고 침실 두 개를 미리 정리해 두고 아이의 내일 등원 가방까지 챙겨야 했다. 아이와 놀다보면 나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지막 샤워까지 이모와 하고 싶다고 조르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온 집안이 아이를 재우기 위해 적막에 잠기면 비로소 퇴근 시간이었다.
결코 한가하다거나 엄청난 한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근무 조건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더욱 안 좋은 상황은 주변부터 도시 괴담까지 차고 넘쳤다.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쌍둥이라던가,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치매 노인이라던가 독거 치매노인 간병을 맡아 하루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던가, 으리으리하게 넓은 집을 새벽부터 밤까지 쓸고 닦아야 한다던가. 하지만 최악은 고된 일과를 끝낸 뒤 한몸 누일 자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인 가족이 지정한 잠자리가 부엌 한구석일 수도 있고, 벽장 안일 수도 있고, 심지어 침대 밑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그러니 돌아가 몸을 누이고 나의 짐을 정리해둘 방 한 칸이 있는 나에게 불평은 사치였다.
“좋은 아침!”
주인 남자가 발랄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안방에서 나왔다. 남자가 식탁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갓 내린 커피와 고정 아침 식사 메뉴를 대령했다.
“고마워요.”
남자의 눈은 모니터에 고정된 채였지만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머그잔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그가 다시 말했다.
“그래놀라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3분의 1만 덜어줄래요?”
주인 남자는 그래놀라와 블루베리, 바나나 등에 두유를 부어 아침으로 먹었다. 이전에는 토스트한 식빵 두 조각에 달걀프라이를 곁들였으나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며 고정 메뉴를 바꾸었다.
“우리 아빤 트레이드를 해요.”
내가 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등원 길에 아이가 말했다. 아이에게라면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겠다 싶었다.
“트레이드가 뭔데?”
“바꾸는 거래요.”
“그럼 아빠는 뭐랑 뭘 바꾸시는데?”
어떤 질문을 들어도 다 대답할 수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던 아이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음…… 싼 돈이랑 비싼 돈……? 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고 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이는 이내 같은 반 좋아하는 남자애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나는 아이의 대답이 대체로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이 집을 일자리로 중계했던 에이전트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야 모르지. 자기네가 제일 잘났다고 설치고 다니는 인간들이 투자에 눈이 멀어서 세상 망하는 건 안중에도 없던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그래 봤자, 밤톨인지 완두콩인지 인터넷사이트가 발행하는 가상 화폐 아니면, 두라니엄이니 에네르곤이니 수백 수천 명이 채굴한다고 달려드는 가상 화폐 뭐 그렇고 그런 것들 중 하나겠지.”
나 역시 알 바 아니었다. 주인 가족이 나에게 최소 5년을 보장할 만큼 경제적, 도덕적으로 안정적이기만 하다면, 까마득히 먼 곳에서 건너온 나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대해주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반년. 어깨너머로 보게 된 모니터 화면, 저절로 귀에 들어오는 대화 등을 토대로 추정하는 바, 주인 남자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가상 화폐를 거래하고 그 차액을 수익으로 환산하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시간과 공간에도 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돈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소위 창조 경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미래를 저당 잡히면서도 오로지 코앞의 이익에 달려드는 그런 인간들은 모두 눈이 벌건 도박중독자들일 줄 알았다. 이렇게 성실하게 가족을 이루고 일에 임하는 선한 이들일 줄이야.
노트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아침 식사를 마친 주인 남자가 식탁을 떠나면서 말했다.
“오늘 점심은 필요 없어요. 어젯밤에 얘기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이미 만들어둔 도시락이야 내 점심이 되면 그만이니까. 지난 월요일에 주인 여자가 알린 대로, 오늘은 저녁 식사 이후 귀가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남자는 집을 나섰다. 주인 여자는 일주일치 일정과 그에 따른 식단까지 미리 계획해서 공유했다. 근무 첫 주부터 그래왔으니 다들 그런 줄만 알았는데, 손님 여섯 명이 저녁 식사에 합류할 것이라는 것을 두 시간 전에 알리는 집도 허다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작업실에서 몇 시에 화상 미팅을 할 것인지까지 내가 알아야 할 일인지는 좀 궁금했다. 어차피 난 여자가 작업실에 들어앉은 뒤에는 일절 방 안으로 걸음하지 않았으니까.
주인 남자는 아침 8시에 집을 나서서 7시 저녁 식사 즈음 혹은 야근을 한다면 아이의 취침 직후인 10시에 맞추어 귀가했다. 주인 남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다면 주인 여자는 눈에 보이는 곳에서 바빴다. 집안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일하는 여자는 아이와 함께 10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 반쯤 기상했다. 그리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원한 이후 모두의 귀가 시간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했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기 위해, 점심 식사를 위해, 그리고 오후에 한두 번 정도 간식을 찾아 방을 나왔다. 어떤 때는 30분마다 팬트리와 냉장고를 뒤적이며 주전부리를 챙겨 들어갔는데 그럴 땐 유난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작업실이라고 해도 청소하기 위해 들어가보면 그저 책상에 컴퓨터와 모니터 두어 개, 그리고 프린터가 전부였다. 종이에 글씨가 인쇄되는 프린터가 다소 낯설었지만 그밖엔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니 대체 종일 그 안에서 주인 여자가 무엇 때문에 그처럼 고통받는 것인가. 정말 궁금했다.
“우리 엄만 ‘책’을 만들어요.”
부모의 직업을 늘 동사형으로 말하는 아이는 ‘트레이드하는’ 아빠보다 ‘책을 만드는’ 엄마를 좀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아픈 동물을 고쳐준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어쩐지 그 모든 것을 심드렁하게 여기는 것 같았지만. 어쨌건 아이에 따르면 주인 여자는 지어낸 이야기를 글로 쓰는데 이것이 인쇄되어 종이에 묶여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물건으로 팔렸다. 내가 살던 곳에서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이야기가 적힌 책을 읽지 않았다. 할머니가 엄마가 언니가 이야기를 들려줬고, 때로 그들은 그 이야기를 할머니의 언니, 엄마의 엄마, 언니의 할머니에게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번쩍번쩍거리는 성에 사는 으리으리한 사람들은 종이에 인쇄되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이야기를 사서 ‘읽는다’고 들었다.
책을 만드는 주인 여자와 트레이드하는 주인 남자는 언제나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들이 쓰는 한국어가 아직은 낯설지만, 몸짓/눈빛 언어에는 이들보다 한결 숙달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진심임을 매번 느꼈다. 힘들면 쉬라고 당부했고, 가족과 떨어진 나를 향해 종종 안쓰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아도 늘 한결같은 부엌의 찬장 구석과 화장실 수도꼭지와 거실 TV장 뒤편, 아이의 침대 밑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환해졌다. 재택근무하는 주양육자였던 여자는 내가 이 집에 오기 전까지는 지금 내 일의 거의 전부를 홀로 했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매번 그 마음을 해맑게 표현했다. “이모님이 와 주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내 이모뻘인 여자는 나를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 만나는 동료들은 나더러 평균 이상으로 열심이라며 그럴 필요 없다고 성화였지만 나는 이들이 평균 이상으로 예의 바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잃었지만 예의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미적지근한 봄과 가을, 그리고 무더운 여름만 존재했던 고향을 떠나 뚜렷한 사계절의 한복판으로 떨어져 얼떨떨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반년이 지났다. 두고 온 얼굴들을 덤덤하게 떠올리던 밤들이 지나고 평생 이곳에서 사계절을 겪어온 듯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떠나온 곳은, 아니 떠나온 시간은 이곳, 아니 지금으로부터 300년 이후였다. 지금과 여기로부터 10년 전, 정확히 300년을 사이에 둔 평행우주 사이의 연결 통로가 발견됐다. 내가 떠나 온 2335년에서는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 끝에 모든 빙하가 녹아내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기후 난민으로 태어나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다가 구제시설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1% 미만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모든 것이 통제된 청정지역에서 살아갔다.
엄청난 발견을 앞에 둔 두 세계의 흥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325년의 우리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지구를 엿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환호한 것도 잠시, 암울한 미래에 놀란 2025년의 사람들은 일단 문을 걸어잠근 채 그 통로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5년 뒤, 그 통로를 여행할 수 있는 이들은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으로 한정됐다. 과거는 인구 절벽과 노동 인구 절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하고 안정적인 가사 노동 인력이 절실했다. 나의 현재였던 미래의 경우, 인공지능과 로봇 덕분에 인간에게 남은 일자리는 모두 저급 육체노동 업종 혹은 고난이도의 서비스 직군뿐이었다. 이를 통한 경제 활동으로 인구의 절반을 상회하는 노년층을 부양하는 것은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괴듯 언제나 다급하고 위태로웠다. 그러니 과거에서의 대규모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킨다면 고전적인 경제성장도 가능하리라 계산했다.
300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가깝고 또 먼 거리였다. 소식을 접한 뒤 평범한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는 건 두 세계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납득하고 체념한 뒤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할 방법을 모색했다. 두 세계 사람들 모두의 편의를 위한 규제가 속속 등장했다. 서로 다른 통화며 물가를 환산하여 계약금과 월급으로 지급하는 금융 시스템이 가장 필요했다. (주인 남자 역시 이 시스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구비된 것은 두 세계를 중계하여 필요한 양과 조건의 노동력을 수급하면서 양쪽(이라고 해보아야 노동력을 제공하는 미래의 우리 쪽에 훨씬 큰 의무와 부담이 있었지만)을 교육하는 에이전시였다. 나도 이곳에 오기 전 미래와 과거에서 각각 2주씩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 세계의 환경과 사회/제도, 생활 규범/문화를 공부했고 요리와 육아, 청소 등의 가사 노동을 실습했다.
같은 민족어 구사자끼리만 고용이 가능했는데 특정 민족어가 우리 세계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했다. 의무교육을 마친 뒤 인공지능 교육용 데이터 입력에 동원되던 나에겐 별다른 목표가 없었는데 그때 눈에 띈 것이 ‘과거로의 취업’ 광고였다. 5년 동안 어린 여동생과 엄마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5년을 견디고 나면 세 식구의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여 관리자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었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내가 더이상 일할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고, 난데없이 이곳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임신하지 않고, 주인 가족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미래는 존재했다.
주인 여자가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작업실에 들어간 뒤 아이와 등원하기 위해 아이가 탄 스쿠터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단지를 벗어나는 길목에서 다른 가사도우미들과 마주쳤다. 교육 기관에서 혹은 이곳에 도착한 이후에 알게 된 우리는 모두 이른바 저당 잡힌 미래였다. 신나게 스쿠터로 질주하던 아이가 10미터쯤 앞에서 넘어졌다. 혼자서 툴툴 털고 일어나는 듯 했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동네 할아버지를 보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 보는 그 노인은 아이가 괜찮은지 살피는가 싶더니 울음소리에 달려간 나에게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선조를 잘 돌보는 게 자네들 일이 아닌가.”
짐짓 엄한 말투로 꾸짖는 태도에 헛웃음이 비어져 나와 이를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선조’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고향의 에이전시에서였다. 과거 사람들 중에 스스로를 ‘선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은 그냥 넘기되 폭력이나 부당한 요구로 이어진다면 해당 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했다.
“쳇, 선조랍시고 고작 미래를 착취할 뿐인 주제에. 이런 거지같은 꼴이 온다는 걸, 그걸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뻔히 알면서 손 놓고 있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것들.”
그 담당자는 두 세계 모두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 사이에서 이윤을 취하기로는 그만한 위치가 또 있을까 싶어서 이를 듣는 내 기분은 다시 묘해졌다.
아래층 가사 도우미가 그 집 아이를 등원 시키느라 내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는지, 멈춰선 우리 옆을 지나쳤다. 짧은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담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너희는 우리가 되겠지. 너의 ‘자손’ 역시 우리처럼 살 거야. 너희가 지금 보지 않으려 하는 그 세계에서. 운이 좋다면 다시 우리처럼 이렇게 이 세계로 건너올 테지.
멀리서 파도 소리와 함께 돌고래의 노래가 들려왔다.
오정연
실체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할 수 있는 능력, 즉 미래라는 개념을 ‘발명’한 덕분에 인류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설명에 설득된 적이 있다. 하지만 더이상 이에 동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우리의 조상이 상상했던 위대한 미래가 점점 짧아져서 개인의 일생, 고작해야 다음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게 된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미래일지라도) 무엇이든 착취하지 않고는 현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2021/07/27
44호